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8화: 그렇게(2)
동료는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 귀에만 들리도록 음성을 전달했다’
그 말을 들은 동료들 모두가 웃었다.
하지만 워낙 재차 분명하게 말을 했으므로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군인들 눈이 반짝거린다.
그건 뭔가 한 번 보여 달라는 청탁의 눈빛이었다.
권총수는 잠깐이지만 이들과 작전을 실행하는데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짚어 놓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
즉 현역은 아니지만 자신을 존중하고 명령을 이행하려는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데는 말 보다는 행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권총수는 땅바닥에 결가부좌했다.
둥실!
그리고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으악!”
“저런!”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허공에서 2미터 정도 떠올라 멈췄다.
누군가 뭔가 보이지 않는 물체를 깔고 앉은 건 아닌지 공간을 손으로 휘저어 본다.
소대장 오언 대위 역시도 눈이 떨린다.
절대 믿지 않았다.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고 해도 사막의 흑새에 대한 건 지나쳤다.
그러나 이렇게 눈으로 보니 안 믿을 수 없다.
그 역시도 놀라 상체를 숙여 밑에 뭔가 없나 살폈다.
“공중부양”
누군가 조금 아는 척 말했다.
“그런 종류의 하나이죠. 하지만 정확한 이름은 부운등공이라는 것입니다.”
오민철이 자랑스럽게 설명해 주었다.
백 번 떠드는 것 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것의 효과는 엄청난다.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고 권총수를 대하는 태도 역시 부드럽고 호의적이다.
오늘밤 공격 목표가 될 지역이 자세하게 그려진 지도를 펼쳐 놓고 회의가 벌어졌다.
작전지역안 이맘 알리 모스크다.
이슬람에서 가장 오래되고 성지로 추앙받는 오 대 모스크 중의 하나이다.
이슬람 4대 칼리프인 알리의 무덤이 있는 곳인데 오언대위의 찡그려진 이마가 좀체 펴질 줄 모르는 것은 작전 장소였다.
내로남불.
알카에다, 무자헤딘 모두 자신들은 모스크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상대로 테러를 자행하고 수십 명을 죽여도 한마디만 하면 정리된다.
‘이교도 축출을 위한 성전이다’
그들이 말하는 이교도(미국)가 모스크를 공격하거나 무장하여 들어서면 거룩한 성전 침탈이며, 알라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땅이 울릴 만큼 반미 봉기가 일어난다.
더욱이 오 대 성지중 한곳이기 때문에 자칫 작전이 성공리에 끝난다고 해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물론 미국 정부에서 내려온 작전 명령이므로 자신들이 책임질 일은 전혀 없다.
“사실 놈들이 다른 곳도 아닌 굳이 성지인 알리모스크에서 회의를 갖는다는 자체가 우리의 공격을 대비한 계산 아니겠습니까?”
부소대장인 중위 마리아노가 말했다.
권총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되어 미군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의도적으로 알리 모스크를 회의장소로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알리 모스크를 미군이 공격했다고 하면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신이 있는 곳에 방아쇠를 당겼다는 건 이슬람교에 대한 모욕을 넘어 탄압인 것이다.
“할 말 있으면 하셔도 됩니다.”
오언 대위가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군인들 시선이 모아진다.
과연 권총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신체적 능력만큼이나 머리도 영리할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소대장님께서 하고 있는 고민을 백악관에서 하지 않았겠습니까?”
병사들의 눈이 빛난다.
권총수의 말은 정확히 맞다.
“이미 계산기 두드려 플러스일지 마이너스 일지 대차대조표 만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는 건 해(害)보다는 득(得)이 많다는 답이 나왔다는 뜻이겠죠.”
간단명료했다.
모든 건 백악관이 책임을 진다.
