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65화 (365/651)

제365화: 안개 비(1)

얼마나 세게 찍었는지 의자가 부서졌다.

“어우하학!”

자다가 날벼락이다 .

튕기듯 상체를 일으켜 세운 사내는 환한 불빛에 당황했고 부서진 의자를 들고 서 있는 사내를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누구요?!”

부웅!

다시 의자가 머리를 찍으면서 산산조각이 되고 말았다.

툭!

야구모자 사내는 부러진 다리 한 개를 들고 침대의 사내를 때리기 시작했다.

퍽!

퍼어억!

피가 파편처럼 튀는데 묘하게도 야구 모자 사내의 몸에는 묻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듯 몸에서 20여 센티 정도 떨어진 곳에 충돌하며 바닥으로 흘렀다.

빠아아악!

마지막 타격인 듯 힘껏 머리를 찍었고 침대 위 사내 오정룡은 피투성이가 되어 뒤로 벌렁 누웠다.

몇 번 크게 헐떡이더니 잠잠해진 것이 숨어 끊어진 모양이다.

스르르!

사내의 몸은 다시 작아졌고 창문을 빠져나가 사라졌다.

챙 하는 소리가 들리며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먼저 경호원 두 명이 나온 뒤 권서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경호원의 보호를 받으며 백화점 사장실로 걸어간다.

비서실 근무자인 일남일녀, 전말수와 최혜련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목례로 출근하는 권서진을 맞았다.

탁!

사장실 안으로는 권서진 혼자 들어가고 5분 정도 기다렸다가 전말수가 옷차림을 살피더니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오늘 스케줄에 대한 보고를 하려는 것이다.

옆에 작은 서류철을 끼고 들어간 비서 전말수는 책상의자에 앉는 권서진을 향해 다가갔다.

“오늘 일 많아요?”

권서진은 노트북을 켜면서 물었다.

“다른 때 비해 한가한 편입니다.”

“누구 누구죠?”

시선은 노트북에 놓고 묻는다.

화면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포털창이 떠올랐다.

대충 오늘 아침 나온 기사들을 살펴보던 권서진이 멈칫 했다.

속보라는 기사가 눈에 띠자 커서를 놓고 클릭했다.

‘천왕 케이원 신임 사장 오정룡 침실에서 살해된 체 발견’

더는 기사가 없었다.

지급 막 들어오다 보니 일단 제목만 올리고 리포터 기사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한참을 노려보더니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버지는?”

부모님 댁으로의 전화였다.

“골프 가셨다. 걱정 말거라 경호원들이 골프장 곳곳을 지키고 있단다. 너 나 몸 조심해.”

전화를 끊은 권서진의 표정이 무겁다.

케이 원 사장이 죽었다면 행동에 나선 두 사람 또한 죽거나 아니면 권총수에게 모든 걸 털어 놓았다고 봐야 한다.

“잠깐 있다 보고 받죠.”

“네!”

전말수 비서가 밖으로 나가고 소파에 털썩 주저 앉은 권서진은 고개를 뒤로 꺾으며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가’

마땅한 대책이 없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십억 달러를 줄 수는 없다.

피해가 너무 크다.

하루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빠르다.

찬바람이 불어오면서 해는 더욱 짧아졌고 거리는 금세 어둠에 잠겼다.

하늘에 별이 보인다.

서울에서는 좀체 구경할 수 없는 일인데 그 만큼 오늘 하루 날씨가 쾌청하며 미세먼지가 없었다는 뜻이다.

경호원들은 가스총과 삼단봉까지 장비를 갖추고서 각자 근무 위치로 돌아갔다.

담벼락에는 CCTV가 허락없이 들어오는 바람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예리하게 촬영을 하고 있다.

밤이 깊어가고 사방은 조용했다.

경광등을 켠 경찰 순찰차 한 대가 지나가고 나서 조용한 골목에 사람이 나타났다.

찢어진 청바지에 낡은 군화를 신었으며 해골무늬가 그려진 바이크 자켓을 걸친 사내는 뿔테 안경에 야구모자를 눌러썼다.

멈칫!

골목을 걸어 올라가던 사내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의자와 책상 한 개가 집 밖에 있는데 동사무소에서 발행한 대형 폐기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사내는 폐기물 스티커가 붙은 책상으로 다가가더니 이리저리 살폈다.

투툭!

책상 다리가 뜯겨 졌다.

사내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사각으로 된 책상다리를 쓰다듬었다.

