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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13화 (313/651)

제313화: 싸가지 없는 피(2)

비렌드라 또한 고개를 돌려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오민철이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사실 천만 달러 얘기 때만 해도 솔직히 마음 흔들렸어.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거짓말이지.”

그러자 나카야마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욕심이 나던데, 사람 웃기는 것 별것 아니더라고, 단순한 범죄자도 아닌 체계적으로 잘 훈련되고 오랫동안 활동해온 테러집단에 붙잡힌 인질을 구출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 한 건지도 모르잖아. 현실은 분명히 그런데 눈앞으로는 자꾸 천만 달러가 어른거리더라니까. 욕심이라는 것이 무서운 거야.”

“돈 앞에 누가 장사겠어. 인간이라면 돈 앞에 당당할 수 없는 거야. 그런데 일억 달러라니.”

비렌드라가 한숨처럼 말하자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눈, 너도 설마?”

“나 사람이야. 왜들 이래.”

비렌드라가 밝게 웃었다.

“돈 벌려고 왔지 내가 즐기기 위해 이 바닥에 왔겠어. 나돈 돈 많이 벌고 싶다고.”

“솔직히 말은 안 했지만 총수가 제대로 협상을 않고 돌아설 때 몹시 섭섭했어.”

비렌드라가 히죽 웃었다.

“나도 속물이지 뭐.”

“그런 소리마 눈, 우린 평범한 사람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과 똑같아. 나쁘지도 훌륭하지도 않아.”

오민철의 푸념 같은 말에 비렌드라가 슬쩍 웃었다.

“공짜도 아닌 우리 목숨을 걸고 버는 돈인데 많을수록 좋은 건 사실인데 왜 이렇게 얼굴이 뜨겁지. 너희들 포탈라궁에 와 봤어?”

비렌드라가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전혀.”

“사람들은 그곳 스님들이야 말로 세상의 욕망과 담을 쌓고 사는 분들이라고 믿을 거야. 하지만 아니야. 그분들도 시주를 많이 하는 처사님들을 보면 더욱 자주, 많이 웃어. 다만 차이라면 자신들의 그런 행동을 숨기지 않는다는 거야. 스스로 인간임을 인정한다는 거지.”

“뭔 얘기들을 그렇게 나누는데?”

권총수가 사격을 끝내고 실내로 들어섰다.

세 사람은 하던 말을 접고 사격솜씨에 대해 칭찬을 했는데 권총수는 쓸데없는 소리라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흰색의 포드 익스플로러가 달리고 있었다.

권총수가 핸들을 잡았는데 차안은 조용했고 모두가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날 쳐다만 볼 거야?”

“캡틴 눈치 정말 빨라.”

나카야마가 히죽 웃었다.

“캡틴, 일억 달러 주면 할 거야?”

나카야마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생각해 본다고 했잖아.”

“무조건 해야 하는 것 아냐?”

“주겠어? 닳고 닳은 장사꾼들인데?”

조수석에 앉은 오민철이 돌아보았다.

“나 권씨야.”

갑자기 들고 나온 권씨라는 말에 오민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무슨 말인지 간파하려고 바라보았으나 얼른 답을 얻지 못했다.

“권씨들 습성을 잘 안다고? 아아!”

그제야 오민철이 뭔가를 간파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권총수는 천왕그룹 권씨와 같은 핏줄이다.

이유야 어쨌든 아버지가 권철태 전 대통령이고 천왕그룹 회장 권철악과 동생 백서그룹 회장 권철무 모두 권철태의 동생이고 형님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금 무슨 생각,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뜻이었다.

히죽!

오민철이 웃는다.

“왜 웃어?”

나카야마가 눈을 좁힌다.

“흐흐흐! 상당히 재밌겠는데, 크크 생각할수록 떨리면서 기대된다.”

“뭐가 재밌고 기대가 되는지 말 좀 해봐 조센징!”

홱!

오민철의 고개가 매섭게 뒤로 돌아갔다.

“총수야 차 세워라. 오늘 저 쪽바리 놈 정리 해버려야겠다.”

