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57화 (357/651)

제357화: 찍히면 간다(1)

바다는 조용했다.

권총수는 두 사내의 몸에 엄청난 크기의 바위를 메달아 다리 난간에 기대어 놨다.

두 사내는 온 몸을 떨었다.

“야쿠자 칼잡이란 말이지? 이름은 요시다와 사사키고?”

그러면서 왼쪽 사내를 향해 묻는다.

“여자 분장은 그렇다 치고 목소리까지 어떻게 여자로 만들 수가 있지. 기차에서 얘기나눌 때 보니 완전 여자던데?”

“트렌스젠더.”

“아아!”

그제야 알겠다는 듯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정리 해봅시다. 천왕백화점 사장 권서진씨가 야마구치구미로 날 죽여 달라고 청부를 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린 조직의 지시를 받아 한국에 왔소.”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두 사람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당신 차례라는 묘비명도 있던데.”

휘익!

권총수는 망설이지 않고 두 사람을 바다로 던져 버렸다.

커다란 포말을 일으킨 바다는 다시 잠잠해졌다.

“떠오르지 않겠지?”

오민철이 조금은 긴장한 얼굴이다.

“갑시다!”

권총수는 트럭에 올랐다.

오민철은 바다를 한 번 더 내려다 본 후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부우웅!

시커먼 연기를 쏟으며 트럭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 * *

흰색의 벤틀리 한 대가 백화점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벤트리를 따라 승용차 한 대가 뒤를 따랐는데 진한 썬팅으로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벤틀리는 곧장 도로에 진입했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20여분을 달려 벤틀리가 다시 나타난 곳은 천왕병원 장례식장이었다.

장례식장 입구에 차가 멈추고 곧이어 따라 들어온 승용차에서 네 명의 사내들이 내려 벤들리를 에워쌓았다.

뒷문이 열리고 검정색 투피스를 걸친 권서진이 나타났다.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후레시를 터뜨렸는데 권서진은 고개를 숙이며 곧바로 들어가 버렸다.

장례식장은 썰렁했다.

백서그룹 직원들이 나와 일을 돕고 있었지만 외부 문상객을 받지 않은 탓에 바쁘지는 않았다.

권서진이 나타나자 직원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권서진은 방으로 들어섰다.

권왕수의 영정 사진이 꽃 속에 묻혀 있는데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몇 달 전에 어머니 이순영이 죽고 이번엔 아들이 숨졌다.

한동안 권왕수 사진을 바라보던 권서진은 가볍게 목례만 하고 돌아섰다.

“사장님 차 준비되어 있습니다.”

단정한 제복을 걸친 여직원이 말했다.

권서진은 여직원의 안내를 받고 조용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권악수가 와 있었다.

“어서오세요 누님!”

권악수는 배웅대 전 상무와 같이 있었다.

배웅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으나 바라보는 권서진의 시선이 날카롭다.

“배상무 그만 두지 않았나요?”

말속에 뼈가 있다.

“예. 그만 두었습니다.”

“아냐. 다시 출근하기로 했어요. 누님.”

권악수가 끼어들었지만, 권서진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의 배상무에 대한 애정은 지켜보는 나도 배가 아플 정도였어요. 그런데 회사가 어수선해지자 혼자만 편해보겠다고 사표를 던져요?”

“누님 아니라니까요?”

“천왕그룹이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그만 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술집 인줄 알아요?”

홱!

권악수의 시선이 권서진에게로 매섭게 돌아갔다.

‘천왕그룹’

권서진은 천왕백화점을 비롯한 유통 분야를 맡고 있다.

그러므로 천왕백화점이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들어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들어오는 술집인줄 알아요 하며 말해야 옳다.

모든 말에는 의미와 의도가 있다.

‘흐흠!’

천왕백화점이라 하지 않고 천왕그룹이라고 호칭한 권서진의 말속에 담긴 뜻은 뭘까.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등 뒤로 열기가 피어난다.

천왕그룹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말고는 없어야 한다.