다리를 어께에 둘러메고 골목을 올라가던 사내가 걸음을 세웠다.

골목 오른쪽으로 굳게 잠긴 자색 대문이 나타났다.

담장이 너무 높아 집안을 볼 수는 없었는데 은색의 가시철조망이 처져 있다.

어둠속에서도 환한 것을 보면 설치 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으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CCTV가 있었다.

슈우우우!

사내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순식간에 10여 미터 가까이 솟구치면서 CCTV가 찍을 수 있는 각도를 벗어나버렸다.

허공으로 올라간 사내는 느릿하게 내려왔다.

가지가 빼곡한 향나무 뒤에 몸을 숨긴 사내는 작은 눈으로 정원 곳곳을 훑었다.

‘다섯’

마당에는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층집이다.

현관으로 들어가는 마당 오른쪽으로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가 밤에도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있으며, 그 옆으로 뱀이 똬리를 튼 것 같은 웅장한 소나무 한그루와 손바닥만한 잎사귀 몇 개가 붙어 있는 목련이 있다.

왼쪽으로는 수령이 족히 백 년은 넘어 보이는 측백나무가 보인다.

하늘만을 보고 자란다는 스카이 로켓 향나무, 진한 갈색 껍질에 덮인 계수나무, 어디서 가져왔는지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까지 있었다.

거기에 부드럽고 치밀하다는 희귀 소나무 반송을 보며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나무 값만 해도 수십억대는 될 것 같았다.

대문 안쪽 향나무 그늘에 숨어 있던 사내는 왼쪽 커다한 주목 아래 서 있는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퍼억!

가지고 들어왔던 책상 다리가 경호원의 머리를 갈겼다.

내가강기로 소리를 차단한 듯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스르스!

사내는 바람이었다.

바람처럼 흩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사람이 되어 손에 쥔 몽둥이가 측백나무 아래서 핸드폰 문자를 보고 있는 경호원의 등을 파고들었다.

푸욱!

몽둥이는 등을 뚫고 앞가슴으로 삐져나왔다.

사내는 박힌 몽둥이를 빼냈는데 피가 시뻘겋게 묻어 있다.

“춘수, 너 내일 생일이라고 했지?”

책임자로 보이는 사내가 지금 막 등이 뚫려 죽은 사내에게 할 말이 있는 듯 어둠속에서 다가왔다.

사내는 들고 있던 몽둥이를 던졌다.

책임자로 보이는 사내는 눈앞에 뭔가 흘깃 보인다 했는데 목이 콱 막힌다.

숨을 쉴 수 없다.

책임자 사내는 한 손으로 목을 뚫어버린 책상다리를 만졌다.

뽑아 보려는 듯 쥐고 당기지만 마음뿐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점차 눈앞이 흐릿해 진다.

어둠이 흔들리더니 서 있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졌다.

탁!

누군가 자신의 머리채를 쥐었다.

이윽고 쿵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가만 땅바닥에 내린다.

머릿속으로 누굴까 하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모든 의식이 가라앉았다.

스으윽!

목을 뚫은 몽둥이를 뽑은 사내는 죽은 책임자의 옷에 피를 닦았다.

다섯.

이제 두 명이 남았다.

남은 두 명은 현관 입구 오른쪽으로 있는 소나무 아래에 있다.

슈우우우!

잔디가 깔린 마당을 가로지르는데 바람이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갑자기 나타난 사내를 보며 두 경호원은 동시에 가스총을 뽑으려 했으나 거기까지였다.

손이 가스총 손잡이에 닿기도 전에 퍼퍽하는 소리가 들리며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상실하며 소나무 아래 큰 대자로 뻗었다.

사내는 두 사내를 내려다본다.

죽음에 대해 안타깝다거나 일말의 슬픔도 찾아 볼 수 없는 눈빛이다.

사내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탁!

현관문이 잠겼다.

사내의 손바닥이 청동으로 된 현관문에 닿자 손잡이 부분이 순식간에 녹아 흘러내린다.

문을 열고 들어가 안에 있는 창문을 열었다.

거실은 조용했다.

1층에 가정부가 자고 부부는 2층을 사용한다.

아이들은 전부 미국에서 자라고 있다.

사내의 몸이 느릿하게 떠올랐다.

바닥에서 30센티 정도 떠올라 천천히 이층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땅바닥을 딛지 않고 날아가는 것을 흔히 초상비(草上飛)라 부르고, 공중에서 일반인처럼 걷는 것을 허공답보(虛空踏步)라고 부른다.

