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56화 (356/651)

제356화: 반격(3)

침묵이다.

지금쯤 깨어나야 한다.

가까이 다가간 김황식은 멈칫 했다.

깊은 잠에 빠진 듯 보이지만 김황식은 의사답게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린다.

잠을 자는 사람의 안색이 이토록 창백할 수는 없다.

슥!

김황식은 재빨리 맥을 짚었다.

맥이 없다.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렸지만 심장 박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맙소사!”

김황식은 밖을 향해 소리쳤다.

“미스 오, 심장 충격기 가져와 빨리.”

그러면서 재빨리 침대 위로 올라가 양손을 포개어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가슴이 푹 꺼질 만큼 누르고 있을 때 여직원 오해진이 심장충격기를 밀고 들어왔다.

재빨리 두 개의 패드를 거머쥔 김황식은 왼쪽 어깨와 오른쪽 옆구리에 지지듯 댔다.

퍼억!

하는 소리가 나며 환자의 몸이 파도치듯 꿈틀 거렸다.

그렇게 대여섯 번을 실시했으나 심장박동은 돌아오지 않았고 김황식의 온 몸은 땀으로 젖었다.

털썩!

김황식은 흐르는 땀을 주체 못하며 의자에 주저앉아 버렸다.

“원장님!”

여직원 오해진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김황식은 넋이 나간 듯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사이 오해진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 보겠다는 듯 패드를 좌우에 대고 충격을 줬지만 권왕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내가 주사를 놔줬다고?”

“원장님께서 방으로 들어가셨잖아요.”

“내가 언제?”

“원...장님!”

오해진을 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지금 이 차림으로 들어가셨고.”

“닥쳐!”

김황식이 버럭 소릴 질렀다.

“으흑흑! 원장님 진짜잖아요.”

VIP들만 은밀히 찾아와 조용히 프로포폴을 맞고 간다.

벌떡!

뭔가 생각이 난 듯 김황식은 밖으로 나가더니 사무실 책상에 앉아 실내에 설치된 CCTV를 돌렸다.

아차!

김황식은 눈을 감아 버렸다.

권왕수가 온다고 해서 주차장은 물론이고 병원내 모든 카메라가 꺼져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전혀 찍히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예약 전화를 받으면 무조건 꺼 놓는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절대 손님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연히 CCTV를 돌렸지만 화면에 나타난 영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콰아앙!

옆에 있는 전화기를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자신은 절대 주사를 놓지 않았다.

그런데 오해진은 분명히 놓았다고 한다.

자신은 원장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사이 뭔가 벌어진 듯 했지만 여전히 짚이는 것도 없고 떠오르는 건 더욱 없었다.

권왕수는 백서그룹 차기 후계자다.

어찌하여 살인죄를 벗는다고 해도 몰래 프로포폴을 투약해 준 것에 대해서는 여지가 없는 징역감이다.

의사 면허도 박탈당할지 모른다.

“아아!”

절망이다.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 시간 백서그룹 회장 권철무는 오랜만에 임원들과 골프를 치고 있었다.

골프는 치지만 화제는 미래 먹거리 산업에 관한 것이었다.

앞으로는 공존의 시대다.

숲과 공존하고 바다와 동행하고 하늘과 상부상조하는 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데는 모두가 의견일치를 보고 있었다.

현재 백서그룹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연구와 사업은 몹시 지지부진했다.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인 바이오 헬스(생명공학 의 약학 지식에 기초하여 인체에 사용되는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부분만 보더라도 경쟁국가인 미국이나 일본 중국에 한 발 뒤쳐져 있다.

“이렇게 속도가 나지 않으면 사업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어요. 기술은 속도가 붙을 때 가치가 있다는 것 몰라요?”

임원들을 데리고 걸어가는 권철무 얼굴이 싸늘하다.

“저 사람 왜 저렇게 뛰어 오는거야?”

그때 임원 한 명이 고개를 돌렸다.

나머지도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는데 멀리서 운전기사 차춘오가 달려오고 있었다.

골프를 칠 때 만큼은 전화기를 휴대하지 않는다.

물론 권철무가 그렇다 보니 이 가운데 전화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뭐야? 차 과장?”

한 명의 임원이 큰 소리로 물었다.

헉헉 거리며 달려온 차춘오는 호흡을 채 고르지도 못한 채 입을 열었다.

“회...장님.”

