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9화: 신이 된 남자(1)
군복차림의 권총수를 한참 보더니 소스라쳤다.
“사...사막의 흑새.”
전혀 등장을 예상치 못한 듯 매우 놀란다.
번쩍!
어둠이 갈라지고 한 가닥 섬광이 떨어진다.
벼락이다.
아롱바는 온 힘을 다해 쌍장을 들어 올렸으나 역부족이다.
파악!
아롱바가 날린 쌍장이 산산이 부서지고 파이프는 그의 머리통을 갈겼다.
뻐억!
머리가 깨지며 피가 물처럼 콸콸 쏟아졌다.
슈웃!
파이프가 직선으로 질러갔다.
아롱바는 보법을 이용해 피하려고 했으나 권총수의 공격이 너무 빨랐다.
푸우욱!
쇠파이프가 아롱바의 복부에 구멍을 만들었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쇠파이프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담장 너머 예배당쪽에서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작전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것으로 보였다.
츄츄츄츄!
재봉틀로 박음질하듯 쇠파이프가 연속 네 번을 찔렀고 아롱바의 복부가 걸레조각처럼 찢어졌다.
이어 내장들이 조금씩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지금 그것이 달마삼검중 불형일섬(佛形一閃)이오?”
히죽!
권총수는 그렇다는 듯 웃는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참 희한합니다. 조금 전 약간 고민을 했거든요. 나름 살아보겠다고 잠영술을 펼쳐 도망치는 당신이 아주 잠깐이지만 불쌍하더란 말입니다.”
권총수는 자신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를 슬쩍 들어본다.
“만나면 말도 섞을 필요 없이 떡을 만들어야지 하며 날마다 이를 갈았는데 왜 그런 자비스런 생각이 들었을까. 우리 나라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콩 싶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소림의 대력금강심법을 심어놓다 보니 자꾸 그런 자비심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아롱바는 꿈틀 거렸다.
어떻게 해서라도 공격을 해보려는 동작이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쉽게 잡을 수 있는데 굳이 고생할 필요가 있나 싶더군요. 단번에 죽여 주는 것도 자비라는데, 좀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신은 저항할 힘도 없는 날 회(膾)를 쳤었죠.”
이란 카비르 사막에서의 얘기다.
부상을 입고 한 몸 지탱할 힘도 없는 권총수에게 아롱바는 끊임없이 칼을 휘둘렀다.
“아무튼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고, 열배백배로 갚지는 못해도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싸아아아!
바람이다.
쇠파이프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가면서 선을 만들었다.
권총수의 오른손에는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분명히 움직였지만 너무 빨라 어느새 지면을 향해 늘어뜨리고 있었다.
톡!
아롱바의 목이 떨어졌다.
그리고 10여초가 흘러가고 육중한 몸이 단단한 돌로 포장된 바닥을 나뒹군다.
“뭐하고 있어?”
오민철이 달려왔다.
“퇴각해야 돼.”
오민철은 죽은 아롱바를 보며 인상을 썼다.
“개자식, 기어이 뒈질 거면서.”
권총수는 아직 눈을 감지 못하고 있는 잘린 아롱바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돌아섰다.
두 사람은 모스크를 빠져나가 다시 버스에 올라 출발했다.
버스 안에는 올 때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검정색 두건이 씌워졌고 허리 뒤로 양손이 포박된 사람들이었는데 오늘 알리모스크에서 회합을 가졌던 테러조직의 수뇌들이다.
테러조직의 수뇌를 잡았다고 해서 테러가 잦아드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더 늘어나고 미국에 대한 증오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다시 공격을 하고, 그렇게 인류의 역사는 흘러간다.
* * *
리야드 공항에 내렸다.
입국 문이 열리고 가방을 맨 권총수와 오민철이 들어섰다.
“캡틴!”
누군가 권총수를 불렀다.
