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9화: 십억달러 작전(1)
권총수가 워낙 단호했기 때문에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적국에서 우리의 협조자라고 하지만 드러낼 것이 있고 우리 나름대로 숨겨야 할 것이 있어.”
“정답!”
오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고 내 패를 모조리 까벌릴 수는 없잖아.”
“의심하자?”
나카야마의 질문에 권총수는 고개를 저었다.
“의심이 아냐. 우리도 나름대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자는 거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있다 뒤통수 맞으면 대책 없잖아. 그리고 이거.”
권총수는 뤼크만으로부터 넘겨받은 핸드폰 크기의 무전기를 들었다.
“교신거리가 3킬로에서 5킬로라고 하는데 가급적 사용하지마. 급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제하라고.”
권총수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아군을 의심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장소와 현재 상황이 워낙 위험하므로 철저히 경계하자는 뜻이다.
집은 낡았다.
시멘트와 돌을 쌓아 지은 집인데 이 층이었다.
일 층에 작은 방이 두 칸이며 이 층은 한 칸으로 되어 있었다.
드르륵!
이층 창문을 열었다.
밖은 골목이며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북적 거린다.
근처에 재래시장이 있기 때문에 붐볐는데 권총수는 창가에 의자를 놓고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오민철은 일 층에서 무엇을 하는지 퉁탕거리며 시끄럽다.
담배를 피우며 권총수는 핸드폰을 작동했다.
의외로 와이파이는 잘 터졌고 핸드폰을 통해 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무자헤딘의 소식은 어딜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오늘 아침 천왕중공업 선박납치 대책본부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지만 무자헤딘으로부터 어떤 접촉제의도 없다고 했다.
자신들도 지금 접촉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 식이라며 정해진 본부나 위치가 없어 속만 태운다고 하소연했다.
그때 오민철이 올라왔는데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뭐했는데?”
“일 층 창문이 잘 닫히지 않아 손 좀 봤지. 어찌나 시끄러운지 말이야.”
권총수 옆으로 다가와 담배를 피워물더니 전화를 걸었다.
“쪽바리 지금 뭐해? 청소한다고? 으헤헤헤.”
오민철이 큰 소리로 웃었다.
“방에서 전갈이 나왔대.”
오민철은 통쾌하다는 듯 권총수에게 말했다.
“조심해라. 용병이 전갈에 물려 죽었다고 하면 얼마나 쪽팔리냐. 근처 약국에 가서 약을 사다 뿌려. 위험한 독충이라고. 오케이.”
오민철은 전화를 끊으며 같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 고향 벌교 5일장 같다.”
북적이는 골목을 내려다보며 오민철이 중얼거렸다.
“시골 장은 왜 그렇게 일찍 서는지도 몰라. 해도 뜨지 않았는데 이고 지고 집을 나서지. 버스비 아낀다고 우리 엄마 20리길을 걸어간다.”
권총수는 오민철을 슬쩍 바라보았다.
파키스탄의 작은 골목에서 오민철은 고향을 발견하고 있었다.
“형 시장구경 가자.”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권총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민철도 곧 뒤따라 일어났는데 두 사람은 집을 나가 북적이는 사람들 속으로 묻혔다.
카이로 공항에 대한한공이 착륙했다.
잠시 후 입국장으로 정장을 한 칠십 초반 가량의 노인이 걸어 나왔는데 기다리고 있던 권악수가 재빨리 다가가 허리를 구부렸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중절모를 눌러쓰고 걸어 나온 사람은 천왕그룹 회장 권철악이었다.
국내 재계서열 1위이며 전직 대통령 권철태의 바로 위 형님이자 백서그룹 권철무가 막내 동생이 된다.
권악수에게는 큰 아버지가 되는 셈인데 딸만 둘인 권철악은 어려서부터 권악수를 유난히 아끼고 총애했다.
친 아들은 아니지만 워낙 권악수의 능력이 출중하다보니 천왕그룹의 미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권철악의 두 딸 역시도 유통과 호텔로 분리 되어 나가면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권악수는 권철악 회장과 나란히 앉았다.
