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8화: 죽음의 계절(1)
카림은 나동그라졌다.
“어이 카림,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좋아. 말 같게 해주지.”
퍽퍽!
오민철이 연거푸 넘어진 카림의 옆구리를 군홧발로 걷어찼다.
“흐흐흐!”
카림은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보고 누워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 이런 미친 놈.”
오민철이 군홧발로 다시 차려고 할 때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돌리자 권총수가 담배를 물고 서 있다.
“오늘은 제발 말리지 마.”
권총수의 손길을 뿌리친 오민철은 누워 있는 카림을 짓밟기 시작했다.
카림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다.
오민철의 폭력은 무자비했다.
“저러다 죽지.”
나카야마가 중얼 거렸다.
오민철은 초주검이 된 카림을 향해 다시 사진을 내밀었다.
“어딨어? 이 자식 어딨냐고?”
“날 죽여주시오.”
오민철의 눈이 확 커지더니 옆에 있는 커다란 돌멩이를 쥐고 내려쳤다.
퍼억!
화지만 돌멩이는 카림을 찍지 못하고 옆으로 방향을 틀어 떨어졌다.
오민철은 권총수가 무형의 강기를 발출하여 자신을 방해 했다는 걸 알고 인상을 썼다.
“말리지 말라니까.”
“형 그만하자.”
그러면서 귓가로 전음이 파고든다.
‘팀원들이 보고 있어. 그러다 저 놈 입을 열지 못하면 무슨 개망신이야.’
오민철은 멈칫했다.
옳은 말이다.
지휘관이라고 해서 밑의 사병들이 모두 말을 잘 듣는 건 아니다.
그 계급에 맡는 격과 품위가 갖춰질 때 권위가 나온다.
오민철은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더니 한마디 뱉었다.
“돌아가서 한 번 제대로 붙어 보자.”
이어 오민철은 부대 복귀를 명령했다.
팀원들은 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오민철은 들것을 만들어 비사카의 시신을 옮기도록 했고 허벅지 관통상을 입은 마이튼은 동료들의 부축을 받았다.
권총수는 카림을 데리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좀 씻지.”
카림이 멈칫 돌아본다.
계곡으로 데리고 내려오자 자신을 조용히 처리한 뒤 급류에 버리려는 줄 알았다.
“얼굴이 그게 뭐요?”
권총수가 빙긋 웃었다.
카림은 주춤 거리며 쭈그리고 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급류에 얼굴의 피를 씻었다.
헝클어진 복장까지 대충 다듬었을 때 불쑥 담배 한 개비가 눈앞으로 나타났다.
권총수는 내 밀고 카림은 바라보았다.
빨리 받으라는 말도 없고 부드러운 눈빛만 던졌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마치 서로 자존심을 놓고 밀고 당기기라도 하듯 서로가 버틴다.
스윽!
그러나 끝내 담배를 쥔 사람은 카림이었다.
권총수는 지포 라이터로 불을 켜서 붙여주고 자신도 붙였다.
계곡을 흐르는 급류 소리가 귓가를 윙윙 거렸고 두 사람은 흘러가는 물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입을 여는 사람도 없다.
카림은 회색빛 흙탕물을 내려다보았는데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권총수가 물었다.
“결혼 했습니까?”
“물론이죠.”
“그럼 슬하에?”
“아들 한 명이 있습니다. 올해 아홉 살인데 학교를 다니죠. 카이로에서 말이죠.”
카이로라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왜 다합에서 다니지 않고 카이로에서?”
“고향이 카이로입니다.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냈죠.”
권총수는 그러느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계곡물로 던져 버렸다.
“가시죠.”
권총수는 앞장을 서서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카림이 놀란 표정을 했는데 권총수가 자신을 뒤에 두고 몸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비록 무장이 해제되었지만 주위 지천으로 널린 게 돌멩이고 급류까지 흐른다.
돌멩이로 뒤통수를 맞아 온전할 사람은 절대 없다.
“으음!”
카림은 무겁게 한숨을 쉬며 뒤따라 언덕을 올라 평평한 길로 올라섰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알파 팀원들은 앞서 간 듯 보이지 않는다.
