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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06화 (306/651)

제306화: 페르시아의 전운(1)

멀리 거대한 유조선 한 척이 섬처럼 떠 있었다.

대형화물선이나 유조선들은 근해에 떠 있다가 하역 차례가 되면 도선사의 안내를 받아 접안한다.

탁탁!

갑자기 어선의 전등이 꺼졌다.

그리고 어창의 뚜껑이 열리며 사람들이 배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전투복을 걸친 무장군인들이었다.

모두 열 명이었다.

그때까지 그물을 만지던 어부 차림의 다섯 사내도 어느새 HK-416을 쥐고 있었다.

도합 열다섯 명이다.

스스슥!

두 명의 군인이 끝이 갈고리처럼 휘어진 알미늄 사다리를 뽑아 올리더니 30미터 높이의 유조선 끝에 걸었다.

사다리를 몇 번 당겨 보더니 단단히 걸린 걸 확인하고 군인들이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소리도,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지휘관이 누군지 계급이 무엇인지는 더욱 확인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그물을 만지던 사복차림의 군인들까지 유조선으로 자취를 감췄다.

갑판은 붉은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고 한 가운데로 지름 일 미터 가까운 유도관(油道管)이 있었다.

직경 30센티 정도 되는 작은 파이프들이 용마루에 걸친 지붕의 서까래처럼 일 미터 짜리 유도관을 타고 좌우로 뻗어 있었다.

군인들은 조타실이 있는 유조선 끝으로 움직였는데 여전히 침묵이다.

2층 높이의 조타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일부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갔고 일부는 일 층 출입문 앞에 섰다.

또한 어부 복장을 한 다섯 명은 갑판에서 바다를 경계했다.

“고우!”

누군가 명령을 내렸다.

뻐억!

동시에 1,2층 출입문이 박살나며 군인들이 뛰어 들었다.

콰앙!

과가가강!

한순간 엄청난 폭음이 들리며 2층의 조타실이 통째 날아가 버렸다.

갑판에서 바다를 경계하던 다섯 명의 군인들이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 눈앞에 보이던 이 층으로 된 조타실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섯 명의 군인들은 재빨리 달려갔다.

없다.

아무도 없다.

이 층 높이의 조타실 건물도 없고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둠속 바다 위로 폭발로 날아간 조타실 잔해들이 떠 있었다.

오늘 작전에 동원된 인원은 열다섯 명이다.

자신들 다섯 만 살아남았으므로 모두 열 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다섯 명의 군인은 재빨리 타고 올라왔던 알미늄 사다리를 이용해 어선으로 내려갔다.

타고 올라갔던 사다리를 회수한 뒤 재빨리 근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생존자를 찾기 위한 것이다.

“빌어먹을!”

다섯 중 누군가가 울분 가득 찬 신음을 터뜨렸다.

오늘 작전을 위해 지난 20일 동안 똑같은 선박을 놓고 수십 차례 공격과 퇴각 훈련을 했다.

작전 시간은 10분이다.

유조선에 올라 10분 안에 모든 선원을 구출하는 시나리오였다.

20명의 선원을 구출하여 어선으로 내려오면 미리 대기하고 있던 스텔스 기능을 갖춘 고속정에 옮겨 탄다.

최대 시속 48노트(약 90킬로)로 달리면 한 시간 조금 지나 이란영해를 완전히 빠져나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두두두두!

어디부터 잘못되었나 기억을 더듬던 그때, 어둠 속에서 고속으로 모터보트가 나타나더니 총소리가 울렸다.

다섯 명의 사내들이 응전하며 미친 듯 방아쇠를 당겼고, 슉 하는 소리가 들리며 모터보트에서 RPG 두 발이 날아왔다.

쿵!

쿠쿵!

천둥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어선이 출렁거렸고 어선은 결국 쫙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조각이 되고 말았다.

조각난 배는 서서히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모터보트는 방향을 돌려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젠장’

어부 복장을 한 사내가 마지막으로 투덜 거렸다.

권총수는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엎드려 있었다.

사막색 길리슈트를 걸쳤고 회전초와 마른 메스키트 나뭇잎을 주변에 깔아 망원경으로 관찰해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한 주변색이었다.

관측수는 없다.