권총수는 잔잔한 웃음을 흘리며 차를 몰고 사라졌다.

입국장을 들어서자 카이로 현지 천왕중공업 비상대책 위원장 원출도와 세 명의 직원이 허리를 구부려 인사를 했다.

원출도는 이번 사건 해결을 위해 본사에서 파견된 천왕중공업 영업본부이사로 권악수는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이어 원출도는 자신과 나란히 서 있는 다인코프 카이로 지사장 버홀터를 소개했다.

“환영합니다.”

그때 버홀터가 데리고 온 세 명의 백인이 권악수 옆으로 자연스럽게 붙었는데 용병들이다.

이어 원출도는 배웅대 상무이사와 LA 지사장 안평철에게 버홀터를 인사시켰다.

인사가 끝난 일행은 공항청사를 빠져 나갔다.

권악수는 가장 먼저 이번 사건의 대책본부인 카이로 주재 천왕중공업 지사로 향했다.

커다란 중동 지도를 놓고 원출도가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을 설명했고 권악수는 의자에 앉아 듣고 있었다.

브리핑을 받는 권악수 표정이 그다지 밝지 못했다.

브리핑 시간은 길었지만 귀에 쏙 들어오는 내용은 한 가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진행 중이다.

조사 중이다.

테러집단과 계속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바람 불어 지나가는 식의 보고에 은근히 짜증이 난다.

“이게 전부요?”

그렇잖아도 긴장해 있던 사무실이 얼어붙는다.

“벌써 한 달 가까이 된 사건인데 지금 말씀한 것이 모든 수확이라는 말입니까?”

“오늘 중으로 좋은 소식 하나가 들어올 듯싶습니다.”

원출도가 당황하여 더듬거렸다.

“뭐요?”

“아직 말씀드리기가 조금 곤란...”

“피곤하군.”

굳은 얼굴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분명 회의실이고 금연이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후우!

뿌연 담배연기를 매섭게 뱉어낸 권악수가 말했다.

“그러니까 아직 무자헤딘과는 자리 한 번 마련하지 못했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그렇습니다.”

“젠장! 도대체 뭣들 한 거야.”

권악수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뻑뻑 빨아댔다.

“연락은 되는 것입니까?”

“연락은 대사관 쪽에서 관리합니다.”

“무슨 소리요?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그들과 직접 접촉을 해야지 왜 대사관이 끼어든단 말이오. 국가가 나서면 무자헤딘쪽에서 좋아 하겠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말했지만 강송춘 서기관이 대사관 중심으로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송춘은 또 누구요?”

“3등 서기관인데 제가 보기에는 국정원쪽에서 파견 나온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화이트 요원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란 말이오?”

“정확히는 모릅니다.”

“제대로 아는 것이 뭡니까? 사고대책 본부 차려 놓고 지금까지 무엇 한 것입니까?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된 것도 없고 희망을 갖을 만한 건수도 없는 것 아니오?”

모두가 침묵했다.

에어컨까지 돌아가는 사무실은 완전히 북극이 되어 버렸다.

“언론 보도가 사실이오? 인질들이 파키스탄에 감금되어 있다던데?”

“확인되지 않는 보도입니다.”

“진짜 여태 뭣 한 거야.”

그때 배웅대가 핸드폰을 들고 잠깐 나갔다가 10여초 정도 지나고 다시 들어왔다.

“준비가 된 모양입니다.”

부욱!

권악수는 담배를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시다!”

권악수는 경호원들을 대동하여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장소는 다인코프가 마련했다.

주위 눈을 피하기 위해 양쪽 사무실이 아닌 르네상스 호텔로 정했다.

넓은 회의실에 양측은 마주 앉았다.

단, 권총수 일행만 보이지 않았는데 버홀터가 자꾸 손목 시계를 보는 것이 초조한 기색이다.

약속시간에서 20분을 훌쩍 넘은 것이다.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도 없었다.

“다시 연락해 보게.”

메몰라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고 버홀터는 재빨리 밖으로 나가 권총수의 번호를 눌렀다.