가끔은 능공허도와 허공답보를 동일시하는데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공중을 오르거나 내려갈 대 계단을 밟듯 오르내리는 걸 능공허도라 하고 허공답보는 그냥 걷는 것이다.

이층 거실도 일 층처럼 넓었다.

왼쪽 벽으로 책들이 꽂힌 책장이 있었으며, 그 아래로 소파와 탁자, 그리고 맞은편 구석에 진위를 알 수 없는 고려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이 보였다.

거실을 한번 살피고 방문으로 다가가던 권총수는 눈을 빛냈다.

‘혼자다’

숨소리가 부드러운 것이 여자다.

스르르!

의외로 문은 잠기지 않아 쉽게 열렸다.

넓다.

큰 방에는 침대가 있었으며 창문쪽으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오디오가 있었다.

‘골드문트(GoldMund)’

사우디 근무시절 어느 왕가에 저녁 초대를 받아 갔을 때 저와 똑같은 오디오가 있었다.

생긴 것도 특이하지만 얼마냐고 물었다.

파흐드 당시 왕자는 빙긋 웃더니 미화 600만 달러라고 했다는 말에 재채기까지 하면 놀란 기억이 난다.

불을 키려다 그만 두기로 했다.

차라리 서로가 얼굴을 덜 보는 어둠속이 사건 해결에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권총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딸칵!

지포 라이터 소리가 유난히 컸을까.

여자는 눈을 떴다.

그러다 어둠속에서 빨갛게 달아오는 담뱃불을 발견하고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아악!”

잠옷차림의 권서진은 소스라치며 비명을 질렀다.

권총수는 그런 권서진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담배를 피웠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화장대로 걸어가 로션 병을 들고 마개를 열었다.

투툭!

마개를 가져와 그곳에 담뱃재를 턴다.

“미리 말씀드리죠. 당신은 내일 아침 영안실로 옮겨 질 것입니다.”

“살려주세요.”

권서진은 권총수가 방안까지 들어왔다는 건 이미 밖에 있는 경호원들이 허수아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은 없다.

“십억 달러 드릴게요. 드리겠어요. 당장 계좌말씀하세요. 송금할게요.”

“돈은 당연히 받아 갈 것입니다. 다만 채무자는 당신이 아니라 권악수 사장님이죠.”

“누가 주면 어때요?”

권총수는 잔잔하게 웃는다.

오만하기까지 하던 권서진의 평소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 느낌, 그 분위기 그대로라면 날 죽여라 하는 것이 어울린다.

권총수는 길게 연기를 내뿜었는데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왜 저모양일까.

대화로, 친화적인 행동으로 접근하면 말할 수 없이 매몰차고 이렇게 칼을 들면 그제 서야 말이 통한다.

이렇게 살고 싶었으면 진작 주지 이미 사람 약 올릴 대로 올려놓고 주겠단다.

돈을 받아 갈 것이지만 자신의 인내력 또한 한계치를 넘어섰다.

“내가 총에 대해서는 조금 아는 편인데 그들이 날 죽이기 위해 갖고 있던 권총의 출처가 실탄 사격장이더군요. 물론 총기를 유출한 실탄 사격장이 어딘지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외부로 흘러나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르지 않을 텐데도 총을 빼돌렸다면 돈 가방 몇 개가 왔다갔다 했겠죠. 사격훈련은 북악산 청와대 사격장, 총은 실탄 사격장, 총기 관리가 관할 경찰서임을 볼 때 적지 않은 사람이 연루 된 건 분명해 보이고.”

그러자면 엄청난 돈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럴 돈은 있으면서 내게 줄 돈은 없냐는 뜻이다.

“숨기지 않겠어요. 맞아요. 아는 분을 통해 청와대 사격장에서 사격훈련을 했고 실탄사격장에서 자루당 2억씩 주고 빌렸어요. 처음에는 경호용으로 소지할까 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없애 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사람을 동원했죠.”

“빌린 권총이 모두 몇 자루요?”

“다섯 자루에요. 그중 하나는 권악수 사장과 작은아버지죠. 마지막 한 자루 역시 막내 작은 아버지.”

권서진은 절대적인 위기라는 걸 인정하고 간파한 듯 주저함 없이 고백하듯 털어 놓았다.

알아둬야 한다.

그래야 나중 총 있는 사람을 만나면 거기에 맞게 행동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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