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1화: 블랙 잭(Blackjack)2
중대장 대위 이무치가 왔다.
가져온 홍삼원 박스를 보호자 침대에 놓고 물었다.
“어떠냐?”
“좋습니다. 회복되는 대로 부대에 복귀하겠습니다.”
“그래.”
이무치 대위는 병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며칠 전 어머니가 다녀가셨다면서?”
“네.”
“어머니께서 농사 짓는다고 했던가?”
“딸기농사 하십니다.”
“남동생은 대학 졸업했나?”
“이번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야 그래. 정말 축하한다. 대단하구나.”
이무치 대위는 환하게 웃었다.
전상미는 가볍게 웃었다.
“불편한 건 없나?”
“없습니다.”
“그래 잘 쉬어라. 또 오지.”
“단결!”
“단결!”
거수경례를 받으며 이무치 대위는 병실을 나갔다.
이무치 대위가 나가자 전상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군 생활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일반 보병부대도 아닌 자나 깨나 훈련인 특전사에서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전상미는 고공강하팀원이다.
강하기록만 700회가 넘는 베테랑이다.
그런데 한 달 전 훈련중 갑자기 돌풍에 휘말리며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하필 부러진 부위가 슬개골(무릎뼈)이였다.
무릎은 단순히 지지하는 뼈와 달라서 낫는다고 해도 보행에 장애를 가져올 수도 있다.
아주 운 좋게 잘 낫는다고 해도 특전사의 혹독한 훈련을 받기에는 위험하다는 것이 의사의 진단이었다.
모든 의무기록은 부대로 전달되었고 중대장도 알고 있을 것이다.
중대장이 처음 찾아온 건 아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오늘까지 포함하여 다섯 번을 찾아왔다.
그때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했지만 끝내 전상미의 눈치만 보다 돌아섰다.
오늘도 전역에 대한 얘기를 꺼내려고 왔을 것이지만 다시 돌아섰다.
유능한 부하 병사가 갑작스런 부상으로 의병전역을 한다는 것이 무척 불편하고 안타까울 것이다.
이럴 땐 자신이 전화하는 것이 중대장을 배려하는 것이라는 걸 전상미는 알고 있다.
그러나 전역이란 두 글자만 떠올리면 눈물부터 쏟아진다.
좋아서 왔고, 이른바 체질에 맞아서 행복했다.
5,000피트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어떤 희로애락도 없고 그저 평화로울 뿐이었다.
그 모습이 좋다.
그 풍경이 아름답다.
최소한 하늘에서 보는 세상은 슬프지 않고 서럽지 않다.
바람이 귓가를 후려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툭!
눈물 한 방울이 앞가슴으로 떨어졌다.
눈물을 닦은 뒤 전상미는 중대장에게 보낼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전화로 하는 것이 예의지만 목소리가 자신 없다.
당당하고 씩씩하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필시 목소리에 눈물이 섞일 것이고 그건 내 가슴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중대장의 가슴에서 상처가 될 것이다.
절기로 곡우를 앞두고 퇴원을 했다.
퇴원을 했다고 하여 바로 걷거나 달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휠체어에서만 벗어났을 뿐 목발에 의지해 걸어야 한다.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병실에서 중대장에게 신고하는 것으로 조촐한 전역식을 마쳤다.
찾아온 후배 여군들이 통곡했다.
완전 초상집이다.
끝내 중대장까지 눈물을 보였고 전상미는 끝내 주저앉아 버렸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본격적인 회복운동에 들어갔다.
마을 뒷산을 오르내리고 오후에는 읍내 헬스장을 찾아 잃어버린 근육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마무리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어 준 뒤 수건을 들고 샤워실로 들어섰다.
옷을 벗고 체중계에 올라선 전상미 얼굴이 환해졌다.
입원기간동안 15킬로까지 늘었던 체중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상미씨 오랜 만이야.”
마흔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가 탈의실로 들어섰다.
읍내에서 한정식 식당을 운영하는 김옥주다.