권총수는 깜짝 놀라며 소리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낯익은 사내가 손을 들었다.
흰색의 긴 토브에 붉은 체크무늬가 있는 구트라를 쓴 사내는 현 대통령인 파흐드의 비서실장 사물란이었다.
파흐드 대통령이 왕세자 시절 수행비서로 온갖 고초를 겪었다.
사물란은 알살만 왕세자 측의 파흐드 왕세자를 향한 무자비한 폭력의 중심에 있었다.
걸핏하면 끌고 가 때리고 고문하며 파흐드 왕세자가 오늘 누굴 만났고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물었다.
잠 안 재우기, 전기고문, 지구상에서 가장 맵다는 멕시코 고춧가루를 탄 물고문도 받았다.
그러나 사물란의 입에서는 항상 같은 대답이 흘러 나왔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만나지만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난 모른다’
자기 때문에 걸핏하면 끌려가 두들겨 맞고 고문까지 당하는 사물란을 파흐드 왕세자는 지금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사직서 내고 그만 두면 잡혀갈 일도 없고 물고문 당할 일도 없지만 사물란은 곁을 지켰다.
그건 파흐드 왕세자가 좋아서가 아니라 기어코 사우디를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의지를 존경했기 때문이었다.
와락!
사물란 비서실장은 힘차게 권총수를 끌어 안았다.
“알라후 아크바르”
신은 위대하다를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민철!”
오민철 역시도 뜨겁게 안는다.
다섯 명의 경호원들이 일행의 주위를 에워쌌다.
‘파흐드를 무너뜨리려면 사물란을 잡아야 한다. 모든 건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요즘 호시탐탐 반란을 꿈꾸는 왕족들의 속삭임이다.
사우디 국가 보안법에 따라 모두 반란 음모 혐의로 사형에 처할 수 있었지만 파흐드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서로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일부만 징역형에 처했고 나머지는 어떤 법적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국제사회에서는 더욱 신망이 두터워졌고 국민들의 지지가 높다.
두 대의 벤츠 승용차가 달리고 있었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사물란 비서실장의 차에 동승했다.
사물란의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권총수는 자신들의 희망이었고 구세주였다.
권총수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알살만 쪽 사람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사업 구상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어제 파흐드 대통령과 통화를 했고 대충의 설명이 있었다.
아마 그래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안업이라고 들었습니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셔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많은 생각이 있는 줄 압니다. 저녁에 만나면 구체적인 말씀이 계실 것입니다.”
약간의 서먹함은 사라지고 과거로 돌아간 듯 세 사람은 밝은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었다.
저녁 만찬이다.
물론 참석자는 권총수와 오민철을 포함해 파흐드 대통령 측근 일부였다.
과거 쿠데타때 안면을 익혔던 사람들과 얘길 나누던 권총수의 시선이 한 사내에게 집중 되었다.
쉰 초반 정도 되어보인 정장의 사내는 무척 단단한 느낌을 풍겼고 언뜻 죽은 사담 후세인 분위기도 풍겼다.
말수도 없고 건배할 때는 가벼운 눈인사가 전부였다.
“실장님 저분은 누구죠?”
사물란에게 다가가 속삭이듯 물었다.
“하우사위 국방부장관입니다.”
권총수 눈이 커졌다.
이름은 들었고 가장 기억되는 일은 대통령제로 바뀌고 얼마되지 않아 일부 군인들의 쿠데타 모의가 있었다.
당시 제2특수전단 단장이었던 하우사위가 30여명의 정예만 이끌고 쿠데타 세력이 모여 있는 군기지를 습격하여 모조리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국방부 장관!”
파흐드 대통령이 하우사위를 불렀다.
“예 각하!”
“캡틴!”
권총수도 불렀으므로 다가갔다.
“우리 국방장관께서 캡틴을 꼭 좀 만나게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하여 오늘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십 여 명의 참석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장관, 캡틴에게 할 얘기라는 것이 뭡니까?”
