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15화 (315/651)

제315화: 위험한 계약(1)

권총수는 입 안 가득 고기를 씹으며 빙긋 웃는다.

“많이 먹어라. 대장이 잘 먹어야 부하들이 안전해지지.”

오민철은 권총수 등을 토닥였다.

“어, 저 사람 맥보란 아냐?”

그때 나카야마가 한쪽을 가리켰다.

레스토랑 안쪽 기둥 옆으로 두 명의 백인 남자가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쪽을 보고 앉은 사내가 맥보란이었다.

같이 있는 사내는 등을 돌리고 있어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는데 오민철이 눈을 좁혔다.

“CIA 직원이 이런 비싼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는 건 무리인데, 같이 먹는 친구가 돈이 많나.”

오민철은 CIA 정보원 월급으로는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할 수 없다면서 혹시 부정이나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눈빛을 계속 던졌다.

“수상해. 공직에 있는 사람이 부패하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없는 건데.”

그때 권총수의 귀가 꿈틀했다.

타인의 얘기를 엿듣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나 맥보란이라면 달라진다.

CIA와 화해를 한 건 사실이지만 그들의 움직임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는 있는 것이다.

‘아직 정확한 위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파키스탄인 것 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파키스탄?’

‘일단 가장 시끄러운 발루치스탄주가 아닐까 추측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죠’

권총수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무자헤딘이 분명한가?’

‘예’

‘이번 작전이 무자헤딘 고위층의 뜻이 아니라는 말이 있던데?’

‘그렇지 않습니다. 고위층에서 직접 명령이 내려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란 정부도 깊숙이 개입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하긴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말단 하부조직이 단독으로 벌일 이유가 없지’

‘단순히 활동자금을 만들기 위한 짓인가?’

‘국제분쟁을 노렸던 듯 보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미국이 걸려들길 바란 모양입니다’

‘미국?’

‘구출 작전이 들어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죠. 단지 네이비 씰 팀이 움직일 줄 알았는데 한국 씰이 들어오면서 계획이 어긋난 거죠’

‘네이비 씰이 들어왔다면 영토침략이라는 분명한 명분을 얻게 되니 이란이 무슨 군사적 행동을 해도 미국으로서는 옹색해지는군’

‘결정적인 건 중국과 러시아 입니다. 백 프로 미국이 잘못했는데 그들이 가만있겠습니까. 때는 이때다 싶어 이란이 강한 군사작전을 펼쳐도 주권국가로서 자위권을 위한 당연한 일이라고 지지하며 미국을 압박하겠죠’

‘상대는 이스라엘이군? 만약 이스라엘이 반격을 하면?’

‘당연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집트도 나설 것입니다’

‘친 이슬람과 이스라엘전으로 확대된다?’

‘사우디는 친미쪽이므로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한다고 해도 나머지 모든 중동국가들은 군사적 힘은 보태지 않아도 이스라엘 반대편에 설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잠시 침묵이 있다.

맥보란이 생각이 깊어지는 모양이었다.

만약 중동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의 대화처럼 한국 씰이 아닌 미군 씰이 들어갔다면 미국은 분명히 이란을 침략한 것이다.

테러조직에게 붙잡힌 선원 구출을 위한 일이라고 해도 타국 영토를 들어갈 때는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한다.

미국은 어떤 변명도 내놓지 못한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보복의 미사일을 날린다.

전쟁은 의외의 곳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었다.

1914년에 시작하여 1918년에 끝났던 1차 세계대전은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그의 왕비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을 당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는 세르비아가 오스트리아에 병합되는 정책을 밀어 붙이고 있었는데, 이 청년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반대하는 세력의 일원이었다.

4년이 넘는 동안 천만 명이 죽고 천만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2차 대전은 학자들이 1차 대전과 개전(開戰)의 원인을 달리보는데 가장 객관성을 가지는 의견은 세계적인 대공황에 의한 사회불안을 첫째로 꼽는다.

2차 대전은 1차 대전을 앞섰다.

군인만 천팔백 만 명 민간인 이천칠백 만 명이 죽었다.

사람들은 3차 대전의 진원지로 중동을 꼽는다.

그중 이스라엘과 아랍의 충돌이 3차 대전을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을 가장 많이 내놓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권총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는데.”

권총수는 포크를 놓고 휴지로 입을 닦았다.

“더 이상 이번 사건에서 미국은 절대 개입을 못할 것이고 한국 또한 지금으로서는 대책이 없군.”

권총수는 맥보란의 얘기를 엿들었단 얘기는 하지 않고 그걸 토대로 자신의 견해를 내 놓았다.

상황이 굉장히 위중하다는 결론에 세 사람 모두 눈이 커졌다.

“미국이 끼어들면 곧바로 이스라엘로 미사일이 날아가고, 만약 미국이 이란을 치면 중국이 개입한다는 거야?”

“그럴 가능성이 높아.”

“어쨌든 미국은 이번만큼은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되는군.”

오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래도 개입하면? 설마 3차 대전이라도 일어난다는 거야?”

“민철, 설마 그렇게 까지 가겠어. 3차 대전이 벌어지면 승자가 없는, 모두가 패자인 전쟁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데.”

나카야마가 자신의 생각을 빠르게 설명했다.

그때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카드로 계산을 했다.

“잘 먹었다. 총수야. 넌 정말 사랑스러운 동생이야.”

오민철이 권총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밤이 깊었다.

다인코프에서 비밀리에 사용하는 이른바 용병들의 안가로 불리는 카이로 외곽의 조용한 단독주택도 어둠에 덮였다.

다른 방은 모두 잠이 든 듯 조용했다.

권총수는 몸을 뒤척이다 결국 잠을 자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는데 담배와 핸드폰을 챙겼다.

