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4화: 반격(1)
“모자 쓰고 화면속 범인과 똑 같이 해야죠.”
경비는 벗은 모자를 머리에 쓰고 다시 얼굴을 나란히 했다.
이동세는 눈을 번갈아 가며 화면 속 인물과 경비의 얼굴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뭐야. 똑같잖아.”
“생사람 잡고 있소.”
경비가 눈을 부라렸다.
“아저씨 수사 중이니 좀 조용히 하세요. 다시 얼굴 대보세요.”
허리를 폈던 경비가 쭈그리고 앉으며 화면과 높이를 맞췄다.
“좋아요.”
이동세는 거리를 조금 두고서 살폈다.
경비실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긴장한 얼굴들이었다.
“김형사 어때?”
“너무 똑같은데요. 이 정도면 동일인이죠.”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유도를 한 사람을 죽이냐고?”
“알았어요. 일단 아저씨도 수사대상에 있다는 것만 알고 계세요.”
이동세는 김낙영을 데리고 경비실 밖으로 나갔다.
그때 시신을 싫은 앰블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극주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최준구가 죽었다는 건 자신도 곧 뒤를 따라갈 수 있다는 징후였기에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 어려움을 타개할 대책이나 방법은 없는지 연구하고 생각했지만 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회사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주길 기다렸지만 가타부타 아무런 말도 없다.
불만은 또 있었다.
최준구의 사망은 얼마 전 권총수를 향한 총격사건에 대한 보복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그때 일에 대한 권총수의 응징이란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보기에는 백프로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용의자 얼굴이 CCTV에 잡혔지만 건물 경비라는 경찰 발표는 권마수 살인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권마수를 죽인 사람은 청와대 정무수석 기동민이었다.
이번 역시 동일인에 의한 그런 수법으로 보이는데 경찰에서는 그다지 속 시원한 내용을 내놓지 못했다.
경찰도 회사도 갑갑하긴 마찬가지였다.
‘젠장!’
나극주는 제대로 업무를 볼 수가 없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당당한 체구의 사내가 들어왔다.
“보안팀에서 온 심남천입니다. 오늘부터 나극주 비서님을 경호할 것입니다.”
나극주의 눈이 커졌다.
이제 살았다는 마음이 들며 얼굴이 환해졌다.
“어서 오십시오. 이제 살 것 같습니다.”
또 다시 문이 열리더니 총무이사 표창석이 들어섰다.
순간 비서실 직원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는데 표창석은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나 비서, 심남천씨 자리도 하나 마련해요. 경호를 하려면 나란히 앉아야 할 것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곧 마련하겠습니다.”
표창석은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나갔다.
나극주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책상과 의자는 물론 노트북까지 빨리 가져다 달라고 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30분 이내에 모든 것이 올 것입니다.”
심남천은 가볍게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나극주는 손수 커피까지 타다 주었는데 싱글벙글 했다.
비록 보안팀이지만 관리직 사무실에 들어와 앉아 보긴 처음이다.
모두가 컴퓨터 앞에 앉아 각자 업무에 바쁜 모습이었다.
항상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는데 관리직 사원들의 업무였다.
그들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무슨 일을 할까.
심남천은 가까이 다가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저기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됩니까?”
화장실 보다는 잠시 숨통을 트고 싶었다.
너무 조용하고 모두가 일을 하는데 자신만 멍청하게 앉아 있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요. 다녀오세요.”
나극주는 매우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심남천은 조심스럽게 사무실 통로를 따라 문밖으로 나갔다.
후와!
심남천은 크게 호흡을 했다.
꽉 막힌 숨통이 터지는 것 같다.
나극주에 대한 파견 경호 지시가 내려오자 사장 비서실이라는 것에 은근슬쩍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막상 보는 비서실 분위기는 영 아니다.
마치 군대시철 화생방 훈련을 받기 위해 가스실에 들어갔다가 나온 기분이다.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강한 흡연욕구가 생겼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는 일 층까지 내려가는 것도 모자라 사옥 뒤편에 있는 공원까지 가야하는데 갔다 오는 데만 20분은 걸릴 것이다.
파견 근무지만 처음부터 찍힌다는 건 좋을 것 없다는 생각에 화장실에서 잠시 쉬었다 들어가기로 했다.
천왕그룹에 들어와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 화장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백화점 화장실보다 더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얼마나 닦고 쓰는지 화장실 바닥에서 번들번들 광이 났다.
소변을 보고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었다.
상체를 숙이고 쏟아지는 수돗물에 손을 적시는데 누군가 강하게 머리를 짓눌렀다.
뻐억!
상체가 꺾이듯 숙여지며 이마가 수도꼭지 윗부분을 정면으로 찍었다.
퍼퍼퍽!
정신을 차리고 어쩌고 할 틈이 없었다.
연거푸 두 번을 더 찍히면서 저항은커녕 완전히 무기력해져 버렸다.
촤악!
이번에는 뒷머리를 잡고 얼굴을 세웠다.
심남천은 기겁했다.
자기 말고 거울 속에 또 한 명의 사내가 있었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는데 피를 흘리는 자신을 빤히 바라본다.
“나극주에게 전해요. 자수하여 광명찾자.”
탁탁!
사내는 어깨를 토닥여 주더니 몸을 돌려 나갔다.
심남천은 사내를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재빨리 쫓아가려 했으나 갑자기 눈앞이 핑 돌며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화장실에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자 처음에는 담배 피우러 갔겠거니 했다.
하지만 30분이 가까이 흘러도 나타나지 않자 나극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으아아악!”
