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2화: 얼굴에 썬팅 한 사람들(2)
권악수는 아랫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걸었다.
오늘 아침 믿어지지 않는 소식 한 가지를 들었다.
멕시코에 있는 백서건설 이장수 부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는데 어이가 없기까지 한 말을 했다.
‘멕시코 갱단은 물론 콜롬비아 볼리비아까지 접촉을 시도했지만 모두가 청부를 거절했습니다’
한두 푼도 아닌 무려 천만 달러를 제시 했는데도 하나 같이 고개를 저었다는 것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어려서부터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 되었다.
고등학교 때 너무 거들먹거린다면서 이른바 일진이란 아이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아버지 권철태가 국회의원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을 때린 것이다.
그들은 정치인에게 자식일이란 결코 호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집단 린치를 한 것이다.
국회의원 권철태의 아들이 동급생들에게 몰매를 맞았다는 기사가 나가면 가해학생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겠으나 얼마나 싸가지가 없었으면 맞았을까라는 ‘맞아도 싸다’란 론이 훨씬 우세할 것이다.
그러나 복수는 돈이었다.
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대한민국에서 돈 많기로 소문난 사람들이다.
특히나 자신을 양자로 맞을 채비중인 큰 아버지 권철악은 대노했다.
그리고 건달들에게 돈을 먹여 무자비한 복수를 했다.
‘돈을 더 올려보지 그래요?’
권악수는 이장수 부장에게 청부액을 인상해보라고 했다.
‘얼마로?’
‘일억 달러 준다고 하세요’
‘사...사장님’
‘정말입니다, 일억달러로 올려요’
어차피 이 전쟁에서 패한다면 십억 달러를 줘야 한다.
그런데 일억달러로 해결이 된다면 해볼만한 투자이고 이득이 되는 사업이다.
이후 아직 이장수로부터 전화는 없다.
그러나 일억 달러라면 목숨걸고 덤벼들 남미의 갱들이 줄을 서리라 확신했다.
“사장님!”
한 사람이 다가왔다.
엔터프라이즈호 납치 사건 당시 카이로에 대책본부장으로 파견되었던 원출도 이사였다.
김부민의 테러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모양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불행중 다행입니다.”
“원이사!”
“예!”
권악수는 불러놓고 머뭇거렸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 두 눈을 좁혔는데 무겁게 숨을 내 쉬었다.
“어떻게 해결책이 없겠소?”
어쨌든 카이로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사막의 흑새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장점을 갖고서 지금의 사태를 어찌 보느냐는 질문인 듯 보였다.
원출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출도의 침묵에 권악수가 흘깃 돌아보았다.
“글쎄요. 너무 멀리 온 것 같으면서도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
“끝장을 봐야 하지 않겠소?”
권악수 눈 꼬리가 사납게 올라갔다.
“없던 일로 덮기에는 너무 많이 와 버렸단 말이오. 빌어먹을, 경찰에서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권총수를 소환 한 번 못하고 있지만 내가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놈 모가지는 내손으로 직접...”
그때 권악수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전화를 받았다.
“어때? 뭐라고? 아니 그게 말이 돼?”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김갑종 부부장 검사였다.
미술관에서의 권총수로 추정된 사내는 CCTV에 정확히 찍혀 녹화 되어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CCTV가 없다.
그렇지만 김부민의 대학 동창인 신미리와 주향림이 현장에 같이 있었고 권악수와 김부민의 핸드폰에 영상까지 저장되어 있다.
그런데 김갑종이 하는 말은 권총수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바늘 끝만큼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첫 번째가 얼굴이 완전히 다르고 목소리가 틀리다는 것이다.
“아니 동영상이 분명하고, 증인까지 있잖아.”
“외모 목소리 모두 원래 권총수 얼굴이 아닌데 어떻게 잡아 들이냐. 나도 그 자식 잡아 넣고 싶어 미치겠어. 미국 대사관에서 나온 놈도 마음에 안 들고 지금도 건들거리며 수갑 풀고 걸어가는 그 자식 꼬라지를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고, 나야 말로 쪽팔려 환장하겠다니까.”
