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2화: 마을의 교전(1)
SUV 한 대가 멈췄다.
차 문이 열리고 오민철을 포함해 비렌드라와 나카야마가 내렸는데 길 아래 흐르는 눈 녹은 설산의 물줄기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산봉우리는 온통 칼로 깎아 세워 놓은 듯 했고 꼭대기는 백발 노인의 머리처럼 하얀 눈을 이고 있었다.
“왜 이곳을 여행의 블랙홀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은데.”
좀체 말이 없는 비렌드라까지 감탄을 했다.
히말라야라는 설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러나 이토록 수직 고봉들이 눈을 덮어 쓰고 있는 기괴하기까지 한 모습은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훈자에 가면 사계절을 볼 수 있다더니 진짜군.”
꼭대기는 겨울이고 그 밑은 회색빛 바위들이고 바로 아래는 푸른 초원이 깔렸다.
맨 아래는 포플러나무 소나무 석류나무 등이 우거져 있었는데 오민철이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내려가 흐르는 설산의 물을 만져보더니 소스라친다.
“으와!”
뼈 속까지 냉기가 파고들었다.
나카야마와 비렌드라도 뒤따라 내려가더니 천천히 흘러가는 물을 따라 걸어간다.
권총수는 차안에 있었다.
조심스럽게 쌍안경으로 근처 산을 살핀다.
눈 덮인 산꼭대기는 춥다.
바로 그 아래 회색빛 암석지대 역시 사람이 생활하기에는 쉽지 않다.
결국 의심스러운 곳은 드문드문 하지만 풀이 있고 나무가 있는 여름과 봄의 지점이다.
산이 절벽인데다 가팔라 게릴라 활동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쌍안경을 이용해 근처 산을 완전히 수색한 권총수는 클렉션을 눌렀다.
빵 하는 소리에 일행이 올라와 다시 차를 몰고 출발했다.
후사이니 서스펜션 브릿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다리로 불린다.
거대한 절벽과 절벽 사이로 출렁거리는 다리가 뻗어 있었다.
아래로는 눈 녹은 설산의 푸른 물들이 굽이쳐 흐른다.
일행은 다리를 건넜는데 때마침 바람까지 거세게 불면서 다리는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멀미하는데.”
나카야마가 다리를 고정하는 밧줄을 잡으며 중얼 거렸다.
“쪽발이 너 멀미 해? 지진이 마구 일어나는 나라에서 살았으면서 멀미라니 웃기는군.”
1킬로 가까운 다리에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은 없고 오로지 넷이 전부였다.
권총수는 구경하는 척 하며 맞은편 절벽을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었다.
절벽을 따라 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백지 위에 선 하나를 그어 놓은 것처럼 절벽 중턱으로 난 소롯길은 사람만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짐승도 차량도 지나다닐 수 없다.
그 옛날 저 길을 따라 파키스탄의 상인들이 중국의 비단을 들여왔다.
이른바 파키스탄의 실크로드인 셈이다.
팟!
다리를 절반 가량 건넜을 때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가 사라졌다.
절벽은 강물과 나란히 이어졌는데 길 끝으로 푸른 나무들이 우거졌다.
절벽이 끝나면서 완만한 지형으로 변하는 그 지점에 숲이 우거졌고 권총수는 그곳에서 지금 움직이는 사람을 본 것이다.
다른 세 사람은 거리가 멀어 보지 못했겠지만 권총수는 분명히 발견했다.
‘만약 적이라면 굉장히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강 좌우로 절벽이다.
그리고 숲은 절벽 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으니 감시하기도 편하다.
저 푸른 숲을 지나면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는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나타난다.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서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 운전사들을 상대로 빵과 음료를 팔고, 또는 자가용 없이 중국으로 장사를 떠나는 사람은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트럭을 얻어 타기 위해 이 다리를 건넌다.
골목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할 입구 같은 곳이다.
지리적으로도 썩 좋다.
위기다 싶으면 재빨리 국경선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파키스탄 정규군이나 미군일 지라도 더 이상 쫓거나 공격하지 못한다.
권총수는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보았는데 표정이 밝지 못했다.
사방이 험준한 절벽과 절봉으로 이어져 있다.
장비를 갖춘다고 해도 산악침투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훤히 보이는 절벽 길을 이용할 수도 없다.
상당한 숙제를 만난 셈이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죠.”
권총수는 떨어지는 석양을 보며 몸을 돌렸다.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귀가하기 시작했다.
