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0화: 쌍초상(1)
방안에 앉아 있던 조무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이 열리면서 권악수가 들어섰는데 조무종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악수 한 번 합시다.”
권악수가 손을 내밀자 조무종이 두 손으로 공손히 쥔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오히려 제가 영광이죠. 조무종입니다.”
두 사람은 악수를 마치고 마주 앉았다.
“조회장 오랜만입니다.”
권악수를 안내했던 마석춘이 조무종을 보며 빙긋 웃었다.
조무종은 가볍게 고개만 꾸벅했다.
“두 분 아는 사이오?”
마석춘이 가볍게 대답했다.
“조금 알죠.”
“가만 그러고 보니 우리 마 사장도 한때 이름 좀 날렸다는 것 같죠?”
“무슨 말씀을, 아닙니다.”
마석춘은 슬쩍 웃고 정색했다.
“사장님 올해 처음 오오마 산 참치가 오늘 아침 비행기로 들어왔습니다.”
“참치하면 오오마 산 아니오?”
“더하고 뺄 것도 없는 최상의 상품이죠. 금방 올리겠습니다.”
마석춘이 물러나가고 방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옆 방에는 조무종의 부하들이 앉아있다.
“대단한 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권악수의 칭찬에 조무종은 낯을 붉혔다.
“왜 이러십니까? 부끄럽습니다.”
“우린 일을 앞에 놓고 밥이 입에 들어가지 않는 체질입니다.”
참치가 나오기 전에 할 얘기를 끝내자는 뜻이었다.
“오늘 아침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맹인이 뭐라고 한줄 아십니까? 나에게 액이 씌워졌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평범한 액이 아닌 저승 갈 액이라는 겁니다.”
“어느 미친.”
“그래서 내가 물었소. 액은 어디서 오느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서 들어왔다고 합니다.”
조무종의 눈이 커졌다.
자신도 가끔 점쟁이를 찾아가지만 액의 행방까지 아는 점쟁이가 있다는 말은 난생 처음이다.
“액의 행방을 알았으니 이제 남은 건 뭐겠습니까?”
“점쟁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쪽에서 먼저 처버려야죠.”
“하하하! 역시 조 회장님 다운 말씀입니다. 이쪽에서 역습을 가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사진 한 장을 꺼내 밀었다.
조무종은 권악수가 내민 사진을 바라보았는데 이마를 찡그렸다.
“혹시 조회장 아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생긴 건 한국인 같은데 터번을 하고 있어서.”
무슬림 복장을 한 권총수였다.
스으윽!
이번에는 봉투 한 개를 내밀었다.
“십 억입니다.”
흠칫!
조무종은 깜짝 놀랐다.
“모자라면 더 드리죠.”
권악수의 눈이 빛났다.
케이 원 직원들로는 역부족이다.
그들도 능력은 있으나 이들처럼 프로적이지 못한다.
이들은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산다.
조무종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마가 탁자를 칠 듯 힘차게 머리가 숙여진다.
두 대의 승용차가 어군의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골목을 지나 왕복 8차선 도로에 진입한 승용차는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으며 조무종은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있었다.
운전사가 룸미러를 이용해 조무종을 살피고 있는데 표정으로 그의 기분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십 억’
주먹은 권력과 유착한다.
권력은 반대편을 부서줄 수 있는 폭력이 필요하고 주먹은 자신들의 범죄를 비호해 줄 그들을 찾는다.
서로의 이익이 합쳐지면서 권력 카르텔이 만들어 진다.
둘이 손을 잡으면 더 강한 태풍으로 발달하는 것이다.
많은 쓰레기들(의뢰인들은 항상 그렇게 말했다)을 청소했지만 십 억이라는 돈을 한꺼번에 받아보긴 오늘이 처음이다.
“용수야!”
“예 형님!”
운전사 진용수가 바라본다.
“사람 한 명 청소해 달라면서 십 억을 던져준다. 어떤 의미라고 보냐?”
십 억이라는 말에 진용수의 눈이 커졌다.
조무종의 운전사이며 보디가드이자 고향 후배인 진용수이다.
