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0화: 십억달러 작전(2)
훈자를 찾는 여행객 모두가 그런 식으로 이동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었다.
다만 버스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로 갈수가 없어 정해진 코스로만 달린다고 했다.
“차량을 대절하면 얼마요?”
사내는 여러 가지라고 했다.
“정해진 가격은 없습니다. 얼마만큼 협상을 잘하느냐에 따라 가격차이가 큽니다. 택시를 타고 십 여분 가야 합니다. 저쪽 길로 쭈욱 가면 버스 터미널이 나오는데 근처에 개인 차량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행운을 빕니다. 바가지 쓰지 않으려면 한 번에 덜컥 계약하지 마시오. 여기저기 비교 평가해 보란 말입니다.”
편의점 주인이 씨익 웃었다.
“인샬라.”
모든 건 신의 뜻 아니겠냐는 인사에 편의점 주인이 웃는다.
권총수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돌아섰다.
네 사람은 권총수로부터 건네받은 음료수로 목을 축였다.
나카야마와 오민철이 어떻게 하면 싸게 차를 빌릴 건지를 놓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가장 선두에 서서 걸어가던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전방에 어수룩한 차림의 사내가 등산배낭 네 개를 지키고 있었다.
배낭은 색도 틀렸고 크기도 달라 단번에 관광객들의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권총수는 사내의 행색을 살핀 뒤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이브랄티?”
사내는 빙긋 웃었다.
자기 이름 맞다는 표정이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미안합니다.”
권총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고 낮은 소리로 사내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눈 뒤 다시 악수를 했다.
“행운을 빕니다.”
사내는 짧게 손을 들어 보인 뒤 돌아서 걸어갔다.
사내가 사라지고 오민철이 물었다.
“무슨 얘길 했냐?”
“이것 저것, 총기 상태에 대한 얘기 그런 거지.”
네 사람은 각자 배낭 한 개씩을 짊어졌다.
배낭을 지고 모자를 쓰자 완전한 관광객 행색이었다.
배낭에는 HK-416과 실탄이 들어있다.
조금 전 사내는 변장한 CIA요원이며 이번 작전은 랭글리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일행은 버스 터미널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고 20분이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과연 터미널 안에는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보였다.
중국과 국경도 가깝고 또한 산악지역이기 때문에 탈레반이나 무자헤딘 출몰이 심하여 단체로 움직이면 좀 더 안전하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탈레반과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은 다르다.
이름은 같지만 서로 연계하지는 않고 이곳 탈레반들은 이슬람국가를 세우려는 목표를 갖고 싸운다.
성격적으로는 IS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버스로 가느냐 단독으로 움직이느냐를 놓고 잠시 고민을 할 때 전화가 걸려왔다.
알파팀 벤자민이다.
“어디요?”
“오늘 밤 비행기입니다.”
“잘 들어요. 이슬라마바드에서 내리면 발루치스탄주 퀘타로 가지 말고 훈자로 오세요.”
“훈자?”
갑자기 장소가 바뀌자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훈자입니다. 도착하면 안내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궁금하면 전화 하세요.”
권총수는 전화를 끊고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어떡하면 좋겠냐고 묻는 것이다.
“버스가 좀 더 안전하지 않겠어?”
나카야마가 말했다.
“버스는 이상하게 내키지 않는데, 사람도 많고 모두가 관광객인지 아니면 무자헤딘 첩자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잖아.”
오민철이 말하자 나카야마가 깜짝 놀랐다.
“그럴 가능성 있어.”
자신은 미처 그 점을 생각지 못했다는 듯 버스로 이동하자는 주장을 얼마든지 철회 할 수 있다는 얼굴이었다.
오민철이 정보를 취합하려는 듯 주위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나카야마와 비렌드라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기웃거렸고 훈자를 가는 자가용 운전자들 눈치도 살피면서 가격 협상을 엿듣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여행자들에게 지구상에서 세 곳의 블랙홀이라는 말이 있다.
빠지면 죽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매력이 있다는 뜻인데가 이집트의 다합은 스쿠버 다이빙으로, 나머지 두 곳은 태국의 빠이와 파키스탄의 훈자였다.
이집트 다합의 스쿠버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수직 심해로 되어 있다.
