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0화: 블랙 잭(Blackjack)1
암석사막이긴 하지만 바닥은 대체로 평평했으며 모래나 흙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어서 가시덤불이 여기저기 보였다.
덜컹!
차가 잠깐 멈췄다.
뱀 한 마리가 지나가는데 바닥의 모래와 색깔이 비슷하여 잘 구별되지 않을 정도였다.
“어!”
오민철이 눈을 빛냈는데 뱀의 머리 양쪽으로 작은 돌기가 있었다.
사막 뿔 살무사이다.
중동을 포함한 사하라 사막에 분포되어 있는데 굉장한 독성을 갖고 있어 물리면 죽는다.
물리면 죽는다는 건 사막 한 가운데에서 만나면 병원을 찾아가는 시간이 너무 멀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한다.
끼익!
차가 완전히 멈추고 권총수가 내렸다.
평평한 땅이다.
마른 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그 사이로 도마뱀이 곤충을 찾아 이동한다.
“여기 좋은데.”
오민철이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최소한 이 지역 만큼은 사막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관목들도 있고 가시넝쿨과 하늘을 향해 솟구치듯 성장하는 사와로 선인장도 보였다.
“어때? 내 눈에는 괜찮아 보이는데?”
“나도.”
권총수도 그다지 나쁘지 않는 지형이라는 것에는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어”
오민철이 입맛을 다셨다.
“물.”
“물은 출발할 때 싣고 와야지.”
먹는 물이 아니라 땀을 흘리고 간단히 씻을 수 있는 물을 말하는 것이다.
암석 사막이지만 운이 좋으면 물을 만날 수도 있다.
과거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활동할 때 물을 만난 기억도 있었다.
권총수는 30여분 동안 주위를 살폈는데 훈련장으로 결정한 듯 전화로 사물란 비서실장에게 이곳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공사는 다음 날 바로 시작되었다.
공사의 최대 초점은 사격장에 맞춰졌다.
사격은 전장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가장 큰 기술이다.
특수부대가 뛰어난 건 강도 높은 훈련으로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 가지만 뽑으라고 한다면 사격이다.
전장에서 교전을 벌이는 최대거리가 백 미터 정도이다.
물론 그 이상의 거리에서도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서는 치열한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백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맞힌다는 건 거의 힘들다.
그 거리에서 특수부대원들의 적중률은 경이적이다.
최대한 야전 그대로를 살리려다 보니 크게 훼손하고 지형을 바꾸는 공사 따위는 필요 없었다.
사격장 공사는 일주일 만에 끝났고 곧바로 시가전을 대비한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다.
야간 훈련을 대비하고 훈련 통제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전기를 끌어왔다.
권총수 자신이 훈련장 설계도를 만들었지만 다시 한 번 직접 확인하며 수정하기도 했다.
공사는 정확히 25일 만에 끝났다.
혹시도 모를 민간인 출입을 금지시키기 위해 철조망까지 설치하고 경고 표지판을 세웠다.
그리고 다음 해 봄이 피기 시작하는 2월 말일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 * *
벚꽃이 피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하루하루 벚나무의 색깔이 변해가고 있었고 꽃망울이 커진다.
안치웅 중사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바닷바람이 쌀쌀했지만 춥다고 느껴질 만큼은 아니었다.
핸드폰을 꺼내 카페 근처 벤치에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오빠!”
20여분 정도 흘러 청바지에 검정색 가죽 자켓을 걸친 이현주가 나타났다.
이현주는 이 도시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조그만 선박 회사에 다닌다.
“안 추워?”
이현주는 안치웅 옆에 바짝 앉으며 팔짱을 낀다.
“괜찮은데.”
“밥 먹으러 가자.”
이현주가 환하게 웃는다.
“그날이잖아. 월급.”
“좋아. 오케이.”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찾아 걸었다.
얼룩무늬 특전 복을 입고 배레모를 쓴 안치웅 중사는 얼마 전 해외 파병을 마치고 귀국한 상태였다.
