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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49화 (349/651)

제349화: 호구(虎口)(1)

검정색 승용차가 지나가고 바닥에 떨어진 은행잎들이 바람에 휘말려 올라갔다.

차는 은행잎이 수북하게 쌓인 도로를 달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차는 엘리베이터 가까운 곳에 멈췄는데 승용차 문이 열리며 김갑종 부부장 검사가 내렸다.

차문을 잠근 김갑종은 좋은 일이 있는 듯 휘파람을 불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김갑종이 들어서자 먼저 출근한 직원들이 인사를 했다.

김갑종이 곧장 사무실을 가로질러 안쪽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박삼명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조심스럽게 김갑종의 방문을 노크 했다.

길게 숨을 한 번 내쉬며 문을 열고 들어선 박삼명 계장은 부동자세로 서서 보고를 했다.

“부장님! 권총수 조금 전 취조 시작했습니다.”

김갑종은 손목시계를 보며 대답했다.

“그래요?”

“만나보시죠.”

“서둘 것 뭐 있습니까? 남는 게 시간인데.”

싱긋 웃으며 김갑종은 핸드폰을 대충 한 번 검색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한 번 가볼까요. 나도 어떤 놈인지 궁금한데.”

“가시죠!”

박상명은 김갑종을 데리고 방을 나왔다.

사무실 맞은편으로 또 하나의 문이 있었는데 박삼명이 앞서 들어가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사방이 꽉 막힌 사무실에 조그만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권총수에게 질문을 하던 서른 초반 가량의 수사관이 들어서는 김갑종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냐. 아냐 계속해.”

김갑종은 천천히 걸어왔는데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부장님 커피 드세요.”

여직원 하나가 문을 열고 커피를 가져왔다.

“땡큐, 감사해요. 지은씨”

김갑종은 호들갑을 떨며 커피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커피 맛 죽이는구만.”

후룩!

후루룩!

김갑종이 나타나면서 조사는 잠시 중단되었고 커피 마시는 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배 수사관은 커피 마셨습니까?”

권총수는 취조하던 수사관에게 묻는 것이었다.

“예 저는 한 잔 했습니다.”

김갑종은 건들거리며 고개를 끄덕하더니 느릿하게 다가가 책상위에 커피 잔을 놓았다.

슥!

그리고 책상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권총수를 내려다보았다.

“어이, 자네가 권총수라는 사람인가?”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예 맞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 앞으로 잘 사귀어 봅시다.”

김갑종이 악수나 한 번 하자는 듯 손을 내 밀었다.

권총수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지은 죄가 뭡니까?”

김갑종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권총수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알면서 묻나? 넌 살인죄로 기소 될 것이고 사형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분명히 말하는데 오늘 이후로 다시는 밝은 하늘을 바라볼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지.”

“무슨 죄이기에 그렇게 살벌합니까?”

“어쭈.”

김갑종은 여유를 보이는 권총수가 못마땅한 듯 이마를 찡그렸다.

“여전히 살아 있네. 앞으로 친하게 잘 지내 봅시다.”

바로그때 문이 열리더니 커피를 가져왔던 여직원이 급히 들어섰다.

“부장님, 미국 대사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미국 대사관이라는 말에 김갑종이 고개를 돌렸다.

딸칵!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백인 사내가 들어섰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김갑종을 향해 말했다.

“당신이 김갑종 부부장 검사입니까?”

“그렇습니다만?”

“권총수씨를 무슨 혐의로 긴급체포 한 것입니까? 그는 미합중국 시민입니다.”

미국 시민권자라는 말에 김갑종은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미국 정부는 정식으로 한국 정부에 항의하겠습니다. 당장 풀어주시오.”

그때 후다닥 하는 소리가 들리며 약간 뚱뚱한 마흔 초반가량의 사내가 들어섰다.

“부장님!”

김갑종이 재빨리 책상에서 일어섰는데 대검 강력부장 민춘식 검사였다.

