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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88화 (388/651)

제388화: 시신 탈취(1)

호텔을 나오자마자 오민철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권총수는 달려오는 택시를 세워 올라탔다.

“형, 건설공사 같은데 입찰해봤어?”

“아니, 전혀! 대학 졸업하자마자 군대 지원해서 지금까지 총알 밥 먹고 있는데 언제 그런걸 해보겠어.”

“도급업체가 정하는 가격이 있지. 입찰자들은 우린 이정도 가격으로 그 공사를 해줄 수 있다고 써내는데 당연히 가장 저렴하게 입찰한 사람이 낙찰은 받는거고.”

“해봤냐?”

“조기축구에서 건설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귓등으로 들었지.”

“보통 낙찰은 어느 선에서 이뤄지는데?”

“입찰경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보통 80퍼센트에서 90 퍼센트 사이에서 낙찰자가 정해지지. 그런데 미군이 일 년에 500억달러 군비를 지출 했는데 고작 10분의 1에 가져간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봐 형은?”

“아니?”

“아카데미는 이 바닥에서 시가총액 1위 기업이야. 어차피 미군은 발을 뺄거야. 전쟁 피로도가 깊기도 하지만 여론이 너무 좋지 않지. 한마디로 아프카니스탄이 뭔데 그런 천문학적인 돈을 박아가며 지킬 가치가 있느냐는 거야.”

“거긴 석유도 안 난다며?”

“프린스가 누구야? 계산 빠르고 상황 읽는 눈이 좀 예리해.”

“50억 달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야.”

“최소한 100억 이상은 될 거야.”

“50억과 100억?”

“필시 컨소시엄을 형성하기 위해서 나를 불러 놓고 뒷다마 까면 안 돼지.”

“우리와 같이 아프카니스탄에 들어가자고?”

“그러니까 보자는 거지.”

권총수는 부드럽게 웃었다.

“오십 억 달러 받았으니 어떤 비율로 나눠야 하는지 계산해보라는 건데 아카데미가 우리보다 병력과 장비, 전투경험 모든 면에서 월등하지. 형은 우리가 어느 정도 비율이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현실은 현실이니까 제대로 따지면 8대2?”

“많이 줘야 7대3으로 본다면 우리 몫은 고작 15억 달러야. 돈으로 보면 크지만 우리 직원들이 다치거나 전사하면 그때 지급될 보상금, 또한 현장경비나 해상 선박경호와 달리 전쟁은 장비를 갖춰야 해. 그런 것 모두 갖추고 나면 얼마나 남을 것 같아?”

“차 떼고 포 떼고 그냥 그렇네.”

“이른바 기름 값도 안 나온다는 말 나오지. 10억 달러는 적은 돈은 아니야. 문제는 제반 경비까지 모두 계산한다면 결코 마음에 드는 액수가 아닌거야.”

두 사람은 예전에 자주 다니던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권총수는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프린스였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전화가 걸려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회장님!”

“어디오. 비즈니스는 한 번에 이뤄지지 않지요.”

확실히 수가 높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최소 며칠이라도 기다린다거나 아니면 대리인을 보내 재차 날짜를 잡거나 한다.

그런데 곧장 깨진 협상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한다.

앞서보다는 좀 더 양보할 뜻이 있다는 뜻이다.

“식당에 들어왔으니 식사는 하고 가죠.”

“좋습니다. 기다리죠.”

권총수는 전화를 끊고 돌아보는 오민철을 향해 웃었다.

“프린스?”

“배고파!”

두 사람은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갔다.

권총수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두 번째 만남에서 프린스는 모든 걸 털어 놓겠다는 듯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는데 CIA와 일 년 계약으로 150억 달러를 받았다고 했다.

그중 50억 달러를 블랙잭 지분으로 넘기고 전투지역과 아프카니스탄의 치안유지를 어떤 형태로 어디까지 맡을 건지의 세부적인 논의는 한 번 더 만나서 해결하기로 했다.

