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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69화 (369/651)

제369화: 관세음보살(1)

오민철로부터 새벽같이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며 오민철은 더듬거리며 물었다.

“너 아니지?”

권악수의 전화를 받고 권철악이 죽어야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정도는 누구나 했을 수 있다.

“너야?”

권총수가 침묵하자 오민철이 노골적으로 묻는다.

“끊어!”

운기조식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권철악의 죽음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워 그만 두기로 했다.

권총수는 창가로 걸어갔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밤이 길다.

아직 창밖은 어두웠는데 권총수는 창문을 열어젖혔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재밌군’

권총수는 가볍게 웃었다.

‘정말 재밌어. 웃기는 놈이야’

권총수는 길게 숨을 내 쉬었다.

어제 자신과의 통화했던 기록을 검찰에 넘겨준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누구라도 통화내용을 들어보면 권철악 회장이야 말로 권총수가 돈을 받는데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권철악 회장만 죽으면 십억 달러를 받는데 어느 누구 가만 놔두겠는가.

팔순 노인 살짝 밀어 버려도 죽는다.

범인은 완벽히 권총수다.

범행동기 역시 확실하다.

권총수는 돈을 받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권철악을 죽인 것이다.

‘훗훗!’

자꾸 어이 없는 웃음이 흘러나온다.

‘권악수, 내가 왜 어제 통화 중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지 알고 있나’

전쟁은 막판까지 왔다.

권악수는 자기 입으로 돈을 주겠다고 했다.

어찌 보면 백기투항으로 보이지만 결코 온전한 무장해제를 할 권악수가 아니라는 걸 권총수는 알고 있었다.

적을 아는 만큼 항상 경계하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한심한 놈, 학창시절 공부도 잘했다면서 그 정도 미끼에 넘어 갈 놈도 있나.”

권총수는 권악수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권악수 뿐만 아니라 권씨세가의 젊든 늙든 그들의 습성을 꿰뚫고 있는 것이다.

그때 권총수의 고개가 호텔 객실 문으로 향했다.

‘왔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누군가 초인종을 울렸다.

화면속에 한 사내가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는데 낯익은 얼굴이었다.

“검찰입니다. 문 좀 열어주시죠.”

권총수는 천천히 걸어가 객실 문을 열어 주었다.

“꼼짝 마!”

문을 열자마자 네 자루의 권총이 날을 세웠다.

“지금 뭐하는 것입니까?”

맨 앞에 김갑종 검사가 있었다.

촤락!

김갑종은 종이 한 장을 펼쳐 보인다.

“체포 영장입니다. 당신을 권철악 회장을 살해한 용의자로 긴급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권총수는 돌아섰다.

타앙!

그 순간 총소리가 울렸다.

“한 번 더 우리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다음은 당신 몸뚱이오.”

권총수는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옷 좀 갈아입읍시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움직이지 마. 체포 해.”

김갑종이 소리쳤다.

수사관 두 명이 다가와 권총수의 양팔을 잡더니 뒤로 돌려 재빨리 수갑을 채웠다.

권총수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속옷에 나이트 가운 걸치고 잡혀가는 사람은 내가 세계 최초일 것 같군.”

“나머지는 수색해.”

수사관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검정색 승용차 한 대가 호텔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권총수는 뒷좌석 가운데 앉았고 수사관 둘이 좌우로 앉았다.

“권총수씨.”

조수석에 앉은 김갑종이 상체를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동안 아주 즐거우셨죠?”

김갑종은 약을 올리듯 환하게 웃었다.

“용병 생활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어쩌나. 그 돈 제대로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인생 젖 됐는데.”

“담배 하나 빌립시다.”

“금연입니다.”

오른쪽 수사관이 짧게 말했다.

“아냐, 아냐.”

김갑종이 자신이 피우던 담배 한 개비를 건네고 손을 뻗어 불까지 붙여 주었다.

스르르!

권총수가 담배를 피우자 오른쪽에 앉았던 수사관이 창문을 조금 내렸다.

