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8화: 찍히면 간다(2)
그리고 다음 날 닷새 전 사망한 백서그룹의 후계자 권왕수가 프로포폴 과다 투약으로 숨졌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권왕수가 김황식 성형외과에 일백 여차례 이상 드나들었고 그때마다 투약을 받았으며 유학시절 헤로인을 즐기다 무려 네 차례나 미국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평소 같았다면 도저히 신문에 실릴 수 없는 기사들이다.
천왕그룹과 백서그룹, 그리고 정치권에서 권철태의 인맥은 화려함을 넘어 한국 사회의 뼈대를 움켜쥐고 있다.
일부는 권씨집안이야 말로 한국판 딥스테이트(민주주의에서 제도권 밖에 있는 숨은 권력집단)라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권씨집안의 반응이었다.
‘사실무근이다. 적절한 시기에 우리의 입장을 밝히겠지만 심히 유감이다’
백서그룹에서 내놓은 간결한 입장 문 하나가 전부였다.
어쨌든 사람들은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권씨왕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때 같았다면 신문에 실리지도 않고 편집 과정에서 잘렸을 내용들이 실렸다는 것이다.
그들의 눈을 벗어난다는 건 광고를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한국 언론 현실에서 광고가 없다는 건 곧 몰락을 의미한다.
권철악 권철태 권철무 셋이 모였다.
녹차를 놓고 앉은 세 사람의 표정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냥 잡아넣을 수 없나?”
권철악이 입을 열었다.
“아침에 총장과도 통화를 했는데 증거가 불충분 하다는 겁니다. 특히 그가 살인을 하는 모습이나 그와 관련이 있다는 물증이 단 한 군데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거죠.”
권철태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CCTV가 있는 곳은 전혀 다른 사람의 얼굴이죠. 노출은 다른 사람으로, 노출되지 않아도 되는 장소에는 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이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거야.”
며칠 전 아들을 잃은 백서그룹 권철무의 두 눈이 새파랗게 번들거렸다.
“내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그놈을 살려두지 않을 겁니다. 내 손으로 눈을 파내고 사지를 찢고 잘라 죽일 겁니다.”
권철악은 가만 눈을 감아 버렸다.
자신의 딸도 죽었다.
물론 권총수가 죽였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심증은 백퍼센트다.
경찰과 검찰에서 은밀한 내사를 벌였으나 권총수를 범인으로 단정할 어떤 증거나 단서를 찾지 못했다.
수사기관에서 그를 잡지 못하면 법으로는 그를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이라도 십억 달러를 줄까요?”
“미친소리!”
권철악이 버럭 소릴 질렀다.
너무 격한 반응에 말을 한 권철태의 눈이 커졌다.
“자네 제정신인가?”
“형님!”
“그래, 놈의 몸속에 자네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군. 그렇지 않다면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지.”
“말씀이 심하시군요.”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어.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냈다는 사람 입에서 나올 소린가.”
“그만 하시죠.”
권철태는 불편한 얼굴로 어금니를 물었다.
권철악은 막내 권철무를 보았다.
“권회장! 자네가 좀 나서봐. 사람 하나 죽이는 것 어려운 일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어. 이미 CNN에서도 한국 최고의 가문 권씨일가의 연이은 죽음에 모종의 흑막이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네.”
“저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가문인가? 우리 삼형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가 무엇 하는 사람들인지 보여줘야 하네.”
“그래야죠.”
“그리고 동아신문 회장을 만나 더 이상 기사화 하지 못하도록 막아. 아무리 언론 자유도 좋지만 지켜야 할 선이 있지? 도대체가.”
권철악은 말을 잇지 못했다.
“쯧쯧!”
갑자기 권철악이 혀를 찼다.
“어떻게 사람이 그 모양이야. 일처리는 깨끗해야 뒤탈이 없는 거야. 가뜩이나 어수선한 판에 과거를 노출 시키면 어떡하자는 건가?”
“내가 일부터 터뜨린 것도 아니고.”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나 깨끗이 정리를 해버렸어야지. 엎친 데 덮친다더니.”
