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43화 (343/651)

제343화: 맨 헌터(2)

권씨가문의 세 사람이 죽은 것은 죽은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권악수 죽음에는 분명 의심을 하고 있으나 이 또한 동생이지만 강력한 자신의 라이벌이기 때문에 오히려 잘 죽었다는 눈치다.

‘승부가 안 된다’

권악수는 절대 권총수의 상대가 아니었다.

권악수가 기어간다면 권총수는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해서라도 권악수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고 싶은 것이 지난 세월에 대한 그나마 남은 정리였다.

권악수 같은 부류는 거의 죽을 만큼 당해봐야 물러선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후퇴라는 건 없다.

‘싸우면 백전백패다’

죽어야 모든 것이 끝난다.

지이잉!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받기로 했다.

“배웅대 상무님이죠?”

여자 목소리였다.

“누구십니까?”

“동아신문 장미윤 기자입니다. 저 아실거에요. 물론 개인적으로 자리를 가진 적은 없지만 권악수 사장님 인터뷰때 몇 번 뵀는데?”

충분히 기억한다.

장미윤에 대한 가장 분명한 기억은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자기뿐만이 아니라 자사 자매지인 동아스포츠 신문에서 미스 코리아 대회에 나가도 되는 미모라고 극찬하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얼굴만 예쁘면 잊을 수도 있으나 회견 때마다 던지는 질문이 송곳이었다.

웬만한 사람도 그녀에게 걸리면 탈탈 털린다.

“어쩐 일로?”

“조금 뵐 수 있을까요? 회사로 전화를 걸었더니 휴가 중이라더군요? 물론 사직서를 내놓고 나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역시 기자답게 정보 하나는 빠르다.

암자라고 해서 단촐 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규모가 크다.

정면 네 칸짜리 대웅전이 있었는데 계단 오른쪽에 세워진 설명문을 읽어보니 세워진 역사가 무려 300년이 넘는다.

고개를 들이 밀어 대웅전안을 보았는데 조용했다.

잠시 전면에 결가부좌 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을 바라보았는데 언제 봐도 포근한 인상이다.

권총수는 대웅전을 지나 왼쪽 요사채를 향해 걸어갔다.

“총수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민철이 등산복 차림으로 서 있었는데 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모양이었다.

피식!

권총수는 어이없다는 빙긋 웃으며 물었다.

“뭐하는 거야 지금?”

오민철은 권총수 앞을 스치듯 지나가더니 우물가로 다가가 주황색 바가지로 물을 떠서 마셨다.

권총수는 샘으로 다가갔다.

“이곳 절은 어떻게 알았어? 주지 스님과 아는 모양이지?”

“어머니 외가 쪽으로 먼 친척이야.”

“가자!”

“어딜?”

“여기서 살거야? 출가 작정하고 온 건 아니잖아?”

“너 일에 내가 방해만 된다면서?”

권총수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특별한 말은 아니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사막의 전장에서도 자주 뱉어낸 말이다.

정신 안 차릴 거야, 차라리 죽어라. 에이 씨이 하는 말 정도는 둘 사이에 주저 않고 내 뱉던 흔한 언어였다.

그런데 오민철은 생각보다 심한 자존심의 상처를 받은 모양이다.

“그 정도였어? 절에 들어올 만큼 섭섭했냐고?”

“이상하게 이번에는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더라.”

다시 바가지로 물을 떠서 마시는 오민철을 바라보는 권총수는 죽은 비렌드라를 떠올렸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상대의 감정은 다를 수가 있지’

그럴지도 모른다.

항상 밝고 호탕했으며 앞장 서는 걸 좋아 하는 오민철이다.

웬만한 말은 그냥 웃어 넘기며 소화해주었기에 그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더욱이 칼을 들었고 숫적으로 열세였다고는 해도 죽을 뻔할 만큼 당한 터라 복수심은 더욱 컸을 테다.

권총수 입에서 당한 만큼은 돌려줘야지 하는 말이 나올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나가 있으라는 모욕적인 말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사실 권총수에게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그건 비밀이었다.

비밀이란 거의 지켜지지 않는 습성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비밀을 선호한다.

특히 불법 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비밀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지만 배신자는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모든 화의 근원이 입(口)이라고 했을까.

오민철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살다 보면 죽을 때까지 덮어야 할 말을 자신도 모르게 꺼내 버릴 때가 있다.

