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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12화 (312/651)

제312화: 싸가지 없는 피(1)

그건 너도 이란에서 죽을 뻔 하지 않았느냐는 말이었다.

“천왕그룹에서는 뭐라고 하죠?”

권총수의 질문에 메몰라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정부차원의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거지. 자신들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는 없다는 걸 깊이 인식하고 있더군.”

“골 아프구만!”

오민철이 담배를 피워물었다.

“조건이 뭡니까?”

오민철이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고서 물었다.

“내가 물었지. 왜 아카데미를 가지 않고 우리 회사냐고 했더니 사막의 흑새 때문이라는 거야.”

시선들이 권총수에게로 돌아갔다.

“사막의 흑새가 이번 작전에 반드시 참여하는 조건으로 천만 달러를 제시하더군.”

“천만 달러면 우리 돈으로 얼마야. 삼삼은 구, 삼육 십팔. 한화 백십 억 정도.”

“천만 달러를 전혀 손대지 않겠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권총수가 고개를 들어 본다.

“내 주머니에는 한 푼도 넣지 않겠다는 거야. 전액 작전 요원들 통장으로 들어갈걸세.”

“회사에서 한 푼도 안 가져 간다고?”

오민철이 눈을 크게 떴는데 자신이 잘못 들은 것 아니냐는 듯 귓구멍을 후볐다.

‘형 흥분하지마, 만약 작전을 성공하게 되면 다인코프 주식은 시장에서 또 한 번 널 뛰는거야. 한 마디로 천만 달러는 메몰라에게 껌 값이야’

권총수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말을 듣고 난 오민철은 놀란 표정을 하더니 침을 삼켰다.

‘그...그렇네’

조금전까지 멋있게 보이던 메몰라가 기분 나쁘게 보인다.

“배는 이란 항구에 있으므로 불가능하고 선원들만 구출해달라는 거지.”

권총수는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1억 달러면 움직여 볼 의향이 있습니다.”

일억 달러라는 말에 메몰라는 물론 모두가 깜짝 놀란다.

“일억 달러면 깊이 고민해 보죠.”

권총수는 조용히 말하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다.

권총수가 일어났으므로 나머지도 따라 일어났다.

“계약서에는 아직 우리의 갑을 관계가 남아 있네.”

메몰라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린다.

사무실 문 앞까지 걸어간 권총수가 돌아섰다.

“압니다. 하지만 18조 2항을 보시면 저의 행동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윈스턴이 재빨리 서류가방에서 테블릿 피시를 꺼내 켰다.

권총수와 맺은 계약서를 살피기 시작했는데 18조 2항에 시선이 멈췄다.

‘하늘과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작전에 을은 갑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

윈스턴의 눈이 흔들린다.

전쟁은 하늘과 땅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바다에서 일어났다.

“왜 그래 이리 줘봐.”

메몰라가 테블릿을 가로 채더니 내용을 살폈다.

“전혀 문제가 없잖아.”

그러면서 2항을 소라나게 읽었다.

“인질이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잖아.”

메몰라가 윈스턴을 돌아봤다.

“그렇잖는가. 인질이 바다에 있다면 이 조항에 따라 거부해도 문제가 없겠지만 그들은 지금 이란이나 아니면 파키스탄의 모처에 있다는 것이 CIA의 분석이야.”

그때까지 앉아 업무만 보고 있던 사무실 직원들이 하나둘 소파 근처로 다가왔다.

메몰라는 직원들에게 테블릿을 주며 돌려 보도록 했다.

테블릿을 읽은 직원들 모두가 계약서 내용을 보면서 메몰라의 의견에 동조했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힘을 실었다.

“왜 말이 없나?”

계속 침묵하는 윈스턴에 물었다.

“그들은 선원입니다. 배를 움직이는 사람들이죠.”

“선원이건 뭐건 땅을 밟고 있으니 이 계약서 내용대로라면 당연히 회사의 뜻을 따라야 해. 내 말이 틀렸나?”

“선원들 직업에 2항의 뜻을 접목할 건지, 아니면 현재 그들이 갇혀 있는 장소를 여기에 적용할 건지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직업상으로 보면 하늘과 땅이 아닌 선원들이므로 권총수 일행이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있는 위치에 2항을 접목한다면 회사의 뜻을 따라야 한다.

