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1화: 쌍초상(2)
기동술은 차림새를 살폈다.
피가 묻거나 흐트러진 곳은 없다.
안에서 문을 잠가 버리기도 했지만 다행히 누구도 들어오지는 않았다.
다시 한 번 벽에 걸린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은 후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예상대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권마수의 비서와 권서진이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기동술이 나오자 재빨리 일어났다.
“들어가 보시죠. 전 바빠서 그만 가보겠습니다.”
기동술은 가벼운 목례를 하고 곧장 걸어갔다.
두 사람은 배웅을 위해 기동술을 따라 나갔지만 그럴 필요 없다는 말에 멈췄다.
기동술이 장례식장 밖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난 뒤에서야 두 사람은 돌아섰다.
한편 권마수의 비서는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잡아당겼다.
“어!”
비서는 깜짝 놀랐는데 안으로 잠겨 있었다.
“왜 그래요?”
“문이 잠겼습니다.”
타타탕!
비서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위원장님, 위원장님 문이 잠겼습니다.”
기동술이 떠났기 때문에 권마수도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비서는 그다지 다급해 보이지 않았다.
권서진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없었다.
몇 번을 더 문을 두드리고 불러보다 안으로부터 반응이 없자 비서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간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신호는 가지만 받지 않았다.
끊었다가 다시 걸기를 두어 차례 비서는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닫고 장례식장 사무실로 달려갔다.
“사무장님 VIP실 문이 잠겼어요. 빨리 열어주세요.”
“예!”
스페어 키를 찾아든 사무장이 비서와 뛰어가 카드를 대자 삐비비 하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으헉!”
재빨리 안으로 들어간 비서는 소스라쳤다.
“위원장님!”
권마수는 바닥에 넘어져 있었는데 가슴에 의자 다리 하나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뭐하는 거야. 위원장님이 다쳤어. 응급실로...응급실로.”
장례식장 직원들이 이동 침대를 밀고 달려왔고 재빨리 권마수를 싣고 복도를 뛰어갔다.
그리고 10분도 안돼 비보가 전해졌는데 사망 판정을 받은 것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변장한 사내가 장례식장을 들어와 권마수 민국당 달성 지구당 위원장을 살해하고 사라졌다는 긴급 속보는 온 나라를 충격으로 빠뜨렸다.
그러나 이내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그런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느냐.
혹시 권씨집안의 본격적인 후계자 싸움이 일어난 것 아니냐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천왕그룹 권철악 회장의 나이가 팔십이다.
권마수가 비록 정치인이지만 수시로 큰 아버지인 권철악을 만난다고 알려졌다.
양부와 동생의 잦은 만남에 부담을 느낀 권악수가 손을 썼을 수도 있다.
거기에 본처 서옥선이 낳은 자식들과 양자인 권악수 사이도 몹시 불편하다.
여론은 천왕그룹의 서늘한 요즘 공기를 보건데 얼마든지 사건이 일어날 만한 상황이라는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그동안 소외되었던 권철악 회장의 사위들이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찌라시까지 돌았다.
하지만 한 가지에서 언론과 여론의 예상과 추정이 걸린다.
바로 범인이 청와대 정무수석이라는 것이었다.
한국 재벌들 속성중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은 창업주가 사고 판단력이 흐려지는 나이가 되면 미친 듯이 골육상쟁(骨肉相爭)을 일으킨다.
즉 권마수의 죽음이 그런 전쟁의 일환이라면 다른 사람을 놔두고 왜 하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변장했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재벌이라고 해도 자신의 꿈을 성취하는데 청와대를 끌고 들어간다는 건 논리적으로 앞 뒤가 맞지 않다.
장례식장은 외신기자들까지 몰려드는 바람에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는 일반 시민들까지 호기심을 갖고 기웃 거렸다.
최고의 관심사는 하나였다.
‘정무수석으로 변장하고 들어와 권마수를 죽인 사람이 누구냐’
사망자는 전직 대통령의 둘째 아들이고 민국당 달성지구당 위원장이다.
