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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16화 (316/651)

제316화: 위험한 계약(2)

일부러 빠진 건 아니다.

다른 동료를 넣어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였다.

사실 권총수는 벤자민의 그런 리더십을 봤기 때문에 책임자로 임명한 것이었다.

“캡틴! 어떤 작전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궁금하여 카이로에 있는 버홀터 지사장에게 물었지만 모른다더군요.”

권총수는 가볍게 웃었다.

“아직은 비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니 이해하시죠. 집결지에 가면 그때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그 사이 부지런히 몸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벤자민의 눈이 빛났다.

권총수가 정색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으면 시간 있다고 외출하거나 체스 게임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방아쇠 한 번 더 당겨보고 벤치프레스 들어 올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권총수는 그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탁!

문이 닫히자 벤자민의 고개가 오민철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자 오민철 역시 재빨리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벤자민은 곧장 그 뒤를 따라갔다.

밖으로 나온 벤자민은 담배를 피워 무는 오민철 곁으로 붙어 섰다.

“오 팀장님.”

“아 몰라 몰라.”

벤자민이 무슨 질문을 할 것인지 알고 있는 듯 오민철은 재빨리 손을 저으며 인상을 썼다.

“난 아무것도 몰라. 난 멍청해.”

“담배 하나 달라고요.”

“어, 그래 그럼 진작 말하지.”

오민철은 담배 한 개비를 주고 불까지 붙여 주었다.

“나에게만 좀 가르쳐 주면 안 됩니까?”

벤자민이 히죽 웃었다.

오민철이 잠깐 이마를 찡그렸다.

“형님!”

오민철이 나이가 더 많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계속 형님으로 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벤자민은 자신에게 달려들었다가 늘씬 두들겨 맞았다.

한 번도 아닌 대여섯 번을 공격했고 그중에는 잠결에 대검을 휘둘러 위협한 적도 있었다.

관계로 따지면 가장 험악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다.

“나만 살짝 안 됩니까?”

오민철이 헛기침을 했다.

“벤자민, 고향에서 옥수수 농장 하는 게 꿈이라고 했지. 정말로 살아 돌아가 옥수수 농장을 하고 싶다면 그 담배 피우고 나서 곧장 총을 들고 사격장으로 가라.”

벤자민의 눈이 커졌다.

오민철의 얼굴에 장난기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직감적으로 굉장한 작전이라는 느낌이 온다.

“우리 캡틴의 철학이 뭐냐. 집에서 집으로.”

오민철은 담배를 물고 걸어갔다.

공항이다.

네 사람 모두 풍성한 회색 바지와 롱코트를 닮은 회색의 비슈트를, 그리고 머리에는 검정색 원통형의 모자를 썼다.

겉으로 봐서는 서남 아시아 어딜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아랍 남자의 복장이었다.

“왜 이렇게 더워!”

오민철은 자꾸 윗도리를 들추며 투덜거렸다.

“담배 하나만 피웠으면 좋겠는데.”

권총수는 유난히 떠드는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더운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 누구도 덥다고 말하지 않는데 유독 오민철만 못살겠다고 허우적거린다.

오민철은 지금 긴장하고 있었다.

고수 일수록 상황을 파악하는 눈이 빠르다.

용병 바닥에 들어온 이후 이번 작전이 가장 위험하다는 걸 본능이 알아차리며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민철 뿐만 아니다.

나카야마는 말이 없다.

비렌드라만 여전히 변함이 없었는데 무공심법을 익힌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평상심이었다.

무공심법은 육체와 마음의 긴장을 완전히 녹여 버린다.

무공심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오민철이나 나카야마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방법이라고는 없다.

스스로가 자신의 본능을 통제하고 감정을 이끌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일 뿐이다.

그때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에어 에미레이트 399편을 이용할 승객들은 9번 게이트를 통해 탑승하라는 방송이 반복되어 흘러 나왔다.