“나중에 모두 밝혀질 텐데 권씨 일가 모두 당신이 죽였죠. 해도 너무 했습니다. 아무리 오설지씨의 한이 깊다고 해도 그렇게 사람을 죽이면 쓰나.”

“오설지라는 여자의 복수? 내가 말이오?”

권총수는 가느다랗게 웃었다.

으허헉!

갑자기 오른쪽 수사관이 소스라쳤다.

“이거 뭐야?”

덩달아 왼쪽 수사관까지도 소릴 질렀는데 권총수 손목에 채워져 있던 수갑이 녹아 흘러 차 바닥에 굳어 있다.

권총수는 다리를 꼬았다.

“권악수가 그렇게 말했나 보죠. 얼굴도 모르는 오설지란 여자의 복수를 하고 있다고, 그 새끼 꼬락서니 하곤.”

권총수의 인상이 굳었다.

“움직이지 마.”

오른쪽 수사관이 권총을 뺨에 댔다.

권총수는 관자놀이를 겨누고 있는 권총을 곁눈질로 흘긋 봤다.

“어이 수사관,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당신들 모두 호텔에서 뒤졌어. 한 놈도 못살아 났다고.”

타탁!

전광석화.

아니 그보다 빨랐다.

권총수의 손에 수사관의 권총이 쥐어져 있고 툭! 하는 소리를 내며 탄창이 빠져 나왔다.

타아앙!

권총수는 열린 창밖을 향해 약실에 남아 있는 한 발을 발사했다.

툭!

권총수는 권총을 수사관 무릎 위로 던지듯 놓고 담배 피우는데 집중했다.

“검사님.”

수사관이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는 김갑종을 불렀다. 권총수는 굳은 채 답이 없는 김갑종을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너무 긴장할 건 없습니다. 절대 도망가거나 사고 따위는 치지 않을 테니까. 다만 한마디만 당신 친구에게 전해 주십시오. 당장 검찰청으로 달려와 내 발 앞에 무릎꿇고 빌지 않으면 인생 피박 당하는 수가 있다고.”

“그게 무슨?”

“그렇게만 전하면 알아들을 거요. 병신 새끼. 끝까지 병신 짓거리 하고 있네. 그 대가리로 서울대 나왔다니.”

권총수는 뒷좌석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김갑종은 똑바로 앞을 보며 앉아 있었다.

심상찮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상하다.

슬며시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권악수는 아침 담배를 피우고 가정부가 가져다 놓은 녹차 한 모금을 마셨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다가 갑자기 신문을 접어 버리고 이 층 계단을 바라보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속살이 훤히 비치는 잠옷을 걸치며 내려와 잘 잤냐고 물었다.

아주 마음에 드는 여자였다.

술집 여자를 비롯해 그동안 자신의 배 밑에 깔린 여자가 족히 수백은 될 것이다.

그러나 그중 어느 여자도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아내 김부민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김부민은 그것이었다.

여자 일천명 중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다는 명기(名技)였다.

명기란 선천적으로 질 근육이 발달하여 잠자리에서 남성을 혼비백산하게 만든다.

야사에나 나올 법한 여자가 자신의 아내가 될 줄은 몰랐다.

결혼하고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다.

어떤 여자도 아내만큼 만족을 주지 못했다.

‘우라질!’

그런 아내가 죽었다.

비록 추억이라고 떠오르는 것이 잠자리 밖에 없는 것이 몹시 미안할 일이지만 어쨌든 오늘 아침따라 더욱 생각난다.

길게 숨을 들이 마시며 다시 신문을 다시 펴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권악수는 손을 뻗어 탁자 끝에 있는 핸드폰을 보았는데 문자가 와 있었다.

‘병신 새끼. 끝까지 병신 짓거리 하고 있네. 그 대가리로 서울대 나왔다니.’

‘권총수의 말이야’

‘당장 검찰청으로 달려와 내 발 앞에 무릎 꿇고 빌지 않으면 인생 피 박 맞는 수가 있대’

권악수 얼굴이 굳어졌다.