“자네 뭐하는 거야? 미쳤어. 생사람을, 그것도 외국인을 잡아다 뭘 어쩌자는 거야. 당장 풀어줘,”

“부장님!”

“자네 인생 망치고 싶어. 죄송합니다. 미스터 브라운.”

민춘식이 미국 대사관에서 나온 브라운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외교적 절차를 밟아 항의 하겠습니다.”

“브라운 진정하시고.”

외교적인 문제로까지 나가면 골치 아프다.

민춘식은 재빨리 브라운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민춘식이 사라지자 김갑종의 안색이 굳어졌다.

한참을 서 있던 김갑종이 고개를 돌려 권총수를 바라보았는데 담담히 웃는다.

마치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만난 것 같은 얼굴표정에 김갑종의 인상은 더욱 우그러졌다.

“왜 웃나? 즐거운가?”

김갑종의 이죽거리자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손으로 책상을 짚고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세우고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온 권총수는 정색했다.

“원래 혀가 짧소?”

반말하는 것에 대한 빈정거림이었다.

“오래 살려면 혓바닥부터 고쳐야겠소.”

그리고 자신을 조사하던 수사관을 향해 팔목을 내밀었는데 수갑을 빨리 풀라는 뜻이었다.

수사관은 김갑종의 얼굴을 살피더니 다가와 수갑을 풀어 준다.

철컥!

권총수는 답답했다는 듯 양손을 흔들어 보았다.

탁!

김갑종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순간 김갑종의 표정이 굳어진다.

“수고 하세요.”

“권총수.”

빙글!

한발 떼던 권총수가 돌아섰다.

그런데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금방이라도 죽일 것 같은 눈빛에 김갑종은 움찔 했다.

“어제 밤 당신 부하들이 똑똑해서 끌려온 줄 아십니까? 그 만큼 체면 세워줬으면 고마워 할 줄 알아야지.”

잡혀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뜻이었다.

“권악수에게 어느 정도의 가오는 잡아야 할 것 아닙니까? 잘나가는 검사 친구가 나 같은 용병 한 놈 체포하지 못한대서야 얼마나 쪽팔리겠습니까?”

그래서 잡혀 줬다는 것이다.

“그만 하시죠.”

지켜보던 수사관 사내가 불편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수사관은 사무실 문을 열었다.

“돌아가도 좋습니다. 권총수씨!”

수사관은 권총수를 빨리 보내기 위해 서둘러 말했다.

“아무리 한국이 검사들 세상이라지만 조심해요. 난 검사 그런 것 몰라요.”

탁!

권총수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김갑종의 표정은 돌덩이가 되어 있었다.

배수사관이라는 사내는 김갑종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우드득!

김갑종이 주먹을 쥐었는데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김갑종은 분노로 온 몸을 떨었다.

검찰청 밖으로 나오는데 한 대의 승용차가 다가와 멎었다.

운전석 유리가 내려가고 핸들을 잡은 브라운이 얼굴을 드러냈다.

“타시죠!”

권총수는 두 말 않고 조수석으로 돌아가 차에 올랐다.

부우웅!

차는 천천히 검찰청을 빠져나가 도로에 들어섰다.

흘긋!

브라운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저 소개가 늦었습니다. 대사관에서 서기관으로 일하고 있는 브라운입니다.”

“담배 하나 피워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권총수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 뒤 유리를 살짝 내렸다.

대사관 서기관은 겉 명함일 것이고 안을 들여다보면 랭글리와 줄을 닿고 있을 것이다.

즉 CIA 화이트 요원이 분명했다.

“맥보란씨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뻔히 알면서 묻는 것이 이들의 수법이다.

맥보란과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을 비교하려는 정보원 특유의 습관인데 같은 얘기라도 두 사람 입에서 나오는 내용의 강도와 크기에 반드시 차이가 존재한다.

이쪽은 확대하고 저쪽은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 줄일 수도 있다.

