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2화: 맨 헌터(1)
전력을 다해 찌를 때는 백 프로 확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확신했던 표적이 피해버리면 몸은 중심을 잃고 앞으로 휘청거린다.
사내는 최대한 빠르게 앞으로 쏠린 상체를 세우며 중심을 잡았다.
씨익!
돌아선 권총수는 미소를 지었다.
스물 후반의 사내로 보이는데 청바지에 가죽 자켓을 걸쳤으며 야구모자를 깊이 눌러썼다.
“어디서 본 듯한데?”
직접 봐서 낯이 익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람마다 풍기는 냄새나 기운은 다르다.
그런데 사내에게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어디선가 한 번 느껴본 듯 몸이 알아차린 것이다.
“버스? 버스 맞죠?”
눈은 보지 못해 기억이 없으나 몸은 상대의 기운을 분명하게 떠올린다.
‘눈은 속여도 몸은 속이지 못한다’
강호의 격언이다.
사내의 손에는 어두운데도 하얀 광채를 뿜고 있는 회칼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슉!
사내는 수평으로 찔러 왔다.
예비 동작 없이 최단거리를 가장 빠르게 점령할 수 있는 칼질이다.
또한 이쪽에서는 수비하기가 가장 어려운 공격이기도 했다.
정면 공격일 때는 생각 없이 피해서는 안 된다.
왼쪽, 오른쪽, 그것도 아니면 뒤로 물러날 건지를 결정하고 이후 반격할 것까지를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서로가 같은 칼잡이였을 때 취하는 전략일 뿐 권총수는 강호 무사였다.
불영보를 펼쳤다.
스스스!
옆으로 이동했고 사내의 짧은 찌르기는 이번에도 허공이다.
비켜난 권총수는 번개처럼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파고든 사내의 손목을 낚아 잡았다.
콱!
쨍그랑!
강하게 손목을 틀어쥐자 사내는 칼을 떨어뜨렸다.
뚝!
내공이 실린 손아귀 힘은 사내의 손목까지 기어이 부러뜨려 버렸다.
“욱!”
손목이 부러졌다고 하여 권총수가 손을 놓아준 건 아니다.
여전히 사내의 손은 권총수의 갈고리 같은 손에 옴짝달싹 못하고 쥐어져 있었다.
“으으으!”
사내는 입 밖으로 신음을 흘리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지만 소용없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급기야 몸을 떨기 시작했다.
권총수의 오른손이 지면으로 뻗었다.
스르르!
바닥에 떨어진 칼이 끌려 올라오는 모습을 발견한 사내는 소스라쳤다.
탁!
권총수는 오른손으로 칼의 손잡이를 거머쥐더니 팍 하는 소리가 들렸다.
꺼억!
손목이 불에 데인 것 같았다.
권총수는 사내의 손을 놓아 주었다.
“아으으으!”
사내는 쥐어짜는 듯한 비명을 질렀는데 조금 전까지 붙어 있던 오른손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뚝뚝둑!
잘린 손목에서는 수돗물 떨어지듯 피가 흘렀다.
권총수는 아직도 꿈틀 거리고 있는 잘려진 사내의 손을 주워 들었다.
“처음이니 살려는 드립니다.”
어떤 추궁도 배후에 대한 질문 따위도 않고 편하게 놔주겠다는 뜻이었다.
권총수는 잘린 손목을 내려다보더니 던져 주었다.
사내는 얼떨결에 왼손으로 받아 들었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면 오른손으로 밥 먹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소.”
권총수는 골목을 걸어 나왔다.
처음 조기축구에 가입했을 때 공 잘찬다며 짬봉그릇에 막걸리를 가득 따라 주었다.
술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많은 양을 한 번에 마시는 건 처음이어서 당황했다.
어쨌든 그날 그 한 잔의 술로 기억이 사라졌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른다.
그때 나이가 보육원을 막 나와 독립했던 시기였으니 아마 스무살이 채 안됐을 것이다.
그 막걸리를 마셨던 자리가 지금은 서울시 문화재가 되어 출입이 통제 되었다.
권총수는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건 썩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흘긋.
