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1화: 운명의 소용돌이(2)
그러더니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를 스윽 훑는다.
“녀석들, 20억은 넘을 것 같은데.”
“엄청 모았군.”
“거의 안 썼잖아.”
비렌드라와 나카야마가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야 쪽발아 모가지 걸고 번 돈인데 어떻게 쓰냐? 너도 많이 챙겼지? 말해봐?”
나카야마는 고개를 갸웃 했다.
“이번에 오사카에 사 놓은 아파트가 많이 올랐더라고.”
“그러니까 얼마야 임마?”
“3억.”
“3억?”
오민철이 그것 밖에 안 되냐는 듯 물었다.
“엔화로 삼억 엔.”
“으헉!”
오민철이 화들짝 놀란다. 한화로 대략 30억원이다.
“내가 너보다 더 열심히 했고 연봉도 더 높았는데 어떻게 된거야.”
“오사카 아파트가 많이 올랐다고 했잖아. 1억 오천만엔 주고 샀는데 지금 3억엔이 조금 넘어.”
“한국이나 일본이나 역시 돈은 부동산에 박아야 돼.”
오민철이 이마를 찡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눈 형은?”
비렌드라는 빙긋 웃었고 권총수가 대신 대답했다.
“학교 다섯 개.”
“세 곳 아냐?”
“형, 신문 좀 봐. 얼마전 미국 언론에 눈 형이 네팔에 학교지어준 일 크게 나왔어.”
“네팔이 제아무리 물가가 저렴하다고 해도 학교 다섯 곳을 지어 줬으면 주머니에 남는 것 없겠는데?”
오민철이 물었다.
비렌드라는 여전히 웃기만 할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총수 넌 많이 모았지?”
“캡틴도 별것 없어?”
나카야마가 말했다.
“왜 별것 없어. 우리 중 연봉이 제일 많은데?”
“가톨릭 재단에 기부 많이 했을 걸.”
“뭐라고? 성당에 기부? 야 임마. 그런 곳에 기부를 왜 해?”
지이잉!
그때 탁자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권총수는 버홀터의 이름이 찍힌 액정을 보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내일 보스가 온다는군?”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보스는 메몰라 회장이다.
“어떤가? 내일 시간 좀 내는 것이 말이야.”
“회장님이 오는데 당연히 만들어야죠. 몇 시 비행기입니까?”
권총수는 잠시 버홀터의 얘기를 들고 나서 전화기를 내렸다.
“오야붕 온다고?”
나카야마가 물었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캔 맥주를 비웠다.
평소와 다름없이 옥상에 앉아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솟구쳐 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극양의 기운을 들이 마신다.
더 이상 신체에 어떤 변화나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군가 운기조식 중인 권총수를 공격했다간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호신강기가 온 몸을 겹겹이 쌓고 있는 것이다.
스으으!
권총수의 몸이 떠올랐다.
특별한 내공의 경지는 아니다.
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르면 운기중 강력한 기파의 발생으로 몸이 떠오른다.
내공 수위는 반박귀진을 넘어 등봉조극(登峰造極: 산봉우리에 올라 극을 이룬다)에 들어서고 있었다.
결가부좌한 채 한 자 가까운 높이로 떠있는 권총수의 모습은 고결해 보이기까지 했다.
“총수 재벌 되는 건 시간 문제다.”
운기조식 하는 광경을 세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저렇게 알아서 떠오르는 걸 강호 용어로 부운등공이라고 하지. 내공을 운용해 뜨는 것과 저렇게 운기 중 떠오르는 건 차원이 달라.”
“캡틴의 내공이 또 올랐다는 거야?”
나카야마가 물었다.
“내공이 오르다니? 내공이 물가냐 오르고 내리게, 쪽발아 강호에서는 내공이 올랐다고 하지 않고 증진 했다고 쓴다. 기억해라.”
“음 알았어. 조센징!”
오민철이 노려보자 나카야마는 모른 체 고개를 돌리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런데 총수가 재벌되는 것이 시간문제라니 무슨 말이야?”
오민철이 나카야마를 향해 강하게 눈을 흘겼다.
“멍청한 놈아, 아직은 호신강기로 총알을 막지는 못하지만 저런 식으로 쑥쏙 성장하면 언젠가는 금강불괴가 될 것 아냐. 그때가 되면 누가 총수를 죽여? 거기다 병법에도 일가견이 있겠다. 리더십도 예술이지.”
