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25화 (325/651)

제325화: 귀천(歸天)1

나카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갔어.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극락정토로.”

휘익!

권총수의 몸이 순간적으로 솟구치더니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철저히 수색해. 보이는 놈은 무조건 쏴 버려.”

오민철이 무전기에 대고 악을 썼다.

주위는 폭격을 맞은 듯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서 있지 못했고 근처 농가는 완전히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시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권총수는 긴장하며 느릿하게 다가갔다.

비록 폭발로 인해 얼굴이 불타고 상당히 망가졌지만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세인!”

멕시코가 고향인 히스패닉계였다.

다섯 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건너왔고 대학 재학 중 군에 입대했다.

델타포스 출신으로 용병생활 3년째이다.

올해 말쯤이면 아버지의 꿈인 멕시코 도넛츠 가게를 열 수 있다면서 환하게 웃던 모습이 선했다

‘세인! 세인!’

쭈그리고 앉아 까맣게 불타버린 세인의 얼굴을 만졌다.

슥! 스윽!

엄지 손가락으로 세인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어주었다.

중학교 시절 성당에서 장례식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가난하여 병원 장례식장 이용이 버거운 교우들은 성당에서 준비한 장례물품을 이용하여 식을 치룬다.

그때 축구공이 보관된 위령실로 불쑥 들어갔다가 한참 염을 하며 기도하는 신부님을 보았는데 시신의 이마에 엄지손가락으로 성호경을 그었다.

권총수는 옆에 있는 흑인 시신을 바라보았는데 콜린스였다.

말이 없는 사내다.

그래서 동료들은 ‘침묵의 블랙 타이거’라고 불렀다.

전미 학생 유도 선수권대에 -90킬로 체급 2연패를 했던 파이터다.

어깨부상만 아니었다면 그 길로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해 어깨뼈가 부서지면서 모든 꿈을 접고 네이비 씰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가족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일체 말하지 않아 카이로 지사장 버홀터 말고는 그의 가정사를 아는 사람은 없다.

권총수는 콜린스에게도 십자가를 그어주고 천천히 걸어갔다.

또 한 구의 시신이 보이는데 얼굴이 없었다.

가슴에서부터 날아가 버린 반쪽의 시신이지만 신발과 바지에서 누군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권총수는 눈을 감아 버렸다.

보지 않고 싶은 것을 기어이 봐 버린 것이다.

“눈 형!”

비렌드라 시신이었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태어나 핏덩이때부터 포탈라궁 승려들에게 키워졌다.

차분하면서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성품에 많은 용병들이 존경을 주저 하지 않는다.

보시(布施)야 말로 불가의 최고 덕목이고 그 보다 더 훌륭한 선행(善行)은 없다는 말을 몸소 실천했다.

네팔의 미래는 오로지 교육에 달렸다면서 번 돈의 구십 퍼센트를 학교 짓는데 기부한 것을 두고 누군가 살아 있는 부처(活佛)이라고 했다.

딸칵!

시신 옆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은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걸 악착같이 참는다.

부들부들!

담배를 쥔 손이 떨린다.

주르륵!

기어이 눈물은 흘러내리고야 말았다.

햇빛에 눈물이 반짝거리며 말보로 레드의 푸른 연기가 시신 위를 떠돌았다.

마치 망자의 넋인 양, 차마 육신을 떠날 수가 없다는 듯 한참을 머물러 있더니 느릿하게 높은 산봉우리를 향해 올라간다.

가라.

마음껏 날아올라 저 하늘의 구름이 되어라.

구름이 되기 싫거든 달이 되고 달도 싫거든 무수히 많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세상을 노래하라.

‘형, 잘가’

권총수는 절규하듯 속으로 부르짖었다.

언젠가 부모님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비렌드라는 자신과 다를 바 없이 버려진 권총수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전혀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미움이나 증오의 차원에서 나오는 분노의 감정이 아니라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제대로 깨우치거나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민철을 포함한 알파 팀원들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몇몇이 보이지 않는다.

“젠장! 많이도 갔다.”

오민철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토했는데 비렌드라까지 포함하여 일곱 명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

오민철의 목소리가 젖어 들어간다.

투덜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오민철의 눈자위가 들썩거리더니 끝내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다.

“벤자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권총수가 물었다.

벤자민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대부분 지뢰와 부비트랩에 걸려 시신이 엉망일세. 차라리 이곳에 묻어 주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군.”

권총수 또한 그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향땅에 눕지 못하는 아픔은 전장의 군인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용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결코 부드럽지 못하다.

그러나 분명 이들에게도 아무도 모르는 고민과 아픔과 상처가 있다.

누군가는 아픈 상처를 달래기 위해, 어떤 이는 형제와의 반목을 견디지 못하고 전장으로 나오기도 했다.

마약 하는 아버지의 상습 폭행에 집을 뛰쳐나와 스스로 성장하여 어른이 된 사람도 많았다.

“나중에 평화가 오면 그때 유족들이 여길 찾아와 데려갈 수 있도록 표식만 분명하게 하여 묻어 줍시다.”

권총수는 물고 있는 담배를 땅바닥에 비벼 끄다 말고 멈칫했다.

엄지와 검지에 잡힌 담배꽁초를 향해 무엇인가 전달되고 있었다.

“왜?”

탁!

조용히 하라는 듯 왼손 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순간 모든 팀원들이 일제히 하던 동작을 멈추고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흔들린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담배꽁초를 통해 미세한 떨림이 전달되고 있었다.

손끝 감각으로만 전달되고 느껴지는 초미세한 진동이다.

일반인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정적 같은 파장에 권총수는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 손가락에 집중했다.

