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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83화 (383/651)

제383화: 모든 건 운명이다(2)

그래서 권총수가 들고 나온 것은 총점제였다.

각 과목별 커트라인을 정해 넘어서지 못하면 탈락 시키는 것이 아니라 6주 훈련과정의 점수를 총 합하여 합격 불합격을 계산하는 것이다.

각 과목자다 점수표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성적이 어느정도 나올지는 대충 짐작은 하지만 정확한 건 모른다.

사실 평가규칙을 세울 당시 조금 시끄러웠다.

권총수와 오민철을 포함한 벤자민과 교관들 모두가 참석했는데, 대체적으로 과목 점수제를 찬성했다. 과목별로 탈락 시키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인 권총수가 반대를 표시했다.

반대의 첫째 이유는 제아무리 특수부대 요원이라고 해서 모든 과목에서 훌륭한 점수를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일부 저조한 과목이 장애가 되어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는 분야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손실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나이였다.

모두가 현역을 마친 사람들이다.

즉 나이가 들어가므로 인해 여러 가지에서 장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가급적이면 잘하는 분야를 개발하고 모자란 부분을 근무하면서 채우는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 한 가지, 사격과 체력 두 종목에서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곧장 탈락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이 난 것이다.

어둠속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권총수는 오늘 야간 훈련도 없는 날이었기 때문에 고개를 돌렸다.

캄캄한 밤이었지만 권총수의 눈은 백여 미터 전방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누가 있어?”

같이 퇴근을 하기 위해 나오던 오민철이 물었다.

권총수는 천천히 다가갔다.

“끙! 끄으응!”

누군가 턱걸이를 하고 있었다.

흑복 바지에 검정색 반팔 셔츠를 입었는데 미군 사막화를 신었다.

머리를 틀어 올려 망으로 감싼 것을 보니 단번에 여자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는데, 전상미였다.

인기척에 턱걸이를 하던 전상미가 돌아섰다.

권총수를 발견한 전상미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꾸벅했다.

그러자 권총수도 마주 숙였는데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열 시가 넘었습니다.”

전상미를 손등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훔쳤다.

“성적에 따라 일급이 책정되긴 하지만 큰 차이는 없습니다.”

훈련 마지막 주다.

더욱이 성적도 나쁘지 않는 상위권이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합격선인데 이 시간까지 땀을 흘릴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냥 하는 거죠.”

“그냥?”

“막상막하의 실력이면 체력이 승패를 결정하죠.”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전상미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저 여자 1공수 고공 낙하 팀에 있다 부상으로 전역했다는 여자 아냐.”

오민철이 어둠속을 보며 말했다.

‘막상막하의 실력이면 체력이 승패를 결정한다’

권총수는 전상미가 던지고 간 말을 되새겼다.

빈틈이라고는 전혀 없는 분명한 말이었다.

그리고 전상미의 말속에는 한 가지 의미가 더 들어 있었다.

전장에서 이긴다는 건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곧 반드시 살아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지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권총수는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였다.

오민철도 동승했는데 만나야 할 사람이 유럽 방문을 마치고 어제 귀국했다.

그런데 공항에서부터 오민철이 말이 없다.

자신의 돈은 투자된 것이 없다.

즉 권총수가 망해도 자신은 손해 볼 일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열정만큼은 어떤 투자자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대단했다.

틈만 나면 훈련장으로 나가 시범을 보이기도 하고 잘못된 전략과 전술은 단번에 짚어 고친다.

707출신답게 소부대 전투, 수색정찰, 근접전투(CQC), 시가전 차량운전법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거기에 실전경험이 더해지면서 그가 시범을 보이면 모두가 넋을 놓는다.

최선을 다하고도 자신이 더 안절부절 못한다.

지금도 그렇다.

“얘기가 잘되어야 할 텐데.”

자꾸 중얼거렸고 보다 못한 권총수가 고개를 돌려 웃었다.

“형! 경영자는 나야. 걱정은 내가 하고 형은 직원 관리나 잘해.”

“광주 건물하고 서초동 집 팔면 300만 달러 정도 만들어질 것 같은데 쑤셔 넣을까?”

“됐다니까? 한참 가격 뛰고 있는데 왜 팔아. 그리고 삼백만 달러 들어 와봤자 입맛만 버려.”

“하긴!”

오민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순백의 토브를 걸치고 붉은 슈막(머리에 뒤집어 쓰는 천)에 이깔(검정색 띠)을 두른 사내가 들어왔다.

콧수염까지 수북하여 오민철은 어느 치킨집 앞에 서 있는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아민 나세르.

세계최대 석유생산회사 아람코의 최고 경영자이다.

세 사람은 두꺼운 소파에 앉았는데 남자 직원이 김이 나는 붉은 홍차를 가져다주었다.

“일은 어느 정도 진척이 있습니까?”

권총수에게 물었다.

“블랙잭 제1기가 내일 수료합니다.”

“이후 일정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중동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들 중 일부에서 경비 계약을 원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에서 의견차이가 있습니다.”

“그럴 겁니다. 의뢰인으로서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것이고, 받는 쪽에서는 더 받아내고 싶을 테죠.”

척!

나세르는 다리를 꼬았다.

“어제 밤 유럽에서 귀국하자마자 대통령 각하를 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캡틴 얘기가 나왔죠.”

꿀꺽!

오민철이 침을 삼킨다.

긍정적인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하지만 세상일은 모른다.

그야말로 끝나야 끝나는 것이다.

“일주일 후, 그러니까 이달 말일까지 다인코프와 계약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아람코의 모든 경비인력은 블랙잭으로부터 지원받기를 원합니다.”

권총수는 가만 눈을 감았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특히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돌변하고 이합집산을 밥 먹듯이 한다.

