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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23화 (323/651)

제323화: 마을의 교전(2)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한 대의 버스가 더 들어왔다.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관광객들은 흘러가는 마을 앞 강물을 보면서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오 하느님!”

“여긴 천국이야. 틀림없어.”

푸른 숲과 저 멀리 눈 덮인 설산과 회백색의 강물과 고운 모래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도원경이라 할 만했다.

권총수는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 골목을 이용해 아티바드 모텔로 들어갔다.

열여섯 명의 알파 팀 용병들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고 한 방안에 빼곡하게 모여 앉아 있었다.

권총수는 어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문제는 다리군요.”

얘기를 듣고 난 벤자민이 무거운 한 숨을 내 쉬었다.

“아무리 관광객이라고 해도 지나가거나 여럿이 다가오면 의심하며 볼 텐데.”

“그럴거야.”

“산은 안 됩니까?”

용병 한 명이 물었다.

권총수는 용병을 보며 말했다.

“온통 험준한 절벽이야. 낮은 것이 이삼십 미터 일 정도의 봉우리로 이어진 산길을 이용해 공격한다는 건 불가능 해.”

방안에 침묵이 흘렀다.

산을 이용한 공격은 안 되는 것이냐고 질문했던 용병 마두로가 입을 열었다.

“방법은 한 가지 뿐이군요. 강물을 이용해 침투 하는 것.”

“일반적인 강물이라면 해볼 만한데 설산에서 흘러온 물이라는 게 문제야. 굉장히 차가워 섭씨 3, 4도.”

섭씨 3, 4도면 30분을 전후에 저체온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물론 강물 침투를 대비한 장비도 갖추고 왔지만 선택지 맨 후순위에 놓여 있었다.

“캡틴이 그렇게 말했던가? 내가 위험하면 적도 위험하고, 내가 편하면 적도 편안하다.”

순간 모든 시선이 벤자민에게 돌아갔다.

그건 강물을 이용한 수중침투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곳이 본부인지 아니면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위장기지인지 아직 모르는데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는 건 많은 위험이 있다고 보네, 더욱 중요한 건 인질들의 행방이지. 인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 아닌가?”

이미 모든 비상 상황을 가정한 작전 계획은 세워 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의 의견을 듣는 건 작전에 임하는 그들의 정신 상태를 살피려는 것이다.

방법이 좋고 나쁨을 떠나 의견개진이 많다는 건 모두가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어려운 작전이 될 건 자명했다.

희생자가 발생할 건 불문가지인데도 움츠리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20명이라는 숫자가 십억 달러를 나누면 일 인당 오천만 달러다.

돈을 길가에 뿌리지 않는 한 평생 고생하면서 살아 갈 일은 없다.

생즉사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란 말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

죽을 각오로 나선 작전에서는 묘하게 희생자가 적다.

하지만 몸을 사리며 소극적으로 임하는 전투에는 희생자의 숫자가 예상치를 훨씬 웃돌았다.

강물 침투는 가장 어려운 선택지인데 아무도 반대를 않는다는 건 이들 역시 최악의 경우 시신으로 고향땅 밟을 각오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작전의 성패는 지휘관의 능력 이전에 병사들의 의지가 좌우한다.

권총수는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성공 가능성이 70프로 이상이라고 판단했다.

다시 자신이 투숙하고 있는 모텔로 돌아왔다.

권총수의 얘길 들은 오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물 침투를 거부 없이 받아들이고 선택한 알파팀원들의 의지가 마음에 든다는 의미였다.

“수중 침투는 내가 이끌지.”

“그건 안 돼.”

오민철의 말에 비렌드라가 막아섰다.

“강물 침투가 제일 난코스야. 자칫 그대로 흘러 가버리는 사람도 있을 거야.”

차가운 강물에 심장마비나 근육의 경련을 불러와 죽어 떠내려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허면?”

오민철이 물었다.

비렌드라는 눈을 빛냈다.

“캡틴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그들 눈에 띄지 않고 침투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같이 행동한다는 것이 중요해. 저들도 캡틴의 신비막측한 재주를 알고 있어. 그러나 지금은 같이 움직이고 고생함으로 인해 더욱 충성심과 공격성을 끌어내고 그로 인해 전투력이 상승할거야.”

