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4화: 신용도 A+(2)
권총수는 눈을 흘겼다.
“그렇습니다. 정확한 설명이십니다.”
기사는 룸미러로 권총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말보로 레드를 좋아하죠. 기사님은 어떤 담배를 피우십니까?”
“난 안 핍니다.”
“그래요.”
잠깐의 흥분이 가라앉는 듯 오민철은 머쓱한 표정을 했다.
그러자 눈치를 챈 듯 기사는 웃으며 말했다.
“몸에 나쁘지만 않다면 담배처럼 멋있는 식품도 없죠. 내가 가장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담배 아닙니까?”
뱅크오브아메리카 본사까지 가는 동안 오민철은 쉬지 않고 담배얘기를 꺼냈고 기사도 적절히 기분을 맞추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은혜가 풍성히 내리시길 빕니다.”
택시비는 75달러 나왔는데 백 달러 짜리 한 장을 건네주고 거스름돈 25달러를 팁으로 건넸다.
기사는 차에서 내려 깊은 마음을 담아 인사를 했다.
“멋진 인연이었소.”
오민철이 오른손을 들어 보이고 돌아섰다.
“돈이 좋긴 좋다. 택시 기사에게 폴더 인사도 받아보고.”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샬럿에 있는 뱅크오브아메리카 본사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카이로에도 뱅크오브아메리카 지점이 있다.
미국까지 오지 않아도 되는데 시간과 돈을 들여 굳이 본사까지 고생하며 온 이유는 한가지 목적 때문이었다.
이곳에 아카데미 본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라크에서 아카데미 용병들이 저지른 일련의 사건으로 그들을 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은 매우 부정적이다.
‘전쟁의 개들’
더군다나 아프카니스탄에 주둔중인 미군을 철수시키고 그 자리를 아카데미가 메울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일부 시민단체에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돈이 목적인 용병에게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건 무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들이 이라크에서처럼 아프카니스탄에서 작전을 이유로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아카데미는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
그 첫 단계로 자기들 훈련장을 무료로 개방한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주 경계 늪지대에 있는 아카데미 훈련장은 현대전에 가장 어울리는 시설물로 인정 받는다.
하지만 민간 개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어느 정도 여론이 잠잠해지면 슬그머니 폐쇄할 것이 자명하다.
군대에서도 훈련시설은 허가 받지 않는 사람은 출입 할 수 없는 중요한 기밀시설이다.
하물며 민간 기업에서 훈련소란 그 회사의 전략과 전술을 엿볼 수 있는 진면목이기 때문에 더욱 개방을 꺼린다.
영국의 보안기업 KAS와 다인코프 훈련장을 구경한 적은 있으나 당시는 사업가적인 안목으로 보지 않았다.
척!
두 사람은 걸음을 세웠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고층 빌딩을 올려다 본 뒤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
대출업무는 3층이라는 안내 표지판을 읽고 계단을 통해 올라갔다.
“어떻게 오셨나요?”
문을 열고 들어서는 둘을 향해 백인 여자가 상큼한 미소를 짓는다.
“대출 상담을 원합니다.”
“예약되어 있나요?”
“그렇습니다.”
권총수는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고 컴퓨터로 조회를 한 백인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를 따라오세요. 두 분을 담당한 매니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에바라고 밝힌 여자는 두 사람을 창가에 앉은 사내에게 데리고 갔다.
대략 마흔 초반정도 보인 사내는 안경을 꼈는데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린 에바는 두 사람을 소개했다.
“비사카와 예약된 대출 상담입니다.”
“그러십니까? 이름이?”
“권총수입니다.”
비사카라는 사내 역시 확인을 했고 환하게 웃는다.
“반갑습니다.”
비사카는 두 사람과 악수를 나눈 뒤 뒤쪽의 소파로 안내했다.
손님이 찾아오면 그곳에 앉아 대출 유무를 확인하고 상담하는 모양이었다.