해변의 물결은 여느 바다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발목까지 차는 물의 깊이가 어느 한 순간 수백 미터 수직 심해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해변이 아니라 10여 미터 정도 들어가다 갑자기 낭떠러지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그로 인해 심장쇼크사와 혹여 알고 들어갔다고 해도 거친 조류에 휩쓸려 죽는다.
다합에서 작전할 때도 두 명의 관광객이 죽었다는 얘길 들었다.
특히 그곳 절벽에는 죽은 다이버들의 비석이 돌판처럼 새겨져 있다.
“12시간에 주파하는 차량도 있다는데?”
오민철이 다가왔다.
“정말?”
“헤이.”
오민철이 한 명의 파키스탄 사내를 불렀다.
사내가 뛰어왔다.
“말해, 정말로 12시간이면 들어갈 수 있는지 설명해봐.”
“못 들어가면 돈을 절반만 받죠. 그럼 될까요?”
권총수 이마가 찌푸려졌다.
모두가 20시간은 거뜬히 넘긴다고 하는데 혼자 12시간을 강조한다.
더욱이 그 시간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돈을 절반만 받겠다는 것이다.
“너무 자신만만한 것이 이상한데? 아무도 모르게 고속도로를 만들어 놓고 혼자만 사용하지는 않을테고.”
오민철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사내를 살핀다.
“상황에 따라 한두 시간의 차이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지체하면 절반만 받겠습니다.”
너무 자신만만한 사내의 모습을 보며 권총수가 빙그레 웃었다.
“좋소. 갑시다.”
“오케이! 따라오시죠.”
일행은 사내를 따라갔고 열어주는 봉고차 안으로 올라탔다.
차는 생각보다 깨끗했으며 10명을 태울 수 있다는데 모두 네 명뿐이었기 때문에 공간은 넓었다.
차종은 일본 혼다에서 나오는 오딧세이였다.
“편안히 모실 테니까 마음 푹 놓고 쉬십시오. 그럼 출발합니다.”
운전기사는 자신의 이름이 무하니라면서 씨익 웃었다.
“그 친구 성격 하나는 시원시원해서 좋구만.”
오민철이 중얼 거렸다.
차가 출발하며 점차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차는 쉬지 않고 덜컹거렸다.
포장된 도로였으나 오래되어 바닥이 패이고 깨지면서 마치 비포장 도로를 달리듯 온 몸을 뒤집기 시작 했다.
“목이 아프군.”
덜컹거리는 진동이 너무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오민철이 목을 만졌다.
다른 사람도 이마를 찡그렸지만 천천히 가자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회색의 산과 거친 도로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도 보이지 않고 마을도 없다.
하늘은 시리도록 파란데 그 아래 산들은 온통 바위와 누런 흙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권총수는 그 와중에도 자는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말 신비한 놈이야. 과연 살아 돌아올지 알 수 없는 판국에 잠이라니.”
오민철이 못마땅한 표정을 했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오르기만 하던 차가 고개를 넘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우!”
나카야마가 탄성을 터뜨렸다.
도로 오른편 아래로 냇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파스텔 톤이다.
강물을 따라 시선을 쳐든 일행의 시선으로 아득히 멀리 눈 덮인 설산이 보였다.
냇물은 눈이 녹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길가로 띄엄 띄엄 집들이 있었는데 냇가 풀밭에 양떼가 풀을 뜯고 있었고 양치기로 보이는 소년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다.
조금전과는 전혀 다른 신선한 풍경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아름답다.”
잠에 골아 떨어진 권총수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 입을 떠억 벌렸다.
마을 앞으로 난 도로를 지나자 냇물을 건너는 나무로 된 다리가 나타났다.
굵은 밧줄이 본체를 이루는 현수교 흉내를 냈는데 양쪽 다리 끝에 사각형의 기둥을 박고 줄을 걸었다.
바닥은 굵은 원목을 틈 없이 깔았는데 다리의 길이는 30여 미터 정도 되었다.
“버스는 안 되겠는데?”
오민철이 운전사 무하니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버스는 이 다리를 이용하지 못하죠. 여긴 옛길입니다. 버스가 가는 곳에는 시멘트로 튼튼하게 만들어놨죠.”
“왜 그곳으로 가지 않소?”