뒷골목 바닥처럼 지연(地緣)의 가치가 높고 강한 곳도 없다.
조무종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측근의 배신이다.
그래서 자신의 그림자라고 생각하는 자리는 반드시 고향 사람으로 앉힌다.
수많은 선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무너지고, 병신이 되어 바닥에서 추방되었지만 자신은 아직까지 위기는 있었으나 권좌에 앉아 있다. 이는 역시 철저한 사람관리, 즉 지연에 의한 인사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십 억이면 흔적도 없이 청소하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조무종은 아무말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장례식장은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다.
호텔 임원들과 천왕그룹 고위 인사들만 문상이 허락되었고 일체 외부인은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단 조화를 보내는 것 까지는 막지 않았기 때문에 장례식장 복도를 지나 건물 주위를 한 바퀴 돌만큼 밀려온 국화는 하나의 담장을 쌓아버렸다.
“나쁜 기집애. 그렇게 국화를 좋아하더니 국화에 묻혀 가는구나.”
권마진의 영정사진이 국화속에 파묻혀 있었다.
큰 딸 권서진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으며 슬퍼하고 있었다.
그때 문 밖이 시끄러워지더니 장례를 돕는 회사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고 권서진의 시선이 맨 선두에 멎었다.
정장을 한 두 명의 사내가 국화꽃으로 단장된 조화를 들고 오는데 그 뒤로 안경을 낀 육십 초반의 사내가 보였다.
순간 모두가 깜짝 놀라며 권씨 가문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중 다른 방에 앉아 있던 권마수가 맨발로 다가갔다.
“수석님!”
청와대 정무수석 기동술이었다.
사내들은 대통령 황태완이란 글씨가 쓰여진 조화를 가장 앞에 놓았다.
“권 위원.”
기동술은 표정이 침통했다.
권마수의 손을 두 손으로 쥐고 악수를 한 뒤 기동술은 문상을 시작했다.
두 번의 절을 하고 성호경을 긋는데 이어 고인인 권마진의 남편 김동복의 손을 잡고 위로한다.
“힘내십시오. 정말 어떻게 슬픔을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국정이 다망한데 대통령님께서 이렇게 꽃을 보내주시고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대통령님께서는 권마진 사장님의 인품을 칭찬하시면서 매우 애통해 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쓰다듬은 기동술은 권마수를 포함한 권씨일가와 차례대로 악수를 하며 위로했다.
“수석님 차(茶)가 준비되었습니다.”
기동술은 권마수의 안내로 조용한 방으로 안내 되었다.
회사 여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녹차를 끓여 두 사람 앞에 내 놓았다.
“드시죠!”
두 사람은 잔을 들어 올렸고 여직원은 방을 나가 자리를 비켜 주었다.
“총선이 6개월이 채 안 남았습니다?”
권마수는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수석님께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도울일이 있으면 당연히 도와야죠. 우리가 남입니까?”
권마수의 지역구는 달성이고 기동술의 고향은 그 아래 영창이다.
권마수의 아버지 권철태가 달성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권마수는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통령께서도 가끔 마수군에 대해 질문도 하십니다. 상당한 관심을 갖고 계시죠.”
“대통령님께 안부 전해 주십시오.”
두 사람은 가볍게 웃으며 차를 마셨다.
문상을 왔지만 고인의 얘기는 거의 없고 정치얘기가 주류를 이뤘다.
쭈욱!
마지막 찻물까지 마신 권마수가 고개를 들었는데 깜짝 놀랐다.
기동술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야릇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수석님 왜 그런 표정을?”
기동술이 조용히 말했다.
“내가 분명히 경고를 보냈는데 말을 듣지 않으니 주위 사람들이 괴로울 수밖에 없죠.”
“어엇!”
분명 기동술이다.
그런데 갑자기 목소리가 바뀌었다.
“난 싸우는 것을 무척 싫어합니다. 그러나 걸어오는 시비는 결코 피하지 않습니다. 난 분명히 권악수 사장에게 십억 달러를 주지 않으면 가족들을 가만 두지 않겠다고 말했는데도 돈을 떼먹겠다는 굳은 의지를 굽히지 않으니 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말이 안 된다.
