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5화: 미야모토 무사시의 후예 (1)
두 대의 버스가 포장된 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훈련장이라고 하여 외인부대 카스텔노다리를 떠올렸지만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이동하는 길만 포장을 했을 뿐 나머지는 자연그대로 방치했다.
그러다 보니 숲과 나무가 우거지고 심지어는 멧돼지가 버스소리에 놀라 달린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자연 그대로의 시설에 권총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는 다져지고 만들어진 공사장에서 하지 않는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숲과 바다를 휘저으며 적의 목숨을 빼앗는 살인게임이다.
전쟁은 자연 속에서 이뤄진다.
말 그대로 야전인 것이다.
야전의 빠른 적응과 전투력 상승을 위해서는 가급적 있는 그대로를 살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사격장이다.”
오민철이 말했다.
사격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져 있었는데 도시사격장과 야전사격장이었다.
도시 사격장은 시가전을 대비한 사격훈련으로 30미터에서 50미터 80미터로 구분 지어져 있었다.
권총수는 시가전을 떠올렸다.
일반적으로 2차선 도로를 놓고 양쪽 건물에서 서로를 향해 사격을 할 때의 거리가 대략 30미터이다.
도로 폭과 인도, 그리고 건물 안에서의 피아의 위치를 계산하면 그 정도 나온다.
50미터는 거리 사격을 계산했을 것이다.
야전과 달리 도시는 건물이 밀집된 관계로 통상 50미터 내외에 적을 두고 사격을 한다.
80미터는 저격의 거리다.
크고 작은 건물로 인해 야전과 달리 원거리 저격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장애물이 너무 많기 때문인데 영국 코만도 부대 전술서적에 보면 시가전에서 80에서 100미터 너머의 적은 없다라고 규정해 버렸다.
상대 지휘관이나 보초병이 툭 터진 건물 옥상에 우뚝 서있지 않는 한 원거리 저격수는 소용없다.
80미터면 충분하다.
그래서 30미터와 50미터는 이동 타겟도 있으나 80미터는 철저히 고정된 표적을 향한 조준사격을 한다.
그러면서 80미터 정도면 어떤 병사라도 저격수처럼 정확하게 사격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동승한 사내들이 마이크로 얘기해 주었다.
이어 150미터 200, 250 미터의 일반 사격장과 공용화기 사격장이 나타났으며 관람객들은 사내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간단한 부상에 대처하는 응급 처치법, GPS사용법, 독도법, M4를 포함한 서방무기들과 AK와 적성국가의 제식 총기 사용법 교장을 차례대로 지나갔다.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도시다.
아파트가 있고 개인 주택이 있으며 포장 도로, 특히 도로 곳곳에는 승용차와 버스 트럭들이 서 있었다. 슈퍼도 있고 수많은 술집 간판들이 빼곡한 좁은 골목에, 육교 너머로 작은 개천을 건너는 다리도 보인다.
“믿어지지가 않는데.”
오민철이 탄성을 지른다. 웬만한 시골 읍내 크기다.
차이라면 많은 총알자국이 있다는 것인데 여길 거쳐 간 사람들이 치열한 훈련을 받았음을 증명했다.
누군가 현대전은 시가전이라고 했다.
사람도 없는 산과 들판에서의 싸움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도시를 장악하고 마을을 점령하면 그 전쟁은 이길 수밖에 없다.
모형 도시를 한 바퀴 도는데 만 30분이 걸렸다.
물론 버스의 속도가 느리긴 했지만 놀라운 규모임에는 분명했다.
“이상하지 않냐?”
오민철이 권총수를 바라보며 묻는다.
“지역 주민이나 비판 여론을 잠재울 목적으로 훈련장 개방이라는 과감한 결정을 했어. 이왕이면 자신들이 미국을 대신해, 또는 테러범들을 잡기 위해 얼마만큼 힘든 훈련을 하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아냐.”
오민철의 말에 일리는 있었다. 그러나 권총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땀을 흘리며 훈련을 받는 용병들을 직접 본다면 그냥 총만 들고 다니면서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구나.
자신들은 감당하기 힘든 훈련을 한다는 걸 알게 되면 동정 여론이 생길수도 있었다.