“돌아가죠. 이곳이 지름길입니다.”
차는 느리게 다리를 건넜는데 덜커덩 거렸다.
바닥을 깐 원목들이 자동차 무게에 눌리면서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밧줄이 기타 줄처럼 떨렸다.
다리 아래 물은 급류였다.
빠지면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시할 정도 역시 아니었다.
다리를 건너고 차는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더 달리자 조그만 마을이 나왔는데 소스트란 이름을 가진 마을이라고 했다.
20여 가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발소도 있고, 작은 구멍가게도 있으며 길가에서 먹을거리도 팔았다.
오로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상대한다는 것이다.
차는 마을 앞 도로 길가에 멈췄다.
일행은 양 꼬치를 파는 가게로 몰려갔다.
권총수는 운전사 무하니도 불러 같이 먹도록 했는데 건장한 사내 다섯이 달려들자 미리 구워놓은 양 꼬치 20개가 순식간에 바닥이 나고 말았다.
주인은 부지런히 꼬치에 고기를 꿰어 다시 불판에 굽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권총수는 건너편 구멍가게를 향해 걸어갔다.
구멍가게는 유리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으며 이용객이 그다지 없는 모양이었다.
덜컹!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양손으로 문을 잡고 들어 올리듯 하여 밀자 그제서야 열렸는데 가게 안에 사람이 없었다.
“계십니까?”
잠시 후 안쪽에서 10여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뛰어나왔다.
“안녕하세요.”
소년은 권총수를 향해 꾸벅 절을 했다.
권총수는 소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며 진열된 물건들을 보았는데 과자와 세탁비누와 캔으로 된 통조림 따위들이었다.
권총수는 비스켓 다섯 봉지와 사탕을 샀는데 소년에게도 한줌 나눠주었다.
소년은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알고 봤더니 자신에게 돈을 내라고 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공짜야. 형이 그냥 주는 거야.”
그러면서 모두 얼마냐고 물었다.
소년은 손가락 다섯 개를 폈는데 500루피라는 뜻이었다.
권총수는 지갑에서 500루피 짜리 지폐를 꺼내주고 돌아섰다.
“안녕히 가세요.”
소년은 권총수를 향해 밝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했는데 그제야 안심한 모양이었다.
호수가 나타났다.
해발 2,500미터가 넘는 곳에 거대한 호수가 있었다.
설산을 배경으로 하는 호수는 한 폭의 그림이었고 모두가 왼쪽 창밖을 보며 감탄하고 탄성을 질렀다.
수직 절벽길이었으나 두려움 보다는 호수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어어!”
갑자기 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무하니가 당황했다.
왜 그러느냐는 듯 일행이 앞을 보았다.
호수를 따라 비포장 길이 쭉 뻗어 있었는데 무하니의 얼굴이 굳었다.
권총수는 상체를 숙여 전방을 주시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사람을 봤어요. 차가 보이자 재빨리 숨었어요.”
순간 차안의 공기가 싸아 해졌다.
“관광객일 수도 있잖아.”
오민철이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고 권총수를 바라보다 흠칫 놀란다.
권총수 입가에 야릇한 웃음이 걸려 있었는데 이제야 뭔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차들은 꼬박 하루가 걸리는데 그 절반이면 갈수 있다는 것이 이것이군.”
모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표정들이다.
“이 길은 지름길이지만 위험하다. 관광지에 강도들이 출몰할리는 없고 필시 무자헤딘 아니면 탈레반 같은 테러조직들이 나타나는 모양이지. 보라구, 우리 말고는 단 한 대의 차량도 사람도 지나가지 않잖아.”
“정말이야?”
오민철이 노려보자 무하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권총수 말이 맞다며 어색하게 중얼거린다.
“사고가 생기긴 하지만 아주 가끔.”
위험한 코스인 대신 절반의 시간을 단축 할 수 있다.
다른 차가 한 번 다녀올 동안 자신은 두 번을 갈수 있고 빨리 간다는 이유로 차량 렌탈비도 비싸게 받는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운에 맡긴다.
무하니가 두려워하는 걸 보면 본인도 오늘 처음 겪는 모양이었다.
"진짜 어이가 없군. 우릴 함정으로 데려간 꼴이잖아."
오민철이 가재 눈을 하며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