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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36화 (336/651)

제336화: 천하제일가(2)

한편 사고 지점에서 300여미터 정도 떨어진 길가 버스 정류장에 권총수가 서 있었다.

덤덤한 표정으로 구급차가 사라지는 걸 바라보며 나직하게 중얼 거렸다.

‘얼마나 똑똑한지 아니면 지독한 돌대가리인지 두고 보지’

어검술(馭劍術)이라는 검의 경지가 있다.

내공으로 검을 조종하는 경지인데 요즘으로 말하면 리모트 컨트롤인 셈이다.

강력한 내가 강기를 이용해 검을 날리거나 아니면 다른 여러 무기를 조종할 수 있는 상승의 수법이다.

내가 강기를 쏘아 핸들이 움직이지 않도록 한 뒤 조덕봉이 온힘을 다해 트는 순간 강기를 회수해 버린 것이다.

당연히 핸들은 빠르게 돌아갔고 차는 가로수에 충돌했다.

고급차이기 때문에 아래 논바닥으로 굴렀다면 목숨은 건질 수 있었겠지만 가로수에 정면충돌한 이상 생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욱이 이순영은 안전벨트를 매지도 않았으니 무자비하게 머리가 꺾였을 것이다.

부우웅!

권총수는 랜트한 벤츠 승용차를 끌고 현장에서 사라졌다.

뉴스속보가 흘러나왔다.

백서그룹 총수 권철무 회장의 부인이자 백서미술관 관장인 이순영이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것이었다.

오늘 오후 경기도 포천에 있는 백서그룹 소유의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돌아오던 길에 사고를 당했으며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오늘 밤 7시 30분에 숨을 거두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권악수는 부라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천왕그룹에서 운영하는 대산병원이다.

병원장실에는 이미 이순영의 남편이자 백서그룹 회장 권철무가 와있었고 아버지 권철태 역시 나란히 앉아 침울한 표정이었다.

권악수의 동생 권마수와 어머니 현미정도 보인다.

권철무의 아들 권왕수와 딸 권혜림은 많이 울었던 듯 눈이 약간 부어있었다.

벌컹!

문이 열리고 네 명의 남녀가 들어왔다.

권철악의 두 딸인 권서진과 권마진이다.

뒤를 따라 들어오는 두 사내는 그들의 남편인 전철해와 김동복이다.

“혜림아!”

권서진과 권마진이 울음을 터뜨리며 권혜림에게 다가갔다.

“언니!”

권혜림은 권서진과 권마진을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딸과 조카들의 통곡에 권철무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기 위해 연신 눈을 깜빡 거렸다.

고개를 떨구기도 했고 길게 한숨을 쉬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지그시 감은 눈자위가 파르르 떨렸다.

다른 한쪽에서는 여자들이 숨죽여 흐느꼈고 그걸 바라보는 권악수는 연신 한숨을 내 쉬었다.

대산 병원장 서만독은 답답하다는 듯 천장을 올려다 본다.

밖으로 나온 권악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다른 쪽에서는 한 발 먼저 나온 듯 친동생 권마수를 비롯해 권서진 권마진의 남편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세 사람은 권악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지금 이런 말 할 시기가 아닌데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천왕그룹 회장 권철악의 큰 사위이자 권서진의 남편인 전철행이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인질 구출 말입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둘째 사위 김동복도 고개를 꾸벅했다.

“형님!”

권마수가 담뱃불을 끄며 말했다.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요.”

“소문?”

“이번 작전을 맡았던 용병회사와 천왕중공업 사이에 마찰이 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사실입니까?”

“누가 그래?”

“형님도 참, 소문을 누가 냈는지 아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그런 소문이 있어요. 자네들은 못들었나?”

전철행과 김동복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잠깐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전철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들었습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던데요.”

김동복이 눈을 좁히며 동조했다.

“천왕중공업쪽에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용병들이 몹시 흥분해 있다고 하던데.”

파팟!

듣고 있던 권악수 두 눈에서 냉기가 쏟아졌다.

