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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59화 (359/651)

제359화: 저승 문턱(1)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나온 유병칠의 눈이 커졌다.

권총수가 벤츠에 올라탔기 때문인데, 비록 렌트지만 국산 승용차들 보다는 이용료가 더 비쌀 것은 뻔했다.

“누구한테 또 사기쳤냐?”

조수석에 앉자마자 유병칠이 비아냥 댔다.

권총수는 빙긋 웃기만 했다.

“너 옛날에 프랑스 간다고 하지 않았냐?”

“맞아!”

“갔다고?”

“갔지.”

“진짜로?”

유병칠의 눈이 커졌다.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는데 권총수는 윗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주었다.

군복을 입고 녹색 베레모를 쓰고 있는 권총수의 얼굴을 보며 유병칠이 놀란다.

“너 군대 갔다 왔어?”

시설 출신들은 거의 군대를 가지 않는다.

“외인부대.”

좀 더 기억이 선명하게 난다.

외인부대 간다고 했던 것 같았는데 믿지는 않았다.

슥!

권총수는 사진 한 장을 더 꺼내 주었다.

길리슈트를 쓰고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른 권총수가 TRG-M10저격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유병칠의 눈이 흔들린다.

“총은 쏴봤냐?”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뭐하냐?”

“전쟁!”

“무슨 전쟁?”

“무슨 전쟁이 있어. 나 살기 위해 상대를 부지런히 죽이고 있어.”

유병칠은 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사진을 봤다가 권총수를 봤다가를 반복했다.

“결혼 했지?”

“했지. 아이가 지금 초등학교 다니는데.”

“정말?”

권총수는 고개를 돌리며 환하게 웃었다.

“축하한다. 집은 어디고?”

“효자동.”

“청와대 근처, 아내는 어디 사람이야?”

“너도 알걸. 정희숙.”

“정희숙, 아녜스?”

“맞아 정희숙 아녜스 걔야. 어느 날 큰 맘 먹고 시설을 찾아갔는데 때마침 걔도 거기 와 있더라고, 그렇게 가까워졌고 아이가 생겨 결혼했지.”

정말 묘하다.

이상하게 시설 출신들은 같은 출신들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속사정을 잘 알다보니 부부로서 이해의 폭이 넓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이 그리운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함께 생활하고 성장했다는 건 부모나 형제의 정을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큰 위로와 위안이 된다.

차가 식당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유병칠의 눈이 커졌다.

이곳은 갈비 좀 먹는다 하면 5,60만원이 훌쩍 넘어버리는 고급 한식집이다.

유병칠이 당황했다.

가끔 이곳을 지날 때면 언젠가 기어코 한 번 들어가 실컷 갈비를 먹으리라는 꿈은 갖고 있었다.

유병칠이 기억하는 권총수는 뻔뻔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구제불능의 인간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실컷 갈비를 먹고 나서 잘 먹었다 친구야 하면서 나가버리면 끝이다.

“뭐해, 빨리 들어와.”

앞서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간 권총수가 다시 밖으로 나와 소리쳤다.

유병칠은 어금니를 물었다.

귓가로 이정재의 말이 떠올랐다.

‘15년 만에 만나 저녁 한 끼 덤터기 쓴다고 살림 망하는 건 아니잖아’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즉 자신이 낼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일단 적게 먹어야 한다.

입맛이 없다거나 배가 부르다는 헛소리를 하면서 몇 점 먹다 젓가락을 놔버려야 한다.

유병칠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모든 계획은 산산이 부서졌다.

권총수는 앉자마자 갈비 5인분을 시켰다.

무슨 갈비를 5인분씩이나 시키냐면서 자기는 갈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권총수는 갈비 5인분이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다면서 기어이 5인분 달라고 했다.

“한 잔 해야지.”

“너 차가지고 왔잖아.”

“대리 부르면 되지.”

권총수는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가는 데까지는 가보자.

유병칠은 첫 잔을 넘겼다.

알람이 울린다.