권악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야망이 대단한 김갑종이다.
학교다닐 때부터 줄곧 전체 1등을 놓치지 않았고 그때부터 그의 꿈은 분명했다.
‘검사가 될거다’
왜 검사가 되려느냐는 질문에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검찰 만큼 막강한 권력을 쥔 집단이 대한민국에 어디 있냐. 털어 먼지 안나는 놈 없고 꼴 보기 싫은 놈은 얼마든지 쳐 넣을 수가 있지’
힘자랑을 하고 싶어 했다.
권력을 탐했다.
가난을 증오하면서 녀석은 꿈을 키웠고 기어이 검사가 되었다.
같이 검사임용이 된 기수중 가장 진급이 빠르다.
이번 사건만 해결하면 검찰총장의 꿈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천왕그룹이 밀어주고 권철태의 정치 인맥이 키워주면 최연소 검찰총장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권총수는 잡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습니까?”
권악수는 다시 원출도에게 물었다.
“사장님,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겠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모욕이라 여기겠지만 그나마 여기서 끝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무슨 개소리를.”
“이러다 다 죽습니다.”
“나 권악수요. 천왕그룹 차기 회장이란 말입니다. 대한민국 재계서열 1위 기업의 주인, 나를 뭘로 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제가 어딜 다녀오신 줄 아십니까? 오대산 고무사(高無寺) 주지인 석공 스님을 만났습니다.”
고무사 석공이라는 말에 권악수가 멈칫 했다.
20여 년전 한 명의 승려가 텔레비전에 출연했다.
KBC ‘비과학적 현실’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는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준 건 한 가지 걸음(步)이었다.
그 옛날 신라 화랑들이 수련하였다는 표유보(豹流步)라는 것이었는데 표범이 사냥감에게 접근할 때 소리 없이 걷는 것을 보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법명을 석공이라고 말한 중년의 승려는 시청자들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MC들을 세워놓고 소리 없이 다가가는가 하면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 미리 준비한 개를 앉혀 놓고 뒤에서 다가가는데 알아차리지 못했다.
인간보다 8배 정도 뛰어나다는 개의 청각도 석공스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중국 소림사에 가면 달마대사가 남겼다는 일흔두 가지의 여러 가지 무술이 있다. 워낙 어렵고 난해해서 그렇지 꾸준히 수련하면 영화 속의 장풍이나 날아가는 것이 결코 허황된 것 만은 아니다’
라고 석공은 말했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마지막 능력은 축골공이라는 것이었다.
몸을 줄여 조그만 틈으로 빠져 나갔는데 폭이 20센티 밖에 되지 않는 철문을 빠져 나갔다.
그걸 본 사람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사기다.
아니다.
대답은 20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증명되지 않았다.
“뭘 물어봤소?”
“권총수에 대한 모든 것입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무척 놀라더군요. 그러면서 전혀 불가능한 현실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놈이 강호의 고수라는 말이오?”
“내 얘기를 듣더니 강호에서도 굉장한 고수로 대접 받을 실력이라고 했습니다.”
“미친!”
“사장님 네팔의 한 승려가 비록 20미터밖에 되지 않는 작은 개천이지만 물 위를 걸어갔다는 신문 보도입니다. 인터넷에 사진으로 나온 걸 제가 다운 받아 왔죠.”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틀었다.
달랑 붉은 가사 하나가 걸친 비쩍 마른 승려가 정말로 물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개울물 위를 걸어가는데 전혀 빠지지 않았고 약간의 발자국이 수면에 만들어졌을 뿐, 정말로 걸어갔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금방 끝난 짧은 영상에 목이 말랐던지 한 번 더 보여달라고 하더니 급기야 세 번을 돌려가며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이걸 믿소?”
“그럼요.”
“요즘 합성기술이 얼마나 뛰어난데 이런 조악한 가짜를 날더러 믿으라는 것입니까?”