남편은 군의원이며 나름 지역에서 입김 있는 이른바 유지다.
“몸은 어때? 좋아진 것 같은데?”
그러면서 알몸의 전상미를 훑는다.
“상미씨 나이가 올해?”
“서른 둘.”
“군대서 쫓겨난 마당인데 앞으로 뭐 할거야?”
군대서 쫓겨났다는 표현에 전상미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든 말든 김옥주는 팬티까지 벗고 가방에서 꺼낸 검정색 레깅스를 입었다.
“우리 식당에서 알바 좀 할래? 홀 서빙 하는 애들이 하나같이 맛이야.”
못생겼다는 얘기다.
김옥주는 스포츠브라를 팔에 끼워 넣고 가슴을 다독인다.
“생각 없어?”
“생각 없어요.”
전상미는 방긋 웃어주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촤아아아!
시원하게 뿜어지는 물줄기속을 파고들었다.
머리가 젖고 온 몸을 타고 차가운 냉수가 흘러내린다.
‘식당 알바, 홀 서빙’
어쩌면 자신이 과민 반응을 보였는지 모른다.
식당 주인으로서 젊고 예쁜 여자를 홀 서빙으로 채용하려는 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김옥주는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므로 일자리를 찾아야 할 때였다.
쏴아아!
차가운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샤워를 끝낸 전상미는 옷을 갈아입고 휴게실로 들어섰다.
간단한 음료와 단백질 보충제를 비롯한 닭가슴살 따위를 파는데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몇몇 운동이 끝난 남자 회원들이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애길 나누고 있었다.
전상미는 운동복이 들어 있는 백팩을 메고 휴게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일 층에 내린 전상미는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을 살피고 있었다.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차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커피잔을 홀더에 꽃아 놓고 잠시 핸드폰을 검색했는데 운동화 쇼핑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 신는 런닝화가 너무 낡아 새것으로 마련할 생각이다.
가격표를 비교하던 중 전상미는 멈칫했다.
‘블랙잭’
흑복을 입고 조준사격을 하는 문양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클릭을 했다.
화면 한 가운데로 다섯 명의 사내들이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 박혔다.
군복을 입은 사내도 있고, 흑복차림의 사내도 보인다.
멈칫!
그중 한국인으로 보이는 두 사내가 있었다.
둘 모두 무슬림 복장이었다.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전상미는 모집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호송, 경비, 훈련, 운송, 기타’
전상미는 한참 동안 광고 내용을 중얼거렸다.
중얼거리는 그녀 눈앞으로 봉고차에서 내리는 ATM기 현금 운송 요원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연예인들 공연할 때 정장을 입고 팬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순간 잠깐 달아올랐던 표정이 가라앉았다.
말이 보안회사이지 싸구려 심부름 센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팟!
그러다 어느 대목을 보고 다시 눈을 빛냈다.
‘국내외’
전상미는 국내외란 말을 다시 중얼 거린다.
외국에서도 보안활동을 한다는 뜻인데 어떤 일일까.
돈 많은 부호들을 경호하는 일일까.
남미쪽에는 부호들을 향한 납치 인질 사건이 일상이어서 굉장히 많은 보안인력을 필요로 한다는 말은 들었다.
부르릉!
일단 집에 도착하여 화면이 큰 노트북으로 다시 검색해보기로 했다.
* * *
권총수는 예전에 사 두었던 구기동 집에 있었다.
마당가에 서 있는 벚꽃이 활짝 피었다.
요즘 며칠 계속 집안 정리중이다.
임차인들이 사용하면서 낡고 고장 난 것들을 고치고 전문적인 건 기술자를 동원해 수리했다.
그리고 오늘은 마당의 잡초를 뽑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이 잔디보다 잡초가 더 많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잔디는 죽고 잡초마당으로 변할 것이 뻔했다.
쭈그리고 앉아 잡초 뽑는 일도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지이잉!
정원석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울린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들었는데 오민철이었다.
“어때? 문의하는 사람들 좀 있어?”
