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4화: 새로운 전술(2)
결코 누구도 총알보다 빠를 수는 없다.
즉 총알이 발사 된 이후에 반응을 해야 한다는 얘긴데 그건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덮쳐봤자 불법총기소지 말고는 어떤 처벌도 기대하지 못한다.
“나가자. 나가면 우리에게 공간이 더 생기잖아.”
오민철의 은밀한 말에 권총수는 가볍게 웃었다.
“밖에서 쏠 것 같았으면 술집 입구에 있지 굳이 여길 왜 들어와.”
“무슨 뜻이지?”
“나에 대한 조사가 많이 이뤄졌다는 뜻이야. 거리를 두면 안 된다는 걸 안다는 거지.”
“천왕에서 왔군.”
“뻔한 걸 모르는 사람처럼 왜 이래.”
“먼저 나갈까?”
자신 때문에 권총수의 움직임이 제한적일 수 있다.
짐이 되느니 피해주어 마음껏 상대하도록 하는 것이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형이 나가면 바로 쏠거야.”
“그럼 어떡해?”
“이상하다 싶으면 탁자 밑으로 숨어. 그냥 주저 앉으란 말이야.”
오민철이 곧장 주저 앉기 좋도록 의자를 뒤로 슬그머니 밀어 빼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거리를 쟀다.
‘탁자 세 개면 개당 2미터 간격이라고 볼 때 6미터.’
등줄기가 더욱 뜨겁다.
상대가 권총을 장전하고 조금씩 자신을 향해 살기를 강하게 쏘아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굳이 연습하지 않아도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충분히 맞힐 수 있는 거리다.’
내공을 극도로 끌어올려 호신강기를 형성했다.
마주보고 앉은 두 사내가 술잔을 드는 척 하더니 동시에 총을 뽑았다.
탕!
타아앙!
사내들의 사격과 동시에 권총수는 금강부동신법을 펼쳤다.
파아앗!
차기탄영(借氣彈影).
상대의 공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도망치는 수법이다.
차기탄영은 이쪽의 신법이 얼마나 빠르냐에 따라 입는 부상의 정도가 좌우된다.
또한 호신강기의 강도 역시 상처의 무겁고 가벼움(重輕)을 결정한다.
차기탄영은 대부분 싸우다 내가 불리하여 도망을 가고자 할 때 펼친다.
싸우다 도망을 간다는 건 이미 부상을 입었다는 뜻이다.
차기탄영을 펼친다고 하여 안전하게 도망을 치는 건 아니고 맞서다 끝내 죽는 것 보다는 생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권총수는 부상이 아닌 온전한 몸 상태이기에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호신강기 역시 어느 때보다 단단한 상태다.
파팍!
두 사내가 쏜 총알이 각기 한 발씩 권총수의 호신강기를 때렸다.
욱!
총알은 역시 다르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쇳덩이 두 개가 살을 파고드는 느낌이다.
다행히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와 몸에 박혔다.
통증 말고 숨 쉬고 움직이는데 문제가 없는 걸 보면 내부 장기까지 건드릴 만큼 파고들지는 못한 듯 보인다.
쾅!
맞은편 창문이 박살나며 권총수가 사라졌다.
채 일 초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실내의 사람들은 제대로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단지 총소리만 들렸다.
“잡아!”
두 사내가 출입문을 열고 달려갔고 오민철은 그들이 나가자 그제서야 뒤를 쫓았다.
술집 창밖은 좁은 골목이었다.
골목은 조그만 카페들이 오밀조밀 벌집처럼 몰려 있었다.
더욱이 퇴근길이기 때문에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름하여 익저동 카페 골목이다.
골목은 카페를 찾는 사람들고 터질 지경이었는데 유리가 깨지며 권총수가 나타나자 모두가 놀라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등 쪽에서 오는 고통에 이마를 찡그렸다.
그것도 잠시 재빠르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파속에 파고들어 걸어가는데 얼굴이 바뀌기 시작했다.
변체환용이다.
인파에 쓸리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왼쪽으로 꺾었다.
오른쪽 골목도 있지만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건 조금전 맥주를 마시던 가게가 왼쪽에 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골목을 꺾자마자 두 사내가 출입문을 열고 달려 나왔다.