계약서를 만들 당시 윈스턴은 다인코프 변호사가 아니었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현재를 따져야지. 지금 구출해야 할 대상자가 어디 있느냐가 중요한 것 아냐. 자네 아주 머리가 나쁘군. 하버드 로스쿨 출신 맞아?”

윈스턴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굉장히 애매한 조항이다.

자신의 변호사 경험에 비춰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총수가 이 조항을 걸고 넘어지면서 거부하면 양쪽 모두 미연방법원의 판결을 받아 봐야 할 것 같았다.

메몰라는 미국대사를 포함한 카이로 주재원 외교관 전원을 저녁에 초대했다.

민간보안업체 대표들은 자기회사 직원들이 근무하는 나라의 대사관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려든다.

비록 용병이지만 문제가 생길 때 대사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주느냐 아니면 불구경만 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메몰라가 카이로 최고급 식당에서 대사관 사람들과 저녁을 들며 얘기를 나눌 때 변호사 윈스턴과 지사장 버홀터는 따로 자리를 했다.

둘의 얘기는 낮에 있었던 계약서 18조 2항의 내용이었다.

“캡틴은 어떻게 2항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을까요?”

“아마 전문가에게 계약서를 확인시킨 모양입니다. 일반인이라면 절대 찾아내지 못할 부분입니다.”

윈스턴은 실소를 흘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도 이제 사직서를 낼 때가 된 모양입니다.”

메몰라는 저녁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대책을 세워 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대책이란 없다.

2항의 문구를 수정하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버홀터는 물컵을 들고 있었다.

“어느 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 계약 위반이라는 건 결국 이 연방법원에서 결정나겠죠.”

“연방법원 최종심까지 가면 못해도 4,5년은 걸릴텐데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죠.”

“이번 의뢰 건은 없었던 일이 되는 겁니까?”

“글쎄, 캡틴이 쉽게 물러나겠어요? 아까 보셨잖습니까. 1억 달러면 고민해보겠다는 말, 한다는 것도 아닌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일억 달러를 받아도 성에 차지 않는 일이라는 거죠.”

워낙 세계적으로 알려져 버린 이번 사태이다.

무자헤딘에서도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곧 이번 작전이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었다.

권총수는 그 점을 정확히 짚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캡틴 말입니다.”

윈스턴이 빙긋 웃었다.

“일억 달러가 아무나 부를 수 있는 액수입니까?”

그건 그렇다.

입에도 담기가 쉽지 않는 엄청난 거액을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그것도 일억 달러를 주면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고민 좀 해보겠다는 말인데 결코 협상에서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불러 본 것 같지는 않았다.

“체구는 작아도 배포는 큽니다.”

버홀터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전화를 받은 권악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잠시 듣고 있던 권악수가 전화기를 내렸다.

긴장한 얼굴로 통화를 지켜보고 있던 천왕중공업 관계자들이 권악수의 눈치를 살핀다.

“뭐라고 합니까?”

상무이사 배웅대가 물었다.

권악수는 잠시 굳은 얼굴로 사무실 바닥을 내려다 보더니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일억 달러!”

“네에?”

“뭐라구요?”

임원들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그것도 생각해 보겠다는 겁니다. 어이가 없군.”

딸칵!

권악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일억 달러가 뉘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아나. 미친새끼.”

부욱!

권악수는 한 모금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누르며 눈에 핏대를 올렸다.

“완전히 봉 잡았다 이거지.”

“다인코프는 물 건너간 것 같은데 다른 곳을 알아보죠. 아카데미가 이런 일에는 더 경험도 풍부하고 뛰어납니다.”

천왕중공업 LA지사장 안평철이다.

“아카데미 쪽으로 넘기죠. 일억 달러를 달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임원들 모두가 아카데미로 방향을 틀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한국에서 직접 권악수를 수행해 온 배웅대만이 아무 말이 없었다.

말이 상무이사이지 배웅대는 권악수의 최 측근이다.

권악수는 소파에 주저 앉더니 입을 꼭 다문 채 뭔가 생각하는 듯 했다.

지켜보던 임원들 모두 숨을 죽였다.

“배 상무!”

“예 사장님!”

“사막의 흑새를 좀 만나봐야 겠어요. 자리 한 번 마련해봐요.”

“만약에 자리가 성사된다면 우리가 카이로로 날아가야 할 지도 모릅니다.”

“못 갈 건 또 뭐요.”

“알겠습니다.”