군인은 명령을 받았으면 작전 성공을 위해 사력을 다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작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종교적 피해는 군인의 몫이 아닌 명령권자가 알아서 할 문제다.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우리 나라 속담이 있죠. 외람된 얘기지만 군인은 단순해야 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 복잡하면 방아쇠 제대로 당기지 못하죠. 명령을 받고 수행하는 것, 그것 말고는 어떤 것도 개입시키거나 대입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군인이 생각 많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뜻이다.
진리도 아니고 깨우침은 더욱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인데 지금 이 시간에 더욱 크게 울리는 건 왜일까.
“좋은 얘기군요. 하마터면 슬럼프에 빠질 뻔 했습니다.”
특수부대 지휘관의 슬럼프란 작전에 관해 왜? 라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군인에게 왜 라는 질문은 절대 금지다.
버스 한 대가 나타났다.
나자프 도심을 달리는 시내버스와 똑같다.
군인들은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고 권총수와 오민철도 똑같은 군복차림이다.
단지 차이라면 머리가 길다는 것 뿐이었다.
부우웅!
버스가 출발하자 차안은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병사들이 침묵으로 빠져 들었다.
긴장이 만들어낸 고요가 아니라 각자 부여된 임무를 어떻게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복기를 하는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그 미세한 차이가 제대로 이뤄질 때 작전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
톱니바퀴 한 개가 어긋나면 모두가 어긋난다.
오늘밤 해척조는 권총수다.
굳이 해척조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는 없으나 가장 앞서 작전지역에 침투하여 장애물이 있는지 적의 무장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 살펴 전달할 것이다.
부우웅!
버스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어둠속에서도 황금빛 돔은 빛나고 있었다.
중세 건축물의 특징은 전등이 없다.
지금의 전등은 현대에 와서 설치를 한 것들인데 강한 빛이 건축물에 어떤 훼손과 부패를 촉진시킬 수도 있다는 학자들 얘기에 최소한의 조명만 밝혀 놓은 것이다.
알리 모스크 주위로는 대리석이 기초가 된 철제 울타리가 빙둘러 쳐져 있다.
물론 외곽을 경비한다거나 하는 병력도 없다.
내부에는 관리인 십여 명이 있는데 밤이 되면 정문이 닫히므로 가끔 순찰을 돌 뿐이다.
외곽은 조용하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내부를 확인하니 틀렸다.
어둠속에 무장을 한 사내들이 한둘이 아니다.
2명이 일개조를 이루었는데 검정색 터번을 두른 사내들 손에는 AK가 쥐어져 있었으며 사방을 살피는 눈들이 긴장해 있다.
그 모습을 메카가 있는 방향의 예배당쪽 지붕위에서 권총수가 지켜보고 있었다.
권총수는 돔과 여러 건축물 위를 돌아다니며 경계병들의 숫자를 파악했다.
‘스물두 명!’
더 이상은 없다.
예배당 안에서 회의중인 일곱 명의 사내들과 바깥에서 총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모두 포함한 숫자였다.
등봉조극의 경지에 오르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절대 이목을 속이지 못한다.
‘스물두 명이오’
권총수는 곧장 오언 대위에게 전음을 날렸다.
‘미흐라브 돔(메카 방향으로 세워진 돔)아래 셋.’
‘동쪽 입구에 넷!’
권총수는 공중을 떠다니며 전음을 보냈다.
‘미나레트(가장 높은 첨탑) 앞에 다섯.’
한편 모스크에서 북쪽으로 백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5층 건물 하나가 있었다.
오언과 6팀 2소대는 건물 안에 은신해 있었다.
‘회랑을 지키는 사내 셋.’
오언은 연신 침을 삼킨다.
곁에 있는 병사들은 전혀 듣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만 똑똑하게 듣고 있었다.
‘현관 입구에 둘, 예배당 문 앞에 둘, 이상 끝, 중화기로 보이는 총기는 발견되지 않음’
권총수는 혹시 몰라 다시 한 번 모스크 곳곳을 살폈다.
정각 새벽1시에 총소리가 울렸다.
