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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26화 (326/651)

제326화: 귀천(歸天)2

사내들은 작전지도로 보이는 넓은 종이를 놓고 토론을 하고 있었다.

소리가 울려 여전히 대화는 알아듣기란 불가능했다.

동굴은 상당히 넓었는데 지하 광장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바닥까지 평평했다.

파팟!

안력을 돋우어 광장을 살피던 권총수 눈이 빛났다.

광장 안쪽 벽으로 또다시 여러 개의 동굴이 보였다.

건조한 사막지대에 자주 나타나는 풍혈(風穴)즉, 바람의 동굴이다.

날씨가 건조하면 바위는 더욱 말라가고 작은 바람에도 부스러기가 되어 날리면서 동굴이 형성된다.

퍼억!

그때 안쪽 동굴에서 사람 한 명이 나동그라지며 나타났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죽고 싶어?”

AK를 든 사내가 바닥에 쓰러진 사내에게 총구를 겨눴다.

“사피르 뭔가?”

등을 돌리고 앉은 한 사내가 물었다.

“잠시 총을 풀어 놓았는데 이자가 손을 대지 뭡니까? 훔치려고 했던 것이 분명한데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등을 돌리고 앉은 사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인데 사피르라는 사내는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아이고!”

화아악!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한국말이다.

얼굴이 돌려져 있어 볼 수는 없지만 틀림없는 한국말이었다.

“총수야!”

오민철이 옆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돌리자 뒤로 팀원들 모두가 HK-416을 쥐고 공격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권총수는 지금까지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전음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공격이 시작되면 벤자민과 그레이엄 테리는 1시 방향의 동굴로 진입한다.’

모두 네 개의 동굴이 있었기 때문에 권총수는 일일이 각자 맡을 곳을 정해주었다.

마지막 10시 방향, 즉 조금전 한국인이 끌려 나왔던 동굴은 자신이 맡기로 했다.

나머지 광장에 있는 사내들은 오민철이 주도하여 처리한다.

‘생포 할 수 있으면 하라. 하지만 사로잡기 위해 위험은 자초하지 말도록.’

권총수는 들고 있는 HK-416총을 들어 올렸다.

“알파팀, 공격 개시.”

말이 떨어지는 순간 쉬이이 하며 극성의 금강부동신법이 펼쳐졌다.

바위 기둥 뒤에서 광장 안쪽에 있는 동굴까지 50여 미터 되었는데, 번쩍하는 순간 안으로 들어갔으며 이어 HK-416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들렸다.

드르르륵!

아무리 뛰어난 군인도 매복과 기습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더욱이 하나같이 전장의 경험이 풍부한데다 적지 않은 동료를 잃은 용병들의 사격은 오차가 없었다.

“모조리 쓸어!”

오민철이 외침이 지하 광장을 울렸다.

한편 동굴로 들어간 권총수는 가장 먼저 입구에 서 있는 사내를 향해 장력을 날렸다.

붉은 손바닥이 사내의 머리를 가격했다.

퍼억!

단금인(斷金印)이다.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이 산산이 부서졌고 권총수의 손에 들린 HK가 불을 뿜었다.

동굴은 제법 넓었고 터번을 쓴 두 명의 사내를 향한 사격은 정확했다.

드륵!

드륵!

그들 역시 머리통이 날아가 버렸다.

권총수의 총구는 아직 성을 내고 있었는데 적으로 간주되는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동굴에는 촛불 두 개가 켜져 있지만 어둠을 완전히 밀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둠이 깊은 탓에 권총수의 두 눈은 더욱 이글거렸다.

사람들은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고 권총수는 인질로 위장한 무자헤딘 조직원이 있는지 맹렬한 눈빛으로 살핀다.

사실 반박귀진을 넘어 등봉조극에 들어서고 있는 권총수의 이목을 벗어난다는 건 불가능하다.

스으으!

그제서야 권총수의 총구가 밑으로 내려갔다.

“엔터프라이즈호 선원들입니까?”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 같은데 누구요?”

일제히 엎드렸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는데 짐승들처럼 파란 눈동자들이 권총수에게 집중되었다.

바깥에서는 계속 총소리가 들렸으며 비명과 외침이 이어지고 있었다.

권총수는 윗주머니에서 접혀진 종이 한 장을 꺼내 펼쳐 들었다.

버홀터로부터 넘겨받은 엔터프라이즈호 선원 명단이다.

“선장 임선근씨?”

대답 대신 사람들 시선이 한쪽 구석으로 돌아갔다.

