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24화 (324/651)

324화: 마을의 교전(3)

레치베르는 사진을 자세히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본적이 없다는 뜻이다.

딸칵!

오민철이 자신의 라이터까지 켜서 비췄지만 레치베르로부터 더 이상의 긍정적인 대답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한 사람이 새벽같이 떠났다.

그는 이곳 훈자에서 태어나 자랐고 결혼하여 아이까지 가졌다.

그러나 이제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훈자를 걸어 나가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관광지일지 모르나 자신에게는 오로지 고생과 고통, 험난한 삶의 추억밖에 깃들지 않은 땅이다.

자꾸 돌아보는 남편 레치베르를 바라보는 아내 라디아가 조용히 말했다.

“실컷 보세요. 어쩌면 살아 생전에는 다시 올 수 없는 곳이 될지 모르니.”

라디아도 울었다.

자신도 여기서 났고 자랐다.

남편이 슬퍼하므로 자기까지 감정이 흔들려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고 꾹 참는다.

사진처럼 두 눈에 깊숙이 각인하고 새기겠다는 듯 한참을 돌아보던 레치베르의 발길이 돌아섰다.

세 사람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훈자마을에 작은 발자국 몇 개 남기고 사라졌다.

강물에 손을 담가본 용병 하나가 흠칫했다.

생각보다 강물이 더 차다.

유속도 빠르다.

“장비착용!”

권총수의 지시에 선발된 10명의 용병들이 RAL-V11을 착용했다.

마스크를 쓰기 전 권총수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물이 차갑습니다. 지금이라도 포기해도 괜찮습니다.”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도 포기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좋아. 행운을 빕니다. 잠수.”

권총수가 가장 먼저 물속에 들어갔고 연이어 사내들이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물속 시계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은 빙하지대와 석회암지대를 지나오면서 약간 탁해진다.

사파이어와 에메랄드 중간쯤 되는 연녹색을 유지한다.

RAL-V11의 장점은 호흡을 해도 수면위로 거품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은 탁해도 권총수에게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권총수는 용병들 사이를 다니며 혹시 신체적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

벤자민 옆으로 다가가 엄지손가락을 세웠다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든다.

우린 반드시 성공하여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인이다.

벤자민 역시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동그라미를 만들고 엄지 손가락을 세웠다.

슈우우!

물살이 빨라 내려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팔목에 차고 있는 온도계는 4.3도를 가리키고 있었으며 이런 상태라면 30분 이상은 위험하다.

물론 푸노아 마을까지 가는데는 늦어도 20분 이내에 도착할 것이다.

권총수는 쉬지 않고 용병들 사이를 다니며 손가락 신호로 격려하고 눈빛으로 자신감을 전달했다.

관광객들은 비명을 질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서스펜스 브릿지는 흔들 거렸기에 난간밧줄을 잡고 아우성이다.

다리를 건넌 사람들은 절벽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어떻게 그 옛날 암석으로 된 절벽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었는지 불가사의하다며 경탄했다.

천장은 정확히 사람 키만큼만 높았다.

수레 두 대가 겨우 비켜 지나갈 정도로 길의 폭은 2미터가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왼쪽 아래는 낭떠러지에 강물이 흐르고 머리 위로 절벽을 이고 가는 모양새다.

천장의 돌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두려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茶)와 말을 교역하던 차마고도가 아니다.

오로지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사진을 찍으며 좋아하는 관광객들 사이로 하나 둘 베낭을 맨 사내들이 지나갔다.

그들 또한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장난을 쳤다.

주위 관광객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복장과 밝은 표정은 태초에 가까운 훈자의 모습에 흠뻑 빠진 그대로였다.

오민철이 비렌드라와 얘길 나누며 걸었고 조금 떨어져 나머지 용병들이 둘 셋씩 짝을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오민철은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팀원들 모습을 살폈는데 하나같이 자연스럽다.

어제 밤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 연습을 했었다.

사냥감은 굉장히 예민하다.

무자헤딘은 강력한 테러집단이며 미국과 영국 프랑스군으로부터 끝없는 추적을 받고 있지만 항상 건재하다.

