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1화: 호구(3)
휘익!
손을 놔버렸다.
최준구의 총알을 피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늦으면 연락을 받은 부하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릴 수도 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땅을 밟아야 한다.
30미터.
생과사의 거리다.
상체가 뒤로 젖혀지려하는데 머리의 무게 때문이다.
중심을 고쳐 잡으려 애쓰며 추락하던 권총수는 마지막 내공을 끌어 모았다.
퍼억!
그러나 몸에 전해지는 충격은 컸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졌고 온 몸이 부서지는 듯 했다.
우훅!
오른쪽 무릎에 못이 박힌 듯 했다.
무릎뼈가 충격으로 어긋난 것이 분명했는데 권총수는 벽을 잡고 몸을 세웠는데 근처는 작은 공원이었다.
담배를 피우던 사내들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권총수는 왼쪽 다리를 끌다시피 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단축 번호 한 개를 눌렀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세 명의 사내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자신의 계산이 맞았다.
나극주의 무전을 받고 쫓아온 것이다.
시민들은 사내들 손에 들린 엽총을 보며 소스라쳤다.
타아앙!
한 사내가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다행히 맞지 않았지만 막무가내로 나오는 사내들의 행동은 오늘 자신을 반드시 죽이려는 의지이다.
“형 나야. 도와줘.”
오민철이었다.
“총수야!”
오민철이 악을 썼다.
“서초동 천왕그룹 사옥 뒤야. 총을 맞았어.”
“이런 개자식들이, 금방 간다!”
권총수는 전화를 끊고 달렸다.
거리가 좁혀진다.
탕!
타탕!
사내들은 몰려오는 적을 향해 난사하듯 권총수를 향해 마구 쏘아댔다.
다행이라면 전문 엽사들이 아닌 탓에 권총수는 한 발도 맞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잡히면 진짜 끝이다.
으헉!
으와아아!
흡혈귀처럼 얼굴에 피를 뒤집어쓰고 도망치는 권총수를 보며 사람들이 기겁했다.
골목이 끝나고 차도가 나타났다.
권총수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달려오는 택시를 가로막았다.
택시는 손님을 태우고 있었지만 권총수가 가로 막았기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으며 섰다.
끼이이익!
벌컹!
권총수는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밟아, 가라고.”
20여 미터까지 거리를 좁힌 사내들이 택시를 향해 또다시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탕!
타탕!
권총수는 재빨리 상체를 숙였고 총에 맞아 깨진 창문 유리가 머리로 쏟아졌다.
다행히 총알은 조수석 문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부우웅!
택시가 출발했고 사내들은 더 이상 사격을 하지 않았다.
권총수는 따라오는지 보기 위해 백미러로 살폈지만 사내들은 몸을 돌려 사라졌다.
기사와 뒷좌석에 탄 여자는 겁에 질려 있었다.
“핸드폰 내리시죠.”
뒤에 탄 여자가 경찰에 신고를 하려는 듯 핸드폰을 몰래 누르려다 권총수에게 발각 된 것이다.
“네네!”
여자는 더듬거렸다.
슥!
권총수는 지갑을 꺼내 오만원 권을 두껍게 집어 기사에게 내 밀었다.
“수고비요. 저기서 좀 세워주시오.”
기사는 너무 많은 돈에 매우 놀란 표정을 하더니 더듬거렸다.
“병원으로 모셔다 드릴까요? 손님 이분 병원으로 모시고 가도 되죠. 차비는 깎아 드리겠습니다.”
“아네요. 난 여기서 내릴게요.”
여자는 무서운 듯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주고 재빨리 내려 버렸다.
기사는 재빨리 백미러를 통해 먼저 내린 여자를 보았는데 자신의 차량 넘버를 뚫어져라 보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에이 무슨 신고야.”
권총수가 준 큰 돈 때문일까 기사는 여자의 행동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부우웅!
차는 더욱 속도를 높였고 사거리를 만났다.
“병원부터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거리를 직진하면 오른쪽으로 병원 건물이 보였다.
“병원으로 데려다 주려는 기사님의 호의는 고맙지만 경찰에 시달릴 것입니다. 난 여기서 내려주시죠.”
