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0화: 관세음보살(2)
그해 봄이었다.
권악수가 양자로 서류에 올려지면서 이상하게 꿈자리가 불편했다.
‘코는 얼굴에서 재물을 상징합니다. 코가 어떻게 생겼느냐에 따라 하는 일이 황금알을 낳느냐 낳지 못하느냐가 달려 있지요’
답답한 마음에 권악수의 사진을 들고 평소 다니는 절의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은 서옥선이 건네주는 권악수의 사진을 보더니 표정이 밝지 못했다.
어두운 스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 했지만 별일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보십시오. 관골(눈 옆 아래쪽 불쑥 튀어나온 뼈)이 코의 높이를 위협 할 만큼 높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님은 이마를 찌푸렸고 눈을 좁혔다 늘렸다 반복하며 사진을 수색하듯 훑어보았다.
‘관골이 높으면 좋을 일 보다는 재앙이 많이 생기지요’
한마디로 나쁘다는 얘기였다.
‘신극군(臣克君)의 형상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신하가 임금도 몰라보고 설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조선말기에 완동김씨처럼 패륜 무도한 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신극군.
그건 곧 부모도 몰라본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 숨을 죽이며 권악수를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매우 다정하고 온유하면서 회사일에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별 탈이 없었으므로 관상이라는 것이 꼭 그렇게 믿을 것도 아니라면서 안도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권철악을 도와 회사를 이끌어온 경륜 깊은 사람들을 하나 둘 몰아내기 시작하더니 자신의 사람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권악수가 회장이 될 것이니 미리 친한 사람들과 손발을 맞춰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며 눈감아 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 주요 간부들 90퍼센트가 사라졌고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됐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호 사건이 터졌으며 오늘 이렇게까지 온 것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고 했다.
이제 두 딸까지 모두 죽고 없다.
그렇다고 딸도 없는 사위들에게 회사를 넘겨 줄 수도 없는 일이다.
이건 상속이나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강탈을 당한 꼴이다.
처음 사막의 흑새라는 사람에게 진 십억 달러의 빚 얘기를 듣고 정말로 그로인한 사고라면 한 사람이라도 덜 다칠 때 서둘러 갚으라고 말했다.
사람 목숨을 놓고서 자존심 운운하는 것 아니라면서 네가 약속을 어겼으니 지금이라도 지킬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모든 건 묵살되었고 급기야 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있었다.
미국에 손자들이 있지만 그들 모두 전씨다.
아버지 전철행의 성을 딴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권으로 바꿀 수도 있지만 너무 어리다.
이제 열두세 살짜리 아이들이 회사를 경영한다는 건 불가능하며 모든 것이 정리된 느낌이다.
불현 듯 죽 쒀서 개줬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회사를 위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조카에게 인생 팔십의 모든 것이 넘어간 것이다.
의심은 끝없이 이어졌고 불안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폭되었다.
‘관세음보살’
서옥선의 입에서는 늦은 후회의 반성이 끝없이 흘러 나왔다.
김갑종 자신이 직접 취조하겠다면 윗도리를 벗고 들어섰다.
권총수의 손목에는 또 하나의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상체를 꼿꼿하게 세운 채 앉아 있었는데 김갑종이 담배를 물며 들어섰다.
가까이 다가온 김갑종은 맞은편 의자에 앉지 않고 담배를 피우며 실내를 왔다갔다 했다.
시간을 끄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사를 앞둔 상대는 긴장이 더욱 가팔라진다.
심하면 두려움의 증세가 신체적으로 나타나면서 정신이 흔들리고 결국 모든 걸 털어 놓는다.
김갑종은 나름대로 피의자 추궁에 대한 신경전을 최선을 다해 펼치고 있었다.
가끔 가다 보지 않은 척 하면서 권총수의 반응을 살핀다.
그러나 권총수는 눈을 감고 있다.
사실 지금 권총수는 운기조식 중이었다.
내공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굳이 결가부좌하지 않아도 어디든 있는 곳이 곧 장소가 된다.
그러나 권총수를 보는 김갑종의 시선은 달랐다.
물론 그가 운기조식이 뭔지, 등봉조극이 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조롱과 야유이고, 지랄한다였다.
지가 무슨 거물 정치인이나 되는 듯 눈을 감고 폼 잡고 있다는 식의 해석을 한 것이다.
부욱!