‘권씨 집안의 씨족을 없애 버린다고 합니다’

배웅대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순간적으로 오늘 사고가 보복의 신호탄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권악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경찰에서 이미 1차 조사를 끝냈지만 흔히 발생하는 교통사고라는 잠정결론을 내렸다.

운전사 조덕봉을 불러 사고 순간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이상한 부분은 없었다.

“우리끼리니까 한 번 물어 봅시다. 형님 사실입니까 소문이?”

권마수는 아버지 권철태 뒤를 이어 정치적 야망을 키우고 있었다.

이미 아버지 지역구를 물려받았으며 처음에는 정치도 대물림이냐고 비판하던 언론과 여론도 권마수의 끈기 있게 낮추는 자세에 요즘은 오히려 미래를 이끌어갈 한국정치 30인에 뽑히기까지 하고 있었다.

권악수는 동생이지만 아버지 보다 훨씬 뛰어난 처세술을 바탕으로 한 권마수를 은근히 경계하고 있다

얼마 전 곧 있을 국회의원 선거의 여론조사 결과 지역구에서 경쟁자인 현역의원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다는 내용에 요즘은 더욱 용기백배해 있는데 바라보는 두 눈이 야릇하기도 했다

“대답하기 곤란하면 됐고.”

“대답하기 곤란 할 것 없다. 천만 달러를 제시했지만 그쪽에서 거절을 했다.”

“천만 달러.”

용병들의 몸 값에 대해 철저히 문외한인 전철행과 김동복은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대번에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을 찌푸렸는데 어느새 권악수를 두둔하는 얼굴들이다.

“미친놈들, 완전히 형님을 봉으로 본 것 아닙니까. 천만 달러가 뉘집 반려견 이름인줄 아나.”

하지만 권마수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누구보다도 권악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절대 뱉어낸 그대로를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벤츠 한 대가 도로를 달린다.

뒷좌석에 앉은 권악수 표정은 병원에서부터 시종일관 굳어 있었다.

‘설마’

자꾸 배웅대의 말이 떠올랐다.

권씨 씨족을 한 명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했다는데 오늘 사건이 꼭 개전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경찰조사와 운전기사 조덕봉의 의견을 들으면 용병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건 분명해 보인다.

단순한 운전부주의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권악수가 탄 차가 신호에 걸리면서 멈춰 섰다.

“양기사는 어떻게 생각해요. 오늘 사고 말이오?”

“운전부주의라는게 조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조기사 성격이 덤벙대는 것도 아니고 무척 차분하고 베테랑인데.”

권악수는 의자에 등을 붙이며 눈을 감아 버렸다.

그렇게 한 여자가 죽었고 보름이 지났다.

하지만 권악수 쪽으로부터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권총수는 다시 움직여야 함을 느꼈다.

‘이 정도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양이군’

권총수는 씨익 웃으며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오민철은 목숨을 건졌고, 깨어났다.

심장을 노린 칼이 천만다행으로 비켜갔기에 망정이지 그들은 죽이려고 했다.

서두른 나머지 칼을 꽂은 사내가 흔들린 것이다

그때, 오민철이 물었다.

“좀 늦추면 안 되겠냐?”

자신의 몸이 좀 나아지면 그때 같이 하자는 뜻이다.

오민철은 복수에 불타고 있었다.

“내가 할 테니 걱정 말고 빨리 일어날 준비나 해.”

권총수는 손을 들어 보인 뒤 병실을 나갔다.

복도를 걸어가며 핸드폰을 꺼낸 권총수는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있었는데 여자였다.

여자는 짧게 커트를 쳤다.

양쪽 귀에 은색의 나비 귀고리를 했고 가느다란 티타늄으로 된 안경을 끼었는데 얼굴에 여유가 넘친다.

호텔과 골프장을 경영하고 있는 권철악의 둘째 딸 권마진이었다.

밤이다.

엠파이어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한 대의 승용차가 달려나왔다.

붉은색의 스포츠카 페라리다.

잠시 신호를 기다리던 스포츠카는 초록색 화살표가 나타나자 빠르게 치고 나갔다.

부우우웅!