잠시 문자를 노려보던 권악수는 양손으로 문자를 보냈다.

‘그 개자식 주둥이부터 좀 뭉개 놔라.’

‘없애 버리면 더욱 좋고’

그때 가정부가 다가와 더듬거렸다.

“사장님 옷 준비 됐습니다.”

잠시 문자를 보내는 권악수를 바라보던 가정부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사라졌다.

경찰들이 주택가 골목골목을 통제하고 있었다.

부우웅!

그러는 가운데 벤츠 한 대가 올라오더니 뒷문이 열리며 권악수가 내렸다.

골목에 차를 세우고 높은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는 저택으로 다가갔다.

대문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경찰이 거수경례를 했다.

대문을 일고 들어선 권악수 눈에 보이는 건 집안 곳곳을 수색하듯 살피고 있는 강력계 형사들이었다.

“오셨습니까?”

낯익은 사복 형사 한명이 다가왔는데 이동세 팀장이었다.

“회장님은 조금 전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고생들이 많군요.”

“별말씀을.”

권악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가정부가 인사를 했는데 많이 운 듯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사장님!”

“어머니는?”

“2층에 계십니다. 얼른 올라가보세요. 흑흑.”

권악수는 흐느끼며 돌아서가는 가정부를 바라보았다.

이 층 계단을 올라가 모친 서옥선의 방문을 노크했다.

똑똑!

대답이 없다.

다시 노크를 하고 계속되는 묵묵부답에 권악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서옥선은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

느릿하게 걸어간 권악수는 서옥선의 등 뒤에서 걸음을 멈췄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권악수는 조용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모두 제가 못난 탓입니다. 어머니. 엉엉엉!”

등 뒤에 쭈그리고 앉은 권악수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으어으어엉!”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서옥선이 돌아앉았다.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는 권악수를 바라보는 서옥선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이나 감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권악수의 울음은 급기야 통곡이 되어 방안을 울렸으나 서옥선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웬만하면 그만하라는 말 한마디 할 법도 하건만 입을 꼬옥 다물고 있었다.

“회사 늦겠구나.”

그 한마디를 뱉고 다시 창문을 향해 돌아 앉아 버린다.

권악수는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들었는데 눈물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미동도 않고 앉아 있는 서옥선을 바라보던 권악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족장으로 하겠습니다.”

회사보다는 아버지 장례식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입맛이 없어도 식사 거르시면 안 됩니다.”

한참을 더 내려보던 권악수가 방을 나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서옥선은 토하듯 중얼거렸다.

“관세음보살.”

창밖을 보던 두 눈을 지그시 감았는데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독사새끼를 불러 들였구나’

목소리가 심하게 흔들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아미타불의 왼쪽에 앉아 중생을 다독이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보살이다.

중생이 내지르는 오욕칠정의 모든 비명을 들으면서 관세음보살을 중얼 거릴 때마다 한 번 더 찾아가 위로를 건넨다.

서옥선의 입에서는 어서 빨리 내게 다가와 이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져 달라는 기도가 그치지 않는다.

‘내가 그토록 안 된다고 반대를 했는데’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아들과 딸의 구분은 전혀 의미가 없다.

누가 회사를 맡든 건강하게 발전시키고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데 작은 축이라도 되면 그만 아니냐는 것이 서옥선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권철악을 달랐다.

무슨 소리 하는거냐.

천왕은 권씨 회사이며 내가 만들었다고 소릴 질렀으나 서옥선도 물러나지 않았다.

딸은 권씨 아니냐.

민법도 바뀌어 이제 자녀들 성도 엄마를 따를 수 있게 됐다고 했지만 권철악은 단호했다.

“내 뒤를 이을 만한 그릇은 그 놈 뿐이야. 다행히 동생에게는 어디 내놔도 모자라지 않을 또 한 명의 자식이 있으니 악수를 데리고 와야겠어.

된다 안 된다 한동안 입씨름이 이어졌다.

하지만 권철악의 뜻을 결국 꺾을 수 없었고 그렇게 권악수는 양자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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