큰 아버지는 재계서열 1위 천왕그룹의 총수이며 작은 아버지는 백서그룹을 이끌어간다.
그야말로 정치와 권력이 모여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가문에 칼을 댄 사람이 누구냐.
하도 기자들이 담배를 피워대자 병원측에서는 장례식장 귀퉁이에 흡연 장소를 별도로 마련해 주었다.
“어때요. 내 추측이 맞죠?”
동아신문 사회부 기자 장미윤이 담배를 피우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거봐요. 내가 뭐랬어요. 앞서 죽은 두 여자 모두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니까요?”
김치성이 담배를 크게 빨아들인다.
“쓰흐흡! 갑자기 가슴이 섬뜩해지는 것 있지.”
장미윤이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본 아이덴티티도 아니고.”
제이스 본 주연의 첩보영화 같다는 뜻이었다.
“선배, 천하제일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람이 누굴까요?”
“천하제일가? 표현한번 적절하군. 맞아. 권철악 회장을 비롯한 그 가문을 대한민국에서 누가 건드려. 완전 무협소설 한 편이잖아.”
“맨 처음 죽은 사람은 백서그룹 권철무의 아내 이순영이었어요. 그런데 권철악의 둘째 딸 권마진에 이어 이번에는 권철태 전 대통령의 작은 아들이에요. 사람을 죽인다는 건 엄청난 원한이 아니면 불가능 한 일이죠. 더욱이 상대가 천하제일가에요. 굉장히 흥미롭지 않아요?”
장미윤은 권마수의 피살 소식을 듣고 권씨가문의 발자취를 훑어보았다.
권철악.
권철태
권철무.
삼형제가 성공을 거두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한 분야에서 최고 자리까지 올라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동서양 어디를 찾아봐도 세 형제 중 한 명은 대통령이 되고 나머지 둘은 그 나라 재계서열 1위와 7위를 차지하는 입지전적의 기록은 없었다.
파팟!
갑자기 장미윤의 눈이 빛났다.
뭔가 떠올랐다.
“미윤아.”
그 순간 김치성의 목소리가 갑자기 다정해 진다.
대학 선후배 사이다.
평소에는 기사다툼으로 서로 애써 외면하고 필요에 의해 협조도 하지만 분명한 건 김치성은 아쉬운 입장이 되면 장기자가 아니라 다정하게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었다.
“오늘 저녁 어때?”
“오늘은 바빠서 안돼요.”
“그럼 내일 점심?”
“내일은 취재 약속이 있어서 서울에 없을지도 몰라요.”
“장기자 정말 이럴거야. 이정도로 선배가 사정하면 못들은 체 귀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냐.”
“그것 누가 만든 공식인데요?”
“아이 진짜!”
장미윤은 꽁초를 모래속에 집어넣고 돌아섰다.
“어디가는데?”
“나중에 또 봐요. 선배.”
장미윤은 자신의 차로 걸어왔으며 김치성은 불편한 시선으로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를 바라보았다.
“저게 진짜!”
뭔가 떠오른 것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렇게 큰 사건일 경우 제대로 특종 한 건 건지면 회사에서 직위가 수직 상승한다.
‘뭔가 포착 한 것이 분명한데’
푸욱!
김치성은 담배를 버리고 재빨리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
잡아야 한다.
장미윤은 경쟁 언론사 소속이지만 감각과 추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웬만한 베테랑 형사들 보다 핵심을 보는 눈이 예리하다.
부우웅!
김치성의 차도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오민철이 행방을 감춰 버린 것이다.
누님 오민심에게 혹시 민철이와 같이 있느냐면서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에 잠적 사실을 알았다.
출국하지는 않았다.
‘푸훗’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나름대로 운동에 일가견이 있고 최소한 일 대 일로 맞선다면 대한민국에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큰소리친다.
그런 사람에게 잠깐 외국으로 나가 있으라고 했으니 그보다 더 모욕적인 말은 없을 것이다.