기사는 방향 지시등을 켜면서 오른쪽으로 차를 멈춰 세웠다.
자신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권총수는 꿰뚫어 본다.
처음에는 조폭들의 패 싸움인줄 알았다.
얼마전 부산의 한 조직폭력배들이 엽총으로 무장한 채 참치 경매시장을 난입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었다.
비록 미국처럼 철저한 인명 살상용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엽총 정도는 흔하게 등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투나 앞을 내다보는 직관력, 지갑에서 감사함에 대한 사례를 위해 돈을 꺼내는 손길이 거침이 없다.
“걱정 마시죠. 난 결국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택시기사는 차에서 내린 권총수를 향해 말했다.
차 유리 깨진 것 정도는 받은 돈에서 얼마든지 갈아 끼울 수 있다.
나머지 지저분한 일은 세차로 정리하면 된다.
그렇게 해봤자 30만원이면 충분하며 건네받은 돈은 50만원이 훌쩍 넘는다.
그런 말이라도 해서 자신도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택시가 떠나고 권총수는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 문이 잠겼지만 온 힘을 다해 당기자 걸쇠가 터지면서 열렸다.
촤아아!
물을 틀어 얼굴의 피를 깨끗하게 닦아낸 뒤 더 이상 출혈이 없도록 상처 주위 혈도를 눌러 지혈을 했다.
“음!”
현기증이 돈다.
상처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깊다는 뜻이다.
권총수는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상대는 마석춘이었다.
“조용히 치료 받을 만한 병원 한 군데 소개해 주시죠.”
“무슨 일입니까? 어디계세요?”
“병원부터.”
마석춘은 긴박한 상황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병원을 말해 주었다.
권총수는 건물을 나가 택시 한 대를 세웠다.
“태양병원이오.”
“예!”
권총수는 조심스럽게 상체를 뒤로 붙였다.
룸밀러로 보던 기사가 인상을 썼는데 옷 여기저기에 묻은 피를 발견한 것이다.
“기사님!”
“예!”
화들짝 놀란다.
“구화지문(口禍之門)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십니까?”
기사는 모른다는 듯 뒤를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고개를 뒤로 붙인 채 택시 천장을 보며 말했다.
“입은 재앙을 불러오는 문이라는 뜻이지요. 때로는 모른 체, 가끔은 못 본 체, 필요에 따라서는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이라는 애깁니다. 난 이 차량의 넘버 3429를 알고 있죠”
기사는 표정이 굳어졌다.
만약 자신의 피 묻은 행색을 보고 경찰에 신고한다거나 엉뚱한 짓을 했다가는 목숨을 장담 못한다는 뜻이다.
“염려 마십시오. 난 손님을 최선을 다해 모실 뿐입니다.”
“부라보!”
권총수는 조용히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총알이 박힌 신체 곳곳이 칼로 도려내는 것 같으면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대력금강심법을 운용하며 열기를 내리기 위해 애썼다.
택시는 태양병원 로비에서 멈췄다.
“사장님!”
권총수가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마석춘이 달려왔다.
화악!
마석춘의 눈이 커졌다.
“이런!”
한눈에 총상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이 권총수를 이동 침대에 눕히고 곧바로 달려 들어갔다.
마석춘은 사라지는 침대를 보며 표정이 굳었다.
권총수가 저만큼 상처를 입을 정도면 싸움이 아닌 전쟁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끼익!
그때 한 대의 택시가 다시 들이 닥치듯 도착했고 오민철이 내렸다.
“오 사장님!”
마석춘이 다가가자 오민철이 급히 물었다.
“총수는 어찌됐습니까?”
“수술실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많이 다쳤습니까? 굉장히 힘들어 하던데?”
“글쎄요. 우리의 몸과 다르기 때문에 제 눈으로 본 것은 피를 많이 흘린 것 같다는 것 말고는...”
오민철이 수술실 2층이라는 화살표를 바라보았다.
초조한 듯 어금니를 물고서 로비를 서성거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어제 검찰에 잡혀 갔죠. 다행히 풀려나오긴 했는데 아침 일찍 권악수를 만나러 간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권악수를 만나러 갔단 말입니까?”