“이런 걸 두고 뭣 대주고 뺨맞는다는 거지.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협상했으면 얼마나 좋아. 줄 돈 줄 것이면서 이미지는 다시 한 번 더럽게 구기고.”

두 사람은 사우디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권총수는 그저 빙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타마르는 집을 나섰다.

그는 정해진 직업이 없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데 요즘은 근처 시장에서 등짐을 지면서 가족의 생계를 잇고 살아간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볼일이 생겼다.

커다란 댐공사를 앞두고 있다.

댐 공사장에서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시장 등짐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수입이 좋다.

어느 회사가 댐건설을 하게 될지 아직 결정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돌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줄을 대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었다.

분명한 사실은 어느 기업이 수주를 해도 기술자를 제외한 단순 인력은 현지인을 쓴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빠푸리아중공업’과 일본의 ‘카지마 건설’사가 댐건설 최종 후보에 올라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타마르는 아부카말 시의 시청으로 향했다.

잠시 후 낙찰 회사의 이름이 발표 될 것이다.

수주한 회사 관계자에게 전달할 20만 시리아 파운드(한화 오십만원이 조금 안됨)가 주머니에 있다.

자신 뿐 만이 아니라 댐 건설공사 인부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빚을 내고 대출을 받아 뒷돈을 준비하고 기다린다.

20만 합(合), 15만 낙(落)설이 떠돈다.

20만 파운드를 쥐어주면 인부로 일할 수 있고 15만 시리아 파운드로는 어려울 것이라는 소문이다.

댐 공사 기간을 3년에서 5년을 잡는다.

즉 일자리를 얻으면 3년에서 5년 동안 돈 걱정, 먹을 걱정은 없다.

그러나, 도저히 돈을 구할 수가 없었다.

오랜 내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다.

중동에서는 가장 풍요롭다는 평을 들을 만큼 올리브를 비롯해 복숭아, 사탕수수, 수박, 감자, 옥수수, 토마토등 농산물이 풍성했는데 오랜 내전은 공장은 물론 농업지대까지 완전히 뭉개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굶어 죽은 사람이 더 많다.

굶주림과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은 사람이 1,500만이다.

시리아 인구 절반이 떠났고 삼백 만 명이 죽었다.

입이 줄어들었으니 먹는 것이 풍요로워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땅이 잿더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돈이 얼마요?”

백인이다.

아무리 같은 백인이지만 결코 시리아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누구요?”

그건 내게 돈이 있다는 암시였다.

생전 처음 보는 사내가 거액을 빌려줄 수도 있다고 한다.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니다.

단 번에 불편한 거래가 될 것을 감지했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자신의 어깨에 여섯 식구의 목구멍이 달렸다.

“20만 파운드면 될 것 같소.”

백인 사내는 두말도 않고 20만 시리아 파운드를 내 놓았다.

“지불 방식은?”

어떻게 갚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타마르씨,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부탁이 뭘지 모르지만 이런 거래는 생애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생각이고 고민이고 할 필요가 없었다.

20만 파운드는 목숨을 걸어도 될 만큼 자신에게는 큰 돈이다.

“말해보시오.”

“시청 지하에 한국인 시신들이 있다고 들었소. 그 시신을 빼돌려 줄 수 있겠소? 빼돌려 주기만 한다면 미화 일만달러를 추가로 지불할 용의가 있소.”

연고가 없는 외국인 시신은 시청 지하에 보관하며 시리아 주재 해당국 대사관들을 통해 연락한다.

수교가 되지 않고 있는 나라의 국민이면 인근 국가의 대사관으로 통보해 준다.

“하겠소.”

이런 일은 생각이 많으면 피곤해진다.

혼자서 다섯 구를 빼내는 건 쉽지 않아 비밀 유지가 잘 될 만한 아는 사람 몇 명을 끌어 들였다.

“받으시죠.”

사내는 작은 가방 하나를 슬쩍 열어 보여주었다.