차춘오의 표정이 굳어 있음에 권철무는 직감적으로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아 뭐야.”

어느 임원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고 짜증을 냈다.

“사장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사장이 죽다니 누가? 설마 권사장은 아닐테고.”

“권왕수 사장님.”

“차 과장, 장난 해, 무슨 개소리야.”

젊은 임원이 버럭 소릴 질렀다.

“프로포폴 과다 투약으로.”

그때 이사들의 차를 끌고 온 기사들이 달려왔는데 그들도 무슨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사님!”

“이사님!”

“실장님!”

자신들이 모시고 다니는 사람들을 불렀지만 차마 뒷말을 잇지는 못했다.

“회장님!”

임원 한 명이 휘청거리는 권철무 회장을 부축했다.

권철무는 괜찮다는 듯 부축하는 임원의 손길을 밀어내며 우뚝 서 있는 소나무에 등을 기대며 주저앉았다.

“회장님!”

“됐어. 됐어. 담배 있으면 하나 주게.”

임원 한 명이 재빨리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후우!

권철무는 마음을 안정시키려는 듯 쫓기듯 담배를 빨았다.

“하나 더 줘.”

“예!”

어느새 한 개비를 피워 버리고 두 개째 물었다.

“전화 한 사람이 누구던가?”

운전기사 차춘오가 재빨리 답했다.

“수사과장이라는 분이었는데.”

“당장 전화해서 기자들 입단속 시키라고 해요. 또한 기사를 낸 신문사는 백서그룹은 물론 천왕그룹 광고 받을 생각 포기하라고 해.”

한국의 언론은 광고로 먹고 산다.

광고주가 갑이고, 그래서 재벌 기사는 항상 후하게 다룬다.

“허어어!”

권철무는 한숨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토해 냈다.

그 사이 일부 임원들은 운전기사 차춘오로부터 사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만 가지!”

어느새 일어난 권철무가 앞장서 걸었는데 10여 미터도 채 가지 못해 비틀 거리더니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회장님!”

임원들이 흔들어 깨우려 했지만 권철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119를 부르고 골프장 관계자들이 달려오고 필드는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권총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오민철의 고향 벌교에 내려와 폐교가 된 학교 운동장 그네를 타고 있었는데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여긴 벌교죠. 세상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형님의 고향.”

입가에 웃음이 도는 것이 불편한 전화는 아닌 모양이었다.

“왜 그걸 내게 묻습니까? 뭐라구요. 여길 온다고 했습니까?”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권총수는 끊어진 핸드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여자, 여기가 어딘데 찾아온다는 거야.”

툭!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버리고 그네에서 일어났다.

“야 타!”

오민철이 낡은 포터 한 대를 끌고 나타났다.

아버지가 끌던 트럭인데 이제 연로하여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권총수가 조수석에 올랐고 오민철은 기어를 바꿨다.

“벨트 매고.”

“알았어. 매면 될 것 아냐.”

“차가 후져 비켜 부딪혀도 사망할 수 있으니까 하는 얘기야 임마.”

오민철은 교문을 나섰다.

차가 도로에 진입하고 권총수가 어딜 가는지 물었다.

“너 장어탕 안 먹어 봤지?”

“왜 안 먹어봐.”

“민물 장어탕 말고 바다 장어탕 말이야?”

“바다 장어탕도 있어?”

“짜아식, 건더기 가득한 장어탕 한 숟가락에 갓 김치 한 토막 올리면 그냥 예술이다.”

“지금 먹으러 가는 거야?”

“음!”

권총수는 침을 삼켰다.

다른 일에는 상당한 뻥을 치지만 먹는 것만큼은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오민철이다.

“어딘데.”

“좀 기다려.”

“배가 고파서 그래.”

“나도 고파. 미식가는 참을 줄 알아야 돼.”

“에이!”

권총수는 답답한 듯 담배를 피워 물고 유리를 내렸다.

“뭐야? 아까부터.”

오민철이 룸밀러를 보며 투덜거리자 권총수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냥 가.”

홱!

그러자 오민철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

“서울부터 따라왔어.”

“뭐?”

“KTX에서 못 봤어?”

“누군데?”

“우리 뒷좌석에 앉았던 일본 말 쓰던 부부!”

부부라는 말에 오민철은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기차를 타고 올 때 바로 뒷좌석에서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던 부부를 기억하고 있었다.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을 자랑이라도 하듯 가볍게 목례를 했다.