그간 있었던 일을 자세히 보고했는데 권철악은 아뭇소리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아랍에미리트 할라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두바이에 왔다가 오늘 돌아가는 상황을 직접 한 번 보겠다고 온 것이다.
“권총수?”
“네, 아주 웃기는 친구던데요?”
“십억 달러를 요구하더란 말이지?”
“미친놈.”
“헛헛! 세상에 미친놈이 많은 법이지. 미쳐야 먹고 산다.”
홱!
권악수는 놀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얼마만큼 미쳤더냐? 십억 달러를 부른 걸 보면 조현증에 가깝구나.”
아직까지 권철악의 말뜻을 간파하지 못한 듯 권악수의 눈이 좁혀졌다.
‘미쳐야 먹고 산다. 십 억 달러를 부르는 걸 보면 조현증에 가깝구나’
생각없이 말을 하는 권철악이 아니다.
직관력이 뛰어나고 상황판단이 빠르다.
아버지 권철태는 만약 너희 큰 아버지가 정치를 했다면 난 대통령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십억 달러, 적은 돈이 아니지. 어떠냐? 그 자가 성공할 것 같으냐?”
“우리 특수부대도 실패한 일입니다.”
권철악이 돌아본다.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냐?”
“안 됩니다. 용병들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현역을 따라 갈수는 없죠.”
“현역과 예비군 차이라는 것이냐?”
“아무리 공을 잘 차는 선수도 은퇴하고 나면 조기축구에서 통하지 국가대표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악수야. 그래서 지금 실패 할 줄 알고 거래를 한단 말이냐?”
“큰 아버지.”
누군가 옆에 한 사람만 있어도 회장님으로 부른다.
그런데 지금 운전사와 조수석에 비서가 있는데 큰 아버지로 부른다는 건 단호한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절대 그들을 구출하지 못합니다. 배에 실린 기름은 놈들에게 넘어간다 해도 인질들 몸 값은 불가합니다. 테러조직에 굴복하게 되면 천왕중공업이라는 브랜드에 커다란 흠집이 될 것입니다.”
“계속 말해 보거라.”
“그쪽에서 나쁘지 않은 제안이 온다고 해도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서 미룰 것입니다.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 돈이 급한 놈들이 어떤 행동을 할 까요. 인질을 한 명씩 처형해가면서 우릴 더욱 압박할 겁니다.”
“그럴 것이다.”
“그래도 우린 계속 협상에 대한 사인만 보내는 것이죠.”
“노력 하는 척?”
“분명한 건 선원들의 죽음을 엉성한 작전을 전개한 용병들 탓으로 돌리는 것이죠.”
권철악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이글거리는 거리로 니캅을 쓴 여자 둘이 지나가고 있었다.
자꾸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기쁘다.
무척 마음에 든다.
자신도 차가운 피를 가졌다는 말을 들었지만 권악수는 한 술 더 뜬다.
그야말로 천왕그룹을 지금보다 훨씬 큰 기업으로 키워낼 수 있는 지혜를 가졌다.
친 아들이 아니어서 아쉽긴 하지만 양자를 들이고 싶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성도 다르고 핏줄도 다른 사위들에게 결코 회사가 넘어가게 둘 수는 없다.
권악수를 아들로 끌어들이면 사위들도 움츠려 든다.
“세상은 그렇게 사는 것이다. 가장 미련한 놈이 내 손으로 피를 묻히는 법이지.”
권철악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전화통화가 되지 않는다.
몇 번을 걸었지만 통화 밖이라는 소리만 반복되어 나온다.
맥보란의 표정은 약간 긴장되어 있었다.
뉴스에는 이라크나 시리아 리비아의 테러를 가장 우선적으로 보도한다.
후세인이 물러난 지 십오 년이 흘렀으나 이라크는 여전히 테러가 멈추지 않고 시리아도 반군을 소탕한 듯 보이지만 자살폭탄테러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 보도의 횟수는 작지만 현재 가장 테러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국가는 파키스탄이었다.