정규전이 아닌 이런 게릴라전에서는 저격수 단독으로 움직인다.

“사격 준비 끝”

권총수는 헤드셋을 통해 속삭였다.

“오케이.”

마을 앞으로 작은 급류가 흐르고 그 건너편에는 56번 도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급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유일한데 공격을 전개해야 할 알파부대로서는 매우 위험하고 불리한 지리적 위치에 있었다.

일단 다리에 들어서면 은폐 엄폐물이 없다.

그렇다고 그 흔한 난간도 없고 그냥 사람과 낙타를 비롯한 양떼들이 건너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의 다리였다.

미군이 보내온 정보에 의하면 다리 건너 마을에 윌리야트 시나이 조직원들이 은신해 있다고 했다.

물론 그들은 마을 사람이고 낮에는 농부이지만 밤에는 테러분자로 돌변한다.

오민철을 포함한 알파팀은 다리 근처 풀숲에서 잔뜩 웅크린 채 숨어 있었다.

“뭔가 보여?”

오민철이 헤드셋을 끌어당기며 물었다.

위험할 만한 징후가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밀 수확하는 어른들. 길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별 다른 특징은 아직 체크되지 않고 있어.”

오민철은 어금니를 물었다.

자신들의 육안과 쌍안경에도 윌리야트 시나이로 추정되거나 의심되는 테러범은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밀 수확을 하는 농부들 주위를 아무리 살펴도 소총 한 자루 보이지 않았다.

오민철은 굉장히 신중했다.

전쟁은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갈수록 은폐와 엄폐 기술이 발전하여 웬만해서는 쉽게 노출되지 않아 수색 정찰에서 이상 없다고 들어갔다가 일망타진 당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잠깐!”

오민철이 다부진 표정으로 부대 이동 명령을 내리려는데 무전기에서 권총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그래?”

“기다려!”

저격수는 전장에서 정찰병이기도 하다.

주로 높은 위치를 선점할 뿐 아니라 뛰어난 조준경이 있어 적정을 살피는데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뭔가 있어?”

“대기!”

권총수의 음성은 짧았지만 매서웠다.

뭔가 평범하지 않은 걸 발견했다는 뜻일 수도 있었기에 오민철은 긴장했다.

권총수는 총에 붙은 조준경을 떼어 내어 자신의 눈에 대고 직접 관찰했다.

마을 앞으로는 밀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고 강가를 중심으로 마을까지 포플러나무와 뽕나무, 올리브나무가 무성했다.

또한 동네 입구에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아카시아 나무가 큼지막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형, 갈대로 지붕 덮고 있는 집 보여. 아카시아 나무에서 2시 방향으로 살펴봐.”

오민철은 쌍안경을 돌려 마을 집들을 살폈다.

“보여.”

“집 맞아?”

“무슨 말이야? 집이잖아.”

쌍안경에 들어온 집은 갈대로 지붕을 덮은 시골 농가 그대로였다.

“잘 봐, 아주 자세히 봐.”

오민철은 눈에 힘을 주고 보았다.

하지만 바뀐 건 하나도 없다.

그때 퍼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재빨리 내공을 끌어 올렸다.

화악!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내공이 주입된 눈은 더욱 정밀해졌고 갈대 지붕이 들썩거렸다.

“움직이지?”

“어, 뭐지?”

“장갑차야. 장갑차를 갈대로 덮었어.”

“장갑차?”

오민철은 깜짝 놀랐다.

파아악!

거칠게 쌍안경을 들이대고 재차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장갑차로는 보이지 않았다.

“농가 좌측으로 장갑차를 바짝 붙였고 지붕과 나란히 갈대로 덮어 버린거야. 러시아 BTR-60 같은데.”

오민철은 더욱 숨울 죽이며 살폈다.

BTR은 8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기동성 좋은 장갑차로 60이전 모델은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지만 60에이어 70과 80부터는 상당한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14.5밀리 KPV기관총과 7.62밀리 RKT 기관총으로 무장되었고, 병력은 보통 13명에서 최대 16명까지 태울 수 있다.

물론 조종수와 부조종수는 제외한 숫자이다.

테러조직이 장갑차를 보유하는 일은 흔하다.

이라크에서 싸웠던 IS 경우는 탱크까지 완벽하게 운용했고 공격용 헬기도 소유했다.