틀린 말은 한 군데도 없었다.

나카야마도 고개를 끄덕였고 오민철도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이제 남은 건 권총수의 선택이다.

그가 지휘관이므로 어떤 결정을 내려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전투에서는 나이의 적고 많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휘관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진다.

권총수는 장비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수중침투장비 RAL-V11이다.

혹시 작동이 되지 않는지 산소는 충분한지 마스크 상태는 청결한지 꼼꼼하게 보았다.

모두가 특수부대 출신인 만큼 몸에 익숙한 장비이지만 해상전투가 거의 없는 용병들이다 보니 이제는 낯선 장비에 가까웠다.

장비가 낯설면 위험이 찾아온다.

침투장비들을 살핀 권총수가 벤자민에게 말했다.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대기할 것.”

권총수는 밴자민을 보며 눈을 빛냈다.

오랜만에 몰려온 관광객들로 마을은 시끌벅적했다.

동네 아이들까지도 즐거운 듯 거리를 뛰어 다녔다.

권총수는 꼬치구이를 파는 사내를 지켜보았는데 별다른 특이 동향은 보이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 맥보란을 통해 꼬치구이 사내에 대한 정보 조회를 부탁했다.

사내 이름은 레치베르였고 13살짜리 아들 한 명을 두고 있으며 부인은 작년에 산나물을 캐다 발을 잘못 디뎌 크게 다쳤다.

무자헤딘과의 인연은 그때 맺은 것이다.

작전을 나갔던 그들 눈에 띄어 구출됐고 도와준 댓가로 레치베르는 그들의 끄나풀이 되었다.

“꼬치 하나 주시오.”

마지막 남은 꼬치만 팔면 들어가려고 서 있는데 권총수가 나타났다.

두 번 정도 꼬치를 사먹기 위해 찾아와 만난 사이므로 레치베르는 빙긋 웃었다.

권총수는 백 루피를 건네고 꼬치구이를 한 입 물었다.

“장사 잘되십니까?”

“오늘처럼 관광객들이 많으면 좋습니다.”

레치베르는 꼬치구이에 사용되고 남은 기름을 통에 붓고 그릇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역시 최고의 양꼬치입니다. 이토록 맛있는 양꼬치는 아직 먹어 본적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권총수의 마음이 담긴 인사에 레치베르 역시 깊은 시선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아내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화들짝!

아내 건강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레치베르 표정이 굳었다.

“오해 마세요. 우연히 지나가다 목발을 짚고 가는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 몹시 고통스러운 듯 하여 지나가는 마을 주민에게 물었더니 레치베르씨 아내라더군요.”

마을 주민에 의해 알게됐다는 말에 레치베르의 굳은 얼굴이 조금 펴졌다.

“내가 정형외과에 대해 조금 아는 편인데 큰 병원에 가서 제대로 수술을 받는다면 목발에 의지 않고 걸을 수 있습니다.”

화악!

레치베르의 눈이 커졌다.

“도와 드릴까요? 수술받고 재활운동까지 하면 6개월 정도 소요 될 것입니다. 언제든지 아내의 다리를 걷게 만들어 주고 싶다면 찾아오십시오. 며칠 이곳 구경을 할 예정이니.”

권총수는 잘 먹었다면서 돌아섰다.

레치베르는 탕탕 소리를 내며 짐들을 정리하여 손수레에 싣고 집을 향해 돌아섰다.

몇 발자국 가던 레치베르가 몸을 돌려 권총수가 사라진 곳을 쳐다본다.

자고 있던 권총수의 눈이 떠진다.

이미 그의 감각에는 누군가 모텔 문 앞에 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쉽게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이럴 때는 이쪽에서 나가 맞이하는 것이 상대의 마음을 잡는데 좋다.

권총수는 윗도리 하나를 걸치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예상대로 모텔 입구에는 레치베르가 서 있었는데 권총수가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권총수는 들어오라는 말을 않고 일부러 자신이 밖으로 걸어나가 골목에 섰다.

