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37화 (337/651)

제337화: 천하제일가(3)

회장 자리에 오르면 가장 빨리 처내야 할 가지들이다.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집사람이 자동차 사고를 당했습니다.”

“집사람? 마진이가?”

“한남대교 아래로 추락했는데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뭐야.”

권악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권철악과 서옥선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마진이에게 무슨 일 있다니?”

서옥선이 물었다.

“아닙니다. 마진이가 조금 다친 모양입니다.”

“어디를? 얼마나?”

“일단 병원에 다녀와서 말씀드리죠. 너무 걱정 마시고 식사 마저 하십시오.”

권악수는 곧바로 벗어놓은 윗도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권악수가 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 권철악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소파로 걸어갔다.

탁자 위에는 자신의 핸드폰이 놓여 있었는데 단축번호 한 개를 눌렀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어느새 아내 서옥선이 다가와 바라보고 있었는데 연거푸 세 번을 끊었다가 다시 눌러도 통화는 되지 않았다.

“전화 안 받아요?”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소.”

“어딜 얼마나 다쳤기에.”

서옥선의 얼굴에 불안한 그림자가 내려앉았는데 권철악은 다시 번호를 눌렀다.

“조상무, 어떻게 된 거야? 마진이가 어딜 다쳤다는 건가?”

호텔 상무인 조진영이다

“죄송합니다. 전 금시초문입니다. 사장님이 다쳤습니까?”

“알아보고 전화 좀 주게.”

“알겠습니다 회장님!”

권철악은 전화를 내리며 중얼 거리듯 말했다.

“조상무는 전혀 모르는 모양인데.”

“얘가 정말 전화를 안 받네.”

서옥선도 어느새 안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전화기를 들고 나왔다.

부부는 번갈아 가며 전화 통화를 시도 했으나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고 집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권철태는 감기 기운이 있어 오늘은 일찍 퇴근해 집에 들어와 있었다.

임기가 끝나고 청와대를 나온 권철태는 자신의 호를 딴 일월연구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겉만 연구원일 뿐 과거 자신을 따르던 정치인들과 가신그룹이 만나 차도 마시면서 우의를 쌓고 가끔 정치적 문제로 여야가 시끄러울 때 전직 대통령으로서 적당한 훈수를 두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소파에 앉아 오늘 배달된 동창회보를 보고 있을 때 이 층에서 아내 현미정의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소리니? 마진이가 사고를 당했다니 뭐라구? 맙소사 어떻게.”

권철태는 동창회보를 보다 말고 이 층 계단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았다. 일단 형님과 통화를 해보겠다.”

“무슨 전화인데 그렇게 요란해?”

“마진이가 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하네요.”

“누구야?”

“둘째요. 내일 그 녀석 생일이잖아요. 바빠 미역국 끓일 시간도 없을 것 같아 집에 와서 밥 먹으라고 전화를 했더니.”

둘째 아들 권마수의 아내 최서인의 생일이라는 뜻이었다.

“자세히 좀 말해봐요. 마진이 무슨 사고를 당했단 얘기오?”

“조금 전 마수한테서 전화가 왔다면서 자세히 묻지는 못 했나봐요. 교통사고라는데.”

현미정은 다시 번호를 눌렀다.

“어떻게 된 일이니? 마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뭐?”

현미정이 소스라쳤다.

“이...일을, 이일을.”

말을 잊지 못하고 더듬거리던 현미정은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여보!”

현미정의 안색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마진이가 탄 차량이 한남대교에서 강물로 추락했는데 아직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흠칫!

권철태의 눈이 커지면서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보름 전 바로 아래 동생인 백서그룹 회장 권철무의 아내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형님의 둘째 딸이 한남대교 아래로 추락하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번에는 권철태 자신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

“예 아버지!”

상대는 큰 아들 권악수였는데 통화를 하는 권철태의 얼굴이 갈수록 검게 변해 갔다.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내리는 권철태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권철태는 숨도 쉬지 않는 듯 꼼짝하지 않더니 동창회보를 놓고 일어나 2층 자신의 서재로 올라갔다.