“마제드 압둘라는 다합에 있소.”
흠칫!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무차별 폭력을 휘두른 오민철을 물러나게 만들고, 계곡물에 얼굴을 씻을 수 있도록 배려한 뒤 담배까지 권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않고 등을 돌린 건 사실 치밀한 계산속에 나온 행동이었다.
관심을 오히려 주지 않으면 상대가 반응한다는 오랜 전장의 경험이었다.
“대신 나 좀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말해보시죠?”
“우리 가족을 미국으로 보내 줄 수 있겠소?”
미국이라는 말에 권총수의 눈앞으로 한 사내가 떠올랐다.
마수드였다.
그는 이미 미국에 도착했고 CIA의 도움을 받아 거주할 주택과 직업까지 소개 받았다고 연락이 왔었다.
권총수는 곧장 핸드폰을 눌렀다.
몇 번 신호가 간 뒤 낯익은 음성이 흘러나왔는데 맥보란이었다.
“마제드 압둘라 체포는 시간문제인 것 같습니다. 대신 우릴 도와준 부하로부터 조건이 왔습니다.”
“뭡니까?”
“미국행 비행기 티켓입니다. 아내와 아들까지 포함해 세 명입니다. 괜찮겠습니까?”
“정말로 마제드 압둘라를 잡을 수 있단 말입니까?”
맥보란이 가능하냐고 묻는다. 비행기 티켓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결정적인 공헌자입니다. 카림이라고 로얄 카드에도 있더군요.”
“카림, 그가 압둘라를 배신했군요.”
다행히 핸드폰이기 때문에 압둘라는 듣지 못했으나 권총수는 뜨끔했다.
누구든 자신이 배신자로 낙인찍혀 좋아할 사람은 없다.
몇 마디 통화를 더 끝내고 핸드폰을 내린 권총수가 말했다.
“압둘라를 사살하거나 체포하면 곧장 카이로로 이동하시오. 미국 대사관을 찾아가면 모든 것이 순조로워 질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을 보내 준단 말입니까?”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흥분한 것이다.
이슬람의 가장 큰 적은 이교도, 그중 미국을 반드시 없애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테러조직을 탈출하거나 등을 돌린 사람들 거의가 미국행을 원한다고 한다.
물론 미국이야 말로 무슬림들이 입국하는데 가장 까다로운 국가이자 이슬람 테러조직에 몸을 담았다가 전향한 사람들에 대한 신변안전은 거의 완벽했다.
“알라후...”
카림은 알라후 아크바르, '신은 위대하다'고 중얼거리려다 멈췄다.
자신의 미국행을 과연 알라신은 옳은 일이라고 여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토록 북적이던 사람들이 마치 썰물 빠지듯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낮의 다합은 찬란하지만 밤은 총소리가 지배한다.
위험하기 때문에 저녁 7시만 되면 주민이건 관광객이건 무조건 집과 숙소로 돌아가 버린다.
두 대의 차량이 다합 시내에 나타났다.
한 대는 포드 익스플로러였고 다른 한 대는 랭글러였다.
두 대의 차량은 다합 중심가를 빠져 나가 한적한 외곽에 멈췄다.
시내와 달리 외곽의 불빛은 드문드문 했는데 차 문이 열리고 내린 사람들은 모두가 다인코프 용병들이었다.
권총수를 포함해 오민철과 비렌드라 나카야마, 그리고 세 명의 용병이 더 내렸다.
일곱 명 모두 머리에 4안식 야시경을 썼는데 이마 위로 꺾어 올려놓았다.
“저기 집 보이지. 저곳이야.”
낮에 이미 오민철과 나카야마가 정찰을 다녀왔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집안에 대략 7,8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여자들도 있다는 거야.”
“압둘라 아내가 둘이라고 했지?”
권총수가 물었다.
“아들 두 명.”
이번엔 나카야마가 말했다.
“그렇다면 모두 압둘라까지 포함해 다섯이고, 두 명은 경호원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겠군.”
