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46화 (346/651)

제346화: 독촉(2)

권철태는 길게 숨을 내 쉬었다.

“줘야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거리를 와 버렸습니다. 이제는 한 사람이 죽어야 끝납니다.”

바로 그때 인터폰이 울리며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택배 왔습니다. 보내는 분 성함이 조무종씨라고 쓰였습니다.”

조무종이란 말에 권악수의 눈이 빛나며 탁자위에 있는 인터폰을 눌렀다.

“가져와요.”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여비서가 우체국이라고 붉은 글씨가 박힌 조그만 택배를 들고 오더니 탁자 위에 놓고 나갔다.

권악수는 택배를 들어보더니 뭔가 싶은 듯 서랍에서 커타칼을 꺼내 밀봉된 테이프를 잘랐다.

상자를 열자 안에 신문으로 구깃구깃 싼 물건이 나왔고 망설임없이 펼치던 권악수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헉!”

권철태도 소스라치며 뒤로 물러났다.

벌컹!

비명소리에 여직원과 남자 직원이 뛰어들어왔는데 그들도 탁자위에 올려진 사람의 손목을 보며 흠칫했다.

“뭐해, 빨리 안 치워.”

권악수가 소릴 질렀지만 남녀 직원 모두 두려운 얼굴로 꼼짝하지 않았다.

“이런!”

파아악!

권악수는 빈택배 상자로 손목을 사정없이 쓸어 버렸다.

휙 날아간 손목은 하필 여직원 앞으로 떨어졌다

“엄마야.”

여직원은 기절할 듯 놀라며 밖으로 도망쳐 나갔다.

“경찰이죠. 여긴.”

“안돼!”

남자 직원이 사태가 심상찮다는 걸 직감한 듯 112에 신고를 하자 권철태가 소리쳤다.

“끊어라.”

남자 직원은 별일 아니라면서 핸드폰을 내렸다.

권철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벅뚜벅 손목이 버려진 곳으로 걸어가더니 거침없이 주워들고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우체국 택배 상자에 넣었다.

“자네는 그만 나가보게. 입단속 잘 시키게. 입밖으로 이 일을 떠벌렸다가는 자네 천왕그룹에서 일하지 못하게 될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대통령님!”

남자직원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벌컥벌컥!

권악수는 정수기에서 컵 가득 물을 받아 마셨다.

어느정도 안정이 된 듯 탁자 위에 손목을 올려 놓고 앉아 있는 권철태를 바라보았다.

“로렉스를 찬 손인걸 보니 평범한 사람 같지는 않구나. 조무종이란 사람의 손인 모양이지?”

산전수전 겪은 노회한 정치인 답게 단번에 앞뒤 맥락을 간파한다.

권악수가 천천히 다가와 맞은편에 앉았다.

그 역시 잠시 손목을 내려다 보더니 핸드폰을 들었다.

연락처를 찾는 듯 계속 화면을 올리더니 한곳에서 멈춘다.

꾸욱!

엄지손가락으로 연락처를 눌렀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권악수는 몇 번에 걸쳐 끊었다 누르기를 반복했다.

“여보세요?”

상대가 받았다.

그런데 아무 말이 없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즉 여기 있는 손이 진짜 당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내 손 맞습니다.”

“조회장 지금 어디요?”

“병원입니다.”

권악수는 잠시 전화기를 들고 있더니 천천히 내렸다.

잠시 굳은 얼굴로 앉아 있던 권악수는 또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김부장 나야. 부탁할 일이 있어 전화했네.”

“부탁이라뇨? 천왕그룹 차기 회장님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전 목숨걸고 뛸 준비가 되어 있사옵니다.”

“오늘 저녁 시간 좀 내줘.”

“저녁 사는 건가? 난 무조건 오케이야.”

전화를 끊자 권철태가 물었다.

“김 검사냐?”

대검 강력부 부부장 검사로 있는 친구 김갑종으로 대학 동창이어서 권철태도 잘 알고 있었다.

“뭐하려고?”