‘발자국 소리, 쇠가 부딪치고, 가만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다’

모두가 동상이 되어버린 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있다. 적은 인원이 아니다’

권총수는 담배 꽁초를 버리고 고개를 들었다.

“주목! 자연스럽게 움직이세요. 담배도 피우고 떠들고.”

뭔가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용병들은 피우던 담배를 다시 물었고 일부는 사망한 동료들을 묻기 위해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형, 지하에 사람이 있어.”

오민철의 눈이 커진다.

“땅굴?”

“자세한 건 모르겠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소총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도 들리고.”

“이 지역에 천연동굴이 많다던데?”

“벤자민, 그레이엄, 테리, 필립스.”

권총수는 네 사람을 불렀다.

“동굴입구를 찾아. 마을 어딘가에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야마 형도 같이 좀 찾아.”

“물론이지.”

나카야마까지 다섯 명이 각자 흩어졌다.

권총수 또한 내공을 잔뜩 끌어올려 천리지청술을 전개했다.

소리가 분산된다.

즉 동굴이다 보니 소리가 울림으로 인해 정확한 위치 파악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오민철은 땅에 귀를 대어보기도 하고 권총수처럼 담배를 지면에 대고 진동이 있는지 살폈지만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권총수 만큼은 안 되지만 자신의 내공도 20여 년은 된다.

일반인의 감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데도 전혀 지하에 동굴이 있다거나 하는 징후는 느낄 수 없었다.

“M15 대전차 지뢰가 폭발했다는 건 아주 깊숙이 있는 자연동굴일 가능성이 높아.”

권총수는 뺨에 흙이 묻는 걸 아랑곳 하지 않고 귀를 땅에 대는 오민철을 보며 말했다.

형은 울림을 잡아내지 못해 라고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저렇게라도 하는 것이 먼저 떠난 비렌드라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뺨에 흙이 범벅이 되었지만 멈추지 않는다.

비렌드라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음이 분명했다.

무전기가 조용했다.

그건 아직까지 누구도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벤자민으로부터 혹시 잘못들은 것 아니냐는 질문의 무전이 날아왔다.

권총수는 그렇지 않다면서 차분하게 찾아 볼 것을 주문했다.

멈칫!

주위를 살피던 권총수는 무심결에 마을 앞으로 난 길을 바라보았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절벽으로 강한 햇볕이 부딪치고 있었는데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햇빛을 받은 절벽은 온통 회색빛이다.

그런데 시커먼 부분이 눈에 띄게 도드라졌다.

유일하게 검은색의 절벽이 보인다.

그건 누가 봐도 구멍이 뚫려 햇빛이 안으로 들어가므로 인해 생기는 그늘이자 어두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권총수의 눈이 햇빛에 번들거렸다.

“형 따라와.”

권총수는 오민철을 데리고 재빨리 마을을 벗어났다.

“어딜 가는데?”

마을에서 절벽 아래 길까지는 200여 미터 떨어졌다.

권총수는 단번에 날아갔고 오민철은 죽어라고 달린다.

절벽 앞에 도착한 권총수는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바로 머리 윗부분이 툭 튀어나와 동굴 입구로 추정되는 곳을 가리킨다.

뒤로 10여 미터 물러나 올려다보자 그제야 보인다.

팍!

그대로 땅을 박차며 몸을 솟구쳤다.

권총수의 몸은 가볍게 떠올라 단번에 동굴 입구에 내려섰다.

흠칫!

내려서자마자 재빨리 옆으로 붙어 섰다.

안으로부터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필시 이곳부터 시작된 지하 동굴이 마을 아래까지 뻗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경계병 세 명만 남기고 나머지 야시경 챙겨 전원 절벽 아래로 집합할 것.”

권총수는 갖고 있던 무전기에 대고 빠르게 명령했다.

잠시 후 오민철까지 포함 열 명의 용병들이 절벽 아래로 모였다.

휘익!

벤자민이 갖고 있던 로프를 힘껏 던져 주었다.

탁!

권총수는 로프를 낚아 챈 뒤 근처 바위에 단단히 묶었다.

오민철을 필두로 용병들이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모두가 신속했다.

하나같이 쏟아 내는 살기에 절벽이 파르르 떨며 돌조각 몇 개가 떨어졌다.

“탄창 확인!”

팀원들은 최대한 소리를 죽여 탄창을 확인하고 총알이 바닥인 사람은 30발 들이 새 탄창으로 바꿔 끼었다.

“야시경 착경!”

모두가 양안식 야시경을 머리에 썼다.

“무전기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모두가 ON, OFF 의 스위치를 살피고 이상 없음을 눈으로 보고했다.

“대기!”

권총수는 먼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흙이 묻어 있다.

그건 상당시간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있었다는 뜻이다.

권총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초상비를 펼쳐 내려갔다.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권총수에게는 어떤 방해도 되지 못했고 동굴은 끝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권총수는 물이 흐르는 강 보다 더 밑으로 내려왔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목소리는 갈수록 가깝게 들렸지만 윙윙하는 소리에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족히 백 미터는 내려 온 듯 하다고 생각 할 때 마침내 평지가 나타났다

천장에는 종유석이 아닌 자연발생적인 바위들이 울퉁불퉁 매달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동굴은 습기가 그다지 없었고 바깥보다는 훨씬 시원했다.

“진입!”

무전기에 속삭였다.

울퉁불퉁한 동굴을 따라 들어가던 권총수가 옆에 있는 엄청난 크기의 돌기둥 뒤에 몸을 숨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안쪽을 살폈는데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터번을 두른 사내들이 넓은 바닥에 빙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권총수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살폈다.

‘아홉!’

모두 아홉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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