비렌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총수가 보안회사를 창업해도 될거야.”
“창업?”
나카야마 눈이 커졌다.
“캡틴이 창업을 하면 우린 뭐가 되는 거지.”
“쪽바리 넌 사무실 경비가 딱이다.”
“조센징 넌?”
“난 부회장이지 임마. 총수와 나의 우정이 얼마나 두텁고 질긴데 부회장 자리 하나 안주겠냐. 한국의 우정은 닛뽄의 우정과 질이 다르다.”
피식!
이미 깨어난 권총수는 오민철의 말에 빙긋 웃었다.
벤츠와 포드 익스플로러가 움직인다.
포드 익스플로러에는 M4를 든 무장용병 넷이 타고 있었다.
“얘기 꺼내 봤나?”
뒷좌석에 앉은 다인코프의 메몰라 회장이 물었는데 그 옆으로 변호사 윈스턴이 앉아 있었다.
조수석의 버홀터는 반쯤 상체를 틀어 조심스런 표정이다.
“예!”
“뭐라던가?”
“계약 날짜가 얼마남지 않았다면서 불편한 기색을 보이더군요.”
“캡틴이?”
“캡틴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비렌드라라는 친구 있지? 거 뭔가 네팔 구르카족 출신이라고 했나?”
“아, 예.”
“자네가 보기엔 그 친구 어때?”
버홀터는 멈칫했다.
무슨 생각으로 던지는 질문인지 간파하기 위해 메몰라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가벼운 친구는 아닙니다. 포탈라궁 승려 출신으로 매우 냉철합니다.”
“난 이상하게 그 친구가 마음에 들더군. 말없이 회사 일에 적극적이면서 무리수를 두지 않아.”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는 건 연봉가지고 회사와 크게 맞서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력 있는 용병들은 까다롭다.
회사는 한 푼이라도 적게 주려하고 그들은 더 받아내려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다.
심지어 감정싸움이 깊어져 등을 돌리는 일도 허다했다.
‘그것이군!’
머릿속으로 섬광 한 줄기가 지나간다.
메몰라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
권총수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끔은 메몰라의 의견에 반기를 들 때도 있었다.
지금 비렌드라를 권총수의 대타로 내세우기 위해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비렌드라도 평범한 사내는 아니다.
구르카족 출신 특유의 용맹함과 포탈라궁 승려들에게서 배운 강호의 무공도 평범한 수준은 넘는다.
언제까지 권총수를 다인코프를 대표하는 용병으로 내세울 수만은 없다고 본 모양이었다.
버홀터는 반듯하게 앉아 앞을 바라보았다.
메몰라는 장사꾼이다.
권총수로 인해 얻은 경제적 이득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인코프가 아카데미를 제치고 시장매출 1위에 올라선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권총수다.
다인코프 주가는 연일 강세다.
이미 시가총액이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민간보안업체의 시가총액이 1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일반 기업의 천억달러 가치라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100억 달러의 보안업체와 천억 달러 민간 기업의 가치를 평행선에 올려놓을 수는 없지만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다.
권총수로 인해 보안업계 메이저회사가 되었는데 이제 그가 눈엣가시가 되는 모양이다.
비렌드라는 비록 불가에 관한 것이지만 공부도 상당히 깊다고 들었다.
권총수라는 거물 때문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전략 전술에 해박할 뿐 아니라 움직이는 선도 굵다.
또한 누구의 계산속에 움직이는 가벼운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메몰라는 한 가지를 모르고 있었다.
결코 권총수와 척을 진다거나 등을 돌릴 인물이 아니다.
권총수 역시도 지금까지 누군가 자신을 배신할 만큼 주위에 인심을 잃지 않고 있다.
메몰라가 비렌드라를 키워 권총수와 경쟁구도로 나가려고 한다면 틀렸다.
포기하는 것이 그나마 시장 1위 자리를 유지하는 지름길이다.
카이로 사무실을 들어선 메몰라는 움찔했다.
사무실 직원 말고는 권총수 혼자 있었기 때문이었다.
“캡틴 혼자 나온 건가?”