이제 막 국제적으로 이름을 드러내고 있는 윌리야트 시나이에서 장갑차를 갖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진...진짜 장갑차잖아.”

오민철은 그제서야 확인했다.

“KPV 보여?”

14.5밀리 기관총으로 무지막지하다.

“응 보여, 난 집인 줄로만 알았어. 완벽하다 진짜.”

갈대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지붕 중간중간 나무 막대기를 올려 끈으로 묶어 놓는 것까지 완벽한 위장이었다.

“사람은?”

“있어. 한 놈으로 보이는데.”

더 있는지 찾아보겠다는 뜻이다.

“봤어!”

오민철은 지금 막 기관총 사수를 발견한 것이다.

“가능하겠어?”

기관총의 상당 부분은 밖으로 나와 있다.

사수는 불쑥 튀어나온 지붕아래 즉 장갑차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가로 세로 30센티가 되지 않는 투명한 유리는 방탄이다.

유리 밖으로 나온 KPV기관총의 몸통 일부가 차지하는 공간을 제외하면 방탄 유리의 남은 면적은 15센티 정도였다.

15센티 안에 총알을 집어넣어 기관총 사수를 죽여야 한다.

더욱이 대물저격총이 아닌 이상 방탄유리이기 때문에 한 발로 관통시킨다는 건 불가능하다.

“완벽히 준비했는데. KPV총구의 각도를 쭉 따라 이어보니까 정확히 다리에 맞춰져 있어. 다리를 건너오면 무조건 갈겨버리겠다는 계산이야.”

알파팀이 건너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식은땀이 흐른다.

권총수가 아니었다면 14.5밀리나 되는 KPV 아래 살아난다는 건 불가능하다.

“저 정도 위장 능력이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적이 적지 않다고 봐야 돼. 곳곳에 숨어 있을거야.”

오민철의 표정이 무겁다.

간단하게 소탕을 하고 돌아가 맥주 내기 축구시합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적의 차분한 준비는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KPV가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돼. 내가 방아쇠를 당기면 앞뒤 가리지 말고 다리를 넘어가. 최대한 스피드를 내라고.”

“오케이!”

“상대가 공격해 온다고 해서 반격하면 안돼 다리를 얼마나 빨리 넘어가느냐가 승부의 관건이야.”

“콜!”

더 이상 권총수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린다.

조준하는 것이다.

오민철은 헤드셋에 대고 말했다.

“들었지? 캡틴의 총성이 울리면 무조건 뛴다. 빠를수록 좋다 이상.”

오민철은 자세를 낮추고 잔뜩 맞은편 마을을 노려보았다.

방탄유리인데다 갈대에 덮여 표적은 음영 속에 있다.

보이긴 했지만 햇빛 때문에 분명하지 않다.

권총수는 모든 내공을 눈에 모아 조준경을 살폈고 정확히 사선에 사내의 얼굴을 걸었다.

‘세 방이면 되겠지’

나직하게 중얼 거린 뒤 권총수는 방아쇠를 당겼다.

툭!

투투!

세 번을 당겼다.

하지만 울리는 총소리는 한 번 뿐이다.

퍼억!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방탄유리가 거미줄처럼 깨지는 모습이 들어왔고, 투둑! 붉은색이 번진다.

붉은색은 표적이 흘린 피다.

격중했다는 뜻이었다.

다다다다!

멀리 다리를 넘는 알파팀원들이 보였다.

두두두두!

역시 권총수의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마을 곳곳에서 총알이 날아왔고 두 명의 용병이 나동그라졌다.

권총수는 이를 물었다.

희생자 없는 작전은 드물다.

그렇지만 마을 초입에서 두 명이 나동그라지는 건 결코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다행히 3초가 되지 않아 모조리 다리를 건넌 덕분에 더 이상의 피해는 보이지 않았다.

“쓸어!”

오민철이 소릴 질렀다.

“웬만하면 그냥 갈겨 버리라고.”

돌아서서 지나온 다리를 바라보는 오민철이 이를 부드득 간다.

“다리는 내게 맡기고 형은 마을로 들어가.”

그때 권총수의 무전이 들려왔다.

“좋아!”

오민철은 이를 갈며 마을로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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