“장난 아니라니까 진짜 불난다고, 전화 두 개가 정신없다.”
“그 정도야?”
“사실인지 아닌지는 나중 보면 알겠지만 특전사 출신들이 제일 많아. 몇몇은 현역이라면서 전화를 걸어왔는데.”
“그래?”
“이러다 국방부로부터 무슨 제재라도 받는 것 아냐?”
“무슨 제재?”
“우리가 좋은 자원 모두 빼간다고 말이야. 현역들까지 전화로 물어올 정도면 그런 말 나올 수도 있잖아. 암튼 도저히 바빠서 혼자는 안 되겠어. 전화 받는 사람 한 명 더 뽑아. 당장 데려오라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진즉 인터넷 광고는 냈지만 정식 문의전화는 오늘부터다.
권총수는 오민철과 몇 마디 더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촤아아아!
마당가에 있는 수돗물을 틀고 손을 씻었다.
빨래 줄에 걸린 수건에 손을 닦은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직원은 뽑아야 한다.
특히 관리와 영업 홍보 직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권총수는 전화를 걸었다.
“권사장 아냐?”
심부름센터를 운영했던 채명천이었다.
지금은 아내와 꽃집을 운영한다.
“시간 좀 내주시죠.”
“물론이지. 언제, 지금?”
“가능하면 지금도 좋습니다.”
“오케이. 어디로 갈까.”
권총수는 약속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올해 목표가 500명을 선발하여 현장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출신을 따지지 않을 생각이다.
철저히 훈련소 성적을 토대로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한다.
다음 날 권총수는 광화문에 있는 블랙잭 회사로 출근했다.
아홉 시가 막 넘었는데 사무실에는 20여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담을 하고 싶다면서 찾아온 사람들이다.
채명천도 합세하여 전화를 받고 있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예, 블랙잭입니다.”
“블랙잭입니다.”
오민철도 쉬지 않고 블랙잭이라고 떠든다.
칸막이를 설치하여 절반은 의자와 책상을 놓은 회의실이다.
보안업이라는 것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세한 상담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다인코프에서 배웠다.
20여명의 사내들이 빙 둘러 앉았다.
“대표님은 어딜 제대 하셨는지?”
한 사내가 물었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난 군대를 가지 않았어요. 대신 프랑스 외인부대를 지원하여 5년 근무하고 영국의 킬로 알파 서비스(KAS)라는 회사에 근무했죠. 그리고 다인코프에서 5,6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인코프.”
누군가 잘 안다는 듯 놀란 표정을 했다.
“주로 블랙잭이 하는 일은 뭡니까?”
“청원경찰이나 특급호텔 또는 백화점 이런 곳에 파견근무하는 형태의 보안회사인지?”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우린 그런 것 하지 않아요. 국내 근무는 없습니다. 모르죠. 청와대에서 도와달라고 하면 고려 해보겠지만.”
청와대라는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이다.
“전원 외국으로 나갑니다.”
외국으로 나간다는 말에 표정들이 좀 밝아졌다.
외국근무는 일단 국내보다 연봉이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외국에서 어떤 일을 하죠?”
유일한 홍일점인 전상미가 물었다.
“어디 부대에서 근무하셨습니까?”
“1공수 고공낙하팀입니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사람 죽여본 분 계십니까? 사회에서 살인을 저질렀으면 군은 면제 될 터이니 넘어가고 총으로 말입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훈련은 거칠고 험악하게 받았으나 실전 경험이 없다는 의미도 되었다.
“그러는 대표님은 그런 용병회사에서 근무하셨다니 죽여 봤습니까?”
묻는 목소리가 제법 상기되어 있다.
“오 이사님!”
빙긋 웃던 권총수가 큰소리로 전화를 받고 있는 오민철을 불렀다.
오민철이 급하게 나타나자 권총수가 물었다.
“내가 몇 명 정도 죽였을까?”
“삼백 명, 아니 사백 명? 몰라. 나 바빠.”
오민철이 돌아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