회의실 밖으로 나간 버홀터가 번호를 누르려고 할 때 쨍 하는 소리가 들리며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권총수를 비롯한 일행이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지사장님, 오는데 갑자기 차가 펑크가 나버렸지 뭡니까?”

오민철이 씨익 웃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재해 아니겠습니까?”

버홀터는 오민철이 웃어 버리자 자신도 따라 피식 웃더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차가 펑크가 나는 바람에 늦었다고 합니다.”

권총수 일행은 재빨리 자리를 잡고 앉았다.

권악수의 눈이 늦게 온 네 사람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지각을 하고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는 건가’

그러면서 슬쩍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은 이슬람 복장을 한 권총수였는데 네 사람을 훑다 맨 끝에 시선을 멈췄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모두가 정장을 하고 있었는데 권총수는 답답한 듯 자꾸 넥타이를 매만졌다.

“저 친구요?”

옆에 앉은 배웅대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배웅대 역시 권총수를 바라보았는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아...아닙니다. 저 사람이 사막의 흑새가 맞는 것 같습니다.”

권악수는 사진과 권총수를 번갈아 살폈다.

한편 배웅대는 참새처럼 계속 고개를 갸웃했다.

‘잘못 본 것인가’

그러면서 권총수와 권악수를 비교 평가하듯 봤는데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닮았다.’

권악수는 전 대통령 권철태의 큰 아들이다.

고려대학을 조업하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 경영대학원 CBS(Columbia Business School)을 나왔다.

천왕그룹 권철악 회장은 딸만 셋이다.

그는 바로 밑의 동생 권철태 전 대통령의 장남인 권악수를 일찍부터 유난히 아꼈다.

공부를 끝내고 귀국한 그에게 말단 자리에서부터 일을 시켰고 입사 7년만에 사장 자리에 올렸는데, 권악수의 능력은 이미 재계에서도 인정 할 만큼 뚜렷하게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친 권철태의 안목과 큰 아버지 권철악의 저돌성을 갖고 있다’

배웅대는 자신의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눈을 좁혔다.

세상에 닮은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닮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회의가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의견들이 도출된 가운데 다인코프와 천왕중공업이 손을 잡는다는 것까지는 큰 이견이 없었다.

남은 건 돈이었다.

“일억 달러를 원했다고 들었습니다?”

권악수가 권총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누가요?”

권총수가 금시초문이라는 듯 반문했다.

“일억 달러를 준다면 고민해 보겠다고 했죠.”

순간 권악수의 안색이 굳어진다.

버홀터와 메몰라 회장을 바라보았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는 뜻이었다.

협상을 하자는 건지 깨자는 건지 이해가 되는 않는다.

“일억 달러가 얼마나 큰 돈인 줄 아십니까?”

“인간의 목숨이 얼마나 귀한 줄 아십니까? 돈은 벌면 되지만 사람 목숨은 한 번 죽으면 끝이죠.”

갑자기 사무실 공기가 칼날처럼 일어선다.

분위기가 험악해질 조짐이 보이자 재빨리 메몰라가 끼어들었다.

“이렇게 합시다. 일억 달러는 조금 그렇고 오천만 달러에 계약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서 권총수를 바라보았는데 적당히 한 발 물러서라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권악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일억 달러를 원하면 드리죠.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만약 실패하면 전액 반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모두가 깜짝 놀랄 제안이었다.

한화 약 천백 억을 주겠지만 실패하면 모두 토해 내라니. 협상이라기보다는 극단적인 내기에 가까웠다.

“하겠소? 하겠다면 당장 통장으로 일억 달러를 입금하죠.”

모든 시선이 권총수에게 멎었다.

과연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탁자 위에 양 팔꿈치를 대고 손을 감싸 쥐고 있었는데 손을 풀고 고개를 돌려 권악수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조건을 제시 하겠습니다.”

“말씀하세요.”

“좋습니다. 실패하면 한 푼도 받지 않죠. 대신 일억 달러가 아니라 십억 달러를 주십시오.”

“허걱!”

“시...시...십억 달러.”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권악수는 잘못 들었나 싶어 옆에 앉은 배웅대에게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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