책상위에 올려진 재떨이에 담배를 눌러 끈 김갑종은 일부러 의자를 세게 끌어당겼다.
드르르륵!
개지랄 그만 하고 눈 뜨라는 의미였다.
권총수는 천천히 눈을 뜨며 입 꼬리를 말려 올리며 비웃는 김갑종을 향해 마주 웃는다.
“내 얘기 전했습니까? 당신친구에게 말입니다?”
“훗훗! 이봐 사막의 흑새인지 까마귀인지, 당신 여기가 어딘지 알고나 목에 힘을 주지 그래. 들어오면 집이 아니라 교도소로 나가는 곳이라는 걸 알라고.”
“마지막으로 한 번의 기회를 주겠습니다. 태천수를 내가 데리고 있다고 연락해 보세요. 빨리 전할수록 좋을 겁니다.”
김갑종은 이마를 찡그렸다.
태천수란 이름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름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천수?”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왼손으로 태천수라는 이름을 적어 문자를 발송했다.
밤이 깊다.
주택가 골목은 인적이 끊겼고 달도 구름에 가려 어둡다.
늦은 밤길을 비춰주던 가로등 까지 오늘은 고장이 난 듯 골목은 암흑천지였다.
사내다.
어둠속에서 불쑥 나타난 사내는 높은 담장 위로 뭔가를 던졌다.
턱!
하는 소리가 나더니 사내는 줄을 힘차게 잡아 당겨본다.
갈고리가 제대로 걸린 듯 줄은 팽팽해졌다.
사내는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줄을 잡고 담장을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저택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갈고리를 담장 아래 숨긴 사내는 정원수 사이를 달려 순식간에 현관에 도착했다.
촤락!
미세한 쇳소리가 들리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길다란 철사 두 가닥을 꺼내더니 손잡이에 넣고 귀에 청진기를 댔다.
금고를 열듯 조심스럽게 좌우로 철사를 돌리더니 눈이 반짝 빛났다.
청진기에서 잠금고리가 열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스르르!
원목으로 된 현관문이 열렸고 사내는 재빨리 문을 닫고 들어섰다.
거실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유리문이 있었으나 이 역시 사내의 노련한 솜씨 앞에서는 단단하게 잠기지 못했다.
넓은 거실은 텅 비었다.
사내는 전혀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일 층 거실이 화려하다면 이 층은 소박했다.
삼인용 소파가 마주 놓여 있고 벽에 텔레비전이 걸렸는데 그 옆으로 짙은 초록빛 춘란 화분 하나가 놓여 있다.
좌측 벽에는 허백련의 ‘계산청취도(谿山淸趣圖)’가 걸려 있다.
왼쪽 방문을 열었는데 쉽게 열린다.
캄캄한 방안에 한 노인이 자고 있었다.
건네받은 정보에 의하면 부부는 같이 잠을 자지 않는다고 했는데 역시 노인 혼자였다.
사내는 왼쪽 안주머니에서 회칼 한 자루를 뽑아들었다.
어두운 방이지만 회칼에서 뿜어나오는 광채가 방안을 환하게 비췄다.
푸우욱!
칼은 노인의 목에 깊숙이 박혔다.
스르륵!
단 한 방으로 끝내겠다는 듯 사내는 꽂힌 칼을 돌린다.
파르르!
노인의 앞 가슴이 잠시 떨리더니 잠잠해졌다.
사내는 칼을 뽑아 이불에 닦은 뒤 방을 빠져 나왔다.
현관문을 다시 닫아 걸어주고 돌아선 사내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담벼락 아래 숨겨둔 갈고리를 둘둘 말아 어깨에 걸더니 담장을 타고 넘었다.
만세를 부르듯 담장에 달라붙었는데 지면과는 일 미터가 조금 더 될 만큼의 거리가 생겼다.
휘익!
사내는 그대로 떨어졌다.
가뿐하게 내려온 사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몸을 돌려 골목을 내려갔다.
그때 부우웅하며 차량 한 대가 라이트를 켜고 나타났다.
사내는 어깨에 걸린 갈고리를 재빨리 허리 뒤로 감추고 걸어갔다.
그런데 그냥 지나갈 것 같던 승용차의 핸들이 벼락처럼 사내를 향해 꺾어졌다.
사내는 예상치 못한 사태에 피하지 못하고 차에 들이받혔다.