권총수는 모두를 한 번 살피며 말했다.
“안전장치 풀고, 야시경 착안.”
탁!
타타타!
M4 안전장치가 물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마 위로 올린 야시경을 눈에 썼다.
“내가 잠입해 통로를 개척하니까 대기하도록, 출발.”
일행은 낮은 자세로 불 꺼진 일 층 단독주택을 향해 다가갔다.
CCTV 따위는 없다.
조그만 해양도시 외곽에 사는 사람이 CCTV를 설치하면 오히려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20여 미터를 남기고 걸음을 멈췄다.
팀원들은 근처에 있는 무화과와 아카시아 나무 아래 몸을 숨겼고 권총수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잠깐 보였다가 눈앞에서 없어지는 권총수의 모습을 보는 세 명의 용병들은 눈을 깜빡거렸다.
마치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권총수의 몸이 떠올랐다.
담벼락은 3미터 정도였는데 가볍게 넘어 들어가 마당에 착지했다.
후각과 청각을 이용해 집안을 훑었다.
화약 냄새는 일체 맡아지지 않는 것이 부비트랩이나 지뢰 따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빈 라덴을 사살한 씰팀의 대원에게 어느 기자가 물었다.
‘빈 라덴 같은 인물이 집안에 어떤 위험물, 예를 들면 미군의 공격을 대비한 부비트랩 하나 설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그러자 미군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부비트랩은 적에게도 위협이지만 잘못하면 아군까지 다치게 하는 위험한 폭탄입니다. 특히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더욱 설치 할 수가 없죠. 낮에는 거두고 야간에만 설치한다고 해도 어느 한순간 실수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적을 잡으려다 내가 잡히는 수가 허다합니다.’
부비트랩 따위의 위험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만약을 대비해 안력을 돋우었다.
부비트랩의 생명은 인계철선이다.
대문 앞을 집중적으로 살폈고 두 번째로 굳게 잠긴 현관문 주위를 보았지만 위험의 징후는 없었다.
권총수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잠금장치에 오른손을 댔다.
잠시 후 잠금장치가 완전히 흘러내리고 대문이 소리 없이 열리면서 용병들이 들어섰다.
사전 계획에 따라 모두가 흩어졌고 권총수와 오민철 비렌드라 나카야마가 현관 문 앞에 섰다.
권총수의 삼매진화가 다시 한 번 펼쳐졌고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파파팍!
빨랐다.
권총수가 안방을 맡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대로 다른 세 개의 방을 들어갔다.
넓은 거실을 가로지르는데도 발자국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물론 바닥에 양탄자가 깔려 있어 군화소리를 죽여주긴 했지만 발 앞부리를 이용해 이동하는 훈련이 잘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누구도 요란하지 않았다.
작전은 조용하게 이뤄질수록 좋다.
조용한 작전일수록 폭발력은 크다.
빈 라덴을 사살할 때처럼 시끄럽게 진입 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전제가 따른다.
일부러 혼란을 야기해 잠에 빠지거나 깨어났어도 적으로 하여금 순간적인 피아구분 능력을 마비시키려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사방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불길이 솟구치고 비명소리가 들리면 정신 못 차린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고, 요란할수록 오히려 피곤할 뿐이다.
“그대로 있어요.”
“움직이면 안 됩니다.”
이미 다른 방에서는 집안 식구들이 붙잡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권총수는 방으로 들어섰다.
고개를 들어 침대를 바라보았는데 한 명의 건장한 사내가 누워 있었다.
발자국을 죽이고 다가간 권총수는 베개 아래 숨겨 있는 권총을 조심스럽게 회수했다.
우당탕!
“대가리 박아.”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사내는 눈을 떴다.
사내는 재빨리 베개 밑을 뒤졌지만 항상 있던 권총이 잡히지 않는다.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누구요?”
사내의 목소리는 의외로 침착했다.
“머리 숙이라니까!”
빠악!
살기 띤 외침이 터지고, 누군가 강한 주먹에 맞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앙!
아이들 우는 소리까지 이어지면서 거실이 소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