그들 눈은 일반인과 다르다.

아주 작은 틈에서 위험을 찾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연기가 완벽해야 한다.

푸노아 마을이 눈앞에 들어온다.

농부들 몇이 보인다.

만약 레치베르를 만나지 않았다면 진짜 농부로 착각했을 것이다.

20년전 파키스탄 탈레반의 학살로 폐촌이 되어버렸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에 저들 모두 무자헤딘일 가능성이 백 프로다.

아직 무전이 오지 않는 걸 보면 수중 침투 팀이 육지에 오르지 못했다는 뜻이다.

별일 없어야 한다.

해상 침투 훈련을 하는 현역이라도 수온이 너무 낮아 걱정될 일인데 나이도 들었고 몸도 늙어가는 나이들이다.

‘좀 더 자연스럽게.’

턱밑에 달린 무전기에 대고 팀원들의 사진촬영을 시작했다.

‘더 웃고, 손가락 브이자도 멋지게’

사진을 찍는 용병들에게 무전을 보낸다.

한 눈에 보인다.

팀원들의 몸놀림이 처음과 달리 무척 투박하다.

그건 냉기에 의해 체온이 떨어지면서 근육 경직이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다.

탁탁!

권총수는 일부러 어깨를 치고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격려하고 용기를 돋운다.

‘다 왔습니다. 마지막 힘을 내시죠’

수중이기 때문에 전음 거리가 짧지만 한데 어울려 가는 거리가 20여 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으므로 충분히 들린다.

용병들은 더욱 힘을 냈고 멀리 바위가 보이며 계단이 물속에 나타났다.

레치베르에 의하면 마을 여인들이 빨래를 하기 위해 돌을 깎아 계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빨래터였지만 십여 년 사이 눈 녹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물이 불어나 잠겼다고 했다.

스윽!

가장먼저 권총수가 고개를 내밀었다.

조그만 언덕인 탓에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전음이 모두의 귓가를 울렸고 열 명의 용병들이 올라와 재빨리 장비를 벗었다.

환복을 한 용병들은 어느새 완전한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소총확인!”

모두가 자신의 소총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을 하며 이상 없음을 수신호로 보고했다.

그사이 권총수는 재빨리 관광객이 되어 접근하고 있는 오민철에게 무전을 보냈다.

“위치 보고.”

“마을 진입로 십 미터 앞.”

오민철 일행은 절벽 구간을 지나 다시 평지로 들어섰는데 왼쪽으로 마을이 있었다.

주민으로 보이는 두 명의 사내가 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아 관광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민철은 재빨리 보고했다.

“경계병으로 보이는 두 명이 나무 아래 앉아 관광객들을 바라보고 있어.”

“총 보여?”

“아직!”

“다른 사람은?”

“조용한데.”

“잠시 공격 대기.”

권총수는 무전을 끝내고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분명하게 드러난 것 없습니다. 한 가지 자신할 수 있는 건 이곳 푸노아 마을은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의 동네라는 거죠. 한 가족이 살고 있지만 다른 집들은 텅 비었습니다.”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권총수의 말을 듣고 있었다.

“생포하려는 생각 하지마세요.”

“그냥 보이는 건 쏘라는 겁니까?”

“마을 사람은 없습니다.”

“조금 전 한 가족이 산다고 했잖습니까?”

권총수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차갑게 말했다.

“보이는 건 모두 쏴.”

위험하다는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상대는 지구상 최고의 테러조직중 하나인 무자헤딘이다.

실전경험이 풍부한 전쟁의 프로들이다.

민간인의 생명을 보호하고 그들의 신변 안전조치가 공격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유엔헌장을 모르는바 아니다.

하지만 오늘만은 전쟁은 민간인의 피해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애써 합리화하기로 했다.

팀원들은 죄가 없다.

모든 건 지휘관의 책임이기에 만약 벌을 내린다면 자신에게 달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권총수가 앞장을 서며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 끝에서 일제히 엎드렸고 마을을 살폈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양떼소리, 아이들 떠드는 소리, 밭을 갈기 위해 하는 괭이질 소리가 없다.