네 사람은 각자의 가방을 매고 9번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하면서 오늘따라 스모그가 심한 카이로 하늘로 사라졌다.

이른바 아랍복식이 아닌 서구적인 일상복 차림의 승객은 몇 명 없었다.

여전히 이라크를 비롯해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이란은 여행자가 찾아가기에는 부담스런 국가이다.

그 나라에서는 관광객 신변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테니 염려말고 오라고 부르지만 워낙 테러조직과 반군들이 지역마다 들끓어 사람들이 피하고 있었다.

그나마 아랍인들은 서구 관광객들에 비해 조금 더 안전하다보니 비행기 안은 거의 이슬람 사람들이다.

“진짜 여행은 이란이나 파키스탄이라는데 말이야.”

오민철이 입을 열었다.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는 모양이었다.

“옛 이슬람의 역사와 유적들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더라고, 우리 매형 데리고 왔으면 무척 좋아했을 텐데.”

갑작스럽게 자신의 매형 얘기를 꺼내자 권총수가 돌아보았다.

“너 모르지. 내가 말 안했구나. 우리 매형 이슬람 신자잖아.”

“진짜?”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이태원에 있는 사원에 다녀. 얼마나 열심인데, 한 마디로 독실하다고 할 수 있지.”

“그럼 민철 매형이 테러리스트야?”

나카야마가 끼어들었다

“이런 쪽바리 자식이.”

뒤에 앉아 있는 나카야마를 때리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안전벨트에 묶여 꼼짝하지 못했다.

“미안 미안. 농담이야. 농담!”

“나 오늘 저 자식 이슬라마바드에서 시체 만든다.”

오민철의 목소리가 컸는지 주위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아엠 쏘리, 아엠 쏘리. 쪽바리 자식 때문에 아 쪽 팔려.”

오민철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며 손을 들어 올렸다.

권총수는 고개를 뒤로 붙이며 눈을 감았다.

* * *

두 대의 경호차량이 앞뒤를 따르는 가운데 검정색 벤츠 한 대가 멈췄다.

기다리고 있던 정장차림의 사내가 뒷문을 열어 주었다.

내린 사람은 청와대 안보실장 천규석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천규석은 사내를 따라 양탄자가 깔린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 좌우에는 여러 폭의 오랜 성화가 걸려 있었는데 천규석은 마치 명동성당을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딸칵!

앞서가던 사내가 문을 열어주었다.

천규석은 방안으로 들어섰는데 청룡목(靑龍木)으로 불리는 붉은 나무 탁자가 있고 그 뒤로 두 개의 소파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죠.”

사내는 창문 쪽에 있는 조그만 원탁 의자 한 개를 꺼내 권했다.

“감사합니다.”

천규석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사내는 밖으로 나가 사라졌다.

천규석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단촐했다.

이란 국기와 팔레비 왕조를 밀어내고 이슬람국가를 건설한 초대 라흐바르(최고지도자) 호메이니와 1년 전 권총수에 의해 암살당한 2대 라흐바르 하메네이에 이어 3대 최고지도자에 오른 호디다드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문이 열리며 조금전 나갔던 사내가 들어왔다.

“최고지도자님께서 오십니다.”

천규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자락 끌리는 소리가 들리며 흰색의 칸두라에 먹물에 담갔다 꺼낸 것 같은 검정색 비슈트(외투)를 걸친 노인이 들어섰다.

노인은 딱딱한 표정으로 사내를 통해 천규석을 소개 받았다.

“한국에서 오신 대통령 특사입니다.”

“앉으시오.”

그 흔한 악수 요청도 없는 것에 천규석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아무래도 오늘 얘기가 순조롭게 이어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소파에 앉았고 천석규를 안내하던 비서 로하니는 조금 떨어져 메모를 준비했다.

“먼저 저희 대한민국 대통령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들고 있던 봉투를 꺼냈다.