페라리가 떠나고 뒤이어 주차장을 나온 다른 차량들이 줄지어 도로로 들어섰다.

빨간 페라리가 한남대교에 들어섰다.

강남에서부터 달려온 페라리는 한남대교 북쪽 끝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다리 위 인도에는 운동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걷거나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부우웅!

페라리가 다리 중간쯤 들어섰을 때 매연을 마시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한 채 달리던 한 사내의 오른손이 빠르게 페라리를 향해 뻗어갔다.

쉬익!

바람이 찢기는 소리가 들린다.

소림의 탄지신통이다.

두 가닥 지풍은 100킬로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페라리의 앞 바퀴와 뒷바퀴를 파고들었다.

퍼억!

푸씨이이!

낮게 깔린 폭음이 들리며 페라리가 오른쪽으로 꺾어지면서 다리 난간을 들이 받았다.

콰아앙!

철제 다리 난간이 부서지며 빨간색 페라리는 검푸른 한강물 속으로 처박혔고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일제히 몰려들었다.

촤아아!

거센 물보라가 피어나며 페라리는 잠깐 사이에 강물 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119죠. 한남대교인데요 차가 강물에 빠졌어요.”

핸드폰을 갖고 있는 시민들이 앞 다투어 119에 신고를 했다.

심지어 달리던 승용차들까지 멈춰섰고 운전자들이 달려나와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페라리가 빠진 곳에서는 흰색의 거품만 일고 있었다.

삐이이!

싸이렌이 울린다.

멀리서 강력한 서치라이트를 켠 모터보트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는데 한강 수상구조대가 출동한 모양이었다.

보트는 커다란 파도를 몰고서 페라리가 빠진 근처에서 멈췄고 곧장 두 명의 잠수부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4분 34초’

추리닝에 마스크를 하고 뛰던 사내가 핸드폰 시계를 보며 중얼 거렸다.

정상적인 사람도 물속에 빠져 4분을 넘긴다는 건 불가능하다.

더욱이 난간을 칠 때의 강한 충격으로 운전자는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 틀림없다.

운동복 사내는 여기저기서 달려오는 구조대들이 탄 보트를 보며 느릿느릿하게 다리를 걸어 사라졌다.

권악수는 성북동 권철악의 집에 있었다.

저녁을 같이 먹자는 전화를 받고 온 것인데 공기밥을 절반쯤 비웠을 때 권철악이 말했다.

“쉬어야겠다.”

고개를 숙인 채 국물 한 숟갈을 떠서 먹던 권악수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몸이 예전 같지 않구나. 하긴 내일 모레면 나이가 팔십인데 그만 둘 때도 되었지. 늙은이가 너무 오랫동안 자리 지키고 있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야.”

“아예 회사경영에서 손을 뗀단 말인가요?”

아내인 서옥선이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이 그만 두라고 했잖소.”

“그냥 하는 말이 그렇지, 당신이란 사람이 언제 내말들었다고 그런 소리를 해요. 진짜 악수에게 넘기고 뒤로 빠질거에요?”

“이미 법적인 문제는 장변호사와 마무리 했다. 내가 가진 회사의 지분은 시간이 되면 너에게 모두 넘어갈 것이니 제대로 한 번 해봐.”

“아버님 감사합니다.”

“난 한번도 널 조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넌 내 자식이야. 이 권철악의 외동아들이라고.”

“당연합니다. 아버님.”

“기분 좋니?”

서옥선이 권악수를 보며 웃는다.

“어머니.”

권악수가 감격에 말을 잇지 못하자 서옥선이 배시시 웃었다.

“너도 웃을 줄 아는구나. 항상 보면 돌덩이처럼 얼굴이 굳어 있어 자식이면서도 좀 어렵다고 생각 했는데.”

“죄송합니다 어머니. 앞으로는 자주 웃도록 하겠습니다.”

지이이잉!

권악수는 주머니속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액정에 김동복이라는 이름이 떴다.

“웬일인가 자네가?”

권악수의 목소리를 착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는 천왕중공업 사장이 아니라 천왕그룹 회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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