뒤를 돌아보았는데 사내는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지금쯤 잘린 손을 살려보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사내는 자신과 같은 버스를 탔던 승객중 한 명이었다.
버스 승객이 만원이었고 유병칠과 옛날을 떠올리느라 주위 경계가 약간 소홀했다지만 몸이 사내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평범한 사내는 아니었다.
‘내공이 없어도 수련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웬만한 무사의 숨통 정도는 끊을 수 있느니라. 극한의 한계를 벗어나면 초상감각이라는 것이 생긴다. 인간의 오감(五感)에 하나의 감각을 더 얻는 일인데 그걸 기현(氣現)이라 부른다.’
‘야수의 본능과 같은 것이군요’
‘아니다 그것과는 분명히 구별되느니라. 하나의 동작을 오랫동안 실천하면서 만들어지는 자기만의 초식인 셈이지’
공공선사는 일반인도 자질과 수련의 양에 따라 강호무사를 어느 정도 따돌릴 수 있는 능력 터득이 가능하다고 했다.
숨어 있을 때의 호흡은 경이로웠다.
다른 사람 같았다면 백퍼센트 목적을 이뤘을 것이지만 운이 없게도 상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대소림사의 제자였다.
비가 내린다.
기상청 예보에서 가을비 치고는 다소 많은 일백 밀리를 예상했으나 오후 2시가 지나면서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기상청에서는 1시30분 현재 110밀리를 기록했다면서 폭우주의보를 경보로 상향 발표했다.
권총수는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권씨 가문의 장례식은 모두 끝났다.
방송과 언론에서는 이순영과 권마진의 죽음은 단순 교통사고로 단정했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변장하여 들어온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살해당한 권마수의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그 일로 현직 청와대 전무수석 기동술은 경찰 조사를 여러차례 받아야 했고 당시 그를 따라 조화를 옮겨온 두 명의 사내의 행방을 쫓고 있었지만 소득은 없는 모양이었다.
식당 텔레비전에서도 권마수 살인사건에 대해 전문가라는 사람들, 이름하여 프로파일러들이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모두가 나열식의 의견 개진 정도지 범인이 누굴 것이다, 권마수와 어떤 관계인지 예측도 내 놓지 못했다.
권총수는 식당에서 제공한 플라스틱 물통의 물을 컵에 따라 입안을 깔끔하게 헹궈 삼켰다.
잠시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권마수 사건이 워낙 화제인 까닭에 십여 명의 손님들 모두가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누가 죽인 걸까?”
“장례식장 CCTV에 찍힌 살인자 얼굴과 정무수석 기동술의 얼굴을 컴퓨터로 분석했는데 완전 일치했다면서?”
“그러니까 미칠 노릇인 거지. 흐흐흐!”
그때 술좌석 어디에선가 불만 가득찬 냉소가 터져 나왔다.
“잘뒈졌지. 천왕 일가가 좀 나쁜 놈들이야. 그 자식들 목 따고 싶은 놈들이 대한민국에 한둘 이겠냐고.”
“콜, 인과응보야. 그동안 당한 노동자들의 보복이 시작 된 거지. 권마수 말고 그 위로 권악수 권철악까지 줄줄이 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두 사내가 소주를 마시며 이죽거렸다.
지이잉!
자리에서 일어서던 권총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액정에 낯익은 이름 하나가 떴다.
권총수는 걸어가며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사직서가 반려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배웅대 상무이사였다.
사직서는 반려됐으나 배웅대는 그만 두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좀 뵙고 싶습니다.”
“날요?”
우리가 만날 일 있느냐는 뜻이다.
“바쁜 줄 알지만 잠깐만 시간 내주시죠.”
바쁜 줄 안다는 말에 권총수 이마가 좁혀졌다.
말속에 뼈가 있다.
사람 죽이느라 바쁘냐는 뜻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었다.
“좋소. 그럽시다.”
권총수는 몇 마디 더 주고받은 뒤 식당을 걸어 나갔다.
권총수는 차에서 내렸다.
지하 주차장을 걸어 나와 계단을 타고 올라왔는데 사방이 툭 트였다.
북악스카이웨이다.
