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09화 (309/651)

제309화: 죽음의 계절(2)

“어이쿠!”

“움직이면 죽어.”

한바탕 소란이 조금씩 잦아든다.

탁!

권총수는 방문을 닫고 불을 켰다.

얼굴이 낯익은 사내가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슥!

권총수는 주머니에서 로얄 카드를 꺼내 뒤지더니 한 장을 쥐고 침대 위 사내와 얼굴을 비교했다.

“마제드 압둘라?”

“용병이로군?”

그는 한 번에 알아보았다.

“맞습니다. 사막의 흑새라고 부릅니다. 내일 아침 CIA에서 당신을 데리러 올 것입니다.”

압둘라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난 당신과 어떤 감정도 없습니다. 난 다인코프 소속 용병으로서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아는 사람은 두 명 뿐이오. 한 명은 아내의 동생이고 다른 한 명은 오랫동안 나와 같이 투쟁해온 카림.”

권총수는 숨기지 않기로 했다.

지금쯤 카림은 가족들과 만나 카이로 주재 미국 대사관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매우 미안하다고 했소. 원망을 하고 미워해도 당신을 존경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배신자들은 하나같이 달콤한 말을 남기지.”

압둘라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은 사막의 흑새를 두려워 했고, 모든 이슬람 단체가 나서서 당신을 잡으려 하지만 난 그 반대였소. 한 번 만나보고 싶었소. 당신이란 사람은 분명 우리와 대적하는 사람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깊은 맛이 있다고 들었으니까.”

“과찬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안전하겠지요?”

“안전을 약속합니다.”

“사막의 흑새가 거짓말을 한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소.”

“물론입니다.”

“알라후 아크바르.”

주르륵!

갑자기 압둘라 입가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휙!

번개처럼 손을 뻗어 아혈을 짚고 재빨리 다가갔다.

압둘라 입가에 미소가 걸렸는데 입술이 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떨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압둘라의 권총수를 바라보는 눈에는 힘이 있었다.

그건 가족들을 지켜주겠다는 조금 전의 약속을 꼭 지켜달라는 부탁이었다.

‘아몬드 냄새, 시안화 칼륨이로군’

이른바 청산가리다.

캡슐로 된 청산가리를 보철 하듯 어금니 안쪽에 끼고 있다 위기 때 깨물어 자살한다.

과거에는 주로 특수 공작원들이 즐겨 사용했지만 잠시 주춤했다가 근래에는 강경테러조직의 인물들이 자살용으로 갖고 다니면서 다시 청산가리의 독성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독성물질로 50mg만 마셔도 끝난다.

안방이 조용한 것이 이상했던 듯 슬며시 들어선 오민철이 기겁했다.

“어떻게 된거야?”

“보다시피.”

오민철이 콧구멍을 넓혔다 줄였다 하며 냄새를 맡는다.

“뭐야. 청산가리 냄새 아냐.”

권총수는 조용히 압둘라를 눕혔다.

그리고 그의 소지품과 방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맥보란은 사무실 창문을 열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서 날씨는 더욱 더워지고 있었다.

따르릉!

사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잠시 울리는 전화기를 바라보던 맥보란은 천천히 걸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맥보란은 수화기를 뺨에 붙이고 한참을 듣기만 하더니 가만 내려놓는다.

걸려온 전화 대부분이 한국 특수부대의 엔터프라이즈호 공격 실패에 대해 묻고 있었다.

평소 안면이 있다는 이유로 자신에게만 조금 귀띔해줄 수 없느냐는 읍소에서부터 은근슬쩍 유도질문까지 하기도 했다.

사무실을 걸어 나온 맥보란은 휴게실로 들어갔다.

이미 그곳에는 직원들 셋이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알자지라 방송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은 이란의 최남단 항구 차바하르가 나오고 있었는데 홍수에 밀려온 쓰레기처럼 많은 부유물들이 바다를 메우고 있었다.

