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60화 (360/651)

제360화: 저승문턱(2)

전철해는 권서진을 빤히 보았다.

“뭔 말을 하려고? 해봐?”

전철해는 의심이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권서진을 향해 말했다.

“당신이라도 그 돈 있으면 입금하는 게 어때?”

“무슨 돈을 어디로 입금해?”

전철해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그런 거액은 움직이기가 만만치 않다.

물론 장인 권철악 정도 되면 어려울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권서진이 소리 없이 해결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었다.

속 모르는 권서진은 다시 다그쳤다.

“뭔데 그렇게 한숨까지 쉬고 사람을 긴장시키는데? 뭐냐구? 아이 짜증나? 시아버님 회사 어렵대? 요즘 우리 회사 광고 마구 찔러 주잖아. 언론사가 무슨 자금이 딸릴 일 있어?”

전철해의 본가에 문제가 생긴 줄 아는 모양이었다.

“조금전!”

전철해는 다시 숨을 내쉬며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권서진의 표정이 갈수록 굳어진다.

“여보.”

얘기가 끝나자 입을 벌렸다.

“생각해봐, 주차장까지 들어온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집에 못 왔겠어?”

“가만 있어봐.”

눈을 빛내던 권서진이 실마리를 잡은 듯 목소리를 높였다.

“블랙박스 돌아가지?”

“당연하지.”

“녹화됐을 것 아냐?”

전철해도 그제야 생각 난 듯 마른 침을 삼켰다.

두 사람은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전철해는 만약을 대비해 집에 놓고 있는 엽총을 들고 있었다.

주차장에 위험의 흔적이 없음을 확인하고 전철해는 블랙박스 칩을 뽑아 거실로 돌아왔다.

재빨리 컴퓨터에 연결하여 영상을 틀었다.

“어떻게 된거야? 당신 밖에 없잖아.”

없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사람도 없고 소름이 끼치던 목소리도 일체 흘러나오지 않았다.

몇 번을 돌려봤으나 운전석에 앉은 전철해만 나올 뿐이었다.

“마...말이 안돼.”

“당신.”

“뭐?”

헛 것을 본 것 아니냐고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귀신을 보고 헛소릴 할 나이는 아직 아니다.

“안되겠어. 출퇴근 때에만 경호를 할 것이 아니라 아예 집안에 상주 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애.”

전철해는 전화를 걸었는데 계열사인 보안 기업 케이 원이다.

필요한 인원을 요구하고 오늘 곧장 직원들을 파견 하겠다는 책임자의 말을 듣고 끊었다.

‘어찌 된 것일까’

전화를 끊고서도 한동안 전철해는 30분전 겪은 주차장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죽이려고 했다면 살아나지 못했다.

칼을 들고 숨어 있다 운전석에 앉은 자신의 목을 찔렀다면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어쨌든 사내는 블랙박스에 전혀 찍히지 않았다.

‘내가’

자신 역시 헛것을 본 것이 아닐까 의심을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봤다.

처음 보는 사내의 얼굴이었으나 봤다.

진짜 봤다.

사우나처럼 좋은 것도 없다.

이른 아침 사우나는 한산 했는데 간단한 샤워를 끝낸 나극주는 습식보다 온도가 더 높은 건식 사우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면서 숨이 콱 막힌다.

재빨리 목에 걸고 있던 수건으로 입을 막아 호흡을 조절했다.

탁!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고 뜨거운 열기 속에 자신을 묻었다.

처음 1분 정도가 견디기 힘들어서 그렇지 그 시간을 넘기면 10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어제 대학 동창들을 만나 마신 주기(酒氣)까지 빼려면 오늘은 평소보다 더 오래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스윽!

열기를 막기 위해 입을 막고 있던 수건을 떼어 냈다.

모래시계 한쪽이 5분이다.

10분을 하려면 한 번 더 뒤집어야 하는데 아직 절반도 떨어지지 못했다.

스으윽!

사우나 문이 열리며 알몸의 뚱뚱한 남자가 들어섰다.

그 역시 뜨거운 열기에 숨이 막힌 듯 끄우어어 하는 괴성을 지르며 수건으로 입을 막았다.