그래서 영원한 적도 없고 친구도 없다는 서글픈 말이 도는 것이다.

그건 이곳 중동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수시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결정이 번복되고 쉴 새 없이 등을 돌리는 걸 목격했다.

사부 공공선사도 아무리 친한 사람일지라도 가진 것에서 삼 할은 숨기라고 했다.

7할은 분명하게 보여주지만 3할은 감추라는 것은 뭘까.

그건 배신을 염려한 대비였다.

3할을 얼마나 잘 감추느냐 따라 어떤 위기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파흐드 대통령을 믿는다.

그러나 항상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실 어제 밤 매우 불편했다.

사업을 시작하여 뜨는 첫 삽이기 때문에 신중했고 긴장했고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모든 것이 확인되었다.

아람코와 합의가 된 것이다.

“다인코프와 동일한 계약을 했으면 합니다. 캡틴?”

“감사합니다.”

권총수는 앉은 자리에서 목례를 했다.

아람코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오민철은 소릴 질렀다.

비명에 가까운 오민철의 외침에 길을 가던 주위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볼테면 보라고, 실컷 봐. 난 지금 미쳤다. 으하하하하!”

오민철의 웃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긴장으로 쌓였던 불안의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 버리겠다는 듯 목에 핏줄이 불거지도록 소리친다.

“크카카카카! 됐다. 됐다고, 우리 총수 진짜 사장님 됐다니까 자식들아.”

권총수는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오민철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았다.

기쁨도 자제한다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라는 걸 지금 절감하고 있었다.

뭔지는 몰라도 춤을 추고 소릴 지르며 떠드는 사람은 오민철 하나로 충분할 것 같았다.

자신까지 나서서 날뛰면 모양새가 빠질 것 같다는 생각에 자제할 뿐이다.

후우우!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파흐드 대통령과 아는 사이라고 하지만 나세르 아람코 대표와는 초면이었다.

더욱이 나세르는 전 왕세자 알 살만 때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권력의 지도가 바뀌면 그에 맞는 학살이 시작된다.

저항을 했던 하지 않았던 반대편 권력의 우산 속에 있었던 사람들은 웬만하면 쳐낸다.

쳐낼수록 기반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흐드 대통령은 대 사면과 대 포용정책을 들고 나왔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어떤 변화도 피바람도 없다고 단언하여 짧은 시간에 권력의 안정을 꾀했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다.

그러나 유일하게 인간만큼은 윗물이 맑아도 아랫물이 더러울 수 있는 동물이다.

포용정책으로 용서와 공존공영을 외쳐도 아래에서 비수를 갈고 배신을 획책하는 것이다.

여러 이유를 들어 블랙잭을 외면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은 경험이 생명이다.

블랙잭은 이런 일에 경험이 일천하다.

검증되지 않는 한국 보안업체를 썼다가 나중 사고라도 생기면 누가 감당하느냐면서 얼마든지 틀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너야.”

오민철이 흥분이 아직 식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사막의 흑새란 브랜드 때문에 일이 이뤄진 것이라고, 너 같으면 쌩 초출들한테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회사 경비를 맡기겠어? 더욱이 친미국가인 까닭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부터 끊임없이 테러 위협을 받고 있는 사우디인데.”

권총수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이 좋고 좋은 날.”

“그냥.”

“뭐가 그냥인데?”

“너무 좋아서.”

너무 좋아서라는 말에 오민철은 권총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떻게 너무 좋은 얼굴이 곧 몇 명 죽일 상이냐?”

“난 너무 좋으면 표정이 더러워져.”

척!

갑자기 오민철이 걸음을 세웠다.

그제서야 뭔가 느낀 것이다.

기쁨에 대한 감정 표현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조금 전 자신처럼 소릴 지르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 어색할 만큼 밋밋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권총수는 지금 좋아하고 있다.

단지 감정 드러내는 일에 너무 어설프다 보니 어정쩡한 표정, 즉 이마를 찡그린 체 조금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으하하하! 웃는들 어떠하리 찡그린들 어떠하리. 우릴 미쳤다고 흉보는들 어떠하리. 이런 날이 천년만년 쭈우우우욱.”

딸칵!

권총수는 가로수로 심어진 야자수 아래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무도 자신의 편을 들어준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꾸중만 할 줄 알았지 왜 그렇게 아이들과 싸우고 또 싸우는지 싸움 너머를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린 소년의 가슴속에 담긴 상처가 어떤 건지 관심도 없고 이해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시설 아이라고 하면 무조건 손가락질부터 시작하는 어른들의 행동은 증오를 더욱 키웠고 분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애, 네가 권총수니?’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등교를 하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살풍경한 얼굴로 물었다.

‘네!’

‘나 임찬식이 엄마다. 네가 뭔데 찬식이를 때려, 너 저기 성당 보육원 출신이라며?’

이쪽에서 왜 자기 아들이 맞아야 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도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한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시설 친구를 약 올리며 깔아뭉개는 임찬식의 행동을 못 본 체 할 수는 없었다.

시설출신이고, 체격도 왜소해 힘도 쓰지 못하는 완전한 약자의 조건을 갖춘 친구를 놀리고 괴롭히는 임찬식을 놔두면 계속 괴롭힐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날 보육원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누구도 자신을 꾸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칭찬도 없었다.

보육원으로 항의 전화가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직접 찾아와 삿대질하며 목청을 높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침묵한다는 건 자신의 행동을 묵인한다는 뜻이었다.

폭력은 안 되지만 약자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지 그런 약자를 놀리고 못살게 구는 아이는 커서도 그럴 것이다.

칭찬은 할 수 없으나 꾸중도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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