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21화 (321/651)

제321화: 십억 달러 작전(3)

한참을 째려보듯 하던 오민철이 잇새로 말했다.

“당신 큰일 날 사람이네. 우리가 멍청한 관광객이었다면 어떡할 뻔했어.”

“미안합니다.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어서.”

“그래도 그렇지 이 사람아. 만약 나타난 사람들이 무장 테러집단이면 어떡할 거야?”

지켜보던 비렌드라가 빙굿 웃었다.

“아직까지는 운이 좋아 별일 없었군요?”

무하니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총 잡아!”

권총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행은 배낭을 열었다.

그 안에는 분해된 HK-416이 있었는데 신속하게 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으헉!”

배낭에서 갑자기 총을 꺼내들자 무하니의 눈이 커졌다.

관광객들로 알고 있는데 시퍼런 총이 나타나자 안색이 허옇게 질린다.

“당신 뒤통수에 갈길 일 없으니 걱정 말고 운전이나 잘하도록.”

권총수는 조립을 끝내고 30발 들이 탄창을 끼었다.

탁!

“보고!”

“준비 끝!”

“준비 끝!”

모두가 탄창까지 꽂아 넣었음을 말했다.

“잘 들어요. 걱정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가면 되는 겁니다. 만약 총을 겨누며 세우라고 하면 멈추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예...예!”

무하니는 무척 떨린 모양이다.

기어를 넣고 앞으로 가는데 핸들을 잡은 손이 쉴 사이 없이 부들부들 했다.

“저렇게 간덩이가 작은 사람이 이런 위험한 장사는 왜 하는 거야. 옛말에 게으른 놈이 짐 많이 진다고 했는데 욕심 부리다 골로 간다고.”

오민철이 혀를 찼다.

차는 느릿느릿 운행했다.

“너무 느리면 우리가 자신들을 먼저 발견했다고 의심하지 않겠소? 그런데도 도망치지 않고 온다는 건 믿는 구석이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고?”

권총수의 말에 무하니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금 속도를 높였다.

호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른쪽 커브를 돌아갔다.

산들은 수직 절벽에 가까웠고 길가에는 산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들이 수북했다.

끼이익!

차가 급정거를 했다.

갑자기 세 명의 사내가 길을 막아섰는데 AK를 겨누고 있었다.

‘창문 내려’

권총수의 전음이 파고들었고 세 사람은 차문 유리를 내렸다.

‘뭐하는 놈들이지’

권총수가 중얼거리는 전음을 보냈다.

터번을 쓴 세 사내가 총구를 겨누며 다가왔는데 오민철이 속삭인다.

“세 명 뿐이야?”

‘네 명 더 있어. 저 위, 보지 마’

오민철이 상체를 낮추고 오른쪽 절벽 위를 올려다보려하자 권총수가 가로막았다.

‘탈레반이야’

사내들은 천천히 다가왔고 권총수의 전음이 다시 이어졌다.

‘셋을 세면 쏴버려, 민철 형은 운전사에게 오는 놈, 눈 형과 야마 형은 이쪽으로 오는 둘, 저 위에 네 명은 내가 맡을 테니까.’

모두가 알았다는 듯 눈빛을 주고 받았다.

한 사내는 운전석 쪽으로 다가갔고 두 사내는 오른쪽으로 접근했는데 뒤에 있는 탑승자를 겨냥하는 행동이다.

“창문 좀 더 내려요.”

오민철이 나직하게 말했다.

방탄유리는 아니지만 각도가 너무 작다 보면 총알이 방향을 이탈할 수도 있다.

대나무에 맞은 총알이 다른 방향으로 튕기듯 말이다.

5미터, 4미터 거리가 가까워지고 권총수가 명령했다.

‘사격개시!’

권총수의 총구가 창밖으로 나가면서 20여 미터 되는 절벽 위 사내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륵!

한 번이었다.

네 명의 사내는 그대로 절벽 아래로 추락했고 차를 향해 다가오던 사내들도 길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퍼억!

운전석 쪽으로 걸어오던 사내도 엎어졌다.

덜컹!

권총수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확인!”

비렌드라와 나카무라가 절벽에서 떨어진 사내들을 향해 달려갔고 권총수는 오른쪽에 나동그라진 두 사내를 발로 툭 차며 건드렸다.

완전히 숨이 끊어진 듯 두 사내는 벌렁 뒤집혔다.

“사망!”

“사망!”

여기저기서 사망했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권총수는 쭈그리고 앉아 죽은 사내들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AK30발들이 바나나형 탄창이 한 개씩 나왔고 낡은 지갑이 있었다.

멈칫!