“아직 무서움을 모르는 놈에게는 뭔가를 가르쳐 줘야죠.”

“온 집안이 망하는 걸 보려고 그러냐?”

“무슨 소리입니까?”

“너희 작은 어머니와 마진이 마수가 어찌 죽었다고 생각 하느냐? 넌 그 아이가 용병이라는 것만 알뿐 우리가 모르는 엄청난 능력을 지녔다는 걸 전혀 모르는구나.”

씨익!

권악수는 여유롭게 웃었다.

“엄청난 능력이라? 돈이 많나 보죠? 저격수 출신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만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여긴 대한민국입니다.”

권악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히 대한민국 검찰에 맞설수 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보육원 출신이라던데 많이 컸군.”

보육원이라는 말에 권철태는 움찔했다.

“악수야 마지막으로 말한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난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본다.”

십억 달러 지불하라는 뜻이었다.

권악수는 입술을 비틀었다.

“이상하군요. 아버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자꾸 그 친구 이름을 들먹이며 돈을 지급하라고 독촉을 하니.”

권악수는 조롱하듯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덧붙였다.

“이건 내 일입니다.”

“장사꾼의 생명이 뭐냐. 약속 아니더냐?”

“약속은 깨지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친 아버지 아닙니까? 법과 도덕만을 지켜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은 버려라. 성공은 얼마만큼 탈법과 불법을 잘 이용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가르침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권철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내줘서 고맙다.”

권철태는 사무실을 나갔다.

탁!

문이 닫혔다.

“노망이 들었나 어울리지 않게.”

권악수는 무척 불쾌한 듯 담배를 피워물었다.

“갑자기 성인군자가 된 건 아닐테고, 당신이야 말로 온갖 피는 다 묻히고 살았으면서 길가던 개가 웃겠군!”

후우!

길게 연기를 내 뿜는 권악수의 표정은 딱딱해 있었다.

벤츠600 한 대가 주차장을 나왔고 뒤이어 또 한 대의 승용차가 따랐는데 경호 차량이었다.

지금 경호원들은 청와대 경호실에서 파견된 정식 경호관들로 퇴임후 10년 동안 수행한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측의 요청이 있을 경우 5년을 더 근무할 수 있는데 권철태는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권악수는 결코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더욱 커지고 넓어질 것이 뻔했다.

지이잉!

전화가 걸려왔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꺼냈다.

윤수석이라고 쓰인 액정을 보며 통화를 시도했다.

“어딘가? 그렇게 쉽게 허락을 하더란 말인가. 고생했네. 그렇게 하지.”

전화를 끊은 권철태는 기사를 향해 말했다.

“북악공원으로 가세.”

“예 대통령님!”

운전사는 대답하며 조금씩 속도를 높였다.

북악공원이지만 위치는 인왕산 자락에 있다.

공원이랄 것도 없이 조그만 부지에 철봉과 작은 배드민턴장 하나가 전부이다.

공원 입구에 두 대의 승용차가 있고 근처에 정장의 사내들이 돌아서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공원 벤치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재임시 정무수석을 지낸 윤태섭과 권철태였다.

슥!

윤태섭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약속 5분 전이다.

권철태는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상당히 초조한 얼굴이었다.

그를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는 아주 잠깐이었고 현직에 있었기 때문에 자세한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상대 역시 자신에게 무슨 흠집을 잡으려는 의도는 없고 그냥 홧김에 어떤 사람인지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식의 마음으로 왔다고 했다.

의외로 시원한 아이였다.

세상을 구차하게 살지 않으려는 모습이 또렷했다.

부정적인 면보다 맑고 건강한 기억이 훨씬 많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적이 되어야 한다.

적(敵)은 무조건 공격대상이고 제거해야 하는 장애물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아이들이 언제까지 희생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혹시나 하며 한 번 만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는데 예상 밖으로 호의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서둘러야 했으므로 곧장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고 오케이 한 것이다.

대통령직에 있다보면 여러 극비정보를 접한다.