아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영화도 아니고 분명 청와대 정무수석 기동술이다.
그런데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살기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형제이지만 어려서부터 라이벌 의식이 굉장히 강했다고 하던데 어쩔 수 없소. 여동생을 죽였는데도 꼼짝않으니 오랜만에 쌍초상 한 번 경험해 보는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벌떡!
권마수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기동술의 오른손이 찻잔을 쥐고 던졌다.
거리도 가깝고 워낙 빨라 피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팍!
찻잔이 이마에 맞으며 산산조각이 났는데 검붉은 피가 권마수의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렸다.
권마수는 비틀 거렸다.
그러면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생각 만큼 몸이 말들 듣지 않는다.
기동술이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들어 내리쳤다.
파아악!
나무 의자가 부서졌고 권마수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기동술은 부러진 의자 다리를 거머쥐더니 권마수에게로 다가갔다.
“살려...살려 주시오.”
“내 부하 일곱 명이 죽었죠.”
빠아악!
사정없이 머리를 내리치자 사방으로 핏물이 튀었다.
“난 당신 아버지가 여배우 오설지를 죽였든 말든, 당신 큰아버지인 권철악이 수많은 노동자들을 해고시키고 징역을 보냈든 말든 그런 일에는 관심 없소. 나는 지금 돈이 필요할 뿐이죠. 내 부하 일곱 명의 목숨 값을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형님께 말하여.”
푸우욱!
책상다리가 칼처럼 권마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부르르르!
권마수는 온몸을 떨며 입술이 새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빠르게 온 몸을 덮어가고 있었는데 죽기 싫다는 듯 권마수는 필사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앉은 사람은 모두 넷, 권악수까지 포함하면 다섯이다.
회의 안건은 아주 간단했다.
‘천왕그룹의 미래를 들여다보자’
천왕그룹의 미래란 곧 권악수가 차기 총수가 되느냐 아니면 팔이 안으로 굽듯 권철악이 막판에 딸과 사위에게 어느 정도의 지분을 넘기느냐에 대한 전망과 그렇게 될 경우를 대비한 대책을 세우는 일이었다.
권철악은 언론을 통해 틈나는대로 차기 후계자로 권악수를 입에 담지만 이중에서 그 말을 믿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뒤통수치는데 뛰어난 능력을 지닌 권철악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이잉!
그때 전화가 왔는데 권악수는 액정을 보며 재빨리 받았다.
“조금 있다 가겠습니다. 누님!”
전화를 걸어온 상대는 권악수보다 두 살이 많은 권서진이었다.
“뭐라구, 청와대 정무수석이 문상을 왔다고, 그것도 대통령이 보낸 조화를 갖고.”
순간 회의를 하던 모든 사람들이 권악수를 바라보았다.
권악수는 이해를 못하는 듯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누님, 회의 끝나면 바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측근중의 측근인 최왕창 이사가 물었다.
권철악 밑에서 컸지만 재빨리 권악수에게로 돌아선 인물이었다.
“대통령이 정무수석을 보냈단 말입니까?”
“그랬다는군요?”
최왕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통령이 개인적 친분으로 보냈다면 비서관급이 움직이고 정무수석이나 비서실장은 재계나 정계의 거물들이 아니면 문상을 보내지 않는데, 그렇다고 마진 아가씨와 대통령이 친한 건 아니잖습니까?”
최왕창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권악수를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십시오. 위로를 하려거든 회장님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편이 더 깊이있고 진심이 보이는 일이죠. 더욱이 자식이 죽은 장례식장에 부모들은 가지 않는 우리의 전통 정서를 대통령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정무수석을 통해 조화를 보냈다? 거 참.”
지이잉!
그때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권악수는 핸드폰을 귀에 댔다.
“누님! 네?!”
팍!
권악수가 쥐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최왕창이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귀에 댔다.
“최이사입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들려온 말에 최왕창도 소스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