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2화: 사제들의 암습(2)
쉬이익!
수뇌는 항상 정면에 자리를 잡는다.
전장의 지휘관도 그렇고 뒷골목 범죄조직도 그렇다.
그래서 수뇌를 먼저 잡기 위해 공격이 집중되는데 권총수 역시 전방의 가운데 사내를 공격할 듯 노려보다가 느닷없이 왼쪽 꽃상가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쉭!
사내들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그러나 마음 놓고 휘두르기에는 공간이 좁다.
더욱이 권총수의 공격이 자신들을 향할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에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슈와아아!
칼을 쥐지 않은 좌장(左掌)을 뻗었지만 공격이라기보다는 본능에서 나오는 방어적 성격이 더 크다.
즉 내공을 모두 실을 수 없었다.
빡!
퍼어엉!
푸른 손바닥이 밀고 들어오자 있는 힘껏 받아쳤다.
받아내는 사내들 손 역시도 파랗지만 색의 강도에서는 현저한 차이가 났다.
두 사내의 손이 약간 멍이 든 정도로 푸른색이라면 권총수는 푸르다 못해 검정색이 스며 있듯 진했다.
괸음청강수(觀音靑剛手)다.
둔탁한 소리가 들리면서 사내들은 뒤로 날아가 계단 벽에 부딪혔다.
허공에 뜬 권총수는 벽에 충돌하고 튕겨 나오는 두 사내의 면상을 향해 발길질을 가했다.
바바바박!
반야십팔각(般若十八脚).
공을 차듯 두 사내를 향해 움직이는 발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고 얼굴이 산산조각이 되었다.
권총수는 바닥에 있는 칼을 주워들었다.
생존자 넷이 함께 모여 있다.
“존성대명이?”
권총수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위철명이오.”
“카이로에서 영국 MI6 요원들을 학살한 유성십절?”
위철명은 깜짝 놀랐다.
권총수가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대사형이 사제들을 모르고 있는데서야 말이 안되죠. MI6 시신 몇 구를 보았는데 보잘 것 없긴 해도 백보신권의 흔적이 있더군.”
권총수는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사부님께서는 그러셨지. 현재의 소림에서 너보다 더 높은 배분은 없다. 너는 곧 소림의 장문인이다. 너의 명령을 듣지 않는 자는 죽여도 좋다.”
슈아아아!
십이성의 금강부동신법이 펼쳐졌다.
버언쩍!
대낮이다.
하지만 태양빛을 압도하는 강렬한 빛이 터졌다.
구경꾼들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위철명 일행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호무사로서 눈을 감으면 안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감지 않았다.
대신 눈 뜬 장님이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은 온통 백색일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넋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네 사람은 동시에 쌍장을 뻗었다.
뻐어어억!
암석이 쪼개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고 숨을 쉴 수가 없다.
가슴이 바위에 눌린 것 같다.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불가능했다.
가슴은 더욱 강한 압박을 받았고 곧 갈비뼈가 부러지고 뭔가 엄청난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쩌어어억!
빛이 사라지고 다행히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사내가 칼을 들고 서 있다.
온 힘을 눈에 집중했는데 자신들을 공격했던 권총수였고 그것이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볼 수 있었던 마지막 이승의 풍경이었다.
세상을 보게 되어 한숨 놨지만 그 시간은 너무 짧다.
생기가 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달마가 남긴 칠십이종의 무공에는 단 일 초의 검식도 없다.
그가 남긴 무공들은 심신을 단련하여 건강한 몸을 만드는데 첫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은 죽이고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이다.
살생을 금기로 여기는 불가의 소림과는 맞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소림 무공의 창시자도 마지막에 한 가지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부로부터 소림이 공격을 받았을 때였다.
강호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가공할 집단 하나가 있다.
마교(魔敎)였다.
그들에 대해서는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 뿐 어느 정도 강맹한 세력인지는 모른다.
그때그때 다른 것이다.
마궐천복(魔獗天伏), 마교가 일어나면 하늘도 엎드린다는 말이 강호에 흘러오고 있었다.