비사카는 미리 준비해 놓은 서류뭉치를 앞에 놓았다.
“오늘 오시기로 했기 때문에 미리 살펴 봤습니다. 뉴저지주에 약 10평방킬로미터를 오천만 달러에 매입하셨군요?”
권총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비사카는 몇 장의 서류를 더 넘기며 살핀다.
“이 매매 서류를 담보로 대출을 원한다?”
“몇 프로까지 가능하죠?”
“도심에 있는 땅도 아니고 거의 쓸모 없는 산악지역과 황무지인데 이 많은 땅을 어디에 쓰려는지 물어도 될까요?”
“군 훈련소를 지을 것입니다.”
군 훈련소라는 말에 다른 업무를 보던 일부 직원들까지 고개를 돌렸다.
“군사훈련소?”
“민간 보안업체 창업을 준비중이죠.”
그때였다. 누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권총수의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그 바닥 장사가 된다니까 개나 소나 달려드는군.”
오민철이 들었다면 당장 쫓아가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개와 소가 많이 찾아 오는가 보군요?’
권총수는 전음을 보냈다.
“으헉!”
사내는 기겁하며 자리까지 박차고 일어났는데 권총수는 멀리 떨어져 앉아 있었다.
결코 들을 수 없는 거리였다.
사내는 자신의 귓구멍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기까지 했다.
“보안업 경기가 좋다하니 90퍼센트까지는 가능하겠습니다만.”
구십 퍼센트면 4,500만 달러다.
우리 돈 오백억이 조금 넘는 액수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권총수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시설과 장비를 구입하려면 많이 모자란다.
“백이십프로까지 대출해주는 회사도 있다고 들었소?”
옆에 있던 오민철이 말했다.
“있습니다.”
비사카는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권총수는 물론 오민철도 모르지는 않는다.
당신들은 기존 사업체를 확장하거나 신규사업 진출을 위한 자금이 아닌 창업자금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창업 대출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도이체 뱅크에서 5천만달러까지 가능하다고 했지? 그곳으로 가자고, 한 푼이 아쉬운 판인데 오백만 달러를 더 준다는데 어디야.”
“그러시던지.”
그러면서 먼저 자신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걸 본 권총수 표정이 굳어진다.
대출이 쉬우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합해 7천만 달러까지는 가능할 것이란 계산을 했었다.
그런데 신용 대출은 말도 꺼내보지 못했다.
그건 해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의사가 있다면 신용으로 얼마 가능하다고 먼저 말했을 것이다.
“아, 서럽다 씨발.”
오민철이 비사카란 사내를 노려보았다.
“미중앙정보국도 인정한 사막의 흑새가 고작 오천만 달러 대출도 안된다니.”
그때 그 소리를 들은 누군가 놀라 외쳤다.
“블랙버드 인 더 데저트(Blackbird in the Desert)”
권총수는 고개를 돌렸다.
안쪽으로 제너럴 매니저(General Manager)라고 쓰인 문이 열리며 2:8가르마를 한 금발의 사내가 나왔다.
그의 두 눈은 커져 있었고 권총수를 바라보았는데 더듬거리며 묻는다.
“사막의 흑새가 맞습니까?”
“그렇소.”
“사막의 흑새!”
“정말로 사막의 흑새란 말야?”
직원들이 놀라며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들의 반응에 권총수는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놀라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직원중 누군가 호된 피해를 입어서 보이는 적의인지 헷갈린다.
“비사카, 이 손님 내가 상담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본부장님!”
“들어가시죠. 저 안에서 차도 마시고 대출에 관한 여러 얘기를 나눠 볼까요?”
“그럽시다!”
권총수는 비사카를 한 번 돌아 본 뒤 따라갔다.
사내는 영업본부장 찰턴이라고 했다.
사막의 흑새는 미국의 어떤 스포츠 스타보다 더 유명하다면서 자신도 팬이라고 했다.
