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39화 (339/651)

제339화: 생사판관(2)

10여 미터 뒤에 청바지에 얇은 자켓을 걸친 여자가 웃고 있었다.

“장기자.”

동아신문 사회부기자 장미윤이다.

소속 언론사는 다르지만 둘은 대학 3년 선후배 사이로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며 가깝게 지낸다.

더욱이 전공과목도 두 사람 모두 국문과였기 때문에 허물이 없었다.

“왜, 할 말 있어?”

“무슨 할 말이 있어요. 선배님 차편에 동승해 보려는 거죠.”

나도 담배 생각이 나는데 같이 가자는 뜻이다.

“어떻게 알았어? 바람처럼 빠져 나왔다고 생각 했는데.”

장미윤이 히죽 웃으며 넘긴다.

둘은 한참을 걷고 헤매다 병원 쓰레기장 뒤 담벼락으로 나란히 붙어 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재빨리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나에게 담배는 아름다운 연인인데 갈수록 가까이 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으니 안타까워.”

“이하 동감요.”

장미윤이 손가락에 담배를 끼워 빨며 웃었다.

“날 따라 온 것이 꼭 담배 한 대 피우기 위해서만은 아닐텐데?”

김치성이 야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장미윤이 눈을 좁혔다.

“왜 또 가재 눈을 하고 그러세요? 선배님, 좋은 패 쥐고 있으면 좀 까보시죠.”

“무슨 패를 까?”

“우리사이에 숨길게 뭐있습니까? 선배님 패 까면 내 패도 깝니다.”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네. 느닷없이 있지도 않는 화투패를 까라마라 해. 조용히 담배나 피우자고.”

“정말 이럴 겁니까? 선배님과 나 대학을 같이 다니고 이 바닥 밥을 먹은지 10년입니다. 좋습니다. 내 패부터 까죠. 선배님도 까는 겁니다?”

장미윤은 스으읏 하며 담배를 길게 빨아 들였다.

“이순영과 권마진의 교통사고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생각 드시지 않습니까?”

“닮아?”

김치성의 눈이 커졌다.

장미윤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한쪽은 숙모, 다른 한 명은 조카,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가이자 명문가로 알려진 권씨가문에서 어떻게 보름사이에 두 명이 죽을 수가 있죠?”

툭!

김치성이 담배 꽁초를 땅에 버리고 발로 비벼버린다.

“야 역시 장 여우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구나. 언제부터 두 사건을 연결 짓고 있었지?”

“권마진이 사고 났다는 연락을 받은 순간부터요.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 했죠.”

“내 패도까지. 맞아. 나 역시 두 사건이 우연이라고 보지 않아.”

“그렇죠. 선배님.”

장미윤은 만족스런 표정을 했다.

“대한민국 교통사고 역사 어딜 봐도 일가족이 사고를 당한 경우는 있었지만 재벌가 인물들이 보름 간격으로 연이어 사망하는 사건은 단 한 번도 없었어. 그들의 교통사고가 드문 이유는 운전기사를 두기 때문이지.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난폭운전을 하지 않아. 과속과 난폭운전이 죽음의 지름길이라는 걸 알고 있어. 돈이 너무 많아 피곤한 그들이 일찍 저승으로 출발할 이유가 없다는 걸 스스로 알고 아주 화급을 다투는 일이 아니면 절대 무리한 운행은 절대 하지 않아.”

“살인이죠?”

김치성은 순간적으로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는데 너무 핵심을 파고든 질문인 탓이었다.

물증 없는 의심만으로 살인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면 안된다.

더욱이 진실 보도를 가치로 여기는 기자는 누구보다도 철저하고 정확해야 한다.

“절반은 넘어.”

살인일 가능성이 50퍼센트는 넘는다는 말에 장미윤은 미소를 지었다.

“섬칫하다는 생각 들지 않아요?”

두 사람은 나란히 기자들이 몰려 있는 병원 로비를 향해 걸어갔다.

“누가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과 맞설까요?”

“장기자는 확신하는 모양이군?”