진위를 가려낼 눈은 없지만 분명히 백 달러짜리 돈다발이 가득했다.

큰 돈을 벌려면 크게 위험하고, 작은 돈은 그에 맞게 덜 위험하다.

전쟁으로 죽은 친구들이 숱하고, 굶어죽은 이웃이 한둘이 아니다.

모두가 죽었다.

이런 지옥에서 나 하나 죽어 가족이 산다면 이 또한 밑진 장사는 아니다.

타마르가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알라도 굶주림 앞에서는 소용 없었다.

시청 입구에는 M4로 무장한 사복차림의 사내들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가미카제로 불리는 일본 보안업체 용병들이다.

얼마 전 쿠르드 민병대의 시청 기습을 완벽하게 제지하고 근원지까지 찾아 소탕하여 시리아 정부로부터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타마르는 신분증을 제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시청 앞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몰려 있었다.

발표 시간인 10시가 다가온다.

하나 같이 입이 타는 듯 마른침을 삼키고 왔다갔다 하며 안정을 찾지 못했다.

“열 시다”

누군가 소리쳤다.

시청 전면으로 걸린 전광판에 글자가 나타났다.

‘카지마’

순간 사내들의 표정이 변했다.

프랑스 회사 보다는 일본회사의 임금이 약하다는 말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한 푼이라도 더 준다는 프랑스 기업이 낙찰받기를 원했는데 모두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결정은 났다.

본격적인 로비 계획을 세우기 위해 하나 둘 시청을 나서기 시작했다.

타마르는 시청 본관건물 왼쪽으로 돌아갔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 시청 경비로 일한 적이 있어 누구보다도 구조를 잘 안다.

그야말로 눈감고도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있다.

건물 뒤로 돌아가면 쓰레기를 쌓아두는 쓰레기장이 있고 뒤로도 출입이 가능한 뒷문이 하나 있다.

그 뒷문을 통하면 정문 보다는 쉽게 지하실로 내려갈 수가 있다.

타마르는 뒷문으로 밀고 들어가 조용한 복도를 살피고 다시 나왔다.

지금까지는 상황이 좋다.

타마르는 쓰레기장을 지나쳐갔다.

쓰레기장 뒤쪽으로 가면 외곽 담벼락이 나온다. 높이가 2미터 가량 되는데 위로 철조망이 쳐져 있다.

다행히 펜스 형태로 처져 있어 타마르는 가지고 들어온 절삭기로 자르기 시작했다.

톡!

토톡!

일 미터가 조금 넘을 것 같은 한 칸의 철조망을 잘라냈다.

철조망이 잘라지는 것과 동시에 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의 손이 나타났다.

이어 사내들이 뛰어 내렸는데 모두 네 명이다.

“차는?”

타마르가 물었다.

“밖에, 어서 움직이자고.”

타마르가 고용한 사람들이다.

가장 앞서 타마르가 들어가 복도를 살피더니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일행은 까치발을 하며 최대한 발소리를 죽여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덜컹!

시체실 문은 열려 있었다.

지천이 시신인데 누가 훔쳐갈 일도 없기 때문에 엄중한 감시나 경비 따위는 하지 않는다.

흠칫!

타고르는 깜짝 놀랐다.

시체실이라고 해서 한구식 냉동고에 넣어 보관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처박아 놓았다.

비록 시체라지만 물건처럼 처박아 놓은 시 당국의 처사에 순간적으로 욱 하며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화를 내기 위해 들어오지 않았다.

“찾아 봅시다.”

다섯 구라고 했다.

다섯 사내는 인상을 쓰며 시체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비록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죽은 시체 얼굴을 일일이 살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얼굴에 총을 맞은 시신은 도저히 마주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앗 쌀라 말아이쿰’

타마르는 마음속으로 평화를 빌어주었다.

“타마르 여기 좀 보게.”

타마르를 재빨리 동료가 확인을 요하는 시신을 보았다.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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