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7화 : 그렇게(1)
비행기가 바그다드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은 오년 전과 많이 바뀌어 있었다.
미군 전투기의 폭격으로 부서지고 패인 활주로 일부와 건물들이 말끔하게 새 단장 되었다.
두 사람은 청사를 나와 담배를 물었다.
바그다드에서 나자프까지는 170킬로가 조금 못 된다.
차량으로 이동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이라크 도로사정이 좋지는 않지만 전후 복구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넉넉잡아도 세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데브그루는 씰 몇 팀이야?”
“지금 6팀을 데브그루로 불러,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은 없어졌지.”
“그럼 6팀이 데브그루인 셈이네.”
“오케이! 씰팀에서도 가장 극비적인 존재들이고 제일 중요한 작전을 도맡는다고 들었지.”
오민철은 은근히 흥미로운 듯 눈이 반짝 거렸다.
“자식들 생긴 것도 궁금하네.”
오민철이 잇새로 찍 하고 침을 뱉었다.
오민철은 707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하다.
그는 누군가가 특수부대 나왔다고 하면 기어이 그를 이기려고 노력했고 반드시 앞선다는 걸 증명했다.
개인 오민철이 아니라 자신이 근무했던 707의 명예를 위해 매사에 신중한 것이다.
데브그루라는 말에 또 한번 겨뤄보고 싶은 모양이다.
비록 전역을 한지 오래고 나이가 마흔 가까운 지금 그들과 체력적으로 맞선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연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격이나 작전 숙련도에서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신 후 공항근처에 있는 렌트카 회사를 찾아가 차량 한 대를 빌렸다.
포드 익스플로러를 탈까 하다 괜히 미국인으로 오해를 받으면 불필요한 공격을 받을 수 있었으므로 일제 혼다 SUV를 렌트했다.
포장길도 험하고, 비포장길이 많기 때문에 승용차 보다는 SUV가 나을 듯 싶었다.
유프라데스강이 지나가는 나자프는 이라크 중부의 유프라테스강 동쪽연안에 있는 도시다.
이곳에는 이슬람교 제4대 정통 칼리프인 알리의 무덤이 있는 황금의 모스크(mosque)가 있다.
카르발라(karbala)와 함께 이슬람 시아파(Shiah派)최대의 성지인데 전쟁 중에도 무슬림들의 순례가 이어질 정도다.
차량 한 대가 나자프로 들어섰다.
“세 시간이 채 안 걸렸어.”
오민철은 손목 시계를 보았다.
권총수는 상체를 앞으로 숙여 이정표를 살폈다.
“알오하라...오른쪽으로 돌려.”
차는 우회전을 하여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못해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무장 경찰이 지키고 있고 새카맣게 탄 버스 한 대가 있었다.
오민철은 뭐지 하며 속도를 늦추고 바라보았다.
시커만 차량 잔해가 사방에 널렸고 피로 보이는 붉은 색이 아스팔트에 묻어 있었다.
나중 전해 들은 얘기인데 어제 밤 버스테러가 발생해 정류장에 버스를 타기 위해 몰려 있던 사람 중 세 명이 숨지고 십여명이 다쳤다고 했다.
“죄없는 이웃을 죽이는 이유가 뭘까? 더구나 자국민을 말이야?”
오민철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권총수는 차창을 내렸다.
“정상적이라면 미국인을 중심으로 한 외국 사람들, 즉 이교도를 대상으로 테러를 해야 맞겠지. 하지만 그들이 없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어. 자신들의 존재와 투쟁의 목적을 알리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내국인을 상대로 피를 볼 수밖에 없는 거지.”
“원래 이슬람과 기독교는 피터지게 싸워야 하는 건가? 성경와 코란에 너희들은 피터지게 싸우고 부지런히 죽일수록 죽어 천국 간다고 쓰여 있나?”
답답해하는 오민철을 보며 권총수는 웃고 말았다.