“노인 부부.”

“맞아!”

“노인 부부가 왜 우릴 따라다니는데?”

“형 부딪히겠다. 운전해.”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시골버스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오민철은 계속 운전을 하며 권총수를 흘긋 거렸다.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은 권총수는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 유리를 올렸다.

역 앞 주차장에 트럭을 세우고 두 사람은 장어탕 전문이라고 쓰인 식당으로 들어섰다.

종업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두 사람은 맨 안쪽에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드르륵!

오민철이 먼저 들어갔고 뒤를 따라 권총수가 들어선다.

“탕 두 그릇 주세요.”

원목으로 된 상을 놓고 마주 앉았다.

오민철의 표정이 처음 트럭을 몰고 학교에 나타날 때와 다르게 굳어 있었다.

일본어를 쓴 부부가 미행한다는 말에 긴장한 것이다.

“누굴까?”

“이런 시골까지 우릴 따라 올 놈이 누가 있겠어? 뻔하지.”

“아니 왜 쪽발이냐고?”

“주리를 틀어 봐야지.”

그때 문이 열리고 장어탕이 들어왔고 두 사람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끝낸 두 사람은 트림을 하며 식당을 나섰다.

“커피 한 잔 해야지.”

“좋지!”

두 사람은 근처에 있는 역전다방으로 들어갔다.

밤이 깊었다.

마을 입구를 밝혀 주는 가로등만 홀로 켜져 있었다.

나타난 사람은 두 명이었다.

자켓에 야구 모자를 눌러썼는데 양손에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두 사내는 골목을 따라 들어가 오른쪽으로 있는 2층 주택을 바라보았다.

은분을 칠한 철대문이 굳게 잠겨 있고 마당에 낡은 트럭 한 대가 보였다.

사내들은 대문으로 이어지는 담장을 쭈욱 따라 걷더니 어느 한 순간 휙 하며 단번에 담장을 넘어갔다.

“허흡!”

마당에 내려선 두 사내는 소스라쳤다.

권총수가 입에 담배를 물고서 경운기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쉭!

두 사내는 곧바로 칼을 뽑아 들었다.

어둠속에서도 흰빛 광채를 발산하는 회칼은 섬뜩했다.

피식!

칼을 든 두 사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권총수는 옆에 세워둔 삽을 들었다.

두 사내는 재빨리 흩어져 앞뒤로 권총수를 포위했다.

“야 나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오민철이 낫을 들고 걸어왔다.

“이런 도둑놈 새끼들이, 넌 나와 붙어.”

오민철이 왼쪽 사내를 가리켰다.

스윽!

한 사내가 다가선다.

하지만 사내들은 함부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표정들이 굳어 있다.

이쪽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건 오래전부터 미행이 탄로 났다는 뜻이다.

그걸 알고서 이렇게 한가한 모습으로 기다린다는 건 자신감 말고는 달리 해석할 수 없다.

준비하고 있는 적을 공격해봤자 돌아오는 건 피 뿐이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나는 것도 이상할 일이었다.

처음으로 실패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찔러 들어갔다.

쉿!

권총수는 찔러 들어오는 사내의 칼을 피해 옆으로 이동했는데 불영보였다.

화악!

첫 번째 공격을 허망하게 실패한 사내의 눈이 커졌다.

움직임이 다르다.

발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는데 권총수가 옆으로 비켜나 버린 것이다.

빠악!

한 방!

그것으로 끝이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걸 감지하고 곧바로 방향을 돌리려는데 삽이 뒤통수를 갈겼다.

가볍지 않은 삽이다.

검도 아닌 삽을 이토록 빠르게 후려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힘이 좋다고 해서 이렇게 전광석화와 같은 삽질이 나올 수 없다.

뻐어억!

쓰러지지 않고 비틀 거리자 권총수는 다가와 한 대 더 갈겼는데 사내는 머리를 맡고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우욱!

권총수는 신음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민철의 낫이 상대의 머리 한 가운데에 박혀 있었다.

“형 대문부터 열어.”

오민철이 대문을 열자 권총수는 꼼지락 거리는 두 사내를 단단히 묶었다.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재갈까지 물린 뒤 트럭에 실었다.

부르릉!

후진으로 나간 트럭은 방향을 바꿔 마을 길을 달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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