청와대 있을 때 죽여 버렸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아니냐는 뜻이었다.
“핏줄이라는 건가?”
“형님.”
권철태의 눈이 커졌다.
“정치인 권철태는 절대 이런 모습 보이지 않았어. 길을 가는데 누군가 막으면 밀어 버렸고 막으면 단칼에 쳐냈던 사람 아닌가.”
“큰 형님 말씀 틀리지 않습니다. 형님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예전의 그 권철태가 없습니다.”
“그만하지.”
“그때 죽였어야죠. 북악 공원에서 만났을 때 총까지 준비했다면서.”
다시 권철악이 목소리를 높였다.
“분명히 쐈습니다.”
“피하기 좋게 쐈겠지.”
부르르!
권철태가 분노를 참느라 몸을 떨었다.
권철악은 다부지게 말했다.
“이독제독(以毒制毒)이라고 했네.”
칼은 칼로 잡자는 뜻이다.
쾅!
권철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 버렸다.
닫힌 문을 바라보는 권철악의 눈이 폭발할 듯 타오른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한두 여자 거쳤겠어. 그렇지만 지금 어디 그때일로 내가 머릴 썩히냐고.”
자신처럼 깔끔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잔소리다.
“이부장, 날세. 거긴 지금 몇 시인가?”
권철무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한밤중이군. 급한 일이 있네. 다른 게 아니고.”
권철무는 한참동안 이부장이란 사내와 통화를 나누더니 끊었다.
“형님도 아시죠. 이 장수라고, 멕시코 동서고속도로를 3년 만에 완공시켜 버린 친구 말입니다.”
“알지. 아주 멋진 친구 아닌가.”
“이번 멕시코 유전개발에 미국의 젠튼사와 컨소시엄으로 공사를 따내겠다고 비장합니다.”
“그런 친구가 많아야 회사가 쑥쑥 커지지. 그런데 그쪽 아이들을 쓰려는가? 마피아가 그런데는 더 전문가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요 며칠 자세히 알아보고 있는데 멕시코, 콜롬비아, 브라질을 포함한 남미 갱단이 가장 잔인하다더군요. 돈만 주면 물불 가리지 않나 봅니다.”
“바로 그거야. 물불 가리지 않는 것.”
권철악의 표정이 단호해졌다.
아파트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미 콘크리트는 타설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벽돌, 미장, 타일, 샷시 등 세부적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벤츠가 들어서자 안전모를 쓴 사내가 다가왔다.
권총수가 앞 유리를 내리자 경비가 거수경례를 한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유병칠씨 좀 만나러 왔습니다.”
“유팀장요? 저 쪽에 차 대시고 사무실에서 기다리세요. 제가 연락해서 모셔 오겠습니다.”
권총수는 자갈밭으로 된 주차장 한쪽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현장 사무실은 가건물이었는데 ‘백서건설’이란 글씨가 입구에 걸려 있었다.
권총수는 사무실로 들어가서 기다릴까 하다 담배도 피울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딸칵!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였다.
20여동의 아파트가 하늘을 뚫을 듯 서 있었고 꼭대기에서 공사하는 사람들이 자그맣게 보인다.
유병칠을 찾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전국 건설 노동자 협회라는 곳에 전화를 했고 같은 시설출신 친구라고 하자 친절하게 일하는 현장을 가르쳐 주었다.
후우!
담배연기를 내 뱉는 권총수 입가에 실소가 맺혔다.
정말 사람 없다.
주위에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없을 줄은 미처 몰랐다.
보육원을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프랑스로 날아가 버린 탓에 친구를 사귈 시간이 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유병칠을 찾아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보다는 아니지만 시설출신들은 사람 사귀는데 인색하다.
그들은 시설출신이라는 불편함을 평생 등에 짊어지고 산다는 어느 신문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드물게 성공을 했어도 사람 사귀는 데는 주춤해지고 가끔은 감추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역시 전적으로 동감한다.
결코 자랑스러운 일은 절대 아닌 것이다.