그 차이에서 둘의 관계를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난 누구에게도 전화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맥보란씨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브라운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권총수는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는데 자신을 미행하고 감시하지 않았다면 절대 검찰에 붙잡혀 왔다는 걸 알 수가 없다.

브라운이 감시하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며 검찰에 체포되자 재빨리 맥보란에게 보고 했을 것이다.

물론 맥보란은 랭글리를 통해 한국 정부에 강력한 항의를 전달했을 것이다.

브라운은 얼굴이 빨개졌다.

“사실은...”

주위를 맴돌았던 건 사실이다.

권총수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에서야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한마디로 자신은 권총수의 손바닥에서 계속 놀고 있었음을 의미했기에 창피한 것이다.

“여보세요!”

권총수가 통화를 시도했다.

“여긴 아침입니다. 9시가 조금 못됐군요.”

상대는 카이로에 있는 맥보란이었다.

맥보란이 무슨 말을 했는지 권총수는 빙긋 웃더니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날 알면서 그런 말을 하십니까?”

권총수는 몇 마디 더 나눈 뒤 전화를 끊고는 브라운에게 물었다.

“맥보란씨와 잘 아는 사이오?”

“한때 직속상관이었죠. 워낙 원칙적인 사람이어서 고생 좀 했습니다.”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브라운씨에게 부탁하라는 얘기를 하는군요.”

“당연히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왕 태워준 김에 천왕그룹 사옥까지 가주시겠습니까?”

천왕그룹 사옥이라는 말에 브라운의 눈이 빛났다.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자꾸 식솔들만 보내 귀찮게 하니 직접 찾아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뭐 좋습니다.”

브라운은 속도를 냈다.

부우웅!

차는 출근길 차량들이 몰려있는 도로를 빠르게 달려갔다.

권총수를 내려준 브라운이 행운을 빈다면서 떠나갔다.

권총수는 사라지는 브라운의 차량을 잠시 바라보다 맞은편 천왕그룹 사옥을 올려다보았다.

‘얼마 전에 A동이 매물로 나왔는데 8천500억에 거래 되었다고 했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수록 기계와 자동화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공실이 늘어나자 A동을 내놨다는 뉴스를 보았다.

미국을 비롯한 사우디와 일본의 부동산 기업들이 달려들었는데 최종 승자는 일본 기업이었다.

신호가 바뀌고 권총수는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출근길 시민들의 발걸음은 바쁘다.

느긋한 사람은 권총수 혼자뿐이었다.

길을 건너 육중한 대리석으로 외관이 덮인 건물 앞으로 걸어갔다.

계단을 놀라가 회전문을 통과하자 검색대가 나타났다.

지하철 개표구처럼 생긴 검색대가 여섯 개 있었는데 모두가 사원증을 태그하며 통과하고 있었다.

직원들이 아니면 애초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권총수는 자연스럽게 검색대로 다가가더니 그대로 통과 해버렸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본 한 명의 보안요원이 있었다.

그 또한 권총수를 지켜보았는데 분명 카드 태그를 하지 않았는데 들어왔다.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카드를 대지 않은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잠깐!”

보안요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 손님 잠깐만요.”

권총수는 다가오는 보안요원을 바라보았다.

“사원증을 볼 수 있을까요?”

“없는데.”

“네?”

“천왕그룹 직원이 아니니 당연히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안요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카드도 없이 어떻게 들어왔단 말인가.

그때 두 명의 보안요원들이 더 다가왔다.

왜 그러느냐는 듯 권총수를 가로막고 있는 보안요원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직원이 아닌데 들어왔습니다.”

두 보안요원 역시 놀란 표정을 했다.

카드 없이 들어오게 되면 삐이이 하는 소리가 울리고 금세 보안요원의 눈에 띄게 되어 있었다.

“이쪽으로 좀 오시겠습니까?”

보안요원이 권총수를 데리고 돌아섰다.

권총수는 좋다는 듯 뒤를 따라갔는데 비상구 문을 열더니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 1층에 보안반이라는 간판이 천장에 붙어 있고 화살표 표시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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