사라진 사람 굳이 찾고 싶지 않다.
시간이 흘러 자신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면 스스로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당분간 내버려 두기로 했다.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늦은 저녁이었다.
싫다는데도 자꾸 자신이 기부한 돈으로 지어진 보육원 건물 준공식에 참석해달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끌려가듯 하여 참석했다.
참석한 지역 구청장과 국회의원이 어떻게 이토록 젊은 나이에 그런 큰 돈을 기부할 생각을 했느냐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과 사진 찍고 카톨릭 관할 교구장과 차 마시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얼굴 내밀다 겨우 빠져나온 것이 지금이었다.
후루룩!
태어나 가장 싫은 음식이 된장찌개였다.
‘또 된장찌개야. 아 쓰파’
인상을 쓰는 권총수를 보며 고인이 된 안나 원장수녀가 눈을 흘겼다.
“바오로, 또 욕이니?”
“끼니를 굶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권총수가 재빨리 뒷말을 가로채버리자 원장수녀가 눈을 흘겼다.
그런 된장찌개를 지금은 먹고 싶어 시켰고 맛있게 먹는다.
사람은 왜 세월이 가면 변한다는 걸 모를까.
변하고 싶지 않아도 변한다는 걸 깨우치고 나니 미안하고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다.
불과 서른넷에 된장찌개가 달짝지근하게 느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잘 먹었습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주고 식당을 나왔다.
주말의 먹자골목은 술꾼들로 붐볐고 권총수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면서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원이 꺼져 있다는 말만 반복되어 흘러나온다.
오민철이 전화다.
은근히 신경 쓰인다.
소화도 시킬 겸 골목을 나온 권총수는 천천히 인도를 따라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던 권총수는 유병칠과 살던 동네를 가보고 싶었다.
때마침 버스가 왔으므로 망설이지 않고 올랐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는 조용했다.
버스 정류장 뒤편으로 있는 오래된 한옥을 바라보았다.
조선 말 어느 왕족의 별장이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서울시 지정문화재가 되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한때 개인에게 매매가 되어 한식당으로 운영되었으며 서울시에서 다시 매입해 수리하여 보존한 것이다.
별장 담장을 끼고 도는 골목이 백미다.
흙과 돌을 층층이 쌓은 전통적인 담장인데 감나무와 은행나무가 우거져 가을에는 그야말로 완전한 시골 정취를 느낄 수가 있다.
멈칫!
담장을 오른쪽으로 끼고 골목으로 들어선 권총수는 멈칫했다.
서울시 지정 문화재이기 때문에 항상 가로등이 켜져 있는데 오늘은 아주 깜깜했다.
권총수의 시선이 어두운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파팟!
땅바닥에 유리조각이 있다.
그건 누군가 가로등을 깨버렸다는 뜻이다.
잠시 주위를 살피던 권총수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숨소리가 들린다.
‘호오’
숨소리가 무척 고르면서 희미했다.
내공이 뛰어난 고수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숨소리는 어렵지 않게 간파하는데 비록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방해를 하긴 해도 아주 가늘다.
몸은 누구나 숨길 수 있다.
중요한 건 숨소리를 숨길 줄 알아야 기습의 성공률이 높아진다.
강호의 고수가 보기에는 별것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평범한 수준은 아니었다.
권총수는 걸음을 멈췄다.
아무리 운치 있는 골목이라고 해도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곳을 구경 갈 사람은 없다.
숨어 있는 사람 역시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권총수는 더 이상 갈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몸을 돌렸다.
두 걸음 정도 걸어 나왔을 때 등 뒤로부터 찬바람이 인다.
칼이 날아오며 만들어내는 바람이다.
이름하여 칼 바람(刀風)이다.
스으으!
권총수의 몸은 연기처럼 옆으로 이동해 버렸다.
슉!
하는 소리가 들리며 칼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 곳에 있어야 할 권총수가 옆으로 피했기 때문에 어두운 허공을 찔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