“날 찾아왔다고?”
권총수는 돌아섰다.
낡은 안전화에 헐렁한 베이지색 바지와 얼룩무늬 전투복 상의를 걸친 사내가 서 있었다.
15년 가까운 세월은 유병칠을 많이 바꿔 놓았지만 양 눈꼬리에 붙은 심술덩어리는 여전했다.
권총수는 씨익 웃었다.
“늙었네.”
“총수?”
“잘살았냐?”
유병칠은 권총수의 위아래를 훑기 시작했다.
그건 15년 만에 만난 보육원 친구의 사회적 위치를 살펴보려는 행동이었다.
유병칠의 눈이 쉽게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계속 바라본다.
즉 성공과 실패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아직 내리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청바지에 검정색 가죽 자켓과 야구모자를 눌러쓴 권총수의 차림은 성공과 실패를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복장은 아니었다.
“여섯 시에 끝난다면서, 기다릴 테니까 마저 하고 와라. 가서 저녁이나 먹자.”
유병칠은 뭐라고 말을 하려는지 입을 반쯤 열었다가 침을 삼키며 닫았다.
“그래!”
권총수는 돌아서서 걸어가는 유병칠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유병칠의 머릿속에는 자신과 저녁을 먹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핑계를 대고 거절해야 하는지 계산이 복잡해지고 있을 것이다.
권총수는 차로 들어가 의자를 젖히고 드러누웠다.
현장으로 돌아온 유병칠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네 명의 미장팀원들이 열심히 벽에 시멘트를 바르고 있었는데 발판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는 유병칠을 흘긋 거렸다.
“누굽니까?”
친구가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고 나갔다.
유병칠 보다 두 살 어린 서판수가 담배를 문채 다가와 물었다.
피식!
유병칠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안 친한 친굽니까?”
나머지 팀원들이 하나둘 모여 들었다.
유병칠까지 포함한 다섯 명은 한 팀을 이뤄 전국을 돌며 미장일을 한다.
솜씨 좋고 빠르다는 소문이 업계에 퍼지면서 일이 없지는 않았다.
“혹시 그 사람 아닙니까? 아주 더러운 놈이라는 그 시설 친구?”
유병칠이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머리에 두건을 쓴 스물 초반가량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동주다.
올해 스물두 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이 바닥에 뛰어들어 이제는 기술자 대접을 받는다.
“어떻게 알았어. 맞아. 그 자식이야.”
“설마 콧김도 뺑끼(거짓말)라는 그 사람이란 말입니까?”
나머지 동료들이 눈을 크게 떴는데 이미 권총수에 대한 험담을 분명하게 한 모양이었다.
“팀장님 만나지 마십시오. 예감이 안 좋습니다. 제 버릇 남 못준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필시 또 빈대 붙을 겁니다.”
“저녁 산다고 왔다잖아요.”
이동주의 말에 서판수가 막아섰다.
“형, 그런 인간들은 안변해요. 맛있게 저녁 먹었는데 돈 안내면 어쩌려구요?”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그러기야 하겠어.”
낡은 벙거지 모자를 쓴 중년의 사내가 말했는데 올해 마흔두 살 먹은 이정재였다.
다니던 회사에서 갑자기 정리해고가 되어 노동판을 나왔는데 매우 성실하다.
“사람 의심하자면 한도 끝도 없어. 내가 봐서는 같이 저녁 먹어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설혹 돈을 안낸다고 해도 15년만이잖아. 아는 사람 15년 만에 만나 저녁 한 끼 덤터기 쓴다고 살림 망하는 것 아니잖아. 안 그래?”
팀원들 누구도 이정재의 말에 반박을 하지 못했다.
‘15년 만에 만나 저녁 한 끼 덤터기 쓴다고 살림 망하는 건 아니잖아’
곱씹어 볼수록 맞는 말이다.
유병칠은 소매에 끼고 있던 토시를 당기면서 말했다.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 바짝 조이자고.”
인부들이 다시 자신의 일자리도 돌아가 벽에 시멘트를 바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