권총수는 사람들 시선을 따라 구석을 바라보았는데 한 사내가 누워 있었다.

스윽!

한 걸음 떼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누워 있는 사내 곁으로 다가가 내려다보았다.

흠칫!

어두웠지만 권총수는 환한 불빛 아래 있는 듯 볼 수 있었고 끔찍한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이라기보다는 고깃덩이였다.

숨은 쉬고 있으나 사람이 다가왔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심하면 선장을 끌고 나가 두들겨 패고 아무 이유 없이 고문을 가하고 대검으로 푹푹 찌르며 노래 부르기를 강요했소.”

한 사내가 울분 가득 찬 외침을 토했다.

권총수는 급한대로 선장의 단전에 진기를 주입했다.

진기가 들어가자 선장의 얼굴에 조금씩 혈기가 돌면서 호흡이 커졌다.

“임선근 선장이십니까?”

권총수가 묻자 반응 없던 임선근이 눈을 뜨고 대답했다.

“내가 임선근이오.”

“알겠습니다. 가만 누워 계십시오.”

권총수는 항해사를 포함하여 선원들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다행히 단 한 명도 죽거나 명단에서 빠진 사람은 없었다.

“잠깐 기다리세요.”

권총수는 동굴을 나갔다.

총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야시경을 쓴 팀원들이 곳곳을 수색하고 있었다.

“형!”

권총수는 멀리서 총을 들고 달려가는 오민철을 불러 세웠다.

오민철이 고개를 돌리더니 재빨리 다가왔다.

“어떻게 됐어?”

“모조리 청소는 한 것 같은데 어딘가 처박혀 있는 놈이 있을지 몰라 수색중이야.”

딸칵!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탕!

타아앙!

간헐적으로 총성이 들렸지만 적과 교전이라기 보다는 확인 사살하는 소리였다.

권총수는 담배를 피우다 지하광장 가운데로 걸어갔다.

아홉 구의 시신들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권총수는 피로 범벅이 된 바닥의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지도가 아닌 펜으로 그려진 약도였는데 어느 건물을 가리키는 듯 이름까지 쓰여 있었다.

“라호르.”

권총수는 쭈그리고 앉아 약도를 찬찬히 훑었다.

테러조직원들이 둘러 앉아 토론을 할 정도의 약도라면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라호르 내쇼널뱅크오브.”

어딘가 싶어 한참을 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벤자민이었다.

“라호르 빌딩에 내쇼널뱅크오브 지점이 있어. 예전 아카데미 시절 라호르에서 2년 동안 활동한 적이 있지. 그래서 그곳 지리는 훤히 꿰뚫고 있다고.”

벤자민은 야시경을 쓰고 약도를 보았다.

“자식들 은행을 털려고 했던 모양인데.”

그때 팀원들이 다가왔다.

“사망자 열다섯, 우리측 피해는 허벅지 관통상을 입은 부상1명 외에는 없어.”

오민철이 말했다.

권총수는 동료의 부축을 받고 있는 팀원을 보았는데 레이였다.

허벅지를 붕대로 묶었으며 붉은 피가 배어 있었다.

“괜찮습니까?”

“견딜만합니다.”

“형, 선원들 데리고 나와.”

오민철이 동굴 쪽으로 뛰어갔고 그레이엄이 시신들 소지품이 담긴 가방을 내려놓았다.

신분증 따위는 없었고 담배와 라이터, 그리고 몇 장의 가족 사진들이 보였다.

“아무리 찾아봤지만 아슈칸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레이엄의 손에는 아슈칸의 사진이 쥐어져 있었다.

권총수도 조금 전 시신들을 보았지만 아슈칸의 얼굴은 없었다.

그때 선원들이 밀려 나왔는데 오민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시끌벅적했다.

오랜 감금생활로 선원들은 지쳐 있었지만 한국인이라는 것에 안심을 한 듯 생기를 뿜기 시작했다.

“철수!”

권총수가 앞장을 섰다.

야시경이 없기 때문에 팀원들은 무자헤딘 조직원들이 갖고 있던 양초를 하나씩 나눠 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여러 명이 촛불을 들자 주위는 상당히 환했고 위험한 동굴이지만 크게 다치거나 부상당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한편 앞서가는 권총수의 눈썹이 찌푸려져 있었다.

생각보다 적의 인원이 많지 않았다.

또한 우두머리 아슈칸의 행방이었다.

국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장본인이 자리에 없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탈레반은 이름만 같을 뿐 전혀 성격들이 다르다.