물론 권철악은 아직 정식으로 물러나지 않고 있지만 권마진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거의 회사에 출근을 않고 있다.

그룹 법무팀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권철악의 개인변호사를 해온 장웅철도 자신의 손에 있다.

‘기분 더러운데’

권악수는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권서진의 비서인 전말수가 핸드폰을 들고 다가왔다.

“사장님 전화.”

그러면서 흘긋 권악수 눈치를 보았다.

“어디죠?”

“저기!”

주저하는 전말수를 보며 권서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간 권서진은 입을 열어 말했다.

“여보세요.”

“도쿄입니다.”

“노무라 회장님!”

권서진은 밝은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또 한 명의 가족이 세상을 등졌다는 비보를 들었습니다. 정말 가슴 아픕니다.”

“인명은 재천이죠.”

“허허허! 맞아요. 인간은 너무 나약해요. 그냥 왔다 가는 건데 말입니다. 사장님 연락이 되십니까? 우리 아이들이 전화를 받지 않아 궁금하군요.”

권서진은 이마를 찡그렸다.

“연락이 안 된다구요. 알겠어요. 제가 한 번 해보죠.”

전화를 끊은 권서진은 번호 하나를 눌렀다.

전화기를 뺨에 대고서 천천히 장례식장 복도를 걸어갔다.

문상은 가로 막았지만 오는 조화까지 거절할 수는 없어 세워 놓았는데 복도를 가득 채웠다.

권서진은 감상하듯 조화의 리본에 쓰인 이름을 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전화를 받지 않는 듯 끊었다가 다시 눌렀는데 그녀의 발걸음이 한 곳에서 멈췄다.

‘권총수’

직함이나 소속 같은 건 없고 이름만 달랑 쓰여 있다.

핸드폰을 내린 권서진은 한참동안 노려보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전말수에게 말했다.

“전비서.”

“예 사장님!”

“이 조화 어느 꽃집에서 가져왔는지 빨리 알아봐요. 당장.”

“네! 사장님!”

비서 전말수가 사라지고 전화기를 내린 권서진이 조화를 쏘아보았다.

지이잉!

굳은 얼굴로 조화를 보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에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전화를 받았다.

“누구시죠?”

대답은 않고 엉뚱한 말이 흘러 나왔다.

“천천히 다시 한 번 말해 보세요.”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권서진 천왕백화점 사장님께서 우리 오야붕에게 의뢰를 했습니다.”

두려움에 질린 듯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용이 뭡니까?”

“권총수라는 사람을 죽여달라는 것이죠.”

권서진은 흠칫 했다.

질문자와 대답하는 사람 모두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내용이 무엇인지 금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꽃은 마음에 드십니까?”

전화를 걸어온 주인의 목소리다.

권서진은 재빨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신이 지금 꽃 앞에 있다는 걸 안다는 건 지켜보고 있다고 봐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 문상객은 없고 일가 친척과 일부 회사 직원뿐이다.

“그런 내용을 내게 전달하는 이유가 뭐죠? 이 따위로 날 살인교사로 신고하겠다는 건 아닐테고.”

“이따위 증거로는 결코 당신 같은 분들을 절대 건들 수 없다는 걸 알죠.”

상대 목소리가 끈쩍끈적 해진다.

그건 비아냥거리고 야유를 할 때 나오는 음색이다.

“내가 사장님께 전화를 한 건 다름이 아니라 곧 찾아뵙겠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전화가 끊어졌다.

권서진은 만약을 대비해 몰래 녹음을 했다.

툭!

녹음기능을 눌러 목소리를 재생했다.

조금 전의 통화했던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어디선가 들은 기억도 없다.

다만 권총수라는 남자임이 분명했다.

그때 꽃집을 알아보러 갔던 전말수 비서가 허겁지겁 뛰어왔다.

“병원 앞 사거리 꽃집이었습니다. 전화로 주문이 왔고 입금확인 후 곧바로 배달했다는 것입니다.