나극주의 비명이 복도를 울렸고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심남천씨, 심남천씨.”
나극주는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은 심남천을 흔들었다.
그때 사람들이 화장실로 몰려들었고 바닥에 흥건할 만큼 고인 피를 보며 소스라쳤다.
“119죠. 천왕사옥입니다. 피를 많이 흘리고 있습니다. 의식 없어요. 빨리 오세요.”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시끄럽습니까?”
그때 사람들을 헤치며 권악수가 나타났다.
“나 비서 그 사람 누구야?”
나극주는 재빨리 일어났다.
“조금 전 날 경호하기 위해 케이 원에서 파견된 직원입니다.”
“왜 다친 거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화장실을 갔는데 돌아오지 않아 와봤더니.”
그때 의식을 잃은 심남천이 깨어났다.
눈은 떴지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누운 채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심남천씨 정신 들어요?”
“안녕하세요.”
그와중에도 꾸벅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권악수는 피식 웃으며 돌아나갔다.
권악수가 나가자 사람들이 길을 터줬고 서너 걸음 옮겼을 때 등 뒤로부터 심남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극주에게 전하세요. 자수하여 광명찾자.”
홱!
권악수가 벼락같이 몸을 돌려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지금 뭐라고 했나? 자수하여 광명찾다니?”
나극주는 이미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그 사람이 온 듯 싶습니다.”
“그 사람?”
“사막의 흑새.”
“분명하나?”
권악수가 일어나 앉아 있는 심남천을 쏘아보았다.
“사막의 흑새인지는 모르지만 그...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생겼어?”
“잘 기억이 안나...납니다.”
권악수는 한참을 내려다보더니 몸을 돌렸다.
천천히 복도를 걸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권악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금니를 물었다.
그 날 이후 총상을 치료할 만한 병원은 모두 뒤졌다.
한국의사협회를 통해 서울에 있는 모든 병원에 긴급 공문이 내려갔다.
총상환자가 들어오면 곧바로 연락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단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
혹시 죽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회사까지 들어와 심남천을 반 죽여 놓고 갔다는 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칼을 자신의 목에 꽂을 수 있다는 또 한 번의 경고인 셈이다.
팟!
갑자기 떠오른 것이 있는 듯 눈을 빛내더니 탁자 위 인터폰을 눌렀다.
“예 사장님!”
“관리부장 회사 CCTV이상 없죠?”
“왜 그러십니까?”
“24시간 촬영됩니까?”
“물론입니다.”
“한 시간을 전후해 로비를 찍은 영상을 좀 가져오세요.”
“예 사장님!”
수화기를 내린 권악수 소파에 주저앉았다.
“찍혔다면 놈은 빠져나가지 못한다.”
심남천의 부상과 권총수를 엮으면 된다.
즉 권총수가 몰래 침입해 심남천에게 부상을 입힌 것이다.
CCTV의 영상을 증거로 심남천을 폭행한 피의자로 구속 시키는 것이다.
일단 구속만 되면 다른 죄목까지 얹어 사형수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나비서 어디요?”
핸드폰으로 나극주를 찾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나극주가 들어왔다.
권악수는 전화를 끊고 물었다.
“어찌됐소?”
“조금전 119에 실려갔습니다.”
“우리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됩니다.”
“그렇게 조치했습니다.”
“좋아요. 나가봐요.”
나극주가 돌아 나가자 권악수 입가에 자신감 가득한 미소가 지었다.
다시 한곳에 전화를 건다.
“나요. 항상 그렇죠 뭐. 다른게 아니고 직원 한 명이 다쳐 지금 119에 실려 갑니다. 지금부터 내말 잘 들으세요. 거의 시체가 다되어 들어온 것처럼 진단서를 끊도록 담당의사에게 지시 하십시오. 119는 내가 알아서 조치 할 테니.”
권악수 표정이 굳었다.
상대가 호락호락 대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무슨 개소리야. 진단서를 100주 200주 끊으란 말입니다. 알아 들었어요?”
쾅!
거칠게 핸드폰을 내렸다.
“말이 많아.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의 상태가 나쁠수록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형량이 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심남천을 죽이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럼 권총수는 완벽한 살인자가 된다.
“사장님 관리부장님이십니다.”
여비서의 인터폰이다.
“들어오라고 해요.”
딸칵!
권악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를 두 번 정도 빨았을 때 문이 열리고 마흔 중반 가량의 관리부장 최석기가 들어왔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권악수에게 허리를 구부려 인사 했다.
“가져 왔소?”
“예!”
최석기는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주었다.
권악수는 입에 담배를 물고서 자신의 노트북에 끼우더니 마우스를 움직였다.
몇 차례 화면이 바뀌더니 동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 시간이?”
“9시50분입니다.”
권악수는 시계를 봤는데 11시였다.
회사에 들어와 시간을 보낸다거나 다른 일을 벌어지는 않았을 테니 넉넉잡고 한 시간 전후로 살피면 영상에 권총수가 잡힐 것이다.
권악수는 사원증을 찍고 통과하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보았는데 출근 시간이 아니어서 로비가 붐비거나 하지 않았다.
사원들 보다는 용건이 있어 찾아와 보안민원실로 들어가는 사람이 더 많았는데 어쨌든 한가한 영상에 조금은 편했다.
권악수의 눈은 활활 타올랐다.
그때였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화면 속에 급히 들어오는 119가 잡혔다.
“이건 또 뭐요?”
“한 시간이 훌쩍 넘은 영상입니다.”
119는 20여분 전에 왔다갔다.
“다시 봅시다!”
권악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