유병칠은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현장까지 한 시간 반 걸리기 때문에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나는데 평소와 달리 몸이 찌뿌둥하다.

“괜찮겠어요?”

아이와 자는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엇!”

유병칠은 깜짝 놀랐다.

이제야 어제 권총수와 소주를 마신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여보 나 어떻게 왔어?”

“기억 안나요?”

아내 정희숙의 얼굴에 잔잔한 웃음이 피어났다.

“바오로 오빠 등에 업혀 들어왔잖아요.”

“총수?”

“도대체 얼마나 마신거에요?”

“별일 없었지?”

그러면서 재빨리 핸드폰을 살피기 시작했다.

자기 카드를 사용했다면 핸드폰에 지출한 액수가 찍히기 때문이다.

허나 아무리 살펴도 어제 담배 산 것 말고는 카드 지출은 없었다.

“이거요!”

정희숙이 방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는데 봉투 한 개를 내 밀었다.

“바오로 오빠가 주고 간거에요.”

“뭔데.”

“돈인데 너무 많아요.”

유병칠은 재빨리 봉투 속에 손을 넣어 돈을 꺼냈다.

달랑 수표 한 장이었지만 유병칠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려 천만 원짜리 수표였다.

“진짜야? 이 자식 훔친 것 아냐.”

“솔직히 바오로 오빠 성품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해서.”

의심이 전혀 가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앞 뒤를 한참 살피던 유병칠이 말했다.

“은행 문 열면 확인해봐. 그자식이 이런 천사같은 짓을 할 놈은 죽었다 깨도 아니니까.”

유병칠은 부지런히 씻었고 그 사이 정희숙은 남편의 아침상을 차렸다.

신문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골목을 올라갔다.

휙!

휘이익!

배달부는 오토바이를 탄 채로 던졌는데 신문은 정확히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가정부 양미순은 대문 앞에 떨어진 신문을 주워 다 거실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권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신문을 읽는다.

그때 2층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권서진의 남편 전철해가 검정색 바지에 주황색 티를 걸치고 내려왔다.

“사장님 어디 가시는 거에요?”

“골프 약속이 있어요.”

“아침은?”

“골프장에서 먹을 거니 걱정마세요.”

전철해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 마당 오른쪽에 있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와 닫힌 문을 열자 컴컴한 지하 주차장이 나왔고 벽에 붙은 스위치를 올렸다.

딸칵!

불이 켜지며 주차장이 환해졌다.

주차장에는 모두 세 대의 승용차가 있었다.

흰색의 벤틀리는 아내 권서진의 업무용차량이다.

검정색 벤츠는 자신의 차량이고 맨 끝에 있는 붉은색 스포츠카는 아내가 즐겨 타는 페라리다.

벤츠의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던 전철해는 소스라쳤다.

“으헉!”

안전벨트를 매고 룸미러 각도를 조정하려는데 뒷좌석에 누군가 타고 있는 것이다.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낯선 인물이다.

쉰 살 정도 된 사내였는데 안색이 분을 발라 놓은 듯 창백한 것이 더욱 움찔하게 만든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내의 목소리는 매우 허스키 하여 사포로 녹슨 쇳덩이를 문지르는 것 같았다.

“당신을 죽일까 살릴까.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속담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줄까 말까.”

전철해는 몸을 떨었다.

사내는 지금 자신을 죽였다 살렸다 하고 있는 것이다.

“그...그분이십니까? 처남에게 빚 받으러 오셨다는 사막의 흑새?”

사내가 씨익 웃는데 눈치 한 번 빠르다는 표정이다.

“기회를 드릴까요?”

“네...네!”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드리면 될까요? 참고로 사장님 아내 분께서는 날 죽이기 위해 야쿠자 칼잡이를 불러들였죠.”

“저...정말입니까?”

“내 마음 알겠죠?”

“압니다. 알고말고요. 가급적 신사적으로 해결 하시려는 그 마음 전 잘 압니다.”

뒷좌석의 사내의 목소리는 높낮이가 없었다.

아이가 책을 읽듯 일정한 데시벨로 흘러갔는데 그것은 처음 경험한 공포였다.

