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3화: 채무회수(1)
마주선 권서진은 짧게 웃는다.
“감사합니다. 권서진이에요.”
“안녕하십니까?”
사내는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작은 아버지 전서방 이종사촌 형님이에요. 여기 차장으로 근무하시는데 오늘 도움을 주었어요.”
전서방은 남편 전철해를 얘기한다.
권철태가 다가오자 사내는 허리를 구부렸다.
“길창호 경호차장입니다.”
“쉬운 일이 아닐텐데 우리에게 이런 장소를 제공해주다니 고맙소.”
“아닙니다. 대통령 각하.”
앞에 전 자가 붙어야 하지만 그냥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전 자를 뺀다고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므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 편하고 상대를 은근 슬쩍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걸 길창호는 알고 있다.
길창호는 군인들이 놓고 간 상자를 열어 권총 한 자루를 꺼냈다.
“사격은 무척 위험합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사격장 사고는 목숨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군기가 센 것이죠. 지금부터 저의 통제를 잘 따라주시면 큰 문제없이 오늘 훈련이 끝날 것입니다.”
이어 길창호는 권총 파지법부터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월요일 출군하자마자 시작된 회의는 끝날 줄 모른다.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매각을 결정한 유통업계 라이벌‘홈 플라톤’을 인수 할 것이냐를 놓고 세 시간이 넘는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권서진은 주로 듣는 입장에 있었는데 점차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고 판단했다.
인수해서는 안 된다는 쪽 의견은 지금 국내 유통업계가 불경기인데 아무리 천왕마트가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해도 홈 플라톤을 인수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반면 찬성 의견은 불경기 일수록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맞섰다.
이사진들의 토론을 듣고 있던 권서진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흘끗 액정을 보았다.
문자 한 통이 도착한 것이다.
‘어제도착 했습니다. 휴일이어서 연락을 드리지 않았죠’
아주 간단한 문자였다.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은 권서진은 10여분간 더 토론을 듣더니 좌중을 진정시켰다.
“좋아요. 투표로 결정해요.”
오너가 결정하면 모든 건 끝난다.
그런데도 굳이 투표로 홈 플라톤의 인수 여부를 결정하자는 건 3시간을 존중하기 위함이다.
죽어라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는데 아무리 오너라고 맘대로 결정해버린다면 3시간동안 입 아프게 토론한 이사들은 한마디로 개소리만 지껄이는 꼴이 된다.
권철악은 바로 권서진의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한다.
자신의 의중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참모들 생각을 존중한다.
참모들이 꺼내 놓은 의견에 자신의 마음속 생각을 적절히 접목시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찌보면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권서진은 경영에 굉장한 저돌성을 갖고 있다.
단지 자신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 부분을 얻기 위해 토론을 유도하고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주위 의견을 흡수할 줄 아는 유연성이지만 결정은 분명하게 자신이 내린다.
“반대 하시는 분 손드세요?”
그러자 여덟 명중 네 명이 들었다.
“좋습니다. 홈 플라톤을 인수해야 한다는 분 들?”
“이쪽도 네 명이다.”
4대4로 팽팽했다.
“잘 알겠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백분 존중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므로 며칠 더 생각해보고 결정 하도록 하겠습니다.”
면전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버리면 반대쪽 사람들이 당하는 무안이 적지 않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끝내요.”
이사들이 모두 돌아가고 혼자 남은 권서진은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정부장이 그 사람들 움직이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도와주세요.”
“물론입니다. 사장님!”
“행운을 빈다고 전해주세요.”
전화를 내린 권서진은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근처 공원의 나뭇잎들이 칙칙한 회색으로 덮여 가는 것이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말해 주었다.
‘적은 피하는 법이 아니다. 무조건 죽여 없애야 한다. 피하면 언젠가 또다시 장애물이 되어 나타난다’
아버지 권철악의 경영철학 중 하나였다.
‘권총수가 작은 아버지와 배우 오설지 사이에서 태어난 놈이라고?’
놀랄 일은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나름 출세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의 과거사 속에 여자 한두 명 들어가지 않으면 말이 안 되는 곳이 한국 사회다.