버홀터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만세를 부르며 꽃다발을 건네주는 텔레비전식의 환영은 아니어도 권총수를 포함한 알파 팀 지휘관급들은 얼굴을 보이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나와. 어딘 어디야. 사무실이지.”
눈치 빠른 권총수다.
재빨리 전화기에 대고 명령하듯 말했다.
“그런다고 불러내는가. 난 그냥.”
버홀터가 멋쩍은 표정을 했다.
권총수 얼굴이 조금 화난 듯 보였고 목소리도 약간 쌀쌀했다.
마치 ‘내가 뭐랬냐. 같이 나가자고 할 때 나왔으면 이런 일 없잖아’ 하면서 통화하는 목소리에 짜증이 있었다.
좋은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눠도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닌데 권총수가 인상을 찌푸렸으므로 메몰라까지 당황한 표정이다.
그러면서 버홀터를 싸늘한 시선으로 보았는데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했느냐는 질책이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권총수는 어느새 표정을 바꿔 미소를 지었다.
“반갑군.”
두 사람은 굳게 악수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변호사님도 오랜 만이죠.”
윈스턴이 꾸벅 했다.
권총수는 작은 서류 가방을 들고 있는 변호사 윈스턴을 슬며시 살피더니 가볍게 웃는다.
변호사를 데려온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직원중 현지인 한 명이 재빨리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고 버홀터는 재빨리 애연가인 둘을 위해 재떨이를 가져다 놓았다.
“지사장님도 앉으시죠.”
“아닐세. 난 파티마를 도와 커피를 준비하겠네.”
버홀터는 현지 여인 파티마와 같이 볶아 놓은 원두를 갈기 시작했다.
딸칵!
메몰라가 담배를 물자 권총수가 재빨리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여 주었다.
“고맙네!”
메몰라가 피우는 담배는 팔리아멘트였다.
권총수가 말보로 레드만 피우듯 메몰라 역시 팔리아멘트만 피운다.
언젠가 군 시절부터 지금까지 팔리아멘트가 아닌 다른 담배를 입에 대어보지 않았다고 말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담배처럼 바뀌지 않은 기호식품도 없다.
커피나 술은 그때그때에 따라 바꾸기도 하지만 담배는 거의 악착같은 수준으로 피우던 것만 고집한다.
덜컹!
사무실 문이 열리고 오민철을 비롯한 세 사람이 들어섰다.
“어서들 오게!”
메몰라가 세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캡틴에게 맡겼기 때문에 우린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카야마가 점잖게 말했다.
메몰라는 가만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권총수에게 모든 의견을 일임했다는 건 자신의 입장에서는 굉장한 부담스런 얘기였다.
여럿이 협상을 하면 각개 격파도 가능하고 서로 이간질을 시킬 수도 있지만 이렇게 창구를 단일화 해버리면 일이 순조롭지는 못할 것이다.
슥!
돌연 뭔가를 발견한 듯 메몰라가 눈을 좁혔다.
작위적인 냄새가 짙게 풍긴다.
모든 걸 권총수에게 일임했기 때문에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일부러 분위기를 냉랭하게 조성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다.
회의 분위기가 차가워져 좋은 결론을 내기는 어렵다.
“커피 드시죠.”
버홀터가 커피를 각자 앞에 놓았다.
“땡큐!”
“아리가또네.”
오민철과 나카야마가 빙긋 웃었다.
버홀터는 자신의 잔을 들고 권총수 일행 맞은편에 앉았다.
왼쪽 솔로석에 앉은 메몰라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향이 좋다고 칭찬했다.
“버홀터로부터 대략의 얘기를 들었을 것일세. 이번 한국 천왕중공업 유조선 나포사건이 국제적 골칫거리로 등장했네. 전투기만 뜨지 않았을 뿐 이란과 한국정부는 이미 전쟁에 돌입했네. 오늘 아침 뉴스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이란 정부에서 한국 대사관에게 72시간 안에 전원철수 할 것을 최후 통첩했네. 72시간이 지나면 그때부터는 신변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거지.”
“한국은 어떻습니까?”
오민철이 물었다.
“서울은 아직 조용하더군. 이란의 공격적인 행동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제스처 아니겠나. 어쨌든 남의 나라 영토를 무장군인들이 몰래 들어갔다는 건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는 일이지.”
“이상하게 이란은 마음에 안 들어.”
오민철이 투덜거리며 권총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