“훈련장 개방도 쉽지 않은 결정이지. 아무리 군대서 경험을 했다고 해도 민간 훈련장은 또 다르니까. 그런데 훈련모습까지 보여줘 봐. 각 회사마다 자신들만의 특별한 비밀 훈련종목이 있을 거야. 그걸 노출 시키라고?”
오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장 개방과 훈련 모습 개방은 또 다르다.
각개전투라고 모든 회사가 똑같은 형태의 거리와 장애물을 놓고 훈련하지는 않는다.
군에서 주특기를 부여받고 그 훈련에 매진하듯, 훈련모습이란 그 회사만의 특징이자 이른바 밥줄일 수 있으니 노출은 안 될 일이었다.
자동차 훈련장(Car training ground)이라고 쓰인 곳으로 버스가 들어섰다.
가방 먼저 눈에 띄이는 건 승용차, 트럭, 버스였다.
누군가 사용가능한 차들이냐고 묻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가전에서 자동차 운용은 최고의 전술이다.
세 가지 형태의 보편적인 차량을 이용하여 공격과 퇴각을 하는 훈련이었다.
레드콘(빨간 뿔 모양의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필시 운전 테크닉을 연습하는 코스일 것이다.
미행(tailing), 장애물 돌파(Break through obstacles), 폭발물 지대 통과(Pass through the explosive zone), 차량정비(Vehicle maintenance)등 다양한 코스로 이뤄져 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훈련장은 최대한 실전에 맞춰 설계되어 있었다.
군대 훈련장과는 전혀 딴판이다.
군대 훈련장이 기계적이라면 여긴 수동식이었다.
한 명 한 명 직접 전쟁을 느낄 수 있도록 지어지고 훈련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카데미의 능력은 씰 출신의 대표 프린스가 인맥을 이용한 대량 스카웃, 즉 씰과 델타포스를 많이 끌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훈련소를 둘러본 권총수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투자 없는 곳에서는 결코 수익이 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KAS 대표 스톤스의 말이 떠올랐다.
만약 이번에 아카데미 훈련장을 둘러보지 않았다면 자신의 사업에 중대한 문제가 생길 수가 있었다.
너무나도 평범하여 조금은 저질스럽게 들리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더욱 가슴에 다가온다.
뉴저지주 훈련소 부지에 들러 철조망 공사 현장을 잠시 둘러보았다.
일단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해 철조망을 친 뒤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공사 관계자를 격려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 오르면서 입구에 놓아둔 뉴욕타임즈를 한 부 들고 자리로 걸어갔다.
신문을 펼쳐들고 대충 훑어보던 권총수 눈이 빛났다.
‘21세기의 미야모토 무사시’
라는 타이틀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권총수는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기사 내용을 읽어 갈수록 표정이 굳어지더니 어느 한 순간에는 이마를 찡그렸다.
“무슨 기사야?”
오민철이 잠을 잘 채비를 하며 물었다.
권총수는 대답없이 신문을 읽었다.
“뭔데?”
권총수 표정에서 심상찮음을 발견한 오민철이 몸을 바로 세워 앉았다.
권총수가 모두 읽은 듯 시선을 떼자 재빨리 신문을 낚아 채가더니 읽기 시작했다.
“어...어라!”
오민철이 놀란다.
“쿠르드족 일백 여명.”
권총수는 이륙하는 비행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틀 전 시리아 군사고문단으로 있는 일본계 보안업체 가미카제소속 용병들이 알시우리라는 쿠르드족 마을을 공격해 일백 여명을 학살하고 수십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내용이었다.
‘가미카제’
처음 듣는 용병회사다.
신문기사를 보면 보스니아 내전에도 참전했다는 걸 보면 그동안 꾸준히 활동해온 기업 같아 보인다.
그런데 왜 한 번도 들어본 기억이 없을까.
나카야마 입에서도 가미카제 용병에 대한 말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그건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한국인이 왜 나와.”
분명 쿠르드 마을을 공격했는데 희생자중 십여 명이 한국인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권총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뭔가 아주 불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오랜 비행 끝에 카이로에 도착했다.
입국장으로 들어서자 전화가 울렸다.
맥보란이다.
“여보세요.”