“직접 만나 의향을 물어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검찰 유치장에서 하루 밤을 보냈는데 꿈속에 죽은 부하들을 보았다면서 전화 목소리가 깊이 잠겼더군요.”
오민철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병원 밖으로 걸어갔다.
멀리 흡연구역이라고 쓰인 곳으로 걸어가더니 담배를 피워 물었다.
“개자식!”
오민철은 이를 갈았다.
뒤따라 온 마석춘도 담배를 물었는데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바쁠텐데 그만 가보시죠?”
마석춘은 장사하는 사람이다.
“이 아침에 무슨 손님이 있겠습니까?”
괜찮다면서 자리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주차장에 차량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병원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몸속에 박힌 총알들은 모두 제거했다.
남은 건 왼쪽 무릎이었는데 의사는 족히 한 달은 움직이지 말 것을 요구했다.
권총수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무릎을 고정시키기 위해 발목까지 깁스를 했다.
마석춘과 오민철은 깁스 한 다리를 어이없다는 듯 내려다보았으며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권총수가 씨익 웃었다.
“형, 누구 죽었어? 인상 좀 펴.”
“너 지금 웃음이 나오냐?”
“그럼 울까?”
“우리 같았으면 이미 시체 됐어 임마. 너나 되니까 이 정도에서 끝났지. 한 달 동안 이렇게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 한다니 젠장.”
“형 내가 누구야?”
오민철이 화난 얼굴로 돌아보았다.
“나 절정의 고수야. 지금 이 몸으로 무림에 데뷔해도 이름 석자 금방 날린다고.”
“날리면 뭐해. 총에 맞아 죽을 뻔 했는데.”
“의사는 한 달 이라고 했지만 난 사흘이면 돼.”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그러고 보니 권총수는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몸속에는 엄청난 내공이 들어 있으며 그는 소림의 속가제자이기도 했다.
“의사들이 뼈는 맞추어 놨으니 난 빨리 단단해지도록 상처부위에 극양의 진기를 쏘이면 돼.”
마석춘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으나 오민철은 다르다.
내공과 외공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운기요상으로 무엇이든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도 배웠다.
“진짜지?”
“내 걱정은 말고 형은 여기 이 사람들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 좀 해와.”
그러면서 미리 써놓은 듯 머리맡에서 쪽지 한 개를 꺼내 주었다.
쪽지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고봉석(사옥 보안팀장), 나극주(권악수 비서), 최준구(케이 원 사장)’
쪽지 이름을 확인한 오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성적까지 훑어 올게.”
오민철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런 일은 아무래도 그분이 빠를 텐데요. 채명천씨.”
권총수가 채명천이 누구냐는 듯 얼른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자 마석춘이 빙긋 웃었다.
“현역때 뇌물 사건으로 옷 벗은.”
“아 흥신소 채 사장님.”
“그분이 이런데 전문가 아닙니까? 아마 넉넉잡고 사흘, 그러니까 사장님이 여길 나가기 전까지는 정확히 체크해 올 것입니다.”
“지금도 합니까?”
“하긴 하는데 이름이 바뀌었죠. 채명천 범죄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범죄연구소?”
오민철 역시 채명천에 대해 들은 바가 있어 눈을 빛냈다.
“범죄연구소라면 무슨 학술 집단?”
“겉으로는 한국 경찰의 수사형태 및 범죄수사에 대한 학문적, 실무적 분석과 합리적 해결방안 제시를 찾기 위한 연구기관이라고 합니다.”
권총수와 오민철 모두 눈이 커졌다.
“완전 전문영역 아닙니까?”
오민철이 더듬거렸다.
마석춘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오래전 한번 찾아갔더니 후배들과 세븐 오디 포커 치고 있더군요.”
오민철은 여전히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조금 멍한 얼굴을 했지만 권총수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흥신소라고 하면 웬지 저렴해 보이잖습니까?”
“아아!”
오민철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흥신소 보다는 범죄연구소가 훨씬 좋긴 하지. 명함을 내밀어도 흥신소 사장 하는 것보다도 범죄연구소 소장 채명천 하면 달라 보이지.”
“전화 해보시죠. 바뀐 전화번호 문자로 보냈습니다.”
권총수는 옆에 놓인 핸드폰을 열고 마석춘이 보내준 번호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