“그만 가봐요.”

전말수가 돌아가고 잠시 서 있던 권서진은 한곳에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얼마 전 자신과 저녁식사를 했던 검찰 고위 관계자였다.

권서진은 권총수가 꽃을 보내왔고 자신에게 전화까지 했다는 내용을 전달하며 신변 확보가 가능한지 물었다.

검찰 관계자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더듬거렸다.

“글쎄, 수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상가집에 조화 보내는 것이 법에 저촉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통화내용은 협박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협박이 되려면 죽인다거나 가만 안둔다는 분명한 의사 표시가 들어가야 하는데.”

몇 마디 더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

권서진의 얼굴이 돌덩이다.

권총수는 임의동행 형식으로 데려다 조사를 해보겠다는 것이 전부였지만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후다닥!

멀리서 한 사내가 달려왔다.

곧장 권서진에게 달려온 사내가 다급히 말했다.

“사장님, 전비서가 죽었습니다.”

탁!

권서진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리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사장님!”

사내는 주저앉은 권서진을 부축하려 들자 손을 저어 뿌리쳤다.

권서진은 스스로 일어났는데 충격을 떨쳐내지 못한 듯 몇 번 휘청 거렸다.

“가서 일들 보세요.”

놀라 다가온 직원들을 돌려보내며 권서진은 사내를 따라갔다.

화장실에는 두 명의 직원이 출입자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권서진이 나타나자 사내들이 한쪽으로 비켜섰다.

안으로 들어선 권서진은 얼어붙어 버렸다.

낯익은 사내가 구석에 등을 기댄 체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었다.

조금전 사거리 꽃집 운운하며 보고를 했던 전말수였다.

“아아아!”

권서진은 또 한 번의 충격에 흔들거리며 벽을 짚었다.

조금전 자신의 심부름을 했던 전말수는 가짜였다.

그는 태연하게 진짜 전말수처럼 꽃집을 다녀온 보고를 한 것이다.

범인은 자기 앞에까지 왔다가 느긋하게 돌아간 것인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수시로 찾아와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때 밖이 소란스럽더니 119가 달려왔다.

그들은 전말수의 몸 상태를 확인하더니 사망했다는 사인을 주고받고 곧장 침대에 싣고 떠났다.

잠시 후 경찰들이 찾아왔지만 권서진은 아는 것이 없으니 장례식 끝나면 그때 보자고 하며 돌려보냈다.

권총수는 장미윤과 마주 앉아 있었다.

원래는 장미윤이 벌교로 오기로 했지만 서로의 일정이 바뀌면서 서울에서 만나 것이다.

권총수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막힘이 없었다.

권철태와 오설지의 관계를 적나라하고 분명하게 설명한 것이다.

장미윤은 어느 정도 짐작은 했으나 둘 사이에 아들이 있다는 대목에서는 매우 놀랐다.

“혹시?”

당신 아니냐는 눈빛이다.

권총수는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동아신문 종합면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실렸다.

이름대신 영어 이니셜을 사용하여 K라고 썼으며 그는 전직 거물급 정치인이라고 했다.

그 정치인과 34년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배우 오설지에 관한 르뽀 형태의 기사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잡다한 기사와 알림들이 많이 실리는 종합면이다 보니 그냥 넘긴 독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조간신문이지만 오전에는 조용했다.

하지만 입소문이 퍼지고 인터넷에 기사가 뜨면서 심지어 주식시장에 찌라시로까지 등장했다.

오설지라는 여배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젊은 세대는 부모님의 입을 통해서나 아니면 가끔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반복해서 틀어주는 영화를 통해 오설지를 본다.

그때나 지금의 세대나 오설지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정말 이쁘다였다.

어쨌든 알만한 사람은 거물정치인 K가 누군지 금방 유추해 냈다.

설왕설래(說往說來).

누구다. 아니다.

맞다. 틀리다.

퇴근길 술좌석의 화제는 당연히 정치인 K와 오설지에 대한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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