사람들을 밀치며 뛰어오는 두 사내 중 앞에 있는 사내는 그냥 흘려보내고 뒤에 오는 사내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찍었다.
옆구리 장문혈(章門穴)은 급소이다.
세게 치면 즉사하고 적당히 치면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꾸라진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이목을 받는 싸움이나 소란은 불필요하다.
탁!
쓰러지려는 사내를 자연스럽게 부축한 뒤 손에 있는 권총을 빼앗아 뒤이어 달려나온 오민철에게 주었다.
“오른쪽으로 갔어. 잡아와.”
씨익!
권총을 받아든 오민철이 웃는다.
동물원의 사자가 다시 세렌게티 평원으로 돌아간 얼굴이다.
“넌 죽었어!”
오민철은 권총을 숨긴 채 사내의 뒤를 쫓아갔다.
권총수가 사내를 부축하며 걸어갈 때 신고가 들어간 듯 경찰차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승용차 한 대가 한강변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차는 도시를 벗어나 경기도로 접어들었고 잠시 후 국도를 벗어나더니 시멘트로 덮여진 시골길을 질주했다.
그리고 시멘트 길로 끝나고 먼지를 날리며 달리던 승용차는 인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차는 먼 길을 달려온 열기를 식히기라도 하는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딸칵!
앞 좌석 좌우 문이 열렸다.
내린 사람은 권총수와 오민철이었다.
길에서 50여 미터 숲을 지나 멀리 강물이 보인다.
두 사람은 길가에 있는 바위를 깔고 앉더니 담배를 피워 물었다.
가만 있는 차가 들썩 거리는 것이 트렁크에 뭔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 사람들 진짜 끝까지 가보자는 거야 뭐야.”
오민철이 버럭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우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아프면 아프다고 해.”
권총수는 지금 총알이 내장을 건드릴 만틈 깊숙이는 아니어도 살갗에 박혀 있다.
“너나 되니까 엽총을 맞고도 살고 오늘도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았지 나 같았으면 지금쯤 땅속에 묻혔다.”
부욱!
권총수는 담배를 땅바닥에 비벼 끄고 일어났다.
트렁크를 열었는데 두 사내가 손과 발이 묶인 채 실려 있었다.
권총수는 머리채를 거머쥐더니 밖으로 끌어내렸다.
퍼억!
꽈당!
두 사내는 떨어지는 충격으로 아픈 듯 신음을 흘렸으며 청 테이프로 입이 막혀 있었다.
찌익!
찍!
권총수는 입을 막고 있는 테이프를 떼어냈다.
두 사내는 헐떡거리며 권총수를 올려다보았는데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권총수는 두 사내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한쪽으로 걸어갔다.
잎이 떨어지고 앙상해진 아카시아 나무 앞에 걸음을 세운 권총수는 오른손을 들어 어른 팔뚝 만한 가지를 왼손으로 잡았다.
칼로 무를 썰 듯 손 날로 스윽 밀자 나무가 싹둑 잘려졌다.
땅바닥으로 떨어진 나뭇가지를 다듬기 시작했다.
타타탁!
잔가지를 쳐내고 일 미터 정도 되는 길이로 다시 한 번 자른다.
권총수는 몽둥이가 된 아카시아 나무를 거머쥐고 다가왔다.
“형 그 총 줘봐.”
오민철이 뒷좌석 문을 열더니 사내들이 사용했던 권총 두 자루를 가지고 왔다.
권총수는 그중 한 자루 권총을 들고 말했다.
“이건 매그넘 357 모델이오. 9발 짜리 탄창을 쓰는 이 권총은 화력이 매우 뛰어나죠. 미국에서는 마약범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총기중 하나이기도 하고, 국내에서 이 총을 쓰는 곳은 한 곳 뿐이오.”
두 사내는 말없이 땅바닥에 누워 듣고 있었다.
“러시아 마피아의 부산 입국이 빈번하고 그들 손에서 상당한 총기가 유통되는 건 알고 있지만 그쪽 친구들은 거의 브라우닝을 선호하죠. 매그넘 357은 주로 실탄 사격장에 가면 볼 수 있죠”
휙!