팬이라는 말에 권총수는 다소 멈칫했다.
전장의 사자(死者)를 좋아하는 것도 뻘쭘할 일이지만 팬이라니 그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우리 은행은 담보 대출을 기본 틀로 운영하지만 제일 중요한 손님은 반드시 신용대출로 오랫동안 단단한 거래를 맺죠.”
“얼마까지 해줄 수 있죠?”
“10여 년 전 지금은 은퇴한 양키스 유격수 데릭 지터에게 1억5천만 달러를 신용대출 해준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권총수 눈이 커졌다.
자신이 마음속 대출액수는 1억 달러이다.
물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 정도면 창업하는데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액수는 1억 달러요.”
찰턴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무조건 오케이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사막의 흑새와 거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알 것입니다.”
비사카라는 직원이 갖고 있는 권총수에 대한 서류도 보지 않았다.
미국이 신용사회라고 하지만 이름만 듣고 일억 달러 대출이 가능하다는 건 한국적 정서상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권총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제가 가진 담보 가치는 그에 미치지 못합니다.”
“직접 들은 얘긴 아닙니다만, 아는 지인을 통해 들었어요. 다인코프 회장 메몰라가 사석에서 말하길 사막의 흑새로 인해 회사의 가치가 다섯 배 성장했다고 말했답니다.”
다인코프 주식이 수직 상승한 일은 알고 있다.
거기에 권총수와 오민철도 투자까지 했고 쏠쏠한 수익을 올렸었다.
그러나 그만큼 회사 덩치가 커졌다는 건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신은 행운의 상징이죠. 우리 은행과 거래를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어떤 나쁜 놈은 우리 은행에서 돈은 빌려가고 거래는 다른 은행에서 하지요. 패 죽일 놈.”
누군지 물어 볼 수는 없었다.
어쨌든 권총수는 걱정 말라면서 내민 서류에 사인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
아카데미 훈련장 투어가 있기 때문이다
민간 개방을 위해 훈련장 입구에 지어진 휴게실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많았고, 특히 중년을 넘기고 노년기 초입에 들어선 쉰 중후반의 여성들이 상당했다.
군대란 남자들에게 있어 애증의 상징이다.
싫으면서도 그때를 떠올리면 고생했던 그 자리에 가보고 싶어한다.
월남전이 끝난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당시 치열한 전장을 누볐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관광객이 되어 베트남 현장을 찾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군대란 미우면서 미워할 수 없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흰머리가 늘어가고 주름살이 깊어지는 여자들에게는 어떤 해석을 내려야 할까.
“그 사람들 아닐까.”
권총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미국이 참전한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부모님들 말이야. 여자들은 아들과 남편이 죽었다는 전사 통보만 받지 군대가 어떤 곳이고 전장이 얼마나 참혹한지 모르잖아.”
“간접체험? 그럴수 있을 것 같은데.”
오민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휴게실 문이 열리며 상하 검정색 전투복을 입은 다섯 명의 사내들이 들어섰다.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오십여명의 관람객들의 눈이 빛났다.
사내들은 공수휘장과 특수전, 산악전 휘장 등을 앞가슴에 가득 달았고 아카데미 마크가 달린 팔뚝의 견장하며, 실탄이 장전 되어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권총까지 차고 있었다.
“여러분을 안내하게 될 캐시디입니다. 참고로 현역시절 저의 계급은 어깨를 보면 아시겠지만 대령이었죠. 오늘 저희 회사의 훈련장을 돌아보면서 내 아들, 내 남편의 희생이 얼마나 고귀한 건지를 느낄 것입니다. 밖에 버스가 있는데 탑승 하시겠습니다.”
나중 알게 된 내용이지만 여자들은 권총수의 예측대로 전쟁으로 아들과 남편을 잃은 어머니나 미망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젊은 청년들이 몇 있었는데 그들은 아카데미를 지원하기 앞서 미리 탐사겸 구경을 온 예비 용병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