국내외 정세를 살필수 있도록 끊임없이 각 기관들이 보고를 올리는 것이다.

그중 한 가지 사실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CIA는 세계각국에 많은 현지인들을 정보원으로 고용하고 있다.

그중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는 CIA 정보원 미스터 엑스(X)라는 사람이 있었다.

티벳 출신인데 그에게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알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물속에서 산소통 없이 10분 가까이 버틴다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10여 미터 정도 되는 벽을 거미처럼 타고 올라가는데 벽호공(壁虎功:여기서 벽호는 도마뱀을 뜻함)이라는 기술이라고 했다.

인간은 절벽이 아닌 수직의 건물벽을 타고는 단 일 미터도 오를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엑스라는 정보원은 비도술에 매우 능했다.

즉 젓가락이나 짧은 비수 따위를 던져 2,30미터 떨어진 사람의 심장이나 목에 정확히 박아 넣는다고 했다.

만약 그런 정보를 알지 못했다면 지금 찾아오는 사내의 능력을 무시했을 것이지만 이제는 아니다.

결정적인건 증거는 없으나 기동민 정무수석으로 변장한 인물 역시 지금 기다리는 사람이 틀림없다.

세상에는 과학으로 규명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다.

파키스탄의 훈자사람들 평균 수명이 120살이던 것도 밝혀지지 않았고, 일본 북해도 어딘가에는 아직도 닌자들이 있다는 보도를 봤다.

벤츠 한 대가 멈췄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내린 사람은 권총수였다.

권총수는 상의 점퍼 깃을 더듬듯 만졌다.

둥근 뺏지 한 개가 걸려 있다.

주위를 한 번 살피더니 공원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해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경호원이 앞을 막아섰다.

권총수는 양팔을 벌려 그들의 수색에 협조했다.

권총수의 몸을 훑은 경호원들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들어가도 좋다는 사인을 했다.

권총수는 보도블럭이 깔린 공원길을 걸어 올라갔다.

잠시 후 소나무들이 우거진 숲 가운데 공터가 있었으며 권철태가 벤치에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어서 오게!”

권철태가 손을 내밀자 권총수는 망설이지 않고 잡았다.

“지난번에 볼 때 보다 얼굴이 더 좋군?”

“대통령님도 건강해 보입니다.”

“고맙네.”

두 사람은 나란히 어깨를 하고 공원을 걸었다

멀리서 지켜보는 윤태섭의 얼굴에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오늘 일이 잘 되어야 한다.

일이 잘못되면 피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 것이다.

권악수를 포함해 주위 사람들은 권총수가 어떤 힘을 지녔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엄밀히 따지면 모르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것이다.

측근들을 통해 권총수가 어떤 능력을 보여주었는지 설명까지 했지만 그놈이 귀신이란 말이냐며 웃고 말았다고 한다.

“총수군.”

권철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이럴 건가?”

“언제까지라? 뭘 말씀하시는 건지?”

권총수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심증은 가겠지만 증거를 대보라는 자신감이었다.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 그렇지만 어쩌란 말인가? 우리 가문을 상대로 이런 무자비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서 사막의 흑새 뿐인 걸.”

“감히 저 따위가 어떻게 천하제일가를?”

“지금 천하제일가라고 했는가?”

“권씨가 마음먹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잖습니까? 백악관 주인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그랬던가요. 이제 진정한 권력은 돈이다. 돈을 누를 힘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틀린 얘기 아니죠. 권씨가문은 정치권력에까지 깊숙이 손을 뻗고 있고.”

이만하면 겁날 것 없는 집안 아니냐.

나 하나쯤 우습게 보일 것이고 당연히 십억 달러를 주기 싫은 생각이 들것이다.

척!

권총수는 걸음을 세우고 권철태를 돌아보았는데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란 사람이 좀체 물러나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건 아직까지 누구와 싸워 져 본적이 없습니다. 끝까지 쫓아가 내게 칼을 겨눈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가르쳐 주며 살아왔죠.”

흔들림이라고는 전혀 없다.

또한 허풍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저건 진짜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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