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87화 (387/651)

제387화: 그들의 야망(2)

뼛속까지 군인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너무 거창하게 말했습니까? 그냥 이래 저래 돌아가는 상황도 좀 볼 겸 물러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안치웅은 권총수와 오민철을 보며 씨익 웃었다.

“난 그냥 가기 싫었어요.”

전상미가 말했다.

“뉴저지주 6주 훈련이 힘들기도 했고 갑자기 더운 나라에 와서 그런지 나른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안치웅이 모두 해버려 대충 받아 넘기는 모습이 역력했다.

권총수는 사격장을 바라보았다.

불꽃같은 태양에 사격장이 이글이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열기보다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더 뜨겁다.

그런 환경인데도 자청하여 사격 연습을 하는 걸 보면 괜찮은 친구들이다.

동료를 배려 한다는 것이 마음과는 달리 쉬운 일은 아니고 더욱이 돈과 결부될 때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기분이 좋은 탓인가 권총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지이잉!

전화가 울렸다.

액정을 보던 권총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전화번호가 낯설다.

“누구십니까?”

일단 전화를 받은 권총수가 물었다.

잠시 상대의 말을 듣는 듯 하던 권총수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했다.

“에릭 프린스?”

에릭 프린스라는 말에 오민철도 놀랐고 돌아보았다.

“예, 그러죠.”

권총수는 전화기를 내렸다.

기다렸다는 듯 오민철이 물었다.

“에릭 프린스라니? 설마 아카데미 오야붕?”

권총수는 눈을 깜빡였다.

“맞아!”

“그 사람이 왜 너에게 전화를 해? 이 바닥에서 널 가장 미워하는 넘버 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만나자는데."

"아니, 도대체 왜?!"

권총수는 살짝 웃었다.

아카데미로부터 수많은 제의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또한 작전중 적지 않은 아카데미 소속 용병들이 자신의 총에 희생되었다.

권총수가 보안 업에 뛰어들면서 메이저급 회사들 사이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사막의 흑새가 왔다’

사막의 흑새가 참여한 작전은 결코 실패가 없다.

그런 그가 회사를 차렸다면 그 회사 역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계의 비명이었다.

일부에서는 자사 특급 용병들 관리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있다.

일부 용병들은 사막의 흑새와 일해 보는 걸 소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초인적인 신력(神力)을 보고 배우려는 것이다.

궁금하다.

전쟁시장에서 가장 큰 회사의 대표가 이제 막 진입한 초년생에게 만날 것을 제의해 온 것이다.

안치웅과 전상미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비행기를 타고 카이로에 내렸다.

프린스가 리야드에서 만나는 것을 난처해하며 카이로에서 보자고 양해를 구했다.

사우디 정부와 약간 껄끄럽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권총수는 흔쾌히 응했다.

“사장님께서 보내 왔습니다.”

두 명의 백인이 입국장을 들어서는 두 사람을 맞이했다.

정장을 했지만 한 눈에 용병들이다.

특히 오른쪽 상의가 딱딱한 것을 보아 옷 속에 기관단총을 숨겼다.

두 사람은 그들이 가져온 벤츠에 올랐고 차는 약속장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침묵이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백인 사내들은 워낙 중요한 손님이라는 긴장과 무게가 주는 압박감에 입을 닫았고 권총수는 생각이 있어 말을 하지 않았으며 오민철은 눈치를 채고 입을 다물었다.

권총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업 시작한지 이제 7개월째로 접어들면서 배운 것과 경험한 것이 많았다.

배운 것 중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입이었다.

떠들수록 손해였다.

말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내 패를 내 보인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상대가 용병시장의 글로벌 기업 아카데미의 프린스다.

수행 경호원이라면 언젠가 차 안의 분위기에 대한 얘기가 술좌석이든 아니면 보고형식이든 프린스에게 전달 될 것이다.

그래서 분위기를 긴장으로 몰아가는 것이었다.

차안에서 무슨 얘기 않더냐고 물을 때 두 사람은 한마디도 없었다고 할 것이다.

그럴 때 프린스는 무슨 생각을 할까.

용병신분의 사막의 흑새와 사업가일 때의 사막의 흑새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말없는 시간이 길어지자 앞의 두 사내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둘 다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권총수는 한 술 더 떴다.

의도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려 차가운 한기를 발산했다.

두 사람의 가슴은 더욱 짓눌린다.

숨을 마음 편하게 쉴 수 없는 것이다.

자꾸 엉덩이를 들썩 거리는 것이 몹시 불편한 모양이다.

차는 페어몬트 호텔에 멈췄고 조수석 인물이 재빨리 내려 뒷문을 열어 주었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차에서 내렸다.

“이쪽으로.”

사내는 두 사람을 호텔 안으로 데리고 가더니 곧장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잠시 후 지하에서 올라온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두 사람은 사내가 누르는 20층을 보았다.

더 올라갈 곳은 없다.

꼭대기 층에 레스토랑이 있다.

레스토랑만 다니는 전용 엘리베이터인지 빨랐고 몇 번의 호흡을 하지도 않았는데 멈춰 선다.

쨍!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밖에도 정장의 다른 두 백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권총수는 여전히 무표정 했고 오민철은 눈치를 보았다.

오민철도 아무리 작전이지만 무척 답답하다는 듯 이마를 찡그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성격상 30분 이상 침묵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그러므로 하다못해 하품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분위기 잡는 권총수를 생각해서라도 참아야 한다.