“버버리(BURBERRY).”

버버리 상표가 선명한 지갑이다.

누군가에게 빼앗았음이 분명하다.

지갑에는 파키스탄 경찰청이 발행한 운전면허증이 있었다.

십 달러 지폐 두 장과 나머지는 파키스탄 지폐 루피였는데 상당한 액수다.

“맙소사!”

운전사 무하니 쪽으로 다가오던 사내를 수색하던 오민철이 크게 놀란다.

지갑에서 미화 1,200달러가 나온 것이다.

“도대체 몇 명을 죽인거야.”

요즘 관광객들은 웬만하면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다.

첫째는 분실의 위험이 있고 또 하나는 소매치기를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200달러를 모으려면 한두 명 죽여서는 얻을 수 없는 액수였다.

종교와 정치적 신념에 따라 혁명을 꿈꾼다면서 여행객을 상대로 강도 짓을 해 온 것이다.

권총수는 사내들 시신을 모조리 호수로 수장 시켜 버리고 다시 출발했다.

무하니가 혼이 빠진 얼굴로 운전대를 잡았다.

훈자마을에 도착하자 새벽 3시가 되었다.

마을은 캄캄했지만 길가 몇 곳은 전등이 켜져 있었는데 거의가 모텔들이었다.

모텔이라고 하여 도시의 모텔을 떠올리면 낭패다.

그냥 시골 집에 방을 실컷 늘려 급조한 민박보다 덜 한 수준이다.

권총수는 무하니의 손을 잡았다.

“수고 했소. 가는 길 조심하시오. 왔던 길을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당연하죠. 같은 패거리들이 복수하기 위해 지키고 있을게 뻔한데, 아무리 돈이 좋아도 죽을 길로는 가지 않습니다.”

무하니는 손을 들어 보이고 차를 돌려 떠났다.

무하니 차가 완전히 사라지고 일행은 전등이 켜진 집의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쉰 가량의 사내가 나왔는데 졸음에 겨운 얼굴이다.

“방 있습니까?”

“있지요. 들어오시오.”

일행은 사내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사내는 오른쪽 별채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 비었소. 주방은 끝에 있고.”

오민철은 어느새 방문을 열고 안을 바라보았다.

침대가 낡긴 했지만 바닥은 양탄자가 깔렸고 비교적 깨끗했다.

“얼마죠?”

“하룻밤 묵는데 천루피요.”

우리 돈 삼 만 원이 채 안 되는 액수지만 방 하나에 천 루피이므로 싼 것은 아니었다.

“일단 일주일 예정해야겠소.”

그리고 지갑에서 돈을 꺼냈는데 주인 사내의 눈이 커졌다.

방 두 개를 일주일 예약했으므로 이만 사천루피로 미화 300달러가 조금 넘는다.

그런데 권총수는 백 달러를 더 얹어주었다.

무뚝뚝하던 사내의 허리가 낙지처럼 휘어졌다.

얼굴에 자상함과 부드러움을 최대한 담아 인샬라(알라의 뜻대로)하며 인사까지 한다.

“라호르입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민철을 비롯한 비렌드라와 나카야마는 이미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있었다.

“라호르 차량 임대를 할 수 있소?”

“어떤 임대 차량을 원하십니까? 도로 대부분이 비포장이다 보니 SUV를 많이 이용합니다. 필요하시다면 제가 한 대 마련해 보겠습니다.”

“고맙소. SUV로 알아봐주시죠.”

“알겠습니다.”

권총수가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돌아선 주인 라호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손에 쥔 400달러가 이토록 흥분되는 액수일줄 몰랐다.

라호르는 인샬라를 중얼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해발 2,800미터 훈자 마을에 아침 해가 밝았다.

“키햐 진짜 장난 아니구나.”

가장 먼저 일어난 오민철이 감탄을 했는데 눈 덮인 고봉이 바로 뒷동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모텔 밖으로 나온 오민철은 엄숙하고 장엄하기까지 한 설산을 보며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뒤이어 나온 나카야마도 북해도의 눈 덮인 산과는 또 다르다며 감탄했는데 유일하게 비렌드라만 빙긋 웃고 있었다.

그는 지금 보이는 산보다 훨씬 높은 히말라야에서 살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나왔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위한 행상들이 길가로 몰려 들었다.

“총수 어디갔어?”

담배를 입에 물며 오민철이 물었다.

“안 보이던데?”

“몰라?”

나카야마가 같이 한 방을 쓴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일어나니까 없었어.”

그때였다. 도요타 SUV 한 대가 다가오더니 멈췄다.

“엇! 캡틴 아냐.”