진해에서 가장 파스타를 잘하는 집이고, 맛 집으로 소문났다면서 이현주는 어깨에 힘을 준다.
안치웅은 정말 맛있다면서 계속 칭찬을 해주었다.
하지만 속은 그게 아니었다.
이른바 양식이라는 요리와 가까이 해보려고 나름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다.
이상하게 소화가 되지 않아 고생을 하는데 과연 오늘 저녁 식후에 어떤 현상이 벌어질지 은근히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많지 않은 월급에 가격이 만만치 않은 이 레스토랑의 파스타를 사주는 이현주에게 고마울 뿐이다.
사귄지 3년이 넘었다.
그해 여름휴가를 나와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었다.
뱀사골 입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저 평범한 등산객끼리의 스침이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 귀대를 이틀 앞두고 속옷을 사기 위해 나간 이 도시의 재래시장에서 만난 것이다.
서로가 너무 놀랐고 흔한 일은 아니겠다 싶어 바로 저녁 약속을 했는데 이현주가 흔쾌히 수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식사가 끝나고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됐어? 전역 할거야?”
이현주가 빤히 바라본다.
안치웅은 UDT 씰 현역 중사다.
UDT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수부대로서 훈련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여러 작전에 투입되어 뛰어난 결과를 얻어 냈고 해외파병도 잦다.
일부 국가에서는 한국군으로 하여금 자국군대의 훈련 지도를 요청하기도 했다.
뿌듯할 때도 있지만 국가에 대한 충성심, 부대에 대한 자부심도 한 순간이다.
같은 군인이지만 임무가 다르고 훈련이 차원을 달리하는데도 봉급 차이는 보병들과 그다지 격차가 없다.
여기서부터 특수부대원들의 고민은 시작된다.
나이가 들어가면 체력에서 오는 열세로 인해 작전 수행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결국 교관이나 간부가 되던가 아니면 타 부대의 전출로 군 생활을 지속할 수는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자존심과 명예가 걸림돌이다.
일반 보병부대로 전출을 간다고 하여 그곳에서 특별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젊었을 때 사회로 진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걸 알고 옷을 벗는다.
안치웅의 현재 나이는 서른셋이다.
경찰과 소방공무원으로 진출하려면 지금이 적기다.
특수부대 출신들은 가산점도 있고 특채 형식으로 취업할 수도 있다.
더 늦으면 강인한 육체를 조건으로 취업할 수 있는 방법이 어려워진다.
이른바 몸값 나갈 때 결정해야 한다.
“해야지.”
“대답이 왜 그래? 아직 결정 못했구나?”
“골이 좀 아프네.”
“내 걱정은 마. 난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할 테니까.”
안치웅은 빙긋 웃었다.
항상 자신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이현주가 고맙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 중 일부는 영내생활을 한다.
그러나 안치웅은 원룸을 얻어 생활한다.
외출에서 돌아온 안치웅은 샤워를 하고 추리닝으로 갈아입은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요즘 퇴근하면 하는 일이라는 것이 공무원 시험에 관한 정보 검색이다.
특히 자신들을 우대해주는 경찰과 소방공무원 모집 정보를 집중으로 살피는데 가장 우선적으로 보는 것이 연봉이다.
군인 봉급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조금 힘이 더 들더라도 좀 더 많은 액수를 받는 곳에 도전하고 싶다.
소방공무원이나 경찰 모두 삼천만원 전후가 신입 연봉선이다.
팟!
30여 분간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직원 모집 광고를 살피던 안치웅의 눈이 크게 뜨였다.
‘블랙잭(Blackjack)’
이라는 글씨가 화면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처음에는 도박회사인가 싶어 화면을 돌리려는데 ‘이제는 군대도 프로다’라는 글귀가 또다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재빨리 커서를 대고 클릭하자 사이트 하나가 나타났다.
앞서 봤던 블랙잭이라는 회사 사이트였는데 한참 살피고 있던 안치웅의 눈이 커졌다.
‘우리나라에 용병회사가 있다고’
갑자기 긴장이 된다.