중동을 포함한 서남아시아에서 정치 지형이 가장 복잡하게 엉켜 있는 곳이 파키스탄이다.
발루치족의 독립과 무자헤딘의 테러, 탈레반이 활동하며 크고 작은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이 서로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하루도 피가 마르지 않는다.
CIA정보원의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도 파키스탄이다.
평균 일 년에 한 명 정도는 실종되거나 시신으로 발견된다.
더욱이 파키스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분류되는 발루치스탄주는 사방이 지뢰밭이다.
흔히 정보원은 사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받는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기계적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생물도 아닌 인간이 소통을 하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마음을 줌으로 인해 결정적일 때 흔들릴 수도 있는데 이는 냉정해야 하는 정보원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자네는 마음을 잘 다스리기만 한다면 정보국에서 대성할거야’
전 CIA국장 스티븐 실링의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권총수에 대해 너무 많은 마음을 줌으로 인해 사망한 아담스 국장과 거리가 멀어졌다.
아담스 국장은 자신의 진급을 좌우하는 직속 상관이다.
어쨌든 이제 정보원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 하는 맥보란이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도 서슴지 않아야겠지만 국가를 위해 누군가에게 불행을 안기는 것 역시 결코 올바른 일은 아니다.
국가를 위하고 타인의 삶도 배려하는 정보분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잉!
핸드폰이 울렸는데 국제 전화다.
“여보세요.”
“전화 하셨군요?”
권총수였다.
“통화가 안 돼 걱정 좀 했죠?”
권총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맥보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진심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고맙다고 하긴 쑥스럽고 하여 그냥 침묵하는 편을 선택한 것이다.
그 마음을 아는 듯 맥보란이 말을 이었다.
“훈자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조금요.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미 대서양 함대 위성 레이다에서 한 가지 이상한 신호를 포착했습니다.”
권총수는 긴장했다.
맥보란은 지금 굉장히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었다.
“동일한 무선전화 번호가 한 지역에서 계속 발신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숫자를 불러 주었다.
권총수는 처음 듣는 전화 번호였기에 누구냐고 물었다.
“아슈칸 데자가?”
“웁!”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엔터프라이즈호가 납치되고 일주일 후 무자헤딘이 자신들의 범죄임을 자처하며 나타났다.
그러면서 사건을 진두지휘했다고 스스로를 밝힌 사내의 이름이 아슈칸 데자가였다.
“덴자가의 전화번호로 발신된 위치가 훈자란 말입니까?”
“이미 우리측 요원들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씰 1개 소대 병력이 급파된 것으로 압니다.”
“물건(총기)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하면 받을 수 있게 될 겁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돌아가면 켄터키산 버번 한 잔 사죠.”
“매우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권총수는 전화를 내렸다.
오민철이 빛나는 눈으로 물었다.
“훈자라면 북쪽 카라코람 산맥 쪽이잖아.”
권총수는 곧장 전화를 걸어 비렌드라와 나카야마를 불러들였는데 모든 짐을 챙겨 공항으로 나오도록 했다.
그리고 뤼크만에게 전화를 걸어 갑자기 일이 생겨 돌아가야 할 것 같다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우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특정 장소에 미화 천 달러를 넣어 놨으니 수고비라 생각하고 가지도록 조치했다.
뤼크만은 정말로 아쉽다는 듯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그러다가 천 달러 얘기가 나오자 기운이 난 듯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도 작별인사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이슬라마바드로 돌아왔다.
공항을 나온 권총수는 근처 커다란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음료수 네 병을 계산하며 수염 덥수룩한 사내에게 훈자 마을로 가는 경로를 물었다.
사내는 버스를 비롯한 교통편은 많다고 말해 주었는데 문제는 시간이었다.
“최소 하루는 잡아야 할 것입니다.”
하루라는 말에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사내는 빙긋 웃으며 여행지로는 알려져 있지만 아직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은 있을 것입니다.”
편의점 사내는 훈자의 아름다움에 자신 있다는 표정을 했다.
관광을 가는 줄 아는 모양이다.
잘못하면 그곳이 무덤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