6팀 2소대가 작전을 개시한 것이다.
총소리에 몸을 드러내고 있던 경비병들이 건물 곳곳으로 몸을 숨겼다.
권총수는 모스크 지붕에서 모든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씰같은 특수부대원들이 적의 위치와 숫자까지 알려줬으니 치고 들어오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권총수는 몸을 날려 예배당 문이 훤히 보이는 곳에 몸을 숨겼다.
자신의 목표는 오직 아롱바였다.
테러조직의 우두머리도 이슬람의 정치 지도자들도 관심없다.
벌컹!
그때 예배당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나왔는데 모두 일곱 명이었다.
소대장 오언 대위가 가르쳐준 숫자와 일치하고 자신의 감각이 체크한 것과도 똑같다.
총소리에 도주를 하려는 모양인데 절대 빠져 나가지 못한다.
이미 외곽도 씰팀에 의해 봉쇄 되었다.
권총수는 눈에 내공을 모았다.
일곱 명 모두 손에 권총을 들었다.
회랑을 따라 반대쪽문으로 나가려다 우르르 되돌아오는 곳이 이미 문밖까지 씰팀이 치고 들어온 모양이다.
‘있다’
권총수는 아롱바를 찾았다.
터번을 두르고 바지는 통이 넓은 재색 바지에 상의 역시 헐렁한 자켓을 걸쳤다.
‘엇!’
갑자기 권총수는 놀랐다.
조금 전까지 분명이 눈에 보이던 아롱바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우르르!
사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다시 돌아오길 반복했다.
요소요소에 씰 팀들이 잠복하고 공격을 하기 때문이었다.
쾅!
하는 폭음이 들리며 굳게 걸어 잠긴 육중한 청동문이 날아간다.
탕탕!
경비병들과 뛰어든 씰 대원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권총수의 눈은 부지런히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무공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화악!
돌연 권총수 눈이 커졌다.
물결처럼 출렁거리는 어둠 한 자락이 중간 회랑을 지나 수반(예배전 손을 씻는 곳)이 있는 중정의 담을 넘고 있었다.
잠영술이다.
완전히 어둠에 동화 되지 못하고 액체 덩이 하나가 지나가는 것처럼 분명하게 드러나는 걸 보면 이제 겨우 일갑자 전후의 내공 수위로 보인다.
말이 합동작전이지 맥보란은 아롱바에 대한 감정을 깨끗하게 정리 하도록 배려해 준 것이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이란에서 살아 돌아온 날 맥보란이 가장 먼저 했던 말이다.
당시는 어떤 진심도 위선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만큼 분기탱천한 상태지만 상관을 대신해 맥보란은 무릎을 꿇었다.
이후로도 맥보란은 항상 미안하다고 했다.
‘캡틴을 보면 이상하게 머리부터 숙여집니다’
시간이 흘러도 미안한 마음은 여전하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작정하고 신세 한 번 갚으려는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담벼락 아래 수도공사를 하고 남은 것으로 보이는 볼트와 낡은 수도꼭지, 녹슨 파이프가 보였다.
60센티 정도 되는 뻘건 파이프를 거머쥐고 살피는 권총수의 얼굴에 만족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날이 없을 뿐 완전 검이다.
스으으!
담장에서 담장을 넘어 중정으로 내려섰다. 도로로 나가는 마지막 담벼락을 향해 검은 그림자가 출렁거리며 가고 있다.
권총수는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고 있는 힘껏 출렁거리는 그림자를 내리쳤다.
빠아악!
검은 그림자인데 마치 어떤 물체를 때리는 듯 둔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크윽!
예상대로 신음이 터져 나오고 검은 그림자가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강력한 내공이 실린 파이프에 맞은 아롱바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잠영술을 펼치면 외부의 어떤 공격에도 무방비로 노출이 된다.
그러므로 완전히 주위 지형 속으로 스며들 만큼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매우 위험한 시전이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알아볼 수 없으나 고수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