열기에 앉지 못하고 잠시 서 있던 사내는 천천히 등을 벽에 대고 나무로 된 의자에 앉았다.

“쓰어어어!”

몸이 익숙해지기 전에 내 뱉는 사내의 신음은 이미 나극주에게 익숙했다.

자신도 가끔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사우나는 해야겠고 뜨겁다고 여기면 아크으으 하는 소리를 낸다.

“크우우우!”

사내는 비명 같은 괴성을 또 한 번 내 뱉고 조용했다.

나극주는 고개를 숙이며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굴에 맺힌 땀방울들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스윽!

바로 그때였다. 옆에 앉아 있던 뚱뚱한 사내가 나극주의 목을 수건으로 감아 버렸다.

목에 수건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조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목욕탕의 노란 타월이 인정사정없이 목을 조였고 순간 뚝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목뼈가 으스러졌다.

목뼈가 으스러지면 반항을 못한다.

사내는 수건으로 매듭까지 하여 절대 풀어지지 않게 했다.

나극주는 풀기 위해 몇 번 발버둥 하다 바닥에 넘어져 허우적거렸다.

퍼덕덕덕!

잡혀 나온 물고기처럼 나극주의 두 다리가 미끄러운 바닥을 두들겼다.

잠시 후 나극주는 조용했다.

죽은 것이다.

뚱뚱한 사내는 문을 열고 나갔다.

사내는 찬물이 나오는 샤워기를 틀어놓고 땀을 씻어 냈는데 서둘지 않았다.

툭!

사내는 샤워기를 잠그고 탕 밖으로 나갔다.

뚱뚱한 사내는 몸을 닦고 체중계 위에 올라서 몸무게 까지 확인했다.

77번에 열쇠를 꽂고 문을 열어 옷을 갖춰 입더니 수고하라는 말까지 남기며 목욕탕을 나갔다.

그로부터 20여분 정도 지나고 119가 목욕탕 앞에 도착하면서 구급대원들이 뛰어 들어갔다.

출근하기 위해 넥타이를 매고 있던 권악수는 아내가 가져다주는 핸드폰을 받았다.

“뭔일이오? 뭐야?”

전화기를 건네주고 돌아서던 아내 김부민이 놀라 돌아보았다.

“싸우나 안에서 말이오. 으음.”

전화를 내린 권악수 표정이 딱딱해졌다.

“왜 그러세요?”

“나 비서가 조금전 사우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군.”

“아악!”

김부민은 깜짝 놀라면서 소릴 질렀다.

“여...여보.”

안색히 창백해졌다.

“사우나라면 혹시 심장마비?”

뜨거운 사우나에 무리하게 버티다 가끔씩 심정지로 사망한 일들이 일어난다.

“목뼈가 완전히 으스러졌다는 걸 보면 누군가에게 목을 졸린 모양이오.”

“아아!”

김부민은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눈을 감아 버렸다.

권악수는 넥타이를 매고 윗도리를 걸쳐 입었다.

“다녀오지!”

“여보.”

돌아 나가려는 권악수를 김부민이 불렀다.

“돈 줘버려요.”

“미쳤어?”

“도대체 이 살인은 언제 끝나는 건가요. 경찰 검찰 모두 증거가 없어 꼼짝 못하고 있잖아요. 더구나 미국 시민권까지 갖고 있어요.”

“당신은 잠자코 있어.”

“어제 혁인이 엄마한데 전화가 왔었어요.”

혁인이 엄마는 부부장 검사 김갑종의 아내인데 대학에서 서양 미술사를 가르친다.

“김 부장이 저녁을 먹으면서 그렇게 말했대요. 틈이 없다고.”

“틈?”

“검사 생활 10년 동안 이렇게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이 사건을 저지르는 사람은 처음 봤다면서 쉽지 않다고 하더래요. 그 말이 무슨 뜻이겠어요.”

“법으로 안 되면 내가 해.”

탕!

권악수는 현관문을 닫고 사라졌다.

권철무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상대는 멕시코 현지에 나가 있는 자사 이장수 부장이었다.

“사막의 흑새라는 말에 어느 조직도 나서지 않더란 말인가?”

“천만 달러까지 몸값을 올렸지만 꼼짝하지 않습니다.”