오민철은 이 한 몸 말을 못해 죽는다 해도 후회는 결코 없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사내들의 안내를 받아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프린스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 맞은편 자리는 비었다.

오후2시 정각이다.

점심시간을 약간 지난 때여서 레스토랑에 손님은 많지 않았다.

종업원에게 물을 부탁하여 단숨에 비우는 오민철을 보며 권총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는다.

그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프린스가 조금 전 자신들을 안내했던 두 사내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왔다.

권총수는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미스터 프린스.”

“캡틴!”

두 사람은 힘차게 악수를 했고, 오민철도 프린스의 손을 잡았다.

프린스는 권총수에게 예약 해놓은 음식이 있다면서 양해를 구했고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양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한 것이다.

고가의 음식도 아니고 양고기가 흔한 중동에서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자신의 식성까지 알아내어 준비 했다는 건 프린스 나름대로 무척 신경을 썼다고 봐야 했다.

“비지니스를 마무리 하면 식사가 더욱 즐거워집니다.”

식사 전 얘기부터 끝내자는 말에 권총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백악관 발표 들으셨죠?”

프린스가 입을 열었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CIA에서 미군대신 민간 보안업체가 아프칸 탈레반을 상대할 때 드는 비용이 어느 정도 일지에 대한 연구 용역을 아카데미에 의뢰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흠칫!

프린스는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그건 극비사항이다.

백악관에만 보고 됐을 뿐 외부 유출은 없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프린스는 앞에 놓인 물병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협상은 정보를 갖고 있을 때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권총수가 쥐고 있는 정보의 크기와 깊이가 어느 정도 인지 알아야 이쪽에서 판돈을 조절 할 수가 있다.

아프카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현지 상황은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미군이 아무런 조건을 내걸지 않고 아프간에서 발을 빼자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이 틈을 노려 활개를 치고 있었다.

외신은 미군 관계자를 인용해 공식적으로 시작된 미군 철수 작업이 현재 30퍼센트 가량 마무리됐다고 보도했다.

이미 남부 헬만드주의 한 미군 기지는 아프간 정부군에 넘겨졌다.

한때 10만 명까지 증파됐던 미군은 현재 1천500명으로 줄어들었다.

미군 철수는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철군 발표로 공식화됐다.

미국 대통령은 늦어도 올해 안으로 아프간 철군을 끝내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20년간 전쟁을 벌이며 아프간 정부를 지탱해온 미군이 조건 없이 철수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탈레반이 다시 집권하거나 전국이 새로운 내전 소용돌이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실제로 탈레반은 미군 철수가 가져온 기회를 환영이라도 한다는 듯 헬만드주 등에서 최근 대규모 공세를 벌이고 있다.

아프간 정부군도 공습으로 반격하고 병력을 증파하는 등 양측 사이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리는 천둥 소리에 정신이 없다고 했다.

아프칸 상황이 예상보다 빨리 불안해지자 백악관은 급해졌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배후로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고, 탈레반에 신병 인도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동맹국과 합세해 아프간을 침공했다.

이후 아프간에 친서방 정권을 수립하는 데 성공했지만, 탈레반이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장기전으로 이어졌다.

‘미군의 무덤’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다.

아프카니스탄은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다.

구 소련이 침공했다가 처참하게 당하고 물러났고 미국도 그에 못지 않은 피해를 당하고 있다.

결국 백악관이 내민 묘수는 미군을 철수하여 국내 여론을 안정시키고 대신 아프카니스탄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민간 보안 기업을 선택한 것이다.

“맞습니다. 우리에게 연구 용역을 의뢰했고 결과가 나왔습니다.”

프린스는 권총수를 보며 말했다.

“미군이 주둔했을 때 만큼의 효과를 얻어 내기 위해서는 1년에 50억 달러는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가 끌어낸 연구 결과입니다.”

50억 달러면 한화 약 6조 가까운 돈이다.

권총수는 상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여기 흡연 가능합니까?”

“대표님께서 애연가라는 걸 알고 흡연석으로 예약 했죠.”

비서로 보이는 사내가 웃었다.

딸칵!

권총수를 담배를 길게 빨아 들였다.

“미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권총수는 느릿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미 국방부는 아프간에 쏟아 부은 돈이 2001년부터 지금까지 7780억 달러(한화 약 933조원)이라고 했다.

또한 아프카니스탄을 재건한다는 목표 아래 국무부와 미국 국제개발처(USAID), 그리고 기타 정부 기관이 가져다 부은 돈이 440억 달러(한화 약 52조원)이다.

2001년 아프칸 전쟁 시작 이래 공식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총 비용은 8,220억 달러(한화 약 9,866조원)이다.

이건 직접적인 비용이고 여기에 미군 희생자, 아프카니스탄의 피해는 전혀 계산되지 않았다.

꿀꺽!

프린스가 침을 삼켰다.

“대충 1조 달러로 잡는다면 한화 1경(京)이 훌쩍 넘죠. 20년을 싸웠으니 평균 일 년에 오백억 달러는 들어갔군요.”

프린스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50억 달러, 즉 십분의 일로 미군이 지키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정말 그렇다고 보십니까?”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씰 출신이기 때문에 전쟁 비용에 대해서는 더 잘 알 것 아닙니까? 50억 달러면 충분합니까?”

권총수는 다그치듯 질문을 했다.

프린스가 침묵하자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캡틴!”

“점심은 먹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오 이사 갑시다.”

오민철이 벌떡 일어났다.

“예! 사장님!”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토랑을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이 떠났고 프린스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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