그중 화면이 모자이크 처리하듯 흐릿해진 부분이 여기저기 나타났는데 사람의 시신이었다.

기자로 보이는 남자가 차바하르 부둣가에서 목청을 높여 떠들었고 화면은 계속해서 바다를 비춘다.

이란 경비정들이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는데, 한참 뉴스를 보던 맥보란은 밖으로 나와 버렸다.

딸칵!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엄청난 사건이다.

불현 듯 과거의 한 사건이 떠오른다.

2002년 10월 23일~26일까지 러시아 모스크바의 오페라 극장을 체첸 반군이 점거하여 700여명의 인질을 잡았다.

러시아의 특수부대는 신경가스를 투입하며 진입했지만 피해가 너무 컸다.

무려 140여명에 해당하는 인질이 숨진 것이다.

생명의 존엄이란 전혀 고려치 않은 무자비한 진압에 애꿎은 시민들만 죽어 나간 사건이다.

더 이상 이런 말도 안 되는 진압작전은 없어야 한다면서 국제사회는 러시아 정부를 맹비난했다.

물론 그때와는 다르다.

민간인 대신 군인들 모두가 전사했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국인이 죽는 건 필연이다.

단지 함정에 빠져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더욱이 한국의 독자적 작전이 아니라 미국정부와 협조 아래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무겁다.

겉으로는 한국의 실패지만 더 들여다보면 미국이 패배한 것이다.

담배를 절반쯤 피웠을 때 승용차가 주차장에 멈추더니 세 명의 사내들이 내렸다.

그들은 맥보란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냥 여기서 듣지 뭐.”

“뉴스 그대로입니다. 한국의 특수부대가 작전에 들어갔다가 제대로 덫에 걸린 모양입니다.”

“생존자는?”

“뉴스와 일치합니다.”

뉴스에서는 생존자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인가. 아덴만에서는 완벽하게 해적들 손에서 선원들을 구출해 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누구도 생각 못한 역습이었죠. 조타실에 그런 엄청난 폭약을 설치 해놓고 사람이 있는 것처럼 위장을 했으니.”

속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때였다. 발자국 소리가 나는 듯 하더니 카이로주재 부대사가 나타났다.

“맥!”

부대사 마이클이다.

맥보란은 담배를 모래 재떨이에 넣고 걸어갔다.

“약간의 문제가 있나 보네.”

“어떤 문제?”

“우린 서둘지 말자고 했고, 한국 정부는 고개를 저었나봐.”

“이유가 뭡니까?”

“한 달 후에 보궐선거가 있는 모양이야. 자치단체장은 제외하더라도 국회의석 아홉 석이 걸렸다는데 결코 가벼운 선거는 아니지. 그중 일곱 석만 얻으면 여당이 과반을 넘기면서 국회 주도권을 잡고 그동안 야당 반대로 막혔던 법안들을 해결한 계획이었나보네.”

맥보란은 길게 숨을 내 쉬었다.

어디가나 정치가 문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정치 중독증이다.

정치 중독은 마약보다 무서워 한번 빠지면 좀체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들은 걸핏 하면 국민을 내세우고 여론을 말하지만 오로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에 취해 있다.

직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괜히 할 말 없으니 국민을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보나마나 불리한 여론을 이번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어 판을 뒤집어 보려고 했을 것이다.

아덴만에서 한 번 당했다.

물론 당시는 해적들이었고 이번 상대는 무자헤딘이다.

무자헤딘은 소말리아 해적들이 아니다.

그들은 아주 오래된 테러조직이며 미국과 수십 년을 싸웠지만 전혀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요원들이다.

한 마디로 어느 특수부대 못지 않다.

더구나 이번에 엔터프라이즈호가 정박해 있는 곳은 이란의 차바하르 항구로 국제법상 이란 영토였다.

이란과 무자헤딘의 접촉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이고 협조적인 이란 땅이므로 누군가 나타나 배를 훔쳐 갈일도 없다.

그러므로 배에 머물며 지킬 일이 없다.