하우사위는 들고 있던 음료수 잔을 내려놓고 권총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캡틴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장관님께서 저에게 무슨 부탁을?”
권총수는 희미하게 웃었다.
“사우디 군은 강합니다. 하지만 아직 모자란 부분이 있죠. 캡틴이 그 부분을 채워주길 원합니다.”
“사우디 군 훈련을 내가?”
“아덴만에서 놀라운 장면을 보여준 한국 해군특수전단을 닮기 원합니다.”
어차피 보안업을 하게 되면 UDT씰 출신들도 입사하지 않겠느냐.
그들을 사우디 군 훈련 고문관으로 채용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보수는 민간회사들 보다 모자라지 않게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아직 회사를 차리지도 않았는데 일감이 들어온다.
권총수는 파흐드 대통령을 흘긋 보며 말했다.
“과연 내가 그런 막중한 임무를 감당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잠시 끼어들어도 될까요?”
파흐드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우리 사우디는 어느 국가도 공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격해 오는 적을 용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적이 우리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강군으로 육성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총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금 떨어져 지켜보고 있던 오민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무 좋아 입가로 웃음이 퍼져 나갈 것 같아 주먹을 쥐며 참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가 어떤 나라인가.
국민 개인은 몰라도 국가는 중동제일의 부국이다.
특히 석유를 무기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꿀꺽!
오민철은 마른침을 삼켰다.
돈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돈이 앞 다투며 권총수의 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권총수가 사우디를 찾은 건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보안업체는 두 곳의 훈련장이 필요하다.
하나는 전역 후 굳어버린 지원자들의 몸을 체계적으로 다시 풀어줄 훈련장이다.
두 번째는 현지에서 기본적 훈련이 가능한, 일테면 간이 훈련장 하나 정도는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걸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사우디 국내법으로 외국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 크기까지 가능하며, 그 땅에서 사격을 포함한 간단한 군사 훈련이 용인되는지 궁금했다.
“가능합니다.”
사물란이 대답해 주었다.
“국유지이든 민간 소유든 적당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 하십시오.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인간관계처럼 복잡하고 알다가도 모를 일도 없다.
해줄 듯 한데 거절하는가 하면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허락할 때가 있다.
그것뿐이 아니다.
권총수가 파흐드 대통령을 위해 완성시킨 작전과 사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권력을 잡고서도 파흐드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정적들은 진압작전이라는 핑계를 대며 현장에서 사살해 버렸다.
권력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는 것이 더욱 어렵고 힘들다.
한마디로 파흐드 대통령을 위한 피의 청소를 도맡은 것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고 해서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보장은 없다.
노우 해버리면 끝인 것이다.
그런데 너무 흔쾌히 수락하자 생사를 넘나들었던 보람을 찾는 기분이었다.
만찬은 상당시간 동안 이어졌다.
* * *
흰색의 랜드로버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아스팔트 도로이지만 주변 사막에서 날려 온 모래가 쌓이면서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폭풍처럼 피어오른다.
“아직 멀었어?”
오민철이 핸들을 잡고 있는 권총수에게 물었다.
권총수는 차량에 설치된 네비게이션을 보며 말했다.
“다 온 것 같은데. 4킬로!”
부우웅!
차는 더욱 속도를 높이면서 사라졌다.
현지 훈련장의 갖춰야 할 조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국제공항과 어느 정도의 거리냐였다.
항공 수송이 유일한 수단이므로 국제공항이 멀수록 신속한 지원과 보급이 어렵다.
그런 면에서 지금 가고 있는 알차 지역은 수도 리야드에서 80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암석 사막이다.
암석사막이라고 해서 온통 바위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기반암이 노출된 지역으로 황무지라고 보면 되는데 지형에 따라 나무도 있고 약간의 식물도 자란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수목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이다.
덜컹!
차는 오른쪽으로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