권총수가 염려 하는 건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몸과 마음이 스스로의 의지로 통제되지 않는 나이가 되면 그때부터는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비밀을 누설하는 것이다.

비정하다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정보원들이 동료를 죽이는 건 모두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늙으면 판단력이 둔화되고 입이 가벼워진다’

맥보란의 말이다.

물론 그가 지은 말이 아닌 CIA에 나도는 격언이라고 했다.

자신은 겁주기 위해 오지 않았다.

십억 달러는 내놓지 않으면 많은 사람을 죽일 것인데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현장을 속속들이 보인다는 것이 다소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안 갈거야?”

권총수가 눈을 부라렸다.

“기다릴 테니까 빨리 짐 챙겨 나와.”

권총수는 터벅터벅 절간 입구 주차장을 향해 걸어갔다.

산길을 내려가는 벤츠 승용차가 있었다.

핸들을 잡은 권총수는 조수석에 앉아 앞만 바라보고 있는 오민철을 흘긋 보았다.

“뉴스를 들어 대충은 알고 있지?”

세 사람이 죽은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조금!”

“그것 말고는 아직 진행되고 있는 건 없어. 당분간 지켜보려고 해.”

“만약에 말이다. 권악수가 끝까지 주지 않고 버티면 어떡하지?”

오민철의 눈이 빛난다.

“방법이 없지.”

“진짜 모조리 죽이겠다고?”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죽이지 못할 것도 없지. 누가 내 돈을 떼먹어.”

“경찰이 가만있겠어?”

“내가 범인이라는 걸 경찰은 알겠지. 그런데 증거가 없을 걸 아마. 경찰이 내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찾는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고, 중요한 건 권악수란 놈이야. 온 가족이 죽는데도 버틴다면 그 놈은 절대 살아서는 안 될 인간이지. 그런 무지막지한 놈이 기업 경영 해봤자 뻔해.”

오민철은 긴장한 듯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런 오민철을 보며 권총수가 얄팍한 미소를 지었다.

“형!”

“응!”

“왜 내가 형을 제쳐놓으려고 했는지 조금 알겠어?”

“그래!”

권총수는 싱긋 웃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악의 기운이 있다는 거야. 그러나 악인이 되지 않는 건 선한 기운이 더 세기 때문이라는 거지. 한마디로 선한기운이 악한 기운을 이기는 셈이지. 형이 보기에 난 어때. 선이야. 악이야?”

느닷없는 선악에 대한 질문에 오민철은 무슨 의미인가 싶어 운전하는 권총수를 살폈다.

“너야 당연히 착이지. 난 너처럼 착한 놈 못 봤다.”

“아부 떨지 말고, 솔직히 말해봐.”

“아이 씨바, 안 믿으려면 왜 물어?”

“형은 스스로 어느 쪽이라고 생각해?”

“착한 놈이 전장에서 사람 죽이겠냐? 난 죽으면 가장 빠른 비행기 편으로 지옥 갈거야.”

“형이야 말로 선한 사람이지.”

“내가? 우헤헤헤 야! 열 살 때 우리 아버지 지갑에서 돈 훔친 내가?”

"얼마나?"

"만원."

“그 나이 때 그 정도 엄마 아버지 지갑 한번 털지 않은 놈 있으면 그거야 말로 병신이지. 난 걸핏 하며 수녀님 지갑에서 돈 꺼냈어. 그것 뿐인 줄 알아. 미사 때 헌금하기 위해 가져온 친구들 돈도 빼앗았어. 또 있다. 성당 경비아저씨 담배까지 한 개비 훔쳐 피웠군.”

“열 살 때?”

“나 이래봬도 초등학교 2학년 때 첫 담배 한 사람이야. 왜 이래 진짜.”

“초딩 2학년이면 아홉 살?”

권총수는 목에 힘을 주고 한 바퀴 돌렸다.

“엇! 저건 뭐야?”

조그만 산모퉁이를 도는 순간 오민철은 소스라쳤다.

오른쪽으로 제법 넓은 평평한 공터가 있었는데 10여명의 사내들이 하나같이 회칼을 들고 서 있었다.

길 가운데 SUV차량 한 대를 떡 세워 바리케이트를 쳤다.

한 눈에 조폭들이다.