지키고 있을 필요도 없는 빈 배에 무슨 작전이란 말인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고 숙고했다면 무리한 작전이라는 걸 깨달았을 텐데 그토록 선거가 중요했을까.

‘그놈의 정치가들이란’

미국도 다르지 않다.

일생에 보탬이 안 되는 집단이다.

“한국 정부 입장은 나왔습니까?”

“정부를 대표하는 공식 대변인도 아닌 외교부 차관이 출근길 기자들의 질문에 확인된바 없다고 대답한 것이 전부일세.”

부대사 마이클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맥보란은 아랫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중얼 거렸다.

‘애꿎은 희생이야’

그때 반팔 와이셔츠 사내가 다가왔다.

“DNA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압둘라가 맞습니다.”

그러면서 서류를 내밀었다.

압둘라의 시신은 옮겨졌고 곧바로 유전자 감식에 들어간 것이다.

보고한 사내가 돌아갔고 잠시 동안 보고서를 보던 맥보란이 갑자기 눈을 빛냈다.

그러더니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담스 국장과 권총수가 휴게소에서 만나 화해의 자리를 가졌다.

냉랭했던 자리가 부드럽게 종료되고 서로가 각자 갈 길을 향해 돌아설 때 권총수가 나직하게 불렀다.

“서기관님!”

맥보란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은근히 긴장했다.

“인디언 사회에서 화해의 자리에는 반드시 선물을 주는 전통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선물?”

“그냥 돌아서는 것도 조금 그렇습니다. 우리 회사 주식 좀 사 두세요”

그만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미국의 아내에게 다인코프 주식을 매수하도록 했는데 압둘라 사건 해결로 지금 주가가 폭등하고 있었다.

맥보란의 어두운 얼굴이 오랜만에 훤해졌다.

돈은 행복이고 권력이라는 말을 부정하고 싶지만 자신의 감정변화를 보면 아니라고는 못할 것 같았다.

‘길은 하나뿐이다’

맥보란은 이번 엔터프라이즈호 사건 해결은 오직 한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생각 했다.

* * *

대한민국 국방부 지하 벙커에서는 연일 비상대책 회의가 열렸다.

군 관계자들과 외교부장관, 그리고 청와대와 국정원 고위인물들까지 모였다.

오늘도 변함없이 이번 사건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 논의 했지만 제자리만 빙빙 돌고 있었다.

‘대통령 특사를 보내 이란정부에 유감을 표하는 것 말고는 없다’

그 이상의 대책이라는 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정부가 잘못을 했지만 국가 간의 일에 무조건 잘못했다는 사과하는 건 바람직 하지는 않았다.

“개자식들!”

국방부장관이 갑자기 욕설을 쏟아냈다.

모든 시선이 느닷없는 욕설에 고개를 돌렸다.

“워싱턴 말이오. 자기들이 나중 외교문제로 비화하면 전방에 나서겠다고 약속 했잖습니까. 그런데 막상 일이 터지니까 벙어리가 됐는지 말이 없군.”

그랬다.

한국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작전이었다.

미국과 상의할 수밖에 없고 양측은 고심 끝에 군사작전에 합의했다.

한국군이 움직이지만 추후 문제가 생기면 미국이 지원사격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사건 후 철저히 침묵하고 있었다.

사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측에서는 이번 작전을 한국의 단독으로 볼 수 없다는 외교부 논평을 냈다.

미국이 배후에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더욱 조용했다.

“방법은 한 가지 뿐입니다.”

청와대 안보실장 천규석이 입을 열었다.

“우리 국민이 인질로 있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직접 이란을 방문하겠습니다.”

“청와대 안보실장이 가면 무조건 대통령 특사로 판단할 것입니다. 차라리 외교부 장관인 내가 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외교부장관 강세창이 말했다.

“숙일 때는 어린 아이에게도 숙여야 합니다. 제가 대통령님을 설득해서 이란 최고지도자에게 무릎을 꿇죠.”

천규석의 눈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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