결국 달마대사는 해탈직전에 세 가지 검식을 남겼는데 바로 달마삼검이다.
조금 전 달마삼검 중 두 번째 식 금강반야(金剛般若)가 펼쳐졌다.
사람이 죽었는데 시신이 없다.
네 구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어야 정상인 것이다.
단지 누군가 금강반야의 식이 펼쳐졌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네 사람이 있었던 지면에 잘려나간 옷자락 몇 개가 떨어져 있었다.
* * *
카이로 국제공항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권총수와 오민철이다.
둘은 남대문에서 구입한 여러 옷가지들을 담은 대형 캐리어를 밀고 들어왔다.
“캡틴!”
“민철!”
고개를 들었다.
낯익은 얼굴 두 명이 서 있다.
지사장 버홀터와 벤자민이었다.
서로가 다가가 악수를 나누는데 벤자민은 권총수를 힘차게 끌어안았다.
무뚝뚝한 벤자민이다.
지금의 과감한 행동은 평소 그 답지 않은 감정 표현이었기 때문에 권총수는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벤자민의 목소리가 떨렸다.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이 날마다 중계되듯 CNN에 보도 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돈을 받아 주기 위해 얼마만큼 고생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벤자민!”
“당신은 영원한 캡틴입니다.”
탁탁!
권총수는 벤자민의 등을 토닥여 주며 웃었다.
“텍사스 카우보이에게도 눈물이 있군요?”
벤자민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눈물 자국을 닦았다.
일행은 큰 소리로 웃음을 지으며 공항을 떠났다.
버홀터가 무사 귀환을 기념한다면서 조그만 파티를 열었다.
물론 일류요리사를 부르고, 푸른 잔디밭에서 웃고 떠드는 화려함은 없었지만 푸짐한 양고기 요리와 버번과 낯익은 미국 맥주들이 넘쳐났다.
이집트 술이 있긴 하지만 위험하다.
맥주까지는 그런대로 믿을만 하지만 짝퉁양주가 돌아다니고 보드카 또한 가끔 마시고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알파팀 전원이 참석했는데 왁자지껄 시간가는 줄 모른다.
더욱이 두 시간 전 각자의 통장으로 십억 달러를 나눈 돈들이 입금된 탓에 표정 어두운 사람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사망자에게는 위로금 형태로 백만 달러가 더 지급되었는데 일인당 4천만 달러 정도 책정되었다.
권총수는 캡틴이지만 결코 더 받지 않았다.
모든 작전에는 반드시 승리 보너스와 수당이 있고 지휘자가 가장 많은 액수를 받는다. 하지만 권총수는 더 받으라는 동료들의 독촉을 거절했다.
‘때로는 더 받아야 할 때도 있으나 이번은 균등하게 나누자’
모두가 감동하면서 권총수에게는 끊임없이 술잔이 다가왔다.
돌아가면서 술을 따르고 건배를 제의하자 피할 수가 없었다.
물론 강호의 고수이기 때문에 술기운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당히 한두 잔 마시는 술좌석은 좋아하지만 과다한 음주는 피했다.
그러나 오늘은 도리가 없었다.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고 여기저기서 은퇴 얘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액을 챙겼으므로 더 이상 이 무자비한 전장에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용병이 되었고 마침내 목표보다 수십 배 많은 돈을 거머쥐었으므로 서둘러 고향 앞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권총수는 당연한 현상이라는 듯 축하를 해주었다.
용병의 생존 통계를 보면 5년차까지가 살아남는 이들이 가장 많았다.
5년을 넘어가면 사망자수가 급속하게 늘어난다.
그 첫째 원인을 방심으로 꼽는다.
오랜 전쟁에 몸이 물들면서 관성화 습관화 된다는 것이다.
긴장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관성화, 습관화된 몸은 긴장을 무디게 만들고, 그렇게 숨지는 것이다.
특히 특수부대 출신들의 평균 연봉이 30만 달러에서 50만 달러이다.