옥상으로 올라간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뭔가 고민하는 듯 한참 담배를 피우던 권총수가 번호 하나를 눌렀다.

신호가 가자마자 곧바로 응답했다.

“캡틴.”

맥보란의 목소리였다.

“오늘 저녁에 식당에 오셨으면서 왜 그냥 가셨습니까? 난 그분과 대화가 끝나면 우리 자리로 건너올 줄 알았죠.”

맥보란 같은 인물이 식당이 넓고 사람이 많다고 하여 권총수 일행을 발견 못하지 않을 리 없었다.

더욱 놀라운 건 맥보란의 행동이었다.

누구보다도 권총수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즉,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 정도의 공간에 같이 있으면 둘이 나눈 얘기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엿들을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맥보란은 목소리를 죽인다거나 주위를 경계하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좋은 정보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맥보란이 일부러 CIA 정보를 흘려 준 것이다.

물론 사전에 약속도 없었고 어떤 사인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다.

맥보란은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한국 속담에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이 있다고 했었죠?”

나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뜻이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CIA는 지상 최고의 정보기관이다.

호주 북부에 대규모 미군 감청기지가 있다.

여기서 하는 일이란 그야 말로 지구상의 모든 소리를 듣고 움직임을 지켜본다는 것이다.

의심스런 전파가 잡히면 그 지역 미군 사령부로 연락이 가거나 아니면 CIA에 자료가 제공된다.

CIA에서는 보내준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추적하는 국제범죄자를 체포하고 제거한다.

미국 본토에도 많은 기지가 있고 유럽의 독일과 영국에도 은밀한 감청기지가 존재한다.

이 모든 첨단 시설에서 나오는 정보의 양이란 어마어마한 것이다.

빈라덴의 움직임도 이곳 감청시설에서부터 추적이 시작되었다.

맥보란의 도움 없이 이번 사건 해결은 불가능하다.

맥보란은 부드러운 웃음을 띠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헬기를 이용해 시나이 반도에 있는 알파기지로 날아갔다.

권총수는 이번 작전 인원을 최대 스무 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인질 구출이나 적진에 침투하여 특수시설을 파괴 하는 작전은 성공만큼이나 출전 인원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미리 작전지역의 지형이나 건물, 또한 경계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춘 공격준비를 해도 항상 현장에 가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어 있다.

상황에 따라 25명까지도 생각은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인원도 주위 시선을 끈다.

쿠쿠쿠쿠!

거대한 수송헬기 CH-53이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기지에 내려섰다.

엄청난 흙먼지에 마중을 나온 용병들이 고개를 돌리고 목에 걸고 있는 구트라(스카프 형식으로 머리를 덮거나 두르는 것)로 얼굴을 가렸다.

비행기는 권총수 일행을 내려주고 곧바로 날아올라 사라졌다.

권총수는 마중 나온 벤자민을 비롯하여 간부급 용병 그레이엄과 테리와 악수를 했다.

“휴일 날 모처럼 쉬는데 방해를 해서 미안 합니다. 요즘 이곳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윌리야트 우두머리 압둘라의 죽음으로 다소 어수선 하긴 하지만 세력이 약화된 것만큼은 분명 합니다. 며칠 크고 작은 테러들이 일어났지만 요즘은 잠잠하죠.”

윌리야트 시나이는 처음 우두머리 압둘라가 죽었을 때는 강력한 테러를 조장하고 직접 일으키기까지 하며 흥분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이 사분오열되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위력이 저하되고 시끄러울 것이다.

체계와 질서가 다시 구축될 때까지는 외부 행동에 나서기 보다는 내부 투쟁에 몰두 할 가능성이 높았다.

“잠시 조용할 겁니다.”

일행은 일 층 생활관 안에 있는 조그만 사무실로 들어섰다.

외출하지 않은 용병들은 체스를 두거나 포커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스무 명 정도의 인원을 차출해야겠습니다.”

카이로를 출발하기 전 벤자민에게 대략의 설명을 해주었다.

그건 누구보다도 용병들의 속사정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벤자민으로 하여금 인원 선발과 추천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벤자민이 접힌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쪽지를 펴자 거기에는 스무 명의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나이와 출신국가, 복무했던 부대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권총수는 쪽지를 한참 바라보았다.

권총수가 쪽지를 내려놓자 기다렸다는 듯 오민철이 들어 살핀다.

“일부러 골고루 뽑은 거야 아니면?”

씰 출신으로 뽑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해병대 출신들이 많은 것에 묻는 것이었다.

“전쟁은 경험입니다. 씰을 제대 했어도 실전 경험이 그다지 없는 친구들이 많죠.”

사실 다인코프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와 다른 용병 회사들도 씰 출신을 우대하는 건 사실이지만 의외로 해병대 출신들을 많이 선발한다.

인질구출 작전이나 특수 임무를 제외하고는 야전에서 가장 많이 적과 대치하는 건 해병들이다.

지금도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포함한 여러 전투 지역을 누비고 있는 건 전부 해병대원들이었다.

“오케이!”

벤자민이 선발했지만 자신이 직접 일 대 일 면담을 한 뒤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런데 면담을 해보지도 않고 결정한다는 건 벤자민을 신뢰하면서도 그에게 힘을 실어 줄어 주려는 것이었다.

“한 명만 더 추가 합시다. 벤자민 당신을 포함하겠습니다.”

벤자민이 어색한 표정을 했다.

전쟁터에 놀기 위해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벤자민 역시도 돈을 벌기 위해 왔고 고향 캔터키주에서 옥수수 농장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었다.

톡!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낸 권총수가 맨 아래에 벤자민이라는 이름을 써 넣었다.

사사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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