그런 남자들 속의 여자는 두 부류다.
하나는 사업의 파트너이고, 다른 하나는 철저히 잠자리 상대로 이용 된다는 것이다.
‘역시 작은 아버지는 대단해. 당대 최고의 미녀 배우로 하여금 자식까지 낳게 만들다니.’
표정이 야릇해졌다.
‘그런데 그 개자식이 날 죽이겠다고 설친단 말이야.’
권서진은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팔짱을 끼었다.
‘대개 그렇게 태어난 놈들의 성향을 난 조금 알지. 십억 달러는 핑계일 뿐이고 권씨 가문의 핏줄로서 인정해 달라는 거겠지.’
권철태의 아들로 당당하게 호적에 오르고 싶은 것이다.
권씨 집안의 핏줄로 인정되는 순간 곧바로 신분은 수직 상승하고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된다.
페라리를 끌고 압구정동을 누비고 싶은 것이다.
잘하면 어느 눈먼 연예인 한명 꿰찰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비상을 꿈꾸고 있겠지’
어림없는 일이다.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온 몸이 땀에 젖었다.
체육관 벽시계는 밤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체육관에는 퇴근하고 온 회원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유도 수련에 여념이 없었다.
최준구는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몸은 곧 재산이다.
보안회사 대표의 몸이 쉽게 아프거나 병든다면 이 또한 꼴불견일 테고 회사에서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퇴근을 하면 곧장 체육관으로 이동하여 1시간30정도 강한 훈련에 매진한다.
땀에 젖은 도복을 가방에 넣고 곧장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실에는 먼저 운동을 끝낸 회원 세 명이 씻고 있었는데 최준구를 발견하고 가벼운 목례로 아는 체를 했다.
깊은 가을이기 때문에 모두가 따뜻한 물을 틀었지만 최준구는 찬물 쪽으로 꼭지를 돌리고 씻기 시작했다.
한 겨울에도 찬물이다.
냉수를 이용한 목욕이 건강에 좋다는 자신만의 신념이다.
샤워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은 최준구를 가방을 메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지하 주차장에는 건물 경비원이 삼각 양철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다니며 곳곳에 떨어진 휴지조각과 담배꽁초 일회용 커피 잔 따위를 쓸어 담고 있었다.
최준구는 자신의 차로 걸어가며 키를 눌렀다.
10여 미터 앞에 있던 승용차의 라이트가 반짝 켜졌는데 문이 열린 것이다.
차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는 순간 뒤통수로 벼락이 떨어졌다.
빠아악!
양철 쓰레받기가 머리를 찍었다.
최준구는 이를 악물며 뒤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또다시 양철 쓰레받기가 떨어졌다.
욱!
하는 비명을 터뜨렸고 순식간에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된다.
차문에 기대고 있는 최준구 얼굴에 청소부는 계속 양철 쓰레받기를 내려쳤다.
최준구의 코가 너덜거렸다.
쓰레받기의 얇은 앞 부문에 얼굴이 찍히면서 살점이 칼에 베인 듯 깎여 나갔다.
퍽!
빠악!
최준구는 끝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청소부는 양철 쓰레받기를 내려놓더니 빗자루를 세워 쥐더니 내려찍었다.
뻐어억!
빗자루가 최준구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검은 숲에 야자나무 한 그루가 심어진 듯 했다.
청소부는 잠시 숨이 끊어진 최준구를 내려다보더니 지하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강력계 형사들 모두 소스라쳤다.
사람이라기보다는 도살장에서 막 잡아 놓은 돼지처럼 온 몸이 피로 덮여 있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건 머리에 박혀 있는 빗자루였다.
수많은 살인 사건을 수사하고 현장을 확인했지만 빗자루를 머리에 박아 놓은 엽기적인 사건은 처음이다.
“저게 들어갑니까?”
과학수사요원들이 감식을 하는 동안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명의 형사가 애기를 나누었다.