권총을 오민철에게 건져준 권총수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물비린내가 날 것이오. 바로 옆에 한강이 흐르고 있죠. 왜 내가 강 옆으로 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권총수는 왼쪽 사내의 이마를 몽둥이로 툭 쳤다.
“당신들이 경호원일리는 없고, 날 향해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보면 군에서 권총사격을 자주 했다는 얘기죠. 사격 연습 몇 번 했다고 표적도 아닌 사람을 상대로 주저없이 발포를 한다? 말이 안 되는 얘기죠.”
권총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사내에게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주려는 것이다.
취조도 기술이다.
고문 역시 기술이다.
내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하여 처음부터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올 수도 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것이다.
“케이원 직원인 건 분명하고? 권총을 소총에 이은 제2제식무기로 사용하는 707? 아니면 UDT씰? 특수부대가 아닌 일반 보병은 군에서 권총사격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사내는 여전히 말이 없다.
콱!
아카시나 나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금방이라도 몽둥이 소나기가(棒雨) 쏟아질 기세였다.
“공정통제사 나왔소. 권총은 손에 익숙한 무기였고.”
공군 공정통제사 CCT(Combat Control Team).
‘적진에 가장 빨리 들어가 제일 늦게 나온다’고 알려졌다.
현지 날씨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아군 수송기에 알려주어 수송기가 목표 지점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낯선 지형이기 때문에 고도와 방위각 등을 관제(管制)해주어 수송기가 원하는 지역으로 들어 올 수 있도록 한다.
한마디로 이동식 항공관제사인 것이다.
관제시설이 없는 적지에서 항공기의 이착륙을 돕고, 필요에 따라서는 전투기의 폭격까지 유도한다.
권총수는 눈을 좁혔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총의 출처요.”
“우린 받기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건네준 사람이 누구냐는 얘깁니다?”
“사장님입니다.”
“케이원 사장? 최준구는 죽었는데?”
“신임 사장 오정룡.”
사내는 잠시 숨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일주일 전 오정룡이 저녁 식사나 하자면서 두 사람을 불렀다.
식사 끝에 선물처럼 내 놓은 것이 있었는데 357 매그넘이었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창문이 차단된 20인승 버스를 타고 북악산의 한 사격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제대 후 처음으로 권총사격을 했다.
세 시간 가량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사격훈련을 마친 후 권총수 추적에 나선 것이다.
권총수는 힘주어 쥐고 있던 몽둥이를 슬며시 놓았다.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잎사귀가 아직 덜 떨어진 포플러나무가 가로등을 가리면서 사내의 얼굴이 숨겨진다.
스스스!
주위를 살피는 듯 하더니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밖에 움직이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골목 끝 2층 단독주택 담장을 넘어가버렸다.
정원은 넓었고 담장 곳곳에 CCTV가 있었으나 사내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휙 하며 그대로 떠올라 지붕으로 올라갔다.
슈우욱!
철판교 신법이다.
사내는 박쥐처럼 처마에 매달려 닫힌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창문은 커텐이 쳐져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사내는 그 상태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손바닥을 유리창에 대었다.
잠시 후 유리창이 흐물흐물해지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중 창이다.
안쪽에 있는 두 번째 창 역시도 같은 방법으로 녹여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스르륵!
사람이 뱀처럼 휘어지며 들어간다.
축골신공으로 몸이 작아지면서 녹아 버린 직경 30센티 정도 되는 구멍을 통과했다.
방안은 불이 꺼져 있었고 한 사내가 침대위에서 자고 있다.
그그그!
줄어들었던 사내의 몸이 다시 원래대로 커졌고 어두운 방안을 훑어 보는데 마치 번개가 작렬하는 듯 강렬한 눈빛이다.
탁!
사내는 스위치를 올렸다.
불이 켜졌지만 침대 위 남자는 잠을 깨지 않았다.
야구 모자를 눌러쓴 사내는 침상 발 끝에 있는 의자에 앉더니 자는 사내를 바라본다.
30여초 바라보던 사내가 손목의 시계를 본다.
술에 취해 골아 떨어지지 않는 이상 방안에 불이 켜지면 일반적으로 눈을 뜨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사내는 눈을 뜰 기색이 없었다.
사내는 눈썹을 찌푸리는 듯 하더니 앉아 있던 의자를 들어 자고 있는 사내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