배웅대가 핸드폰을 들고 안쪽 회의실로 들어갔다.

조용한 곳에서 통화를 하려는 것이다.

“어떤 놈인지 쌍판이나 한 번 보고 싶군. 한국 놈이라고 했던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아시아계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안평철이 대답했다.

“우리나라 출신 용병이 많소?”

“외무부에 문의를 해봤는데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단지 프랑스 외인부대 복무중이거나 제대한 사람은 있습니다.”

그때 안쪽 회의실 문이 열리고 통화를 마친 듯 배웅대가 나왔다.

“일단 카이로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카이로 지사장이 사막의 흑새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지만 오겠다면 접촉 가능하도록 하겠답니다.”

“연락도 되지 않는데 카이로에 가서 뭘 한단 말입니까? 잘못하면 헛걸음 할 수도 있잖습니까?”

안평철이 눈썹을 모았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러면서 권악수의 눈치를 보았다.

“갑시다. 겸사겸사 해서 대책본부가 차려진 카이로 사무실에도 가보고.”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집트 정국이 어느정도 안정 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테러가 일어나고 있고, 이번 사건을 일으킨 무자헤딘의 활동지역이기도 한데.”

한 임원이 눈을 빛냈다.

그러자 안평철이 가세한다.

“칠성건설 곽지웅 대표 사건에서 보듯 한국 기업인들은 그 지역 테러조직에게는 가장 확실한 달러입니다.”

작년 이라크 재건에 뛰어들었던 칠성건설 곽지웅 대표가 바그다드에서 납치되어 몸 값 500만 달러를 지불하고 풀려난 적이 있었다.

“그 자를 만난다고 해서 원활하게 해결이 된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거듭된 안평철의 카이로 방문 위험설에 배웅대의 뜻을 묻는다.

“배 상무 생각은 어떻습니까?”

배웅대는 가만 숨을 내쉬었다.

“이래저래 한 번 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위험하긴 하지만 대책본부를 찾으면 직원들 사기 진작도 되고 국내 언론에도 플러스적인 기사가 실릴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을 대비해 다인코프에 경호원 몇 명 부탁하죠.”

“그래요.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이오. 나도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위험한 걸 알면서도 뛰어들어야 할 땐 뛰어 들어야죠. 그렇게 합시다.”

권악수는 주먹을 불끈 쥐며 각오를 다졌다.

사내는 두 발의 위치를 정확히 잡았다.

보폭과 발의 각도는 총검술에서의 차려 총 자세와 비슷했고 상체를 가볍게 숙인다.

밑으로 내려진 총을 느릿하게 올린다.

광대뼈와 어깨에 개머리판을 올려 고정시키더니 천천히 숨을 내쉰다.

“풀(Pull)”

사내의 입에서 짤막한 신호가 터져 나왔고 사대(총을 든 사수가 서 있는 곳)에서 20여미터 정도 떨어진 트렌치(trench:표적을 날리는 발사장치가 있는 도랑)에서 쉭 하는 소리가 들리며 두 개의 붉은 접시가 시속 90킬로의 속도로 날아갔다.

타아앙!

탕!

총성이 울리며 두 개의 접시가 부서졌다.

철컥!

총을 꺾어 탄피를 꺼낸 사내는 귀마개를 벗었다.

스물다섯 발을 쐈고 단 한 발도 놓치지 않는 사내의 사격 솜씨에 클레이 사격장 관리인이 엄지 손가락을 곧추 세웠다.

올림픽 출전을 해도 메달이 어렵지 않다는 극찬을 하는 주인을 보며 사내는 빙긋 웃는다.

저격수에게 클레이 사격은 그다지 좋은 훈련이 아니다.

자칫 저격수의 자세를 잃을 수도 있었으나 지나가던 길에 간판을 보고 들어온 것이다.

오민철과 나카야마와 비렌드라는 사대 뒤 사무실 유리창으로 권총수의 사격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분 그다지 불편해 보이지는 않지?”

나카야마가 말했다.

오민철이 고개를 끄덕인다.

“총수 머릿속 어떤 문제가 풀리지 않는거야. 그래서 클레이 사격을 하면서 정리를 해보려는 것 같은데?”

“어떤 문제?”

나카야마가 물었다.

“천왕그룹 사건이겠지 뭐.”

“민철 솔직하게 말해봐. 너 만약 일억 달러주면 이번 일 할거야?”

나카야마의 눈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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