혼다 SUV가 천천히 지나가면서 모든 시선이 양 꼬치를 팔고 있는 사내를 주시했다.
“장사가 잘되는데.”
여기저기 장사 짐들을 챙겨 귀가를 서두르는 다른 주민들과 달리 사내의 가게 앞에는 남자 셋이 줄을 서 있었다.
“형, 찍어.”
권총수가 다급하게 말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오민철이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줄을 서 있는 사내들을 찍기 시작했다.
오민철은 부지런히 사내들을 찍자 비렌드라가 왜 그러느냐는 듯 옆에 앉은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뒷좌석에 앉은 권총수는 사내들을 보며 말했다.
“관광객으로 보여?”
사내들중 둘은 배낭을 멨고 한 명은 등산 지팡이를 양손에 쥐고 있었다.
셋 모두 햇빛을 막기 위한 둥근 부니헷을 썼으며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 헐렁한 회색바지 위로 해가지면 떨어지는 기온을 대비한 두툼한 점퍼는 훈자마을을 찾는 여느 관광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편한 차림 아냐? 특히 신발을 봐”
등산객으로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는 뜻이다.
차가 양꼬치 가게를 100여 미터 가까이 지나쳤는데도 권총수는 사람들에게서 눈을 거두지 못했다.
어두운 탓에 사내들은 오민철이 찍은 사진을 통해 확인했다.
“정말 그렇네.”
옷차림에서는 큰 트집을 잡을 일이 없다.
그러나 신발을 보면 달라진다.
신발에 묻은 흙과 닳은 뒷굽은 명승지를 찾아온 관광객에게서는 볼 수 없다.
이런 곳 정도를 알고서 찾아 올 정도면 여행전문가라고 봐야 한다.
그런 그들이 뒷굽이 저토록 닳은 등산화를 신고 올리는 없다.
꿀꺽!
나카야마가 침을 삼켰다.
“느낌이 안 좋은데.”
오민철도 비렌드라도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모텔로 돌아가. 난 저들을 좀 더 지켜볼 테니까.”
“괜찮겠어?”
오민철이 같이 있고 싶어하는 표정이다.
“가서 쉬어.”
권총수는 배낭에서 글록 18을 꺼내 소음기를 끼우더니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부우웅!
차는 다시 움직였고 권총수는 모자를 눌러썼는데 얼굴은 어느새 처음 본 낯선 인물이 되어 있었다.
변체환용을 시전하여 얼굴을 바꾼 것이다.
권총수는 뚜벅뚜벅 양꼬치 가게를 향해 걸어갔다.
자연스럽게 한 명 남은 사내 뒤에 섰는데 꼬치를 굽던 주인 사내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 팔 것이 없습니다. 내일 와주십시오.”
불판에 익고 있는 꼬치구이는 앞에 있는 사내가 먹을 두 개 뿐이었다.
권총수는 혹시나 남은 것이 있나 하며 고개를 빼고 커다란 고무통을 바라보았는데 텅 비었다.
권총수는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주인 사내는 그런 권총수가 안돼 보인 듯 내일 오면 맛있게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권총수는 손을 모아 인샬라를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하지만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재빨리 담벼락에 기대 선채 내공을 끌어 올렸다.
모든 내공을 귀에 집중하여 상대의 말을 엿듣는다.
이름하여 천리지청술이었다.
천리를 듣는다는 건 아니다.
그 만큼 멀리까지 들을 수 있다는 것인데 내공이 높을수록 절청(竊聽)의 거리는 늘어난다.
“어떤가?”
질문을 하는 목소리는 조금전 내일 오면 맛있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사내음성이 아니었다.
“어제 네 명의 남자들이 저기 모텔에 투숙했죠.”
“네 명?”
“주인 라호르에게 물었는데 여길 오는 관광객들과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침에 훈자 곳곳을 돌아다니기 위해 차를 빌린 것 말고는 아직은 평범합니다.”
“조금전 그자는 누구지?”
“글쎄요. 아직 얼굴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어제 왔던 네 명중 한 명으로 보입니다.”
권총수는 소리없이 이동하여 담벼락 끝에서 도로를 바라보았다.
사내가 귀가하기 위해 짐을 챙기고 있었는데 두 명의 사내가 있었다.
처음 보았던 셋 중 등산 지팡이를 짚고 있던 사내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는 일행이 아닌 모양이다.
“남자 넷이라, 잘 지켜보게.”
“예!”