“어떻게 갔던 일은 잘 보셨습니까?”
“그럭저럭.”
“좋은 소식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일이죠?”
잠시 듣던 권총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바로 가죠. 형 먼저 들어가.”
권총수는 택시를 타고 미국 대사관을 향해 달렸다.
맥보란이 환한 표정으로 맞아 주었다.
맥보란은 권총수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는데 한쪽 벽에 커다란 지도가 걸려 있었다.
지도에는 볼펜으로 동그라미와 숫자가 쓰여 있었고 한 지점은 빨간 삼각형이 있다.
“어딘지 아시겠소?”
“저건 유프라데스강 같고 지역이 이라크 나자프 같습니다만?”
“역시 중동을 홈그라운드로 삼는 천하제일 용병 다운 안목입니다. 지명도 없이 그냥 작전지도만 만들어 놓았는데.”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이집트, 이라크, 사우디, 아프카니스탄의 지리는 눈을 감고도 찾아 갈 수 있을 만큼 훤했다.
굳이 작전지도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아롱바 아시죠?”
파팟!
권총수의 두 눈에서 강렬한 섬광이 쏟아졌다.
너무 강력하다 보니 맥보란이 움찔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는데 당황한 얼굴이다.
‘사람의 눈이 아니다’
마치 비수로 찌르는 것 같다.
누구보다 권총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그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볼 때마다 다르다.
그건 분명 능력치가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스윽!
자신도 모르게 목을 쓰다듬었다.
목에는 어떤 상처도 없었지만 분명히 뜨끔했었다.
“어딨소?”
“일주일 후 6팀 2소대가 모종의 작전에 들어갑니다.”
6팀은 씰을 의미한다.
씰6팀 2소대가 이라크 나자프에서 극비작전을 진행한다는 뜻이었다.
“첩보위성에서 우리가 쫓고 있는 인물이 사용하는 무선전화의 통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CIA가 쫓고 있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아롱바를 얘기하는 걸 보면 그 정도의 무게는 갖고 있는 인물인 모양이었다.
아롱바는 무자헤딘 최고위층이다.
일부에서는 배후에서 무자헤딘을 조종하는 실질적인 우두머리라는 설도 있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설이 더 우세하다.
“1급 비밀을 관계자가 아닌 사람에게 누설하면 미합중국법과 CIA법은 최고 종신형을 언도할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사막의 흑새는 나와 개인적인 관계보다는 미합중국의 국익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이번 작전에 참여한다면 그 일원이니 비밀 누설은 아닌 셈이군요. 히바툴라 아쿤드자다가 표적입니다.”
히바툴라 아쿤드자다는 탈레반 3대 지도자다.
그동안 아프카니스탄 산 속 깊이 숨어 있다는 것 정도가 그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미국과 휴전협상도 지지부진하고 아프카니스탄의 현 대통령과 공동 정부를 운영한다는 기본 방침에는 합의되었지만 구체적인 부분에서 아직 진전이 없다.
“그가 이라크를 방문하는군요?”
“그렇습니다. 아마 이라크 반군과 그쪽 무자헤딘의 고위급들과의 접촉이 있을 모양입니다.”
반미를 외치는 테러조직 수장들이 만나 무슨 얘길 나눌까.
“우리가 보는 관점은 두 가지요. 하나는 흩어진 여러 테러조직들이 단일대오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가 있었죠. 하나의 군벌로 뭉쳐 한 사람의 지휘아래 미국과 맞선다는 거죠. 또 하나는 이라크에 다시 반미정부를 세운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가능한거요?”
“이라크 군부중 일부 강경파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모양입니다. 사담 후세인의 이름이 다시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고.”
중동 전 지역이 기름(이슬람)에 덮여 있다.
다른 지역과 차이라면 한 번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은 하나다.
알라는 유일하다를 외치며 외세(기독교를 의미하며 곧 미국)축출의 함성이 터졌다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라크도 그렇고 아프카니스탄까지 겨우 진정시켜 놓았는데 다시 사태가 일어나면 미국으로서는 골치 아플 일이다.
“아!”
권총수가 돌아서다 멈췄다.
“서기관님, 신문에 보니 가미카제라는 용병회사가 나왔던데 어떤 곳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