앞으로는 광화문과 멀리 남산이 보이고 뒤로는 북한산과 세검정이 펼쳐져 있다.
한낮의 북악 스카이웨이는 한가했으며 몇몇 아주머니들이 차를 마시며 뻔뻔하다느니 교양머리가 없다느니 하면서 동창생을 흉보느라 바쁘다.
권총수는 팔각정 2층에 있는 커피숍 창가에 앉은 배웅대를 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배웅대가 다가오는 권총수를 발견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으시죠. 커피 하시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배웅대는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걸어갔다.
권총수는 다시 한 번 커피 숍 내부를 살핀 뒤 창밖을 보았는데 산은 완연히 빨개졌다.
초등학교때 한 번 올라와보고 처음이다.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커피를 주문하고 돌아온 배웅대가 자리에 앉고는 권총수를 응시했다.
“꼭 이래야 합니까?”
배웅대가 단도직입적으로 던진 말에 권총수가 이마를 좁혔다.
“여기서 그만 멈추시죠.”
“무슨 소리 하는 거요?”
“권총수씨의 솜씨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순영씨와 권마수 권마진의 죽음.”
“한 번만 더 그런 말을 뱉으면 평생 수어를 하도록 만들어 놓겠소.”
혓바닥을 잘라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이순영과 권마진은 교통사고로 넘기죠. 그러나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변장해 들어와 권마수를 죽일 사람은 사막의 흑새 말고는 누구도 보여줄 수 없는 힘든 기술입니다.”
“사막의 흑새가 마음먹어 해내지 못할 건 없지. 그렇다고 아무 곳에서나 피를 보지는 않습니다. 나는 오로지 전장에서만 방아쇠를 당기죠.”
“다음에는 누굽니까?”
“난 염라대왕이 아니오.”
염라대왕이 아니므로 누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때 커피가 나왔다는 번호판이 진동했으므로 배웅대는 자리를 일어나 돌아나갔다.
배웅대는 커피 한 잔을 권총수 앞에 놓아주며 말을 이었다.
“진정하시죠.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지급하도록 권해 보겠습니다. 권악수 사장님은 아직까지 사막의 흑새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무서움이 있다는 걸 전혀 믿지 않아요.”
“그러는 당신은 알고 있다? 이 사람 큰일 나겠군. 그런 근거도 없고 막연한 소문을 주워듣고 진실인 듯 이런 자리에서 떠벌리면 어찌되는 거요.”
그걸 인정하는 건 자신이 세 사람을 죽였다는 걸 고백하는 것이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직서가 반려됐다는데도 회사로 나가지 않는다는 건 결코 마음을 굽힐 뜻이 없다는 건데?”
“이제 천왕중공업 상무이사도 아닌데 이런 일에 왜 끼어드는 것이냐고 묻는 것입니까?”
“남의 일에 참견 좋아하다 장수하는 사람 그다지 보지 못했소.”
권총수는 커피는 입에도 대지 않고 걸어 나갔다.
배웅대는 권총수가 완전히 사라지자 길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고성능 녹음기였다.
혹시 몰라 대화를 녹음한 것이다.
물론 상대 모르게 이런 식으로 녹음을 하여 어떤 실마리를 잡는다고 해도 법정에서는 전혀 증거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쪽이 천왕그룹이라면 인정받을 수 있다.
자신과 권총수와는 일체의 감정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결례와 위험을 감수하는 건 어찌됐든 자기 인생의 첫발을 천왕중공업에서 내딛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권악수를 도와 고비고비 힘들었던 풍파를 헤치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한때 모셨던 주인이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오늘 작정하고 나섰는데 권총수는 모든 걸 꿰뚫고 있었다.
사람들은 용병들을 피를 마시고 살을 뜯어먹는 들개들이라고 폄훼한다.
오로지 살인에만 능숙한 짐승들이라고 했다.
권총수는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도 두뇌회전이 빠르고 상황대처가 능숙하다.
뛰어남을 넘어 교활하다.
권악수는 지금 권총수가 십억 달러를 받기 위해 들어온 것으로만 알고 있다.
돈을 안주면 온 집안이 공동묘지로 변한다는 건 전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