퍼어억!
4,5미터 나동그라진 사내는 일어나지 못했다.
다리가 부러진 듯 일어났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하며 승용차를 바라보았는데 도무지 뭔 일인가 싶은 시선이다.
교통사고가 아니라 고의로 받았다.
딸칵!
운전석 문이 열리고 중절모를 눌러쓴 한 사내가 내렸다.
중절모 사내는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사내에게 다가가더니 거센 발길질을 했다.
빠아악!
다리가 부러져 꼼짝 못하던 사내는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뒷머리를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히며 넘어졌다.
콱!
중절모 사내는 쓰러진 사내의 왼쪽 발목을 거머쥐고 끌고 갔다.
트렁크가 열리고 쓰러진 사내를 실은 중절모 사내는 다시 차에 올랐고 골목에서 사라졌다.
병원에 도착한 권악수는 병원 관계자들과 함께 장례식 절차를 의논하고 있었다.
문상객을 받아 봤자 이상한 소문만 더 만들어 질것이라면서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권악수가 병원을 떠나려는데 모두가 따라 나왔다.
“영안실 한 번 다녀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잠시 후 입관 한다는데?”
병원 원장이 말했다.
권악수는 눈을 좁히고 막 출근하기 시작하는 직원들을 보며 툭 뱉었다.
“노인네 뭐.”
그다지 가보고 싶지 않은 듯 이마를 살짝 찡그리더니 돌아섰다.
로비를 걸어가던 권악수가 아랫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문자가 왔는데 김갑종이었다.
멈칫!
갑자기 권악수는 걸음을 세웠다.
‘태천수’
이름 석 자가 왔는데 권악수 표정이 굳어버린다.
주위 병원 관계자들 역시 돌변하는 권악수 얼굴을 보며 긴장했다.
‘또 무슨 일이지’
한 참을 서 있던 권악수는 뒤에 있는 병원 관계자들을 보며 말했다.
“그만들 들어가셔서 일 보세요. 나 신경쓰지 말고.”
가뜩이나 불편한 대상이다.
가급적 만나고 싶지 않지만 자신들의 모가지를 쥐고 있으니 하는 수 없이 예를 갖추는데 들어가라는 말에 인사를 하며 재빨리 돌아섰다.
병원관계자들이 모두 사라지자 전화를 걸었다.
“김 검사 이게 뭐야?”
“권회장!”
김갑종이 노골적으로 회장이라는 호칭을 쓰자 권악수가 대꾸없이 묻는다.
“그 사람 좀 바꿔 봐.”
“살인 용의자를?”
“빨리 바꿔.”
권악수는 버럭 소릴 질렀다.
입구 쪽에서 통화를 하던 김갑종은 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을 가지고 왔다.
“받아봐.”
“누굽니까?”
김갑종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핸드폰을 던지듯 놔버렸다.
권총수는 수갑 찬 손으로 핸드폰을 보더니 일부러 스피커폰을 눌렀다.
“여보세요.”
“개새끼, 무슨 개수작이야?”
흘러나오는 강한 욕설에 김갑종의 눈이 커진다.
“태천수가 누구야? 어떤 놈이냐고?”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은 그저 패죽이는 것이 제일 좋다고.”
그 한마디를 남기고 권총수는 전화를 꺼버렸다.
“야...야!”
권악수의 악을 쓰는 소리가 들리다 끊어졌다.
이어 금방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권총수가 받지 않자 김갑종이 짜증을 냈다.
“받아봐요. 당신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권총수는 시끄럽게 울리는 벨소리를 듣다 통화 버튼을 눌렀는데 이번에도 스피커 폰이다.
“죽고 싶어, 누구 맘대로 전화를 끊고 지랄이야. 개자식아.”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너 말해봐 태천수가 누구냐고?”
스윽!
권총수는 다시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또 다시 벨이 울렸고 권총수는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듯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붙였다.
전화기 소리가 취조실을 부술 듯 울렸고 결국 김갑종이 받는다.
“나야!”
조용한 취조실이어서 전화기속의 목소리가 들렸다.
“풀어줘.”
“진짜로?”
“풀어줘. 당장 석방하라고.”
“야 권회장 무슨 말이야. 잡아들이라고 할 땐 언제고, 얼마나 힘들게 영장 받아냈는데?”
“풀어줘 씨발놈아!”
김갑종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