권철태는 서재에 있는 책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열린 창문을 통해 쌀쌀한 밤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불편하다.

꼬집어 어디가 불편한지 말할 수는 없지만 가슴이 답답하면서 자꾸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정치판에 친구는 없다.

모두가 언제든지 필요에 의해 적이 될 사람들이며 그런 그들에게 속내를 털어 놓는다는 건 자살행위다.

그야말로 먹느냐 먹히느냐 하루하루 긴장하며 살다보니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버릇이라기보다는 동물적인 감각 같은 것인데 위험이 다가오면 알아차린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불편해진다.

몸이 까닭 없이 찌뿌둥 해지면서 이상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육식동물이 다가오면 초식동물들이 불안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었다.

‘어떤 일이 시작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정치적 위험이 아닌 가족을 향한 검은 그림자였다.

지금은 죽고 없지만 얼마 전까지 가끔씩 찾아보고 차도 얻어 마시던 통화사 주지 만공스님은 인간의 불행에는 어떤 공식이 있다고 말했다.

불행의 공식 중 첫 번째가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것이다.

당대에 화가 미칠 수도 있고 또는 후손에게 재앙이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 만공스님의 말이었다.

응보(應報)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본인이나 후손들이 눈치채지 못하거나 자신이나 선조의 잘못으로 인해 찾아온 화(禍)라는 걸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자신보다 더 노력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번쯤 본인의 삶과 조상의 흔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팟!

권철태의 눈이 빛났다.

왜 이제 생각난단 말인가.

자신에게도 응보가 분명히 있었으나 운이 좋게도 정치생명을 끊게 되는 보복은 당하지 않았다.

철저히 상대의 자비와 너그러움으로 위기를 넘긴 것이다.

‘권총수’

그를 떠올리자 답이 없을 것 같던 어려운 수학문제가 풀리듯 한 눈에 그림이 들어온다.

재빨리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두 번 가고 나서 상대가 받는다.

“예 대통령님!”

전 민정수석 윤태섭이다.

“바쁜가?”

“아닙니다. 지금 아내와 바둑 한 판 두고 있습니다.”

“바둑이라, 자네가 부럽군.”

“어쩐 일이십니까?”

“그 아이 지금도 용병으로 있다고 했던가?”

“갑자기 왜?”

“자네는 대답만 하게.”

“작년까지는 다인코프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었습니다.”

“그 바닥에서 부르는 별명이 있다고 했지?”

“사막의 흑새입니다.”

권철태는 권총수에 대해 몇 마디 더 묻고 전화를 끊었다.

권철태는 또다시 번호를 눌렀다.

“대통령님!”

상대는 무척 놀란 듯 했다.

“별일 없나?”

“저야 항상 잘 있습니다.”

“이번 사건 해결을 한 보안업체가 다인코프라던데 맞나?”

“그건 왜 물으십니까?”

“배 상무 아주 중요한 일이니 사실대로 대답해주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배웅대였다.

권악수가 다시 출근하라고 했으나 배웅대는 다음 날 회사를 찾아가 진정으로 그만 두고 싶다고 말했다.

자존심이 상한 듯 권악수는 알았다면서 사표를 수리했고 이제 천왕중공업과는 무관한 신분이다.

권악수를 통해 권철태를 알게 되었고 처음 만난 날부터 여러 가지로 따뜻한 배려를 해주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그 안에 사막의 흑새란 아이가 있었나?”

“어떻게 그걸?”

배웅대는 권철태가 오래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여배우 오설지와 평범한 관계를 넘어선 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 자식이 있다는 건 모른다.

단지 권총수는 만나면서 너무 닮았다는 느낌은 지금도 지우지 않고 있었다.

“그 아이가 누군지는 아나?”

“한국인 권총수라고 들었습니다.”

“만나 보았군?”

“예!”

“느낌이 어떻던가? 한국인이 세계적으로 이름난 용병이라는데 말이야?”