담배를 피워 문 권총수가 한 개비 권하자 레치베르는 망설이지 않고 받아 들었다.

딸칵!

불을 붙여준 권총수는 옆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아무것도 묻거나 말하지 않으므로 잠시 어색한 시간이 둘 사이에 흘렀다.

예상대로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레치베르였다.

“정말 저의 아내가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을까요?”

“카라치에 있는 아가 칸 대학병원이라면 어떨까요?”

카라치는 파키스탄 최대도시로 그곳에 있는 아가 칸 대학병원이라면 아내의 다리 정도는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그때 안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오민철이 작은 가방 한 개를 들고 나왔다.

오민철이 건네주는 가방을 받은 권총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5만 달러가 들었소. 수술을 마치고 재활치료까지 하는데 2만 달러 정도면 충분할 거요. 나머지는 어디에 쓰든 레치베르 마음이오.”

찌이익!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열어 레치베르가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작은 가방에 달러뭉치가 가득한 걸 본 레치베르의 눈이 커졌다.

“표시 나지 않게 루피 화로 조금씩 바꿔야 할 것입니다. 물론 떠나면 두 번 다시 이 동네로 돌아와서는 안 되겠죠. 적들이 보복을 하려 들테니.”

“그들의 도움으로 아내가 목숨을 건진 건 사실입니다. 집에까지 아내를 부축하여 데리고 왔더군요. 그러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거리의 정보를 전해달라?”

“맞습니다. 관광객들 사이에 숨어들어 올 수 있는 미군이나 또는 파키스탄의 경찰을 피하려는 것이지요.”

물론 처음에는 왜 그런 부탁을 하는지 잘 몰랐다.

파키스탄에는 워낙 크고 작은 테러조직이 많고 그 틈에 섞여 철저히 돈을 노리는 갱들까지 지천이다.

파키스탄 경찰을 경계한다면 몰라도 미군까지 관심을 두는 것을 보면서 테러조직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테러조직인지는 아직까지 모른다.

“푸노아 마을에 자주 나타난다는 얘긴 들었습니다.”

“푸노아 마을?”

권총수와 오민철의 눈이 번뜩였다.

“서스펜스 브릿지를 건너 절벽 길을 가면 끝에 푸른 나무로 둘러 쌓인 마을 있잖습니까?”

권총수는 그곳이 푸노아 마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불과 20여년전까지만 해도 20여 가구가 어울려 살았는데 탈레반의 공격에 시달리다 못해 모두가 이곳으로 이주해 버렸습니다. 멀리 도시로 떠난 사람도 있고.”

“지금은 어떻소?”

오민철이 물었다.

“한 가구가 살긴 하는데 가끔 시장을 보기 위해 나오는데 요즘은 보이지 않더군요.”

스윽!

권총수가 지갑에서 손바닥 절반 크기의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이 사람 본적 있소?”

딸칵!

권총수는 라이터를 켜주었다.

바람이 없어 라이터 불은 반듯하게 타올랐고 사진 속 남자가 훤히 드러났다.

움찔!

레치베르가 깜짝 놀란다.

그러더니 좀 더 가까이 대고 확인을 했다.

“딱 한번 봤소.”

“틀림없습니까?”

권총수 눈이 빛났다.

“열흘 쯤 전입니다. 가끔 꼬치 파는 가게를 찾아와 이곳 상황을 묻고 돌아가는 하칸이라는 사내가 있죠. 자기 말로는 나와 나이가 같다고 하는데 그가 데리고 왔었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꼬치만 두 개 먹었습니다.”

“돈은 냈소?”

오민철이 물었다.

“내가 받지 않았죠.”

“거봐. 정치적 종교적 신념에 따라 테러를 한다는 자식들 치고 깔끔한 놈들 한 번을 못 봤어. 돈 달라고 해도 안줬을 것이오.”

오민철이 흥분했다.

“이름은 모릅니까?”

레치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아슈칸이란 말은 듣지 못했습니까?”

“글쎄, 처음 듣습니다만.”

“혹시 동양인들 보지 못했습니까?”

권총수는 재빨리 천왕그룹으로부터 넘겨받았던 실종 선원들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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