이슬람 안에서도 시아파 수니파로 나누어 총질하고, 같은 파 안에서도 근본주의자와 세속주의자끼리 유혈충돌을 벌이는 것이 중동이란 지역이었다.
하루도 피가 멈추지 않는다.
차는 시내를 벗어나 시골길을 달렸다.
오른쪽으로 푸른 강물이 보이는데 바로 유프라데스강이다.
강을 따라 10여킬로 쯤 올라가자 무너진 건물이 있었다.
폭격으로 부서진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층짜리 건물인데 붉은 벽돌로 지어져 있었다.
“여기가 짜르암 교회야.”
1,900년도 초 프랑스 선교사들이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했다가 후세인 시절에 모조리 도륙당하고 방치되었는데 미국과 전쟁에서 이라크 군 기지의 일부로 오인되어 완전히 파괴됐다.
두 사람은 건물 안쪽으로 차를 숨겨 놓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강가로 향했는데 조그만 목선을 타고 어부가 그물을 올리고 있었다.
“옛날 그림 보면 저런 풍경 많은데, 기암절벽 아래로 강이 흐르고 삿갓쓴 어부가 낚시하거나 그물 올리는 것 말이야.”
권총수 말에 오민철이 목에 힘을 주었다.
“산수화라고 하지.”
강가에 도착한 두 사람은 구레나룻 수북한 어부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물에 고기가 그다지 걸려 있지 않았다.
“물 색깔을 보니 고기 많게 생겼는데.”
오민철이 뭔가 아는 사람처럼 이마를 찡그렸다.
물빛이 약간 탁하고 강 바닥에 수초가 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고기가 없을 리 없다는 것이 오민철의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한 때 낚시 광이었다는 것을 힘주어 설파했다.
딸칵!
권총수는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하나 물었다.
“언젠가 휴가를 나와 근처 저주지로 낚시를 갔지. 그런데 운 좋게도 월척만 열여섯 마리를 잡아 버린 거야.”
권총수는 표정없이 담배만 피웠다.
“집에 와서 매운탕을 끓였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배터지게 먹었다니까.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일이 터졌어.”
권총수가 돌아보았다.
“붕어 가시가 목에 걸린 거야. 알다시피 우리 토종붕어 가시는 가시라기 보다는 갈고리잖아.”
권총수는 자신이 반응하지 않으면 오민철의 입이 쉽게 닫히지 않을 것 같아 슬쩍 대꾸했다.
“걸리면 골로 가지.”
“병원에 가서 뽑았는데 죽는 줄 알았다니까. 진짜 그때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하게 이별했다면 지금 여기에 없지.”
카악!
오민철은 가래침을 뱉었다.
“그런데 저 사람 고기를 별로 못 잡는데, 계속 빈 그물만 올라오잖아.”
“형!”
권총수가 정색하고 부르자 오민철이 돌아보았다.
“내기 할까?”
“무슨 내기? 좋은 일 있냐?”
오민철이 눈을 빛냈는데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는 표정이다.
“저 사람 어부일까 아닐까?”
“그게 무슨 소리야. 고기를 잡는데 당연히 어부지?”
“그럼 형은 어부가 맞다에 백 달러 걸래?”
오민철은 이상한 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내기는 무슨 내기... 왜 이상해?”
“저 사람 어부 아냐.”
권총수는 담담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어부라기보다는 해척조라고 해야 옳을 것 같은데?”
707출신이 해척조 뜻을 모를 리 없다.
해상척후조(Scuba Team)의 준말이다.
해상 침투 시 본대가 상륙하기 전에 침투시켜 상륙 지역을 정찰하고 통로를 개척하여 본대를 유도함으로써 상륙의 안전을 도모하는 요원들이다.
오민철의 눈이 빛난다.
권총수의 말에서 뭔가 분위기를 간파한 듯 뚫어져라 그물질을 하는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두 번째 그물을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머리에 갈대로 엮은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아무리 살펴도 해척조의 냄새는 풍기지 않는다.
“왼쪽 팔목에 시계 채워졌지 검정색?”