그런데 숨기고 다녀야 할 칼을 저렇게 자랑하듯 뽑아들고 있다는 건 끝장을 보겠다는 뜻이다.

권총수가 히죽 웃고 있는 것을 보고 오민철이 물었다.

“왜 그래? 알고 있었냐?”

“미행을 하더라고, 죽여 달라고 쫓아오는데 어떻게 해? 모른 체 할 수는 없고 내버려 뒀더니 여기다 자리 잡았네.”

오민철은 긴장했다.

칼든 사람과 싸운다는 건 자살 행위다.

칼을 들었으면 도망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다.

운동 아닌 무엇을 했어도 칼 앞에서는 안 된다.

간혹 영화 속 장면을 현실로 오인하고 칼 앞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는데 운이 좋아 살아 난거지 백이면 백 다치고 죽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물러설 오민철이 아니다.

“뭐 없냐?”

상대가 칼을 들었다면 이쪽에서도 상응한 무기를 잡아야 한다.

“거기 문과 의자 사이에 뭐 있을 거야.”

오민철은 오른쪽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어 이것 칼 아냐?”

일 미터는 조금 못될 것 같은 길이의 장검이 분명했다.

손잡이는 자주 빛 바탕에 검정색 가죽을 단단하게 감았으며 칼 집은 여러 번의 옻칠을 한 듯 짙은 밤색이다.

스르르르!

권총수의 얼굴이 바뀌고 있었다.

변체환용이다.

어느새 마흔 초반의 평범한 사내가 되어 있었다.

“빨리 줘!”

권총수는 오민철에게 건네받은 칼을 들고 차에서 내리려다 말고 멈칫 했다.

“형 차안에 있기 싫으면 얼굴 가려.”

“알 텐데 가린다고 효과 있을까?”

“죽인 놈 얼굴과 내 평소 얼굴이 다른데 어쩔 거야.”

“아아아! 알았어.”

오민철은 재빨리 얼굴을 가릴 것이 없는지 차를 뒤지기 시작했다.

딸칵!

권총수가 문을 열고 내렸다.

사내들 숫자는 정확히 열한 명이었다.

맨 앞에 선 사내를 바라보았는데 그 역시 오른손에 50센티 정도 되는 회칼을 들고 있었으며 얼굴에 주름살이 있었다.

마흔 중반은 훌쩍 넘어 보이는 나이에 이런 싸움에 나타났다는 건 칼에 관해 매우 전문가라는 뜻이다

쾅!

그때 오민철이 유난히 차문을 세게 닫고 내렸다.

오민철은 입고 있던 자신의 티셔츠를 뒤집어썼는데 앞만 볼 수 있도록 눈 부위와 입이 있는 곳만 찢어 구멍을 냈다.

입가에 담배를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

“어휴 촌놈 새끼들.”

권총수를 믿는 탓일까 오민철의 목소리가 크다.

그러더니 한쪽으로 걸어갔다.

뻐억!

요란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는데 오민철이 팔뚝만한 나뭇가지를 꺾어 몽둥이를 만들고 있었다.

건달과 보안 업무에 종사하는 사내들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사람의 분위기는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 형성하고 만드는데 이씨 왕족의 별장 골목에서 만난 사내 이전까지, 즉 케이 원 직원들은 단정했다.

그에 반해 눈앞의 인물들은 확연히 다르다.

칼을 들고 있는 각도와 자세에서 난폭한 기질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손잡이를 흰색의 거즈붕대로 감았다.

칼을 쥐면 긴장 한다.

손바닥에 땀이 차면 강한 타격을 가했을 때 칼이 미끄러지거나 돌아버린다.

그리하여 자신의 손이 다칠 위험이 크다.

칼이다 보니 손잡이에 피가 묻기도 한다.

이 역시 굉장히 미끄러움을 유발한다.

붕대를 그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감는 것이다.

압박 붕대처럼 촘촘한 천은 피나 땀에 대한 흡수율이 떨어지지만 거즈붕대는 다르다.

땀과 피가 묻어도 구멍이 크다보니 모래처럼 손바닥에 깔깔한 느낌을 준다.

미끄러운 진흙탕에 차 바퀴가 빠졌을 때 볏짚이나 딱딱한 나무들을 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가 앞장 설테니 뒤를 따라다니며 이삭만 주워.”

앞으로 나서는 권총수가 몽둥이를 거머쥐고 있는 오민철에게 하는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