오로지 정적이다.

오민철의 보고에 의하면 두 명의 사내가 마을 앞에 있다고 했지만 뒤쪽인 강가에서는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3인 1개조, 작전개시.”

말이 떨어지자마자 세 명씩 팀을 이뤄 순식간에 마을 안으로 사라졌다.

“형 들어와.”

오민철에게 무전을 보냈다.

“오케이!”

스으으!

권총수는 오른손에 HK-416을 들고 몸을 날렸다.

잡초 무성한 밭을 지나 가장 가까운 농가 근처로 접근했다.

예상대로 사람이 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담장은 무너졌고 지붕이 움푹 패였다.

권총수는 넝쿨이 우거진 담장을 따라 이동했다.

골목은 조용했는데 몇 걸음 가던 권총수가 멈춰 섰다.

듬성듬성 골목 한 가운데 잡초들이 일부 꺾이고 밟혔는데 분명 사람의 흔적이었다.

권총수는 불영보를 펼쳐 대문 앞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는데 안으로부터 어떤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대문을 조심스럽게 밀치려던 권총수는 깜짝 놀라며 손을 멈췄다.

웬만한 시력에는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희미한 실 한 가닥이 눈에 들어왔다.

권총수는 실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는데 대문 기둥으로 향해 있었다.

흠칫!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크레모아 한 개가 눈에 들어왔다.

직경 3밀리 정도 되는 쇠구슬 일 천여 개가 들어 있으며 45도 각도로 터지기 때문에 각도 안에 갇히면 벌집이 된다.

회색의 양털로 짠 가느다란 실로 인계철선이 되어 있어 햇살이 강렬한데도 전혀 반사광이 생기지 않는다.

콰아앙!

바로 그때였다. 엄청난 폭음이 마을을 뒤흔들었다.

콰쾅!

연이어 폭음은 이어졌고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르륵!

투투투투!

“어디야?”

권총수가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1조!”

“2조!”

조금 전 세 명이 한 팀이 되어 보낸 용병들로부터 대답이 없다.

“3조 보고 1, 2조가 지뢰에 걸렸습니다.”

“총소리는?”

“오팀장님 쪽입니다.”

콰가강!

또다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고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멀리 마을 앞쪽에서 거대한 나무가 뿌리 채 뽑혀 공중으로 솟아올랐는데 마치 미사일이 발사 되는 것 같았다.

솟구쳐 오르는 거대한 분진과 바위덩이 사이로 날아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지금 폭발소리는 M15대전차 지뢰다.

인간의 무게에 눌려 폭발할리는 없고 기폭장치에 밧데리가 들어가는 전선을 연결해 유선으로 터뜨린 것이 분명했다.

“총수야!”

오민철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젠장, 함정이야.”

“두 놈은?”

“없앴어.”

“이 마을에 설마 두 명 뿐이란 말이야.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수색1팀 사람 없음.”

“수색2팀 사람 없음!”

마을 수색에 나선 용병들의 무전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쉬익!

권총수는 몸을 날렸고 순식간에 마을 가운데로 들어갔다.

뚝!

땅에 내려선 권총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흙벽돌로 지은 허름한 농가의 대문 앞으로 포크레인이 파 놓은 것 같은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다가간 권총수는 신음을 흘렸다.

구덩이 안에 한 구, 구덩이 바깥 폭발로 무너진 담벼락 아래 깔린 두 구의 시신은 조금 전 자신과 같이 물속으로 침투했던 용병들이다.

“총수야!”

고개를 돌리자 오민철이 나카야마를 데리고 왔는데 피투성이다.

“형!”

“됐어. 나 안 죽어.”

나카야마 역시 머리를 붕대로 감았는데 핏물이 배어 나왔다.

“눈 형은?”

둘 모두 움찔하며 말을 하지 못했다.

“설마!”

“죽었어.”

권총수는 멈칫하며 나카야마를 바라보았다.

진짜냐는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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