“뻔한 그림 아니겠어요.”

“뻔한 그림?”

“재벌이든 정치인이든 그들이 걸어온 길을 더듬어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레드 카펫(피)이 깔렸어요. 그중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누군가가 칼을 겨누었을 수도 있잖아요.”

“헐리우드 영화로군.”

“한국적 느와르에요. 헐리우드는 우리처럼 촌스럽고 잔인하게 만들지는 못해요.”

“하긴!”

두 사람은 계속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걸어갔다.

오민철이 퇴원을 했다.

누나 오민심이 원무과에서 병원비를 계산하고 나올 때 권총수가 나타났다.

“형!”

“총수야!”

권총수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섰다.

“12시쯤에나 퇴원할 것이라고 했잖아.”

그러면서 병원 벽시계를 보았는데 11시10분이다.

“총수씨 안와도 되는데.”

오민심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원을 들락거렸다.

“형은 내가 데리고 갈테니 걱정말고 누님은 들어가세요.”

“그래도 될까 모르겠네.”

“걱정마세요.”

권총수는 환하게 웃었다.

오민심은 고맙다면서 재빨리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오민심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지고 나서야 두 사람은 천천히 병원을 걸어 나갔다.

“별일 없냐?”

오민철의 얼굴이 무겁다.

여전히 분노를 삭이지 못한 모습이었다.

“천왕 케이원(K1)인가 하는 그 자식들이야. 딱 보면 알아. 모두가 정장을 했더라니까.”

“건달들도 정장이야.”

“건달과는 달랐어.”

털썩!

병원 밖으로 걸어나간 권총수는 인도에 있는 화단 턱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담배를 물었다.

곁으로 오민철이 앉았다.

“형 나가 있을래? 권씨일가 이 사람들 쉽게 물러날 사람들 아냐. 서울에 있으면 이런 일이 또 다시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오민철이 얼굴이 굳어졌다.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면 싸움이었다.

그런데 싸움을 앞에 두고 잠시 피해 있으라는 말은 굉장한 상처였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물론 권총수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대한민국 제일가문, 강호 무림으로 보면 천하제일가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건 곧 자신의 능력으로도 먹히지 않을 정도의 상대들이니 한 번만 자존심 접고 물러나달라는 것이었다.

“생각 좀 해보자.”

“이해해줘서 고마워!”

권총수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권총수는 숙소를 옮겼다.

이번에 투숙한 곳은 죽은 조마진이 대표로 있었던 엠파이어 호텔이었다.

호텔은 평소와 다름없이 보였지만 직원들 얼굴이 달랐다.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와 표정 모두 여느때와 다름없는 것 같았지만 권총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렇다고 권마진의 죽음을 슬퍼하여 그들 표정이 어두운건 절대 아니다.

우두머리가 교체되면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이뤄진다.

새로 들어온 대표는 전에 있던 사람의 흔적을 빨리 씻어내기 위해 정리해고 및 명예퇴직 형태로 이사진들을 개편한다.

또한 일반 직원들도 근무지가 바뀌면서 새로운 문화에 놓이게 되는데 이는 무척 불편하고 싫은 일이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한다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군대로 말하면 전출이 되는 셈이다.

주위 전우들과 얼굴을 익히고 어느 정도 적응할 만하니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 인 것이다.

호텔프런트에서 체크인을 마친 권총수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로비를 가로질러 갔다.

어깨에는 검정색 여행 가방 하나를 매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세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가 정장을 하고 있었는데 맨 가운데에서 걸어오고 있는 인물의 얼굴에 시선이 박혔다.

언젠가 사진으로 한 번 봤던 얼굴이다.

‘권마수’

걸어오는 사내는 바로 권철태의 둘째 아들 권마수였다.

권마수는 측근으로 보이는 두 사람과 얘길 나누고 있었는데 지금 아버지 권철태의 지역구를 물려 받아 차기 총선에 출마할 채비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권마수는 사내들 얘기를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선을 들었다.

맞은편에서 가방 하나 달랑 매고 오는 권총수를 발견한 권마수는 흠칫 했다.