“끝이 뾰쪽한 정이라면 모를까 나무로 된 뭉텅한 빗자루 손잡이를 저만큼 깊숙하게 박다니 더욱이 위가 멀쩡한 걸 보면 위에서 뭔가로 내려치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은 듯 한데.”
그러면서 형사는 피해자 머리에 박힌 것과 똑 같은 빗자루를 거꾸로 쥐고 자신의 손바닥에 찍어 보았다.
퍽!!
퍼억!
서너 번 찍어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저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동료 형사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단 팀장 이동세가 천천히 과학 수사요원들 곁으로 걸어갔다.
주위를 살피지만 아무것도 눈에 띄는 건 없었다.
“뭣 좀 나와요?”
“털끝 하나 없습니다. 더 자세한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빗자루에도 쓰레받기에도 지문 하나 걸리지 않았습니다.”
“팀장님!”
그때 회색 점퍼 차림의 김낙영 형사가 다가왔다.
“CCTV를 봤는데요. 이 것 참.”
“왜?”
“경비원입니다.”
“뭐라구?”
“최준구를 죽인 사람이 이 건물 경비원이라니까요?”
“자네 지금 장난해.”
“못 믿으시겠다면 직접 가서 보세요. 경비원이 맞다니까요?”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듯 이동세는 눈을 깜빡 거렸다.
그때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모자를 쓴 경비가 다가왔는데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런 개 우라질, 난 아닙니다.”
“가지!”
이동세는 자신의 두 눈으로 보겠다는 듯 경비실을 향해 걸어갔다.
건물 1층 경비실에는 1시간 전 일어났던 지하 주차장 살인사건이 영화처럼 상영되고 있었다.
“으음!”
이동세는 등을 돌린 채 최준구를 쓰레받기로 찍는 경비원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사람을 죽일 때 칼이나 둔기 따위를 사용하는 건 가장 짧고 빠른 시간내에 목숨을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리한 흉기도 아닌 저런 양철 쓰레받기로 사람을 죽인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욱이 공격하는 용의자를 보면 서두른다거나 주위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았다.
또한 CCTV가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규칙적으로 쓰레받기만 내려친다.
“열세 번!”
쓰레받기를 13번 내려 쳤고 마지막으로 빗자루를 머리에 꽂는다.
“우우욱!”
이동세는 어깨를 떨었다.
물렁물렁한 흙속에 박히듯 그다지 힘을 주는 것 같지도 않은 듯 빗자루가 쏙 들어가버린 것이다.
“스톱!”
그러자 경비원이 재빨리 화면을 정지 시켰다.
“뒤로 돌려 빗자루를 박는 장면만 천천히 다시 한 번 봅시다.”
경비는 영상을 뒤로 돌렸는데 기계를 작동하는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칫 하다간 살인범으로 인생 망치게 됐다는 공포가 온 몸을 누르고 있었다.
영상은 계속 최준구를 때리는 장면에 이어 마지막으로 빗자루를 머리에 꽂아 넣었다.
이어 모든 것을 끝낸 듯 영상 속 경비는 느긋하게 손을 한번 털어 내고 주차장을 걸어나갔다.
“여...여기까지입니다.”
화면이 꺼졌는데도 이동세는 움직일 줄 몰랐다.
“아저씨 나 좀 봅시다.”
경비는 고개를 돌렸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김형사, 화면 돌려서 용의자의 정면 얼굴 좀 클로즈업 해봐.”
“예!”
김낙영 형사는 재빨리 화면을 움직여 맨 처음으로 돌렸다.
이어 천천히 끌어갈 때 이동세가 소리쳤다.
“됐어. 거기!”
김낙영 형사가 화면을 멈추었는데 CCTV화면에 정면으로 비치고 있었다.
“이토록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는데도 전혀 감추려는 동작이 없는 건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건데, 개자식.”
김낙영이 짜증을 냈다.
“아저씨 화면과 나란히 얼굴 대보세요.”
“난 아니라니까?”
“누가 범인이라고 했습니까? 그냥 대보기만 해요.”
경비는 모니터 뒤로 돌아가 화면과 얼굴을 나란히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