물론 덜 받을 수도 있고 백만 달러가 넘는 고액 연봉자도 있는데 위험한 직업이다 보니 죽음에 대한 스트레스 해소차원에서라도 씀씀이가 헤프다.
수입의 절반은 어떤 형태로든 다시 지출이 된다.
일부는 휴가를 맞아 돌아간 라스베가스에서 모든 돈을 탕진하기도 했다.
절반씩 저축한다고 하면 5년 근무시 백만 달러 가까이 모을 수가 있고 월가에 투자를 하든 아니면 고향에서 작은 농장을 하든 먹고 사는 기본 골격은 충분히 갖춰지는 셈이다.
이들은 그걸 알고 있다.
최소한 전장에서는 아는 것이 사는 것이다.
10시가 넘었다.
버홀터가 다가오더니 눈치를 살피며 주저했다.
“말씀하시죠.”
권총수는 편하게 말하라 권하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계약 문제인데...”
다인코프와의 계약은 끝났다.
“텍사스에서는 용병시장 최고 대우를 약속한다고 했네.”
권총수는 가볍게 웃더니 고개를 숙여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눈치 빠른 버홀터가 긴장하는데 권총수는 고개를 들었다.
“재계약이 어려울 듯 싶습니다.”
“뭐라고?”
버홀터가 깜짝 놀란다.
권총수는 탁자 위에 있는 콜라를 병째 들어 마셨다.
“캡틴!”
“이해 해주시죠.”
“다른 회사와 약속이 되었나? 어딘가? 아카데미? 회장님은 분명히 말씀했네. 용병시장 누구도 캡틴의 몸 값을 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이야.”
버홀터는 돈 문제라면 걱정할 것 없다며 재계약을 재촉했다.
“타 회사와 얘기 된 건 없습니다.”
“재계약을 거절하는 자네의 말을 믿으란 말인가?”
“오늘은 이쯤에서 정리하죠.”
권총수는 등을 돌려 걸어갔다.
권총수가 사라진 곳을 보며 버홀터는 중얼 거렸다.
‘다른 회사와 접촉이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다.’
급하다.
권총수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물이고 신인(神人)이다.
무조건 그를 잡아야 하지만 최악의 경우 실패할 때는 다른 회사에서도 데려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다.
계약이 최우선 목표지만 실패 할 경우에 이직만큼은 기어이 막아야 한다.
바람이었다.
나카야마가 바람처럼 갑자기 떠나버린 것이다.
누구에게도 온다간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오민철은 나카야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없는 국번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뭔 일 생긴 것 아냐?”
다음 날 오민철은 하루종일 나카야마를 찾기 위해 뛰어다녔지만 무소득이었다.
지사장 버홀터도 나카야마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혹시 귀국했는가 싶어 일본편 비행기 탑승자를 알아봤지만 나카야마란 이름은 없었다.
다인코프에서는 혹시 타 회사와 계약을 했나 싶어 아카데미를 포함한 메이저 회사들을 주시했지만 나카야마는 없었다.
그렇다고 나카야마처럼 실전 경험이 풍부한 자원이 저렴한 몸값을 받고 마이너 회사에 입사할 리는 없다.
설혹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그런 회사는 위험하다.
전쟁도 팀웍이다.
야전의 전략과 전술에 빼어난 나카야마다.
그런데 팀웍을 이뤄야 할 동료들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면 전술의 불협화음, 전략의 부재가 뒤엉키고 소란스러워지면서 경기는 무너진다.
모래알 전력은 패배, 곧 쓰러지게 되어 있다.
전장의 패배는 무조건 죽는 일이다.
좋게 말하면 두뇌회전이 빠르고 나쁘게 표현한다면 잔머리에 능한 나카야마가 그걸 모를 리 없다.
돈 몇 푼 더 받는다고 작은 보안업체와 덥석 계약할 위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덜렁거리는 듯 보이지만 세상을 치밀한 계산하에 살아가는 위인이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거야.”
권총수와 오민철은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