“왜 그러십니까?”

사내들이 물었지만 권마수는 권총수를 한참동안 보았다.

“잠깐!”

권총수가 그들을 지나쳐 십여 미터 지나갔을 때 갑자기 불러 세웠다.

권총수는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나요?”

권마수는 느릿하게 다가오더니 권총수의 위아래를 훑었는데 옆에 서 있던 두 사내들이 크게 놀라고 있었다.

‘닮았다’

세상에 닮은꼴이 많다고 하지만 너무 닮았다.

쌍둥이까지는 무리일지 모르지만 형제라고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이다.

“초면에 미안합니다만 이름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권마수가 눈을 치켜떴다.

권총수는 무슨 일로 그러느냐는 듯 이마를 약간 찡그리는 것 같더니 툭 내 뱉었다.

“권총수라고 합니다만?”

“권총수.”

이름이 낯설지 않다.

물론 그 낯설지 않다는 생각은 이름이 자신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처음만나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호텔 직원은 아닌 것 같고?”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투숙객입니다.”

권마수는 지갑에서 자신의 명함을 한 장 꺼냈다.

“전화 한 번 주시죠. 언제든 좋습니다.”

권총수는 왜 내게 명함을 주느냐는 듯 바라보았다.

“그냥 주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권총수는 명함을 받아 들었다.

민국당 달성 지구당 위원장 권마수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아, 국회의원님이시군요?”

권총수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척 했다.

“아닙니다. 아직 현역은 아니고 후보자일 뿐입니다. 혹시 명함 있으면 한 장 줄 수 있습니까?”

권총수는 머쓱해 하며 말했다.

“명함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시간나면 한 번 전화 주십시오.”

권마수가 돌아서 걸어갔다.

권총수는 명함을 한 번 보고 걸어가는 권마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뭔가 느낌이 온 모양이군’

같은 피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다.

‘리틀 권철태라더니’

권총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 * *

두 대의 승용차가 일식 어군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차가 멈추고 앞 차 문이 열리더니 네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내렸다.

그들은 재빨리 뒤차로 다가가 문을 열어주었다.

진한 푸른색 정장을 한 사내가 내렸다.

검정 물방울이 찍힌 자주색 넥타이를 한 마흔 후반 가량으로 보였는데 오일을 발라 가르마를 탄 머리가 근처 가로등 불 밑에 반짝 거린다.

“가시죠!”

운전사까지 포함하여 다섯 명이 사내 조무종을 뒤따랐는데 어군 입구에서 이들을 기다린 듯 나비넥타이를 한 종업원이 허리를 구부렸다.

“어서 오십시오.”

“예약자 표도수.”

“이쪽으로 오시죠.”

종업원은 사내들을 마당을 가로질러 후원 별채로 안내해 갔다.

마당을 지나자 작은 연못이 있었으며 그 위로 나무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리너머는 후원이었는데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로 전통한옥이 한 채 있었다.

오 년 전 VIP 접대를 위해 인근 땅을 매입하고 새로 지은 건물이다.

사내들은 한옥 안으로 들어갔으며 종업원은 빠른 걸음으로 후원을 빠져 나왔다.

그로부터 20분쯤 지나 검정색 벤츠 한 대가 주차장에 멈췄다.

운전석 문이 열리며 운전기사 양형모가 내려 뒷문을 열어주었다.

넥타이 없는 검정색 양복을 한 권악수가 내렸다.

왼쪽 가슴에 삼배로 만들어진 작은 상장(喪章)을 달았다.

상중이라는 표식이었는데 어군 입구에는 사장 마석춘이 나와 기다리고 있다 권악수를 향해 허리를 구부렸다.

“준비된 방으로 안내 하겠습니다.”

마석춘이 권악수를 데리고 후원을 향해 걸어갔다.

참치 맛이 다르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어군의 인기는 갈수록 치솟았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저녁시간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이며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참치 전량을 일본 오오마 산으로 내놓기 때문에 가격은 천정부지로 뛴다.

그래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