그러자 비서 로하니가 재빨리 다가와 받더니 호디다드에게 건네주었다.

호디다드는 봉투를 스윽 앞뒤로 확인하더니 탁자에 던지듯 놓는다.

순간 천규석의 안색이 변했다.

국가 원수가 건네주는 메시지는 그 자리에서 읽든 읽지 않든 조심스럽게 놓은 것이 예의다.

거의 던지다시피 했다는 건 무척 기분이 나쁘다는 뜻이므로 숨을 들이 쉬었다.

어차피 각오하고 왔다.

“할 얘기 있으면 해보시오?”

한 마디로 당신들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저희나라 대통령께서는 이란 국민들과 최고지도자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결코 대한민국은 이란의 영토를 침범할 의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예전처럼 서로 호의적이며 따뜻한 관계를 이어갔으면 한다고 하셨습니다.”

쾅!

호디다드는 오른손으로 의자 팔걸이를 내리쳤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남의 나라에 허락도 받지 않고 군부대를 투입해놓고 고작 한다는 말이 미안하다고?”

호디다드가 버럭 소릴 지르자 천규석은 목을 약간 숙여 다시 사죄했지만 소용없었다.

“48시간을 주겠소. 그 안에 대사관 직원은 물론 한국기업 모두 이란영토를 떠나시오. 정확히 48시간 이후부터 한국인은 모조리 불법체류자로 체포하겠소. 또한 한국의 모든 금융자신과 부동산 역시 압류 될 것이오.”

“라흐바르(최고 지도자), 최고 지도자님.”

“가시오. 당신들과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소. 이것도 받지 않겠소.”

메시지가 담긴 봉투도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비서 로하니가 재빨리 뒤를 따라 나갔는데 최고지도자님 진정하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천규석의 얼굴은 검게 변했다.

탁자 위에 올려진 대통령 메시지가 담긴 봉투가 바닥에 떨어졌다.

천규석은 허리를 구부려 봉투를 주워 들었다.

대통령 특사가 되어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이렇게 친서를 팽개치는 경우는 처음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있는데 바로 상대국 지도자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갑자기 아랫배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너 따위가 감히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고 이따위 무례를 하느냐는 욕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석유만 아니면 어느 선 이상 사과하지 않는다.

사우디를 비롯해 석유 수입을 다변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중동의 석유를 수입하게 되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우리 군이 호위를 한다고 해도 이란군이 전투기를 동원해서라도 공격 해버리면 대책 없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는 방식으로 원유를 수입한다면 경제적 손실이 아주 크다.

로하니가 들어왔는데 표정이 굳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는 뜻인데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돌아가시오.”

“예?”

“최고지도자님께서 당신과 말하기 싫다는 겁니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면박당할 가능성이 크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했잖아요.”

좀 더 시간을 갖자는 걸 천규석이 밀어 붙였다.

할 사과라면 빨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한 번 더 사정해볼 수 없겠습니까?”

“이보시오. 당신들 무척 뻔뻔합니다. 최고지도자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놓고서 뭘 사정해 보라는 거요. 그만 가보시오.”

그리고 문을 열었는데 나가라는 추방령이다.

천규석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로하니 비서?”

로하니가 그렇다는 듯 빤히 바라본다.

“몇 살이오?”

“마흔 둘입니다.”

“내 큰아들과 동갑이군. 내 아들은 어른에게 조심할 줄 아는데.”

최고지도자는 몰라도 넌 나이도 어린놈이 싸가지가 왜 그렇게 없느냐는 말이었다. 로하니는 말이 없었고 천규석은 한마디 뱉고는 방을 나왔다.

“최고지도자님의 건강을 빕니다.”

천규석은 조용한 복도를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나무관세음보살!”

어렵고 힘들 때 마다 관세음보살은 자신에게 길을 주었고 희망을 선물했다.

이 난국이 더 이상 얽히지 않고 잘 풀어지기를 소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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