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2화: 모든 건 운명이다(1)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표정이다.
말이 삼사백 명이지 엄청난 숫자다.
저격수 역사를 보면 그들이 사살한 적의 숫자가 심심찮게 기록으로 내려온다.
2차대전에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연합군쪽 저격수(소련)로 근무한 바실리 자이체프의 공식기록은 225명이다.
기록되지 않는 숫자까지 포함하면 300명을 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모 해위해라는 군인이 있다.
그는 핀란드의 군인으로 소련과 치른 겨울전쟁에 저격병으로 참전했다.
인류 전쟁사 최고의 저격수를 논할 때 늘 1순위로 언급되는 말 그대로 전설이다.
소련과 벌인 겨울전쟁 100일간 그는 초강대국인 소련군을 상대로 500여 명의 병사를 사살하였다.
그는 은밀한 저격을 위해 망원조준경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햇빛이 스코프에 비치면 그 빛이 반사되어 위치가 노출되기 때문이란다.
현대전으로 넘어가 보면, 누가 뭐라고 해도 크리스 카일이다.
네이비 씰 출신으로 공식 160명, 비공식 255명이다.
세 사람의 특징은 전쟁 중 세운 저격 숫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인부대 오 년을 계산해 넣는다고 해도 삼백 명이 넘는 숫자를 용병이 사살했다면 충격이다.
“역사적으로는 그보다 더 많은 적군을 죽인 저격수들이 적지 않지만 현대전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내용의 보도는 없는 줄로 압니다.”
즉, 그런 실력을 지녔다면 한 번쯤 언론에 보도가 되어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1차적인 얘기다.
질문을 던진 사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래 봤자 씰이나 델타포스, SAS출신도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칵!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피워 물고 불을 붙였다.
드르륵!
창문도 열었다.
권총수는 등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보안회사와 다른 민간기업의 차이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민간기업에서 직원의 실력은 머릿속에 있지만 보안업계는 몸으로 갖고 있다.
옛날로 말하면 이들은 무사들이다.
무사의 권위는 두 가지에서 만들어진다.
실력과 출신 사문(師門)이다.
실력이 뛰어나 버리던가 아니면 스승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던가.
UDT 씰이나 네이비 씰 정도를 제대했다면, 그래서 그 증거를 보여준다면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지만 외인부대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더욱이 삼백 명이 넘는 사살자 수는 그야말로 튀겨도 너무 튀겼다고 여기는 듯 했다.
오늘날 전쟁용병회사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블랙워터(지금은 아카데미)의 대표이사 프린스 역시 자신이 씰 출신이 아니었다면 짧은 시간에 그렇게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짝짓기를 위해 숫놈들끼리 싸우는 초식동물은 올해 패했어도 다음 해에 다시 도전한다.
그러나 맹수는 다르다.
한 번 지면 절대 덤벼들 생각을 않는다.
사람도 이와 같다.
한 번 꺾이면 두 번 다시 달려들지 않는다.
권총수는 꺾어 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권총수는 담배를 끄고 탁자 서랍을 열어 리모컨을 꺼냈다.
푹!
촤르르르!
리모컨을 누르자 천장에서 스크린이 내려왔다.
이어 책상 위 노트북을 작동하더니 엔터를 쳤고 실내에 불을 껐다.
잠시 후 스크린에 영상 하나가 나왔는데 다인코프를 광고하는 내용이다.
“엇!”
“뭐야.”
영상을 보던 사내들이 놀란다.
화면에서는 여러 가지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길리슈트를 입은 저격수의 저격 영상, 시가전 전투, 현 사우디 대통령 파흐드 경호 장면, 자동차를 이용한 추격, 실내에서 권총을 이용한 속사로 세 명의 적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포함한 십여 가지의 영상이 나왔다.
그런데 그 영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권총수였다.
“사막의 흑새.”
화면이 끝나면서 사막을 날아가는 검은 독수리가 나타난다.
모두가 놀란 표정이다.