“권서진 사장님께서 날 죽이려고 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아주 나쁜 의미.”

마누라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게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 판에 그녀도 정식으로 출전했다는 의미 아닐까요?”

“마...맞습니다. 그렇군요.”

“그건 이제 그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죠?”

그녀에게 책임이 있다는 건 먼저 공격을 했기 때문에 적당한 강도의 징계를 가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보았다.

“마지막 기회를 드리죠. 오늘 하루입니다. 사과하면 이번 한 번은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즉시 아내더러 깊은 마음으로 충심을 다해 사과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으허헉!”

최선을 다해 대답을 하며 룸미러를 보았는데 사람이 없다.

홱!

직접 고개를 돌려 봤지만 뒷좌석은 텅비어 있었다.

혹시 숨었나 하는 마음에 차안을 자세히 살폈지만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갔다면 문소리가 나야하는 데 전혀 그런 소리는 없었고 문은 잠겨 있었다.

도망쳐야 한다.

당장 차에서 나가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어헛!”

전철해는 또다시 놀랐다.

이제야 자신이 의자에 실례를 한 사실을 알에 된 것이다.

소변을 지렸는데도 느끼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강한 공포에 빠졌다는 뜻이었다.

딸칵!

차에서 내린 전철해는 번개처럼 주차장에서 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향해 달렸다.

다다닥!

덜컹!

거칠게 문을 열고 계단을 뛰어 올라간 전철해는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부술 듯 열고 들어갔다.

탁!

문고리를 채운 전철해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장님!”

가정부 양미순이 놀란 얼굴이다.

“뭔 땀을?”

전철해는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아니오!”

다행히 검정색 바지였기 때문에 소변을 지린 흔적이 얼른 드러나지 않았다.

재빨리 이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전철해를 양미순이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바지에 오줌을 싸다니’

이미 보았으나 모른 체 했을 뿐이었다.

샤워를 끝내고 나온 전철해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샤워 후 얼굴에 스킨을 바르고 있었는데 오늘 골프를 치기로 약속한 대학 동창중 한 명이었다.

“전사장 왜 이렇게 안 와. 어딘데?”

“기수야 정말 미안하다.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오늘 참석을 못할 것 같다. 미안해. 대신 내가 제대로 한 턱 쏜다.”

“무슨 일인데?”

“있어. 얘들한테 얘기 좀 잘 해줘”

“전 사장 빠지면 골프 재미없는데, 아무튼 알았다고.”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데 입구에 권서진이 잠옷차림으로 서 있었다.

“회사에 무슨 급한 일이야?”

“어 당신 벌써 일어났어?”

“뭔 일인데 보름 전부터 잡아 놓은 골프 약속을 취소 해? 무슨 급한 일 있어?”

그러면서 권서진은 의자에 앉았다.

전철해의 표정이 굳었다.

“급하긴 무슨 급한 일이 있어. 그냥 핑계지.”

“가기 싫어 거짓말을 한 거란 말이야? 골프를? 말도 안 돼. 당신 나한테 숨기는 것 있지?”

권씨 집안 맏사위다.

그러나 한 번도 맏사위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가족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은 뭉개지고 밟히고 식구들 보는 앞에서 면박 당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전철해의 본가가 나약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국내 굴지의 언론기업이지만 천왕그룹의 덩치가 워낙 크다보니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말해봐. 또 사고 쳤어?”

재벌가에서 사고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자금난이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야심차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지만 거의가 도중 실패한다.

실패의 이유는 물론 능력 부족이지만 이유가 분명 있다.

첫째는 오너가 아니다 보니 주위 사람들의 적극적 지원이나 참여가 부족하고 은행대출도 번번이 물 먹는다.

“당신!”

전철해는 더듬거렸다.

말을 해야 하는데 가슴이 뛰고 아랫도리가 떨린다.

조금전 주차장 상황을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숨이 가빠오고 목까지 탄다.

“오늘 따라 왜 그래? 설마 밖에서 애 만든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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