꼬치구이를 파는 사내를 남겨두고 두 사내는 길을 건너더니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스으으!
권총수의 신형은 바람이 되어 골목으로 들어섰다.
두 사내는 골목을 빠져나가 마을 옆으로 이어지는 강뚝을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손에는 AK가 들려 있었다.
권총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어쩌면 의외로 일이 수월하게 풀릴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대가 적일지 아닐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테러집단들과 총구를 겨눠본 경험에 비춰 가능성이 팔십 퍼센트 이상이라고 자신했다.
권총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모텔로 돌아왔다.
전화가 걸려왔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보았는데 벤자민이라는 이름이 찍혔다.
“어디죠?”
“푸스일세. 우리 말고도 다른 관광객 차도 가는군.”
푸스면 이곳 훈자마을에서 20킬로 정도 떨어진 다섯 가구가 사는 산동네이다.
길이 워낙 험해 20킬로지만 한 시간은 걸릴 것이다.
12시가 채 되지 않은 깊은 밤이다.
오민철이 깰까봐 슬며시 일어나 옷을 입었다.
글록 18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간 권총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방이 캄캄했고 하늘에는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별들이 가득했다.
핸드폰 온도계가 영하 5도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낮이 되면 영상으로 20도 이상으로 올라간다.
딸칵!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마을은 어둠에 묻혔고 어디선가 양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홱!
기척에 몸을 돌린 권총수 눈이 커졌다.
“형!”
오민철이 겨드랑이에 HK-416을 바짝 붙여 숨긴 채 다가왔다.
“깼어?”
“너와 비교할 수는 없으나 나도 강호밥을 먹은 사람 아니냐.”
그러면서 담배 한 개비 달라고 손을 뻗는다.
권총수는 피식 웃으며 담배를 건네고 불까지 붙여 주었다.
“푸스면 금방 오겠군.”
오민철이 손목 시계를 한 번 확인하더니 중얼 거렸다.
“정말 별 한 번 좋다.”
한국에서도 별은 볼 수 있다.
그러나 아프카니스탄과 이집트, 사우디와 이곳 파키스탄에서 보는 밤 하늘은 유난히 찬란했다.
“공기중 미세먼지 농도가 적기 때문에 저토록 선명하게 보이겠지?”
“형, 북두칠성 봐.”
“봤어. 야 저것이 내 고향 벌교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도 있구나.”
두 사람은 나란히 북두칠성을 올려다보았다.
자동차 라이트가 들어온다.
그런데 한 대가 아니었다.
길가 한쪽 모퉁이에서 다가오는 차량의 라이트를 보며 권총수는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곳 훈자를 들어오는 버스 시간은 정확하지 않다.
갑자기 산에서 바위라로 굴러 떨어져 도로를 막아 버리면 한두 시간은 물론 하루 이틀도 예사로 늦어진다.
봉고차 운전사 무하니가 선택했던 길도 위험하지만 버스들이 다니는 길도 백프로 안전하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대개의 경우 한데 몰려서 움직이는 것이다.
차량 한 대 보다는 여러대가 집단으로 이동하면 아무리 탈레반이나 무자헤딘이라도 작전을 벌이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많으면 통제가 쉽지 않고 오히려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벤자민 일행이 탄 버스가 맨 뒤에 있었는데 앞 선 버스에서 관광객들이 줄지어 내렸다.
가이드는 차에셔 내린 관광객들을 통제하며 예약된 마을 숙소로 향했고 열여섯 명인 벤자민 일행도 예약해 놓은 모텔로 사라졌는데 그 속에 권총수는 자연스럽게 끼어들어갔다.
벤자민 일행이 예약한 모텔은 ‘아티바드’란 간판을 달고 있었다.
관광객 숙박을 목적으로 급조한 가건물이었는데 주인은 부스스한 눈으로 다가와 퉁명스럽게 말했다.
“한 방에 세 명씩 모두 여섯 개요. 확인해 보시오. 저기가 샤워실, 화장실은 저쪽, 음식을 조리 할 수 있는 곳은 샤워실 옆방이오. 그럼 푹 쉬시오.”
강제로 방을 빼앗긴다고 해도 이보다는 더 친절할 것 같다며 벤자민이 피식 웃는다.
“여긴 관광객이 이해를 하지 않으면 즐겁지 않은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권총수가 웃었다.
“피곤할 텐데 쉬시죠. 아침 일찍 다시 오겠습니다.”
권총수는 벤자민에게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마침내 팀원 모두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