오민철은 고개를 끄덕였고, 권총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샥(G-SHOCK)이야.”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권총수는 앞에 놓고 보는 것처럼 훤한 모양이었다.
“참 좋은 시계지. 특히 악천후를 이용해 적진을 파고드는 특수부대원들에게는 상당한 도움을 주지. GPS에 남북 방향도 잡아서 밀림에서 독도법 기능도 하고 말이야. 날씨 예보 기능도 있을걸.”
오민철의 눈이 빛난다.
“저 사람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닌데 유프라데스강에서 두 사람도 탈 수 없는 작은 배로 고기 잡는 어부가 저 비싼 시계를 손목에 두를 수 있다고 봐?”
팟!
오민철이 뭔가 알아차린 것 같았다.
“씰?”
낮은 소리로 묻는다.
“빙고!”
짜르암 교회가 오늘 밤 작전을 벌이게 될 6팀 2소대의 집결지다.
해척조가 미리 어부로 변장한 채 지형과 혹시 모를 이라크군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미국 39대 대통령은 지미 카터입니다.’
화악!
그물을 올리던 사내가 소스라쳤다.
귓속으로 권총수의 음성이 분명하게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이미 상부로부터 긴급 지시 사항 하나가 있었는데 미국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를 말하는 사람은 아군으로 해석하라는 것이었다.
비록 아군이라고 해도 해척조 입장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면 안 된다.
반응을 한다는 건 내가 해척조입니다 하고 상대에게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가 미리 간파해 버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만약 적이 아군인척 접근했다면 오늘 밤 작전은 붕괴될 것이다.
어쨌든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만 들을 수 있도록 말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 사내는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이따 봅시다’
또 다시 귓속을 파고드는 음성에 사내는 입을 벌리고 말았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다시 오솔길을 걸어 올라와 차로 걸어갔다.
해가 지고 유프라데스강 위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강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오고 있군!”
권총수가 중얼 거렸다.
강은 어둠뿐이다.
불빛도 없고 움직이는 물체도 없고 하다 못해 뛰는 물고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권총수는 오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2분여가 흐르고 어둠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둠이 다가오는 것이다.
배가 아닌 거대한 뗏목이 사람들을 싣고 흘러왔다.
배라면 엔진소리가 아니면 노 젓는 소리라도 흘려 내지만 뗏목이기 때문에 어둠 그 자체였다.
뗏목이 강가에 닿고 사내들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모두가 군인들이다.
투투툭!
맨 마지막에 내린 사람들이 뗏목을 묶고 있는 끈을 대검으로 잘라 버렸다.
그러자 뗏목을 형성했던 나무들이 떠내려가면 상류에서 누군가 벌목을 하여 내려 보내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다가오는 군인들은 모두 열여섯 명이다.
맨 선두에서 올라오던 대위계급장의 사내가 권총수와 오민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대위 오언이오.”
“권총수입니다.”
“오민철이오.”
차례대로 악수를 나누었는데 오언 대위가 돌아서서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 밤 우리와 같이 작전을 하게 될 두 분을 소개하겠네. 이쪽은 귀관들도 알 것이다. 사막의 흑새.”
“엇!”
“흑새!”
위장을 하여 눈만 반짝이던 군인들이 소스라친다.
사람들은 내가 뛰어나다고 자부하면, 상대를 좀체 인정하고 싶지 않아진다.
씰중에서 데브그루(전 6팀)는 정예다.
정치적 사건을 해결하고, 인질을 구출하며 바람으로 잠입해 바람으로 빠져나오는 완벽함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그러던 자신들 귀에 들려온 한 사내에 대한 얘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날아간다’
워낙 빠르면 날아간다는 표현을 쓴다.
표현이 과장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려러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사내에 대한 소문은 더욱 증폭되었고 이제는 총알도 그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놀라운 건 CIA에서까지도 그 사내에게는 한 발 물러나 예의를 갖춘다고 했다.
결정적인 건 낮에 해척조로 나갔던 동료로부터 믿기 힘든 얘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