권총수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다.

“얼마 줬어? 차 괜찮은데.”

“하루 랜트 하는데 500불.”

“오백불!”

오민철이 눈을 부릅떴다.

“좀 깎지 그랬어. 500불이면 너무 비싼데.”

“그 마저 700불 달라는 걸 깎은 거야. 저쪽에 식당 있던데 밥 먹으로 가자고.”

차를 모텔 앞에 두고 일행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구름이 산허리를 끼고 도는 그 아래 작은 식당이 있었다.

미류나무가 식당 주위를 울타리처럼 에워싸고 있었는데 중년의 여인이 홀로 앉아 있다 일행을 보고 반긴다.

“어랏!”

오민철이 벽에 붙여 놓은 메뉴 종류를 보며 깜짝 놀랐다.

파키스탄식 볶음밥과 식빵에 여러 가지 소스와 야채를 집어넣은 햄버거가 식사의 전부였다.

“아주머니 다른 건 없습니까?”

“없어요.”

전혀 미안해하는 표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일행이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아주머니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 설명했다.

아직은 알려지지 않다보니 관광객이 있는 날 보다 없는 날이 더 많다.

그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인데 많은 메뉴를 준비했다가 제때에 팔리지 않으면 버려야 할 것 아니냐고 말한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장사란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일이다.

일행은 볶음밥을 시켰고 권총수만 햄버거를 주문했다.

“나머지 팀원들은 언제 오는 거야?”

식사가 나오는 동안 기다리며 오민철이 물었다.

“오늘 저녁 아니면 내일 오전 중에는 도착할거야.”

“장비는?”

“CIA에서 맡았어. 이 지역 지리를 잘 아는 현지인이 운전하는 20인승 밴에 사람도 장비도 함께 실려 올걸.”

“너무 친절해도 좀 그렇던데?”

오민철이 슬쩍 권총수의 눈치를 본다.

맥보란을 계속 믿어도 되느냐는 물음이자 의심을 완전히 거둬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틀린 말은 아니라는 듯 호응해 주었다.

식사가 나왔다.

보기에는 허접하다고 모두 어이없는 표정을 했지만 한 숟가락 떠먹으면서부터 손놀림이 바뀌었다.

맛있다.

정말 맛있어서 햄버거를 먹는 권총수 역시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웠다.

주인 아주머니가 조금은 수줍은 듯 웃는다.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을 사람들이다.

40여 가구 100여명이 살고 있는데 지금까지 테러조직이나 게릴라들과의 전투 경험에 비춰 근처 마을에는 그들 첩자가 반드시 있다고 봐야 한다.

그들의 눈은 범상치 않다.

관광객인지 아닌지 금방 가려내므로 철저히 준비하여 움직여야 한다.

오늘 가장 먼저 가기로 한 지역은 파수라는 곳이다.

훈자는 특별한 유적지가 있다거나 아니면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이 아름다울 뿐이었다.

태고의 신비가 그대로 묻어 있다고 할 만큼 사람들의 흔적이 전혀 닿지 않아 관광객들이 찾는 것이다.

부르릉!

총이 숨겨진 등산 배낭을 차에 싣고 일행은 모텔을 출발했다.

진짜 관광객처럼 오민철과 권총수는 선글라스까지 끼었다.

“저 사람 잘 봐 둬.”

조수석에 앉은 권총수가 오른쪽 길가를 바라보았는데 꼬치구이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불을 피우고 있는 서른 중반 가량의 현지인이었다.

구레나룻에 헐렁한 푸른 바지에 자주색 반팔티를 걸쳤는데 지나가는 일행의 차를 스윽 바라보았다.

“이상해?”

“느낌이 조금 그래.”

“안 좋다는 거지?”

핸들을 잡고 있는 오민철이 물었다.

“가장 일찍 나왔어.”

일찍 나온 것과 무자헤딘의 첩자일 것에 대한 의심의 연관성을 찾지 못한 듯 오민철이 권총수를 보았다.

“모술과 아프카니스탄에서 경험 안 했어?”

“맞다. 맞아. 바로 그거야.”

뒷좌석에 앉은 나카야마가 눈을 빛냈다.

이상하게 적과 내통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은 부지런했다.

일찍 일어났고 가장 늦게 집으로 들어간다.

그런 행동은 아편 단속 때 더욱 두드러졌다.

단속반이 아침 일찍 움직이고, 저녁 늦게까지 이동한다는 것을 알고 취하는 행동들이었다.

“오래 살고 싶으면 제발 평범한 꼬치구이 장사이길 빈다.”

오민철이 넋두리 하듯 말하며 차는 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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