아프카니스탄 탈레반, 파키스탄 탈레반, 아프리카 탈레반 모두 단독으로 움직이는 그들만의 집단이다.

그러나 무자헤딘은 조금 달리한다.

인도의 무자헤딘과 파키스탄의 무자헤딘은 다르긴 하지만 필요할 때는 서로 협조하고 소통한다.

뿌리도 다르고 시작도 틀리지만 묘하게 크고 작은 교류를 하는 것이다.

어쨌든 아슈칸을 잡는데는 실패했지만 선원들을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마침내 밖으로 나왔다.

선두에서 가장 빨리 나온 권총수가 갑자기 동굴 안을 향해 말했다.

“잠깐, 움직이지 마세요.”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며 바라보았다.

타타탁!

재빨리 오민철이 뛰어 올라와 마을 쪽을 바라보았다.

AK로 무장한 일곱 명의 사내들이 무너지고 패인 폭발현장을 살피고 있었다.

권총수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는데 내공이 주입되고 있었다.

파아아!

눈 안에서 광선 한줄기가 폭사된다.

“포플러나무 아래 있는 자.”

그러자 재빨리 오민철과 벤자민이 쌍안경을 들어 올렸다.

“맞지. 아슈칸?”

오민철이 주머니에서 로얄카드를 꺼냈다.

사진속 인물과 쌍안경속 사내를 관찰하더니 깜짝 놀란다.

“맞아. 아슈칸이야. 그놈이 틀림없어.”

“아슈칸입니다.”

벤자민도 사진을 들고 있었는데 동일인물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검들 줘봐.”

오민철이 자신의 것을 뽑아 주며 어디에 쓸것이냐는 듯 바라본다.

나카야마 벤자민 그레이엄이 앞 다퉈 대검을 건넸다.

“됐어.”

모두 여섯 자루다.

권총수는 소총을 오민철에게 건네주더니 차고 있던 글록 18을 살폈다.

“여기서 대기.”

권총수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스으으으!

금강부동신법이 펼쳐졌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니지만 벤자민의 얼굴이 굳었다.

선원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아 권총수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사람은 날고 싶어 비행기를 만들었다.

혼자 날고 싶어 윙 슈트까지 나왔으나 저토록 자기 마음대로 멈추고 속도를 높이고 여러 가지 동작으로 바꿔날지는 못한다.

“차라리 꿈이겠지.”

누군가 중얼거렸다.

권총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하듯 순식간에 마을 입구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 아래 내려섰다.

나무아래 서서 조심스럽게 불영보를 펼쳤다.

여기저기 권총수의 그림자가 떠도는 듯 하더니 순식간에 사내들 곁으로 접근했다.

누구도 권총수가 다가왔다는 걸 알지 못하는 듯 땅을 파고 주위를 살핀다.

슈우욱!

두 개의 대검이 날아갔다.

사격자세로 지뢰가 매설되었던 근처를 살피던 두 사내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스으으!

포플러나무 근처로 이동했다.

마흔 초반 가량의 사내가 그늘 아래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듯 핸드폰을 들고 얘길 나누고 있었다.

권총수는 팀원들이 묻힌 무덤을 파헤치고 있는 사내들에게 멈췄다.

사망한 무자헤딘 조직원의 시신은 방치했는데 주변이 파헤쳐져 있는 것에 이상함을 느낀 듯 확인하려는 모양이었다.

묻힌 사람이 누군지, 동료일지 아니면 공격자들일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촤아아아!

네 개의 대검이 허공을 날아갔다.

푹!

푸푸푹!

삽으로 무덤을 파던 네 사내의 목에 대검이 깊숙하게 박혔다.

누군가는 손에 쥐고 있는 AK를 들어올리기 위해 바둥거리다 그대로 엎어졌고, 기어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죽인 사람이 누군지 바라보며 숨이 끊어지는 사내도 있었다.

풀썩!

풀썩!

일곱 중 여섯이 죽었다.

통화를 하는 아슈칸은 아직 상황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형, 사람들 데리고 와.”

무전기에 대고 말을 한 권총수는 천천히 포플러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아슈칸은 강 쪽을 보며 통화를 했기 때문에 등을 돌린 자세이다.

권총수는 발자국 소리를 숨길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들릴 거리지만 통화에 집중한 아슈칸은 여전히 모른다.

저벅저벅!

권총수가 오 미터 앞까지 다가가 설 때서야 돌아섰는데 생각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부하인줄 알았는데 전혀 낯선 사람의 등장에 약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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