안치웅은 마른침을 삼킨 뒤 모집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무려 다섯 번을 읽었다.
“후우!”
흥분했다.
다인코프 아카데미 같은 세계적인 민간 보안업체들이 전쟁 특수를 누린다는 신문 기사를 봤다.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한번 도전해봐? 하는 생각이 있긴 했지만 막상 실행에 나서려니 망설여지기도 했다.
‘블랙잭’
정확한 연봉은 밝히지 않았지만 작게는 500달러에서부터 시작해 근무 경력과 출신부대에 따라 차등으로 결정된다고 했다.
하루 오백 달러면 한 달이면 일만오천 달러이다.
한화로 무려 천육백 만원이 넘는 돈이다.
연봉으로 따지면 2억인 셈이다.
안치웅은 다시 한 번 블랙잭 사이트에서 내건 모집공고를 읽기 시작했다.
* * *
그냥 하늘이 좋았다.
대학시절 패러글라이딩 동아리에서 활동한 것이 어쩌면 하늘과 인연의 시작인지 모른다.
남들은 하늘을 나르면 무섭다고 하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새가 된 기분이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하나의 덩어리일 뿐이다.
사람도 집도 화려한 고층 건물도 그냥 거대한 덩어리 속에 들어간 작은 물건일 뿐이다.
남자 여자도 없고, 고급 승용차도 없으며 화려함도 추함도 없고 그저 하나의 덩어리.
직업의 귀천도 보이지 않고, 잘난 사람 못난 사람도 없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면 그때부터 혼자다.
아무도 없고 누구도 존재하지 않으며 바람과 구름만이 벗이 될 뿐이다.
십 년.
특전사에 입대하여 고공 낙하팀으로 활동한 지가 벌써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전상미는 침대를 내려와 휠체어에 앉았다.
깁스를 한 왼쪽 다리를 발판에 올려 쭈욱 뻗은 다음 병실 밖을 향해 휠체어를 밀었다.
복도를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 현관을 빠져 나왔는데 구름 낀 날씨가 금방이라도 뭔가 내릴 것 같았다.
어제부터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한 이곳 육군병원은 훈련 중 다친 군인들이 전부다.
상당히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세 명의 환자복 차림의 군인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목발을 짚고, 자신처럼 휠체어에 앉아서, 누군가는 목에 깁스를 하고서 피우는 담배 맛이 어떨까
두둑!
휠체어를 밀고 재떨이가 있는 흡연장소에 다가가자 군인들이 쳐다본다.
여자다.
그들 눈에는 환자가 아닌 그저 여자로만 보일 것이다.
군바리 눈에는 치마만 두르면 모두가 미스 코리아다.
“실례지만 어디서 근무하십니까?”
목에 깁스를 한 군인이 용기를 낸 듯 묻는다.
하사관이나 장교들도 있지만 환자의 80퍼센트가 일반 병사들이다.
환자로 입원해 있는 여군에게 말을 걸 정도면 짬밥을 제법 먹었다는 뜻으로 최소한 상병 이상일 것이다.
“강서에서 왔어요.”
“강서면, 서울 강서구 말입니까?”
“네.”
“강서구에 군대가 있나?”
협조를 구하듯 군인은 같이 담배를 피우는 동료를 바라보았다.
“수방사 아닙니까?”
“맞다. 수방사 근무 하시는군요.”
다른 군인이 눈을 크게 뜨고 아는 체를 했다.
수방사는 과천가는 근처에 있다.
전상미는 피식 웃고 말았다.
“번호 하나 따도 되겠습니까?”
남자 군인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어디서 근무하세요?”
“인천 17사단입니다.”
“9공수 옆에 있는 땅개부대?”
전상미는 몸을 돌려 병원 로비를 향해 휠체어를 밀고 갔다.
간부 같은데, 여자면 무조건 하사관 이상일 것 아냐.
등 뒤로 자기네들끼리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아닌데, 강서구에 제1공수특전여단이 있다고 검색되는데.”
동료 한 명이 핸드폰을 보며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