길리슈트를 입은 저격수도 권총수였지만 얼굴이 나타나지 않아 확인 시켜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동차 추격 영상과 파흐드 대통령 경호는 터번을 두른 권총수가 직접 지휘하고 있었다.
특히 실내에서 전광석화와 같은 속사로 세 명의 적을 제압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탁!
영상이 꺼졌다.
“또 질문 있습니까?”
권총수는 의자에 앉았다.
조용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하나같이 굳은 표정인데 충격을 받은 탓이다.
“지금 영상속에서만 내가 죽인 적이 일곱 명입니다. 권총으로 셋, 파흐드 대통령, 당시는 왕세자였지만 그때 셋, 저격으로 IS 중간간부중 한 명인 알라흐를 날렸고.”
여전히 침묵이다.
“조금 전 여기 왔다 가신 분 있죠. 그분은 707 나왔어요. 용병이 되기위해 일부러 외인부대에 지원하여 오 년 근무했습니다. 전쟁시장에서는 가장 비싼 몸값을 받는 분 중 한 명이죠. 영어 잘하는 분 있으면 다인코프나 KAS에 메일을 보내 확인해봐도 좋아요.”
인간 시장도 서열싸움이다.
짐승과 다른 점이라면 말이 통한다는 것인데 힘을 우선시하는 곳에서는 힘이 두목의 조건이고 두뇌로 살아가는 사람은 연구와 개발이 그의 지위를 갖춰준다.
“으아 좀 쉬어야 겠어. 도저히 입이 아파 안 되겠다.”
오민철이 나타났는데 전화기 코드를 뽑아 놓고 잠시 쉬는 중이라고 했다.
“오늘까지만 고생해. 자동 안내방송 프로그램이 내일 쯤 온다고 했으니 그때부터는 이 고생하지 않아도 될 거야.”
오민철이 의자에 앉아 있는 이십 여 명의 사내들을 쭈욱 훑어 보았다.
“거긴 왜 제대 했습니까?”
오민철이 홍일점인 전상미를 지목해 물었다.
“무릎 골절상입니다.”
“최악이었군. 내가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왜 우리가 고액의 연봉을 약속하는지 아세요? 전쟁은 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수 없으면 방아쇠 한 번 당겨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아 오늘도 내가 죽지 않고 살았구나 안도하죠. 그리고 내일도 잠자리에 누울 수가 있었다면 좋겠다 하는 소원을 가집니다.”
전상미는 숨을 내쉬었다.
실감 나는 얘기다.
하루살이 인생이라는 말이 어쩌면 맞을지 모른다.
오늘 죽지 않고 살았다고 잠자리에 누워 감사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연봉책정은 어떻게 되는 거죠?”
전상미가 물었다.
“훈련소 성적입니다.”
오민철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알고들 계시겠지만 500 달러가 우리 회사의 최저 일급입니다.”
“무조건 지급 되는 것인지 아니면 건설 노동자들처럼 일을 하지 않는 날은 받지 않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구레나룻을 한 사내가 물었다.
중사로 특전사를 제대하고 지금은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있다는 전국진이다.
“비온다고 전쟁 안 합니까?”
“그 말씀은 날마다 지급된다는 뜻입니까?”
“그래요.”
잠시 소란스럽다.
광고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라고 보았다.
자신들이 아는 임금, 즉 군에서의 봉급이나 가장 많이 제대하고 진출하는 경찰 소방공무원 월급과 비교해도 상대가 안될 만큼 고액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회사 관계자로부터 직접 듣자 당황한 모양이다.
그때 안쪽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채명천이 복사된 A4용지 이십 여 장을 가져왔다.
오민철이 그걸 받아 사내들 앞에 한 장씩 나눠 주었다.
“내가 얼마 전까지 근무했던 다인코프에서 받은 몸값 명세서 입니다.”
“으헉! 사백만 달러.”
눈으로 보자 사내들이 자지러지듯 놀란다.
“보너스와 승전 수당은 별도요.”
오민철이 자랑하듯 말하고 권총수가 흥분된 분위기를 끊으며 뒤를 이었다.