권철무 표정이 우그러진다.

잠시 동안 이장수의 얘기를 듣고 있더니 느릿하게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권철무는 비서가 가져다 놓은 아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지구상에서 가장 무자비한 남미 갱단들이다.

그들은 사람을 파리 죽이듯 하고 11살 먹은 아이가 백 달러를 받고 반대파 두목의 운전사를 죽이는 곳이다.

돈만 주면 사람 죽이는 걸 하나의 직업처럼 인식하며, 더욱이 마약으로 전 세계를 주물럭거리는 야수들이다.

이장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미 한바탕 곤욕을 치뤘더군요?”

“곤욕?”

“이 지역에서는 거의 법으로 존재하는 시날로아 카르텔이라는 최고의 마약조직이 있습니다.”

“들어본 것 같군.”

“그들이 아프카니스탄의 아편을 거래하면서 사막의 흑새를 노린 모양입니다. 결국 실패로 끝났고.”

잠시 말을 끊은 이장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한바탕 무자비한 청소가 시작된 모양입니다.”

“겁을 먹었다는 건가?”

“곤란하다는 거죠. 사막의 흑새는 자신들의 친구라면서.”

권철무는 다시 커피를 마신다.

갱단이 손사래를 칠 정도면 이쪽에서 선택할 카드는 더 이상 없다.

군부대를 동원하거나 아니면 무장경찰들이 인질범 처리하듯 사살해버리는 작전 말고는 불가능하다.

소파에 앉아 한참을 고민하며 생각 하던 권철무는 전화를 걸었다.

“악수냐? 시간 있니? 그래 내가 그곳으로 가겠다.”

전화를 끊은 권철무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회의가 열리고 또 열렸다.

새로운 분야의 기술 개발과 미래 산업에 대한 대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한 사내에 대한 회의였다.

“그건 안 됩니다.”

권악수는 단호했다.

“이제와서 무릎을 꿇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무릎을 꿇겠다는 것이 아니라...”

“돈을 지급하자는 말씀이 그 얘기 아닙니까?”

“놈은 괴물이다.”

“괴물은 안 죽습니까?”

“좋은 방법 있느냐. 있으면 말해 보거라. 괴물을 죽일 수 있는 좋은 생각이 있으면 당장 시행해야 하지 않겠느냐?”

“거래를 하기에는 너무 먼 곳까지 와버렸습니다. 놈이 죽든 나 권악수가 죽든 한 쪽은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나도 숙부님 생각은 반대해요.”

문이 열리고 권서진이 들어섰다.

“서진아.”

권서진은 핸드백을 소파에 놓더니 정수기 물을 한 컵 따라 마셨다.

“악수 말처럼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에요. 거래할 것 같았으면 진즉 했죠.”

권철무는 입을 다문 채 한숨을 내 쉬었다.

두 사람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의 총수들이다.

이들이 당한 수모나 치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사태는 급속하게 권씨들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적의 잔당을 소탕하듯 한 명씩 차분하게 제거하고 있다.

거기에 크게 희망을 걸었던 멕시코를 포함한 남미의 갱단에서조차 고개를 돌려 버린 상대다.

그렇다면 방법은 협상 말고는 없는 것이다.

‘진짜 몰살하고도 남을 놈이다’

권철무가 보는 권총수의 패턴을 보면 그냥 물러날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전쟁의 개념으로 이 싸움에 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용병이다.

철저히 돈에 의해 움직이는 부류다.

즉 돈만 주면 그는 떠날 것이다.

한 번도 당해보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모욕과 수모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싸움이란 반드시 상대를 봐가며 해야 한다.

심판은 경기가 끝나지 않았어도 게이지 안에 들어선 양 선수만 봐도 승자와 패자를 구분할 수 있다.

승자의 기세는 틀리다.

그런데 두 조카 권서진 권악수는 더욱 전의를 불태운다.

전의라기보다는 자존심일 것이다.

생사는 자존심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걸 아직은 모를 나이들이기에 더욱 답답한 것이다.

마음 상하기로 하면 자신이야 말로 권총수를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지금은 훈련이 아닌 실전이다.

이기지는 못해도 최소한의 피해를 입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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