원출도의 시선이 경멸하듯 웃는 권악수의 얼굴을 보았다.
이해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 재계서열 1위 기업이 고작 십억 달러가 없어서 이러는 건 아닐 것이다.
더욱이 사람이 죽었다.
아무리 증거가 없다고 해도 사막의 흑새가 죽였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친동생을 포함해 벌써 몇 명이 죽었는데도 이 사람은 전혀 바뀌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까.
혹시 돈이 아까워서가 아닐까.
가족의 목숨보다 십억 달러를 더 소중히 여기는 걸까.
다른 기업들 같았다면 맨 처음 이순영의 교통사고는 몰라도 권 마진의 한강추락사에서는 알아차리고 협상에 나섰어야 한다.
늦었다는 걸 알면 아직 늦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으음!’
벽을 보는 느낌이다.
어딘지 정상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돈은 누구나 벌 수 있다. 그러나 재벌이 되려면 불법을 밥처럼 먹고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굳이 그렇게 떠도는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국 재벌의 성장과정은 추잡하고 악랄하고 음험하다는 건 이미 알려졌다.
그래도 그렇지 재산이라는 한 모퉁이를 아주 살짝 떼어주는 것 정도 밖에는 안 되는데 이토록 거절하는 건 뭘까.
‘배상무의 마음을 이제 알겠군’
배웅대는 기어이 사직서를 포기하지 않고 그만 두었다.
원출도는 아랫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멀리 보이는 산을 주시하며 중얼 거렸다.
‘섬기고 싶어도 섬기지 말라고 이렇게 내 치는데 나 또한 옆에 있을 필요가 없군’
원출도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권악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와 도대체 왜 권총수를 체포하지 않느냐고 짜증이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려려니 했으나 이제는 부하 직원에게 명령하듯 전화에 대고 호통을 친다.
“그만 하자.”
김갑종은 더 이상 듣고 있기 거북하다는 듯 정색했다.
“왜 기분 나쁘다는 건가?”
“그만 하자.”
“더 해야겠는데, 넌 지금 직무유기를 하고 있어.”
“아 진짜 해도 너무 하네.”
탁!
김갑종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
권악수는 길길이 날뛰었다.
어디서 함부로 전화를 끊는 것이냐면서 애꿎은 핸드폰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국방부 정문으로 벤츠 한 대가 들어섰다.
검문을 하는 헌병이 다가오고 유리가 내려갔는데 핸들을 잡은 사람은 권총수였다.
“이원술 과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약속은 되어 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셔서 B라고 쓰인 곳에 주차 하시면 됩니다. 민원인 전용 주차장이죠.”
“감사합니다.”
조수석의 오민철이 고개를 운전석으로 들이대며 헌병에게 손을 들며 인사했다.
“오늘도 수고하세요.”
차가 헌병을 지나쳐 가는데 오민철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 자식 귀엽네.”
“상병인데.”
“저것 마이가리야.”
그게 뭐냐는 듯 권총수가 돌아보자 오민철이 히죽 웃었다.
“자식 프랑스 군대는 날아다니면서 한국 군대는 꽝이구나. 계급장이 가짜라는 거야.”
“어떻게 가짜 계급장을 달아?”
“정문이 어떤 곳이냐. 온갖 잡놈들이 드나드는 곳 아니냐. 아무리 끗발이 있다고 해도 계급이 낮으면 군기빠진 놈들에게 체면이 안서지. 우습게 보는 놈도 있고, 이등병이 서 있는 것과 상병이 버티는 것과 무게가 벌써 다르잖아. 그래서 근무 나갈 때만 고참들이 한 계급, 짜옹 잘하면 두 계급도 올려 붙여주지. 그걸 마이가리라고 해. 외출 외박 때도 슬쩍 얹어주고.”
“그게 가능 해?”
“임마 군대서 안되는 게 어딨어?”
차는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B라고 쓰인 주차장에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