“장사꾼은 계산기 두드려 손해 볼 짓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준다는 건 그만큼 위험한 일에 투입된다는 뜻이기도 하죠. 불행한 일이 생기면 여러분이 슬픈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죠. 그들은 평생 여러분을 가슴에 묻고 살아 갈 것입니다.”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라는 뜻이다.
* * *
미국 뉴저지주.
모리스타운에서 북쪽으로 50킬로 정도 들어가면 대규모 늪지대가 나온다.
거기서 81번 도로를 따라 가면 ‘블랙잭(Blackjack)’이라는 입간판 하나가 서 있다.
흙과 돌멩이가 쌓인 길 가장자리와, 먹물처럼 시커먼 아스팔트를 보면 도로가 만들어지고 포장된지 얼마되지 않은 듯 보였다.
입간판에서 4킬로 정도 들어가자 군 위병소처럼 바리케이트가 쳐진 초소가 나타났다.
‘여기에 들어오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수가 있다’
라는 글씨가 아치형으로 걸렸고, 초소 앞에는 M4를 거머쥔 흑복차림의 두 사내가 서 있었다.
총소리가 요란했다.
블랙잭 제1기생들의 훈련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입소 당시에는 250명이었지만 중간에 부상으로 탈락하거나 힘든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한 인원들이 빠져나가면서 마지막 6주째인 지금은 185명이 참여하고 있었다.
부상자들은 완쾌후 재 도전의 기회가 주어진다.
훈련을 포기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마흔을 전후한 연령대였는데 비록 특수부대 출신이었지만 전역한지가 오래되었고 그로인한 체력 저하가 원인이었다.
훈련생들을 지도하는 교관들은 과거 권총수와 인연을 맺었던 KAS와 다인코프, 아카데미 출신의 용병들이다.
주로 델타포스와 네이비 씰 출신들며 영국군의 대표적 브랜드 SAS출신도 있었다.
훈련소장은 얼마 전까지 같이 작전을 벌였던 벤자민이다.
권총수는 통제실 화면에 나오는 침투 및 습격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상의 적 레이더 기지를 파괴하기 위한 훈련이다.
검은 흑복을 입은 사내들이 늪지대를 지나 산을 오르고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CCTV로 작전을 벌이는 훈련생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권총수의 눈은 한 사람에게 멎어있었다.
블랙잭1기 훈련생중 유일한 여자인 전상미다.
“15번 훈련생 어떻습니까?”
벤자민이 빙긋 웃었다.
“대단하네. 훈련 성적을 봤겠지만 상위 클라스야. 처음에는 다친 무릎을 무척 두려워하면서 몸을 사리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니야. 며칠 전 10킬로 급속행군에서 세 번째로 들어올 정도야.”
그 정도면 더 이상 무릎 공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특히 사격, 폭파, 독도법, 레펠링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갑자기 통제실이 환해졌다.
적의 레이더기지가 폭파되면서 발생하는 불빛 때문이었다.
“A팀 작전 완료.”
벽에 달린 스피커로 무전이 걸려 왔는데 UDT 씰 출신의 안치웅이었다.
“임무 완수를 축하한다.”
책상 위에 세워진 마이크에 대고 벤자민이 말해 주었다.
응시자 다들 체력은 거의 바닥이 났다.
아무리 훈련소 음식이 잘 나온다고 해도 체력을 받치는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평소 얼마만큼 체력 관리를 잘하느냐가 마지막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건 대부분이 UDT와 특전사 출신들이기 때문에 체력관리에는 나름대로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도 틈틈이 턱걸이, 타이어 끌기, 줄잡고 오르기, 윗몸 일으키기 등 개인 운동을 하면서 몸 관리를 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나이에서 오는 어쩔수 없는 체력 저하였다.
블랙잭 응시는 나이제한을 두지 않았다.
훈련의 합격점만 얻으면 통과하는 것이다.
물론 합격점을 얻는다는 것이 나이든 사람에게는 확실한 손해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