“대통령님?”

“느낌이 어떠했냐고 물었네?”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배웅대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사장님과 너무 닮았더군요. 형제라고 해도 믿을 만큼 같아서 매우 놀랐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주게. 거래는 정확하게 이뤄졌나?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청부액이 컸을 텐데 말이야? 신문에는 천만 달러 어쩌고 하던데 그 보다 훨씬 큰 액수라고 판단하네.”

배웅대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노련한 정치인답게 모든 상황을 한 눈에 꿰뚫어 보았다.

“십억 달러를 요구했습니다. 물론 성공했을 때라는 전제를 달았는데.”

“성공했는데 주지 않았군, 알겠네.”

전화를 끊고 난 권철태는 캄캄한 창밖을 내다보았다.

보름 전에 죽은 이순영은 조사결과 교통사고였다.

운전사 조덕봉은 순간적으로 핸들이 잠겼다 풀리는 바람에 가로수를 피할 수 없었다고 했고 차량 회사에서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고의적인 사고로 볼 수 있는 정황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오늘 권마진의 사고도 운전부주의에 의한 교통사고로 결론이 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권총수가 떠오를까.

권철태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새벽 5시쯤 권마진의 시신이 원효대교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가족들은 충격에 빠졌다.

권씨 가문은 보름 만에 또 다시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누군가 벨을 눌렀다.

다섯 시에 경찰 전화를 받고 난 권악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인터폰으로 다가간 권악수의 눈이 커졌다.

아버지 권철태가 온 것이다.

문을 열어주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권철태가 사냥 모자를 눌러쓰고서 마당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전화 받으셨어요?”

“받았다.”

권철태는 무거운 얼굴로 권악수를 스치듯 지나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권악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재빨리 뒤를 따라 들어갔다.

“여보!”

안방을 향해 아내를 부르자 권철태가 말렸다.

“며느리 깨울 것 없다. 시원한 물이나 한 잔 다오.”

권악수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컵에 따라 가져왔다.

벌컥벌컥!

마치 한여름에 땀을 흘리고 난 사람처럼 컵의 물을 단숨에 마셔버리자 권악수의 눈이 커진다.

“앉아 보거라.”

권악수는 권철태와 맞은편에 앉았다.

“뭐니 뭐니해도 형님 마음이 제일 괴로울 것이다. 네가 잘 위로해 드리거라. 장례식 또한 차질 없이 잘 준비하고.”

“그 말씀 하러 오셨어요.”

권악수는 별것도 아닌 일이라는 듯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악수야!”

권철태의 눈이 빛났다.

“십억 달러 당장 주거라.”

“무슨?”

“다인코프 용병들에게 청부금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권악수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이제 내 회사 일까지 관여하려 드십니까?”

“악수야!”

“못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만 가보세요.”

“작은 어머니가 죽고 이번엔 여동생이 죽었다. 느껴지는 것이 없단 말이냐?”

“둘 모두 그냥 교통...!”

교통사고였다고 말을 하려던 권악수가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설마 작은어머님과 마진이 죽음이 교통사고가 아니란 말입니까?”

“우리 집안에 액운이 밀려오고 있다. 액운을 피하기 위해서는 뭔가 해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또 그 점쟁이를 찾아간 모양이군요.”

정치를 하면서 툭 하면 권철태는 미아리에 있는 점집을 찾아갔다.

점쟁이는 맹인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데 용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선거철이면 정치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정치인 뿐 만 아니라 재벌들도 은밀하게 찾는 것으로 전해졌다.

“뭐라고 하던가요. 액운이 몰려드니 굿판이라도 벌여야 한다던가요? 얼마 달라고 합니까? 권씨 집안이니 굿 판 한번 벌리는데 백억은 달라고 했겠죠.”

“십억 달러를 주지 않으면 또 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어 갈 것이다. 세 번